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01-10 00:00
김남식 선생, “민족의 풍상고초와 함께 한 혁명가”
 글쓴이 : minj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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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풍상고초와 함께 한 혁명가”
고 김남식 선생 타계…11일 민족통일장으로 장례식 진행


박준영 기자

<##IMAGE##>“민족의 풍상고초를 함께 한 혁명가였습니다.”
지난 1월7일 갑작스런 타계한 고 김남식 선생을 윤한탁 교육문화공간 ‘향’ 대표는 이렇게 회고했다.

‘21세기 우리민족이야기’ 일본어판 출간을 위해 일본 방문중에 애석하게 세상을 떠난 고 김남식 선생의 운구는 8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도착, 강북삼성병원 영안실에 안치됐다.

강북삼성병원 안치 후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는 발길이 줄을 잇고 있는데 권낙기 선생 등 장기수 선생을 비롯해서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 이수길 전교조 위원장 등 시민사회단체 지도급 인사들,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 이부영, 김원웅, 임종진 열린우리당 의원 등 정치인들은 선생의 급작스런 타계에 애석함을 감추지 못하며 애도를 표했다.

뿐만 아니라 민족문제에 대한 탁월한 식견으로 학술활동의 귀감이 되어온 선생의 타계 소식은 젊은 후학들에게 더 큰 충격이駭쨉?강정구, 이철기 동국대 교수, 김서원, 장창준 한국민권연구소 연구위원 등이 추모했다.

장례식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일치하게 선생의 탁월한 저술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80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북의 선군정치에 대한 장문의 글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친 선생의 정확한 분석과 왕성한 실천의 모범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윤한탁 ‘향’ 대표는 “민족문제에 대해 선생처럼 정확하게 분석하는 학자는 우리나라에 드물다”면서 “선생은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에는 워낙 신경쓰지 않고 어떤 자리이건 가리지 않고 찾아가 민족문제에 대한 강연을 하신 분”이라며 겸손하고 소탈했던 선생의 학술활동에 대해 회고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선생을 학자로만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선생은 우리 민족의 풍상고초를 함께 한 혁명가”라면서 우리 민족문제와 북에 대해 어떤 편향도 겪지 않고 일관되게 자신의 초지일관한 입장을 고수하고 저술했으며 “선생의 활동은 사후에 민족의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민곤 광양고등학교 교사는 선생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단상을 회고하기도 했다.
“전교조에서 몇 번 선생을 모셔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고령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강연을 해도 지쳐하지도 않고 목소리에도 힘이 넘쳤던 분으로 기억한다”면서 젊은이다운 패기와 정열로 가득했던 선생의 모습을 추억했다.

실제 선생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고령의 나이를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문장구사와 정확한 표현 등으로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하는 선생의 총명함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윤한탁 대표는 당연한 결과라면서 “젊은 시절 가졌던 민족에 대한 사랑이 나이 들어서까지 전혀 퇴색하지 않았기에 노환을 뛰어넘는 왕성한 저술할동과 젊은이 못지않는 실천력을 과시할 수 있는 힘”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선생을 부르는 곳이라면 부산이건 일본이건, 한 사람이건 백 명이건 가리지 않고 민족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뛰어가셨던 선생의 행적을 반추해 보면 사람들의 평가가 결코 그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민족통일장’으로 영결식을 치르기로 한 장례위원회는 내일(화) 오전 9시 영결식을 갖기로 했으며, 모란공원에 안치할 예정이다.

장례위원장으로는 강정구(동국대 교수), 권오헌(양심수후원회 회장), 김세균(서울대 교수), 노중선(4월혁명회 회장), 라창순(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오종렬(전국연합 상임의장), 이부영(열린우리당 의원), 천영세(민주노동당 의원), 한상렬(통일연대 상임대표)이 선출됐으며, 강만길, 강희남, 이이화 등 22명의 사회 각계원로들을 고문으로 추대했다. 한편 호상은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가 맡았다.

