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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최복렬 범민련 남측본부 대외협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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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5-07-14 00:00 조회11,0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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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길 걸으면 마음도, 몸도 편해집니다

[젊은 활동가] 최복렬 범민련 남측본부 대외협력국장

언제나 범민련 남측본부 깃발과 함께 현장속에 범민련을 뿌리내리게 하는 데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는 최복렬씨는 2년전만 해도 신촌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젊은 사업가였다.

<##IMAGE##>대학을 졸업하고 동대문 두산타워에서 선배와 함께 옷장사를 하고, 직장 생활을 하며 신촌에 주점을 내기까지 10여 년간 현장을 떠나있었던 그가 갑자기 애국운동의 길에 들어선 것은 어떤 이유일까.

물론 그도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자하던 90년대를 거리에서 보낸 대학 운동권 출신이다. 조선대학교 90학번인 그는 대학에 합격하고 입학하기도 전인 1월 선배의 손에 이끌려 가두투쟁을 처음 겪은 후 졸업할 때까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거리에서, 학내에서 애국운동의 길을 걸었다.

대학 3학년 당시 가두투쟁 시 전투경찰이 쏜 직격탄 3방을 얼굴을 정면으로 맞은 그를 전투경찰들은 몰매를 날렸고 그가 기절하자 겁먹은 경찰들이 병원에 던져두고 도망간 적도 있을 정도로 투쟁의 현장에서는 주저함없이 선봉에서 싸우던 열혈 대학생이었다.

그렇게 뜨겁게 대학 4년을 보내고 사회운동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졸업한 그는 마음 한켠에 ‘대학시절 지켰던 신념을 잊지 말자’는 각오를 새기고 서울로 올라왔다. 한양대 근처에 집을 구한 그는 무슨 사건이 있거나 계기만 있으면 괜스레 한양대에 가서 ‘오늘은 무슨 데모가 없나’하며 서성대기도 했단다. 뿐만 아니라 상경한 대학동기들과 모여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들 사는게 바쁘다 보니 모임은 흐지부지되고 그 또한 한양대 앞에 나가는 일이 뜸해졌다.

그렇게 10여 년을 보낸 최복렬씨는 2000년 6월15일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6.15공동선언의 발표는 그에게 하나의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학 동기 중 한명이 잘 나가던 직장을 용감하게 그만두고 노래패 ‘우리나라’ 단원 활동을 결심한 것을 보고 그는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가슴속에 새겨두었던 ‘대학시절 지켜왔던 신념’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2002년 건국대에서 통일행사가 있었어요. 그때 주점 문을 닫고 건국대에 갔는데 행사가 열리는 스탠드에 혼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도 몸도 불편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최복렬씨는 장사를 그만두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선배의 도움으로 범민련 남측본부에서 일하게 된 그는 두달간 준비를 하면서 그간 손을 놓았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학교 때는 당연히 읽어야 하는 책들이었고 지식으로 습득했는데 이번에 읽을 때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다가왔고, 한구절 한구절이 나의 신념으로 새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시작한 통일운동판은 너무나 변해 있었다. 90년대 초반 당시와는 달리 단체도 너무나 많아지고 단체마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운동정세는 말도 못하게 달라졌고…. 그러나 그는 당황하거나 주눅들지 않았다.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 범민련 깃발을 들고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학생들의 집회현장을 가리지 않고 나갔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현장에서 운동정세를 몸으로 배웠다.

“하나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저 굉장히 좋기만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있어서 좋았고 10년간 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사실 그가 이적단체인 범민련에서 활동하기를 희망한 것도 듣고 보면 아주 단순하다. 90년대 초반에는 범민련이 7천만 겨레의 명실상부한 통일운동단체로서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의 구심이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던 그에게 범민련 남측본부의 이적단체 규정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통일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범민련 남측본부에서 활동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과 실천은 단순하지만 옳으면 실천하는 그의 성품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금 그는 대외협력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숫기’가 없다. 그런 그가 다른 단체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대외협력국 사업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할 수도 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는다. 성격은 바꾸면 되는 것이고 모르면 배우면 된다는 단순하리만치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그의 노력과 실천은 멈출 줄을 모른다.
“저는 대외협력국 사업을 하는 것이 너무도 좋습니다. 그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까 걱정이 될 뿐이지요.”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이렇게 행복하고 기쁜 하루하루를 보낸 적이 없다고 한다. 지난 10년에 비해 먹고 살기는 좀 어려워 졌지만 하나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일꾼들에 비해 여유롭다고 웃기까지 한다.
“신념을 닦아 나가고 통일의 길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를 폐부로 깨닫고 있습니다.”

금강산에서, 추운 겨울 국회 앞 농성현장에서 자신이 결심한 길이 옳은 길임을 절감하면서 대학시절 새겼던 신념을 평생 지키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하고 있는 최복렬씨는 조직의 심장과 후대들의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 바람을 실현하는 길은 신의있는 사람으로 사람들 속에 뿌리내리는 일꾼, 통일운동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삶을 사는 일꾼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 그는 지금도 범민련 깃발과 함께 현장속을 누비고 있다.

박준영 기자

[출처:자주민보 200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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