25년 충남논산에서 출생한 선생은 생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국제문제조사연구소, 평화연구원, 통일부 등에서 민족문제 관련 연구활동을 펼쳐왔으며, 저서로는 ‘북한총감’(1968), ‘남로당연구자료집’(1974), ‘북한개요’(1978), ‘남로당 연구’(1984), ‘박헌영노선비판’(심지연 공저, 1986), ‘한국현대사자료총서’(이정식, 한홍구 공편, 1986), ‘21세기 우리민족이야기’(2004) 등이 있다.

[출처: 자주민보 200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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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가슴에 일렁이는 민족.통일의 불씨

<21세기 우리민족 이야기>

민족21 minjog21@minjog21.com

1986년 ‘김일성 사망설’이 제기되었을 때, 국내 자칭 ‘북한전문가’들은 김 주석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이후 북 체제의 변화전망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일부 일본내 ‘북한전문가’들도 이들과 한 목소리를 냈다. 그 해를 장식하는 10대 뉴스이자 오보였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이번에도 자칭 ‘북한전문가’들이 매스컴에 등장했다. 한 방송프로에 등장한 ‘전문가’는 김정일 체제가 2년내에 붕괴하지 않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 후로 10년이 훌쩍 지났다.

당시 《아사히신문》 《NHK》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자칭 ‘북한전문가’들이 아니라 김남식 선생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의 분석·판단이 옳았음은 바로 증명되었다.
그는 북한연구의 사실성과 객관성을 복원한 첫 세대였다. 남북현대사의 비극적 우여곡절을 몸소 체현한 그의 일생은 참기 힘든 간난신고의 연속이었다. 해방 이후 민족의 운명이 갈리면서 몇 차례 죽음의 고비를 건너야 했다. 그러나 시대의 험로를 아슬아슬하게 헤쳐오면서도 낙관주의를 잃지 않았고, 운명의 주인으로 살고자 했다.

원래 그가 학문사회에 알려진 첫 출발은 《남로당연구》였다. 그 덕에 역사에서 인멸될 뻔했던 남한 좌익혁명운동사의 주요 자료와 사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비판적으로 학습하고 총화했다. 그 결과 사실의 방대함, 논리의 정연함, 평가의 엄정함을 통해 간결하지만 날카롭고, 비판적이지만 애정 어린 결론들이 제출되었다.

1987년 6·10항쟁이후 민주화가 진척되기 시작하자 그는 ‘북한연구’를 본격적으로 주창했다. 그로 부터 이데올로기와 사상적 금제를 깬 본격적인 연구가 출발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를 통해 한국의 북녘 연구자들이 북의 실체를 투시하고,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연구자들에게 북측 공식문헌 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운 장본인이었다. 초기 연구자들에게 그는 자료·시각·방법론·사실 모든 것에서 스승이자 안내자였고 나침반이었다. 그 스스로 경험과 역사의 반영이었고, 정보의 저수지였다. 그는 대학에서 가르친 바 없다. 강단의 직을 가진 적도 없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정신적·의지적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자 그는 본격적으로 통일운동에 온 힘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그가 동참했고 청춘을 바쳤던 실천의 무대였으나 굴곡 많은 삶으로 에둘러 오느라 청년의 기세는 백발로 변한 뒤에야 다시 삶으로 이어졌다. 그는 여전히 뜨겁고 언제나 한결같이 낙관주의적이다.

팔순에 접어든 그가 이제서야 처음 자신의 자유의지에 부합하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책의 간기로 보면 《남로당연구》이후 20년만이지만 그의 마음 속에서는 최초이자 가장 오롯하고 애틋한 정이 가는 것이리라. 그 제목으로 《21세기 우리 민족이야기》를 붙였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그는 불같은 민족주의자다.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21세기 김정일시대의 북한’은 북의 민족론, 사회주의론, 강성대국론, 통일론을 다루고 있다. 본격적인 논문형식의 이 글들을 통해 그의 화두가 민족주의, 통일로 집약됨을 알 수 있다. ‘2부 우리민족과의 대화’는 강의·강연·대담·대화 등을 묶은 것이다. 특히 1993년 문익환목사와 나눈 마지막대화는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민족주의자·통일지상주의자의 꿈과 염원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3부 민족자주정신과 6·15남북공동선언’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쓴 칼럼·기고·강연원고 등을 묶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드러나는 그의 역사적 입장은 매우 강고하다. 그는 “지난 20세기 100년의 역사는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는 외세에 의한 굴종과 굴욕의 역사”라고 규정한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주된 문제가 민족문제이며, “민족문제란 민족의 자주권 확보문제이며 외세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 대 외세(미국)라는 모순구조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당연히 민족자주정신으로, 근현대사의 애족·애국·자주정신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무기는 민족주의이다. 민족주의가 반역이며 허구이자 해체의 대상이라는 주장이 목울대를 높이는 세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연하다. “오늘의 세계는 세계화라는 이른바 세계주의와 민족의 자주권 확립이라는 세계사적 흐름과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민족문제가 지난날과 같이 21세기에도 변함 없이 세계사적 과제로 부상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낙관주의자이다. 그는 민족 공조, 민족 자주에 기초하면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에서 ‘모순’의 성격과 해결의 순서로 보아 북미관계가 기본축이었는데 앞으로는 그것이 보조축으로 격하되고 보조축이었던 남북관계가 기본축으로 격상될 것이 분명하다”는 진단에서 그러한 열망을 느낄 수 있다. 낙관주의적 입장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보다 대담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종합적 결론이다.

십 년 전 그를 따르고 배웠던 후학·제자들이 모여 칠순기념식을 했다. 그에게 분단 조국에서의 삶은 ‘유배지에서 보낸 한 철’처럼 덧없으며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질감으로 다가왔을 터이다. 그러나 그는 민족에 대한 열망, 생사를 넘나들며 체득한 역사적 경험, 연구와 운동을 통해 수많은 후학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제 그 후 십 년이 지나 청년들은 중년이 되었고, 그는 팔순에 이르렀다. 민족·통일문제는 낙관을 불허하는 듯 하지만 그는 여전히 굴강하고 쟁쟁한 목소리를 울려내고 있다.

매년 정초마다 선후배들과 함께 선생의 신년 덕담을 듣곤 했다. 신촌다방에서 나누는 덕담 속에는 그의 낙관주의적 기풍과 민족·통일문제에 대한 열망이 넘쳐났다. 부디 그가 뿌린 열망의 불씨가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져 한반도를 뒤덮길 기대해본다.

[출처:월간 민족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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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김남식 선생의 마지막 남긴 특별기고-통일뉴스에 게재]

<특별기고>‘선군정치’란 무엇인가-김남식
2005년 북한의 선군정치 10주년에 즈음하여


김남식(통일뉴스 상임고문)

북한의 내년 2005년은 선군정치(先軍政治) 1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2월 7일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노동당이 위대한 선군정치를 시작한 10돌에 즈음하여 선군혁명총진군대회가 2005년 2월초 개최된다”고 보도했다. 이는 그간 10년간의 선군정치로 이룩된 모든 성과와 경험을 총결하고 앞으로 선군혁명에서 제기되는 당면과제들을 한층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대회라고 볼 수가 있다.

선군정치 10년의 역사라고 할 때 ‘김정일 시대’의 개막과 때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조한 선군사상에 입각한 선군정치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선군정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영원한 수령’인 김일성 주석이 개척하고 전진시킨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정치방식이며 따라서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정치방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일 시대는 바로 ‘선군시대’라고 명명할 수가 있다.

선군정치라 할 때 그간 인류역사의 정치사에서 그리고 오늘의 국제정치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이며 창조적인 것이기 때문에 일반 정치학자들도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본질을 왜곡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조적으로 완성시킨 선군정치가 어떠한 정치방식인가를 간략히 살펴본 것이다.

선군정치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몇 가지 배경

선군정치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출현하게 된 목적과 배경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다. 여기서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사상에 기초한 선군정치는 영원한 수령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계승한 주체의 혁명위업을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그를 고수하여 발전.완성시켜 나가야 한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선군정치는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의 선군혁명영도를 오늘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새롭게 계승.창조된 정치방식이라고 봐야 한다. 소련을 비롯한 중국 등 사회주의 나라들에서는 ‘선당후군’(先黨後軍)이었으나 이와는 달리 김일성 주석은 ‘선군후당’(先軍後黨)으로서 혁명활동을 전개했다.

소련의 경우 1903년 볼세비키 당을 창당하고 1917년 10월혁명 후 1918년에 ‘붉은 군대’를 창건했으며, 중국은 1921년 7월 중국공산당이 먼저 창당되고 그 지도 하에 1927년 8월1일 남창폭동에 참가한 항쟁부대들과 호남지방의 농민항쟁군이 합류하여 ‘노.농 홍군’이 조직되었다. 이에 비해 김일성 주석은 당 창건보다 앞서서 1932년 4월 항일무장조직을 창건했다.

이처럼 소련과 중국과 같이 당을 먼저 창당하고 그 당으로 하여금 군을 창건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은 항일빨치산 투쟁을 전개할 때 무력을 먼저 조직하고 1945년 해방 후에 당을 창당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후 군사중시정책을 계속함으로서 ‘선군후당’, ‘선군혁명영도’라는 정치를 해왔다고 볼 수가 있다.

이처럼 선군정치는 돌출적으로 출현한 것이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선군혁명영도를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의한 사회주의의 역사적 경험과 오늘의 시대적 요구를 결합시켜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새로운 정치방식으로 완결.정착시킨 것이다.

한편, 선군정치 출현의 배경으로서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할 수가 있다.

첫째,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계속해서 사회주의 진영의 중심이었던 소련의 해체는 북한이 주체사회주의를 고수해 나가는데 있어서 엄청난 어려움을 주었으며 당시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요, 버리면 죽음이다”라는 정치적 구호가 등장할 정도였다.

둘째,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의 주체사회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가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으며 결국은 북한의 주체사회주의는 소련,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의 붕괴와 몰락과 같은 운명을 겪을 것으로 예상들을 했다.

당시 일부 남한 정치학자들도 북한 사회주의가 곧 붕괴될 것으로 보고, 어떤 학자는 “그렇지 않을 경우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까지 공공연하게 말들을 했다.

셋째, 미국의 패권주의는 소련과 동구권 붕괴에 이어서 북한의 주체사회주의에 대한 압살정책을 더욱 강화시켰다. 당시 미국은 ‘윈-윈전략’(win-win전략), 요컨대 중동지역과 북한에서 동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두 지역 모두에서 승리한다는 전략을 추구했다.

넷째, 특히 1994년 미국과의 핵문제를 가지고 ‘총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하에서 그해 7월 김일성 주석의 급서로 인한 충격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물론 북한 민중들의 가슴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애와 슬픔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슬픔 속에서 민중들은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하여 그의 영도에 따라 김일성 주석이 개척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고수하고 완성시켜 나간다는 굳은 맹세를 다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북한에서는 “피눈물의 맹세”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시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급서하였다는 비보가 전해지자 만수대의 주석의 동상 앞에 모여들기 시작한 조객은 삽시간에 수십만 명에 이르렀고, 애도기간 12일 간에 연인원 2억1천2백만 명의 민중들과 군 장병들이 조의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섯째, 사회주의권 붕괴에 따라 북한경제는 그들 나라들과의 교류협력이 일시에 단절되었으며 수년간 계속되는 냉해와 수해 등의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난 또한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으로 인한 에너지난 등은 북한의 경제는 물론 민중들의 생활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선군정치의 출발

이상과 같은 선군정치 출현의 배경은 어느 나라들에서도 또한 어느 정치지도자들도 경험한 바 없는 전대미문의 악조건으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들 악조건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적이며 상황적 요구(重荷)를 혼자 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이러한 악조건과 외적인 도전 속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심중에는 주체혁명위업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개혁.개방의 길을 택해 결국은 주체사회주의를 포기하느냐 라는 양자택일의 상황까지 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대담하고 통 큰 정치가로 알려져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개척한 주체혁명위업을 고수하고 그를 발전,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는 평소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하고, 그러기 위해서 그간에 견지해 온 군사중시사상에 기초하여 선군정치라는 새롭고 독창적인 정치방식을 창조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이에 관해 북한의 문헌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김일성 주석께서 노동자계급을 믿으시고 그들에 의거하여 건국의 초행길을 헤쳐 나가신 것처럼 김정일 장군께서는 사회주의 운명에 사활이 걸려 있는 엄혹한 상황속에서 인민군대를 굳게 믿고 군력에 의거하여 궤도변경인 ‘개혁’, ‘개편’의 길이 아니라 사회주의 옹호고수, 주체혁명위업 완성이라는 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으시려는 것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의 대장정의 길을 걷게 된 시발점은 1995년 1월1일 인민군 다박솔중대를 방문한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이례적인 다박솔중대 방문은 이미 결심한 바 있는 군에 의거한 정치방식을 구상했음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북한의 문헌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다박솔 언덕을 내려 백만장정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라고 하면서 다박솔중대 방문이 선군의 시작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대장정이란 인민군이 주둔하고 있는 전방고지를 비롯한 해안초소 또는 내륙의 모든 부대와 진지의 방문을 의미하며 그간 10년이라는 세월중 평양의 집무실보다도 인민군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년의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개활동 85건중 군 관련 활동이 56건에 이른 것으로 되어 있다.

선군정치란 무엇인가

북한에서 말하는 선군정치는 ‘군사를 우선시 하는 정치’ 또한 ‘군에 의거하여 주체혁명위업(주체사회주의)을 전진시키는 정치’라고 할 수가 있다.

이에 대해 북한 문헌에서는 “선군정치란 본질에 있어서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이며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주력으로서의 군대의 역할에 기초하여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 나가는 정치”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대는 혁명의 기둥이며 주체혁명위업 완성의 주력군이라는 뜻인 것이다. 본래 사회주의 정치에서는 주력군은 당의 영도를 받는 노동자계급과 농민을 뜻하는데 선군정치에서는 군을 주력군으로 보고 군과 노동자.농민(민중)을 혁명역량의 2대역량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2대역량은 주체사회주의의 사회정치적 기반을 이루면서 ‘군과 민중의 일치’(군민일치)가 그 밑뿌리를 이루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역량관계에 대해 북한의 문헌에서는 “지금 우리는 마치와 낫 우에 총대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당의 독창적인 군사중시사상, 선군정치노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마치는 노동자계급을, 낫은 농민을, 총대는 인민군대를 의미한다.

한편, 북한이 군사를 우선시하는 정치방식은 국가정치체계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종전에는 국방위원회가 중앙인민위원회 산하 조직으로 되어 있었는데 1989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 개정된 헌법에서 국방위원회가 최고인민회의 다음 순위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국방위원장의 임무가 정치, 군사, 경제 등 총체를 통솔.지휘하는 국가의 최고 직책으로 되었으며 그 자리에 김정일 당 총비서를 추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김정일 총비서는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당-국가-군대의 전반을 영도하고 있다.

본래 군대라는 것은 계급국가인 노예소유자 국가에서 전쟁이 발생함으로서 정치의 수단으로서 출현한 정치적 산물인 것이다. 그간의 인류역사에서 군대는 정치의 수단으로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며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군대를 정치의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라고 할 수가 있다. 그간의 인류역사의 경험에서 볼 때 나라의 흥망성쇠는 다름아닌 총대(군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외면하고 군대를 탈정치화, 탈사상화, 정치적 중립화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정치논리에 비추어 볼 때 모순된 것이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개혁과 개방을 내세우면서 군의 탈정치화, 탈사상화 하는 노선을 택한 것이다.

소련의 경우 1991년 고르바초프는 ‘붉은 군대’ 내의 당조직 3만7천개를 해산시켜 혁명군대의 성격을 상실토록 했다. 또한 그해 1991년 8월사변, 요컨대 소연방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반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징벌을 가하기 위한 명령을 하달했는데 군부는 오히려 옐친의 반혁명, 반사회주의의 도구로 전락하여 소련 붕괴를 촉진시켰던 것이다. 결국은 70여년간 쌓아올린 사회주의 체제가 총 한번 제대로 쏘지 못하고 붕괴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이와는 달리 중국의 경우를 보면 1989년 4월부터 6월 사이에 천안문 광장에서 있었던 반사회주의, 개혁.개방, ‘민주화’ 등등을 외치면서 전개한 대중적인 소요, 이른바 ‘천안문사태’가 전개되었는데, 이때의 중국인민해방군이 추호의 동요도 없이 그를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서 중국혁명을 지켜냈다.

이 소요사태는 동구사회주의권 붕괴의 연장선에서 이뤄졌으므로 일련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있으며 이는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받는 군대로서 중국혁명의 전통을 계승하였고 탈정치화, 탈사상화 또는 중립화라는 목소리가 군 내부는 물론 정치권에서 나올 수가 없었고 당에 충실한 당군(黨軍)적 성격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중국공산당 역사에서 없었던 위급한 시기에 당의 영도 하에 있는 군이 앞장서서 그를 극복했다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에서의 군중시사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선군사상에 의한 선군정치에서는 군사문제를 정치의 중심에 놓고, 모든 정책에서 군대의 강화와 국방력 강화에 우선순위를 두는 정치방식인 것이다.

다음으로, 선군정치라고 함은 ‘군에 의거해서 주체혁명위업을 전진시키는 정치’라고 볼 수가 있다. 군을 혁명의 기둥으로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혁명을 전진시키는 정치란 종래의 사회주의 정치에서 전혀 없던 일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군대를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에서 하나의 수단으로, 무기로 간주했다.

요컨대 군을 단순한 전쟁의 수단이나 방위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와 함께 혁명과 건설을 통일적으로 수행해 나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군대의 방위적 역할을 뛰어 넘어 사회발전이라는 영역으로 확대시킨 것이 북한의 선군정치라고 볼 수가 있다.

이처럼 군력에 의거하여 주체혁명위업을 전진시키는 선군정치는 군대의 결정적 역할에 기초하여 사회의 모든 분야를 부추켜 혁명위업 전반을 추진해 나가는 정치방식인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인민군대는 “조국 보위도 사회주의 건설도 우리가 다 맡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어렵고 힘든 건설현장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군정치의 사상적 기초

이러한 선군정치는 그 사상적 기초로서 “군대이자 당, 국가, 인민”이라는 정치철학과 ‘총대철학’ 등 두 가지 철학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철학인 ‘군대이자 당, 국가, 인민’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군대의 뒷받침이 있음으로 하여 당과 국가, 인민이 자주권이 보장되고 혁명의 주체로서의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원리에서 비롯된 정치철학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주체사회주의에서의 혁명의 자주적 주체는 수령-당-대중의 통일체로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군대이자 곧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정치철학은 그 자주적 주체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사상적 기초)로 된다는 논리이다.

‘군대이자 당’이라는 것은 서열상으로는 군보다 당이 위에 있으면서 군을 영도하는 입장이며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당군관계’를 의미한다. ‘군대이자 국가’라는 것은 총대에서 정권이 나오고 정권은 총대에 의하여 유지된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음으로 ‘군대이자 인민(민중)’이라는 것은 주체사회주의 하에서의 군대와 민중은 그들의 요구와 이해관계, 지향하는 방향과 투쟁목적이 서로 일치하는 통일체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군대, 당, 국가, 민중이라는 요소 중에 그중 하나만 없어도 전체가 없어지는 하나의 운명의 공동체, 하나의 생명유기체로 결합돼 있다고 볼 수가 있다. 이는 북한사회가 주체사회주의라는 집단주의 사회로서의 모든 성원들의 사회적 관계가 계급사회에서처럼 대립과 갈등관계가 아니라 지향하는 목표와 요구성이 일치함으로 상호간의 협력과 동지적 관계라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또 하나의 사상적 기초인 총대철학이라고 할 때 총대철학이란 총에 대한 관점과 견해를 말한다. 이에 대해 북한의 문헌에서는 “총은 계급의 무기, 혁명의 무기, 정의의 무기라는 것이며 총은 혁명가의 영원한 길동무, 동지로서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해도 총만은 자기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철학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총대의 성격은 첫째 불변성이라는 것, 언제라도 주인이 겨누는 목표를 향해 곧바로 탄환을 날리는 성격이라는 것, 둘째 총대는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타협과 양보를 모른다는 것, 네째 단호하고 무자비하다는 것이다.

총대(인민군대)는 이러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체혁명위업 수행에서 영원한 동지, 영원한 동행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선군정치는 독창적인 정치방식

이상과 같이 북한의 선군사상과 선군정치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조한 선군정치는 세계정치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독창적인 정치방식이라고 볼 수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러한 선군정치를 창조하게 된 것은 사회주의혁명의 역사적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요구를 반영한 것이며 또한 현실적으로 북한의 주체혁명위업(주체사회주의) 앞에 제기되는 미증유의 난관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 주체혁명위업을 고수.발전시키며, 오늘날 인류의 진보와 평화가 힘을 못쓰는 상황 하에서 그를 소생시키고 활성화시키는 것까지를 고려한 창조인 것으로 주장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강화하고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해 군사를 비롯한 모든 부문에서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이는 부시 행정부가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는 북한체제의 붕괴와 변화를 목적하고 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남한 내의 대부분의 북한 연구자들은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북한 체제의 전복과 변형 정책은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로 다져놓은 북한체제라는 것을 감안할 때 하나의 허구이자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들을 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부시 행정부가 미일군사동맹을 기본축으로 하고 한미군사동맹을 보조축으로 하는 군사력 증강과 북한을 포함한 중국을 의식(잠재적 적국)한 MD(미사일방위)체제 구축과 미군재배치와 같은 일방주의적인 군사전략을 전개하는 것과 관련하여 북한의 군과 민중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조한 선군혁명, 선군사상에 입각한 선군정치가 얼마나 올바른 정치방식인가를 새삼 느낄 것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군과 민중들은 더욱더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심으로 일심단결할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내년 2005년은 모두(冒頭)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북한은 선군정치 10주년을 맞이하게 되고 그를 계기로 군의 위상 강화와 함께 주체혁명위업 수행의 주력군으로서 그 역할을 한층 높이면서 ‘군민일치’를 더욱 다지면서, 강성대국건설을 위한 혁명과업 수행을 한 차원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 전망된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 우리민족의 백년숙적인 미국.일본과의 적대적 모순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북한의 선군혁명, 선군사상에 입각한 선군정치를 민족적 입장과 민족적 차원에서 바르게 이해할 때만이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NCND 정책을 우리민족의 주체적 입장에서 이해할 수가 있다고 본다.

미국이 북한의 핵포기와 관련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이른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CVID) 방식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에 그대로 적용되었을 때만이 미국이 우려하는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출처:통일뉴스 200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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