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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요원서 변신한 박기식선생 당부 그리고 부인 대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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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07-27 04:35 조회79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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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은 유태영 상임논설위원을 대동하고 한국 정보요원서 통일운동가로 변신해 보스턴의 박기식선생 댁을 방문해 그의  근황을 알아보는 한편 90평생 산전수전 겪은 경험에 기초하여 후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들어 보았다. [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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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년 시절의 박기식선생과 그의 부인 정성구 여사


정보요원서 변신한 박기식선생 당부(2) 

 

 

 

후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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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때로는 피아노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박기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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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태영박사와 대담하는 박기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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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태영박사는 박기식 선생 서재에서 흥미있는 도서들을 열람하고 있다.


 

기자는 "10년이면 백세잔치를 하게 되는데 지금 투석을 하면서 투병하고 계시지만 건강이 좋으시고 생각하는 것도 젊은이 못지 않게 활기에 차 계십니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지나간 90년을 회고하시면서 후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들려달라고 여쭈어 보았다.

 

박기식선생은 이에 대해 자신은 분단시대에 살면서 한을 갖고 살아왔다고 돌이켜 보며 우리 세대 후진들은 <한이 없는 세상>, 통일된 조국을 만들어 해내외 동포들이 모두 화해협력에 바탕을 두고 좋은 세상을 만들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반응했다.

 

그 세상은 다름이 아니라 통일된 조국이다. 이 세상에서 남,, 해외동포들은서로가 다툼이나 마찰없이 평화로운 조국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강조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사회나 조선사회, 그리고 해외동포사회에서 발생하는 모순들은 다른 무엇보다는 분단모순에서 비롯되는 경우들이 대부분으로 분석되어 왔다. 다시말하면 조국반도의 본질적인 문제인 분단문제가 종식되고 외세의 간섭이 사라지게 되면 남이나 북이나 모두 외세의 간섭과 이해관계로 갈등과 마찰이 빚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모순을 제거하기 위한 일들이 지금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이때문에  박기식 선생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비롯된 4.27<판문점선언>, 그리고 6.12 <싱가폴 북미정상회담>이 제대로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염원하고 있다.

 

그리하여 박기식선생은 후진들이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기여코 실현해 달라는 것이다. 이것만이 우리민족이 살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자면 무엇보다 통일의 대상인 북부조국에 대하여 똑바로 인식하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닦아 놓은 주체조국의 토대위에 선군조선, 강서대국을 뽄대있게 건설하고 역사적인 4.27 판문점선언을 창출해 낸 남북수뇌회담과 70년 분단사에서 최초로 이뤄진 6.12 북미수뇌회담을 통해 조국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기초를 실현하고 있는 김정은국무위원장의 빛나는 업적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심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의 이같은 인식은 임창영박사에 의해 비롯되었지만 박기식 선생 자신이 끊임없는 노력으로 북을 제대로 알게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특히 남녘의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 및 지식인들은 자기 민족의 절반인 조선이 어떤 사회이며 어떠한 노정을 거쳐 세계에서 주목받는 나라가 되었는지 똑바로 아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북을 제대로 아는 것이 통일로 가는 첩경이라고 시사하기도 한다.

 

박기식선생은 통일문제에 노력하는 동포들이나 미국인들을 보면 넉넉한 경제적 배경은 갖고 있지 않지만 각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지원해 왔다.그리고 그의 가정을 방문하는 통일운동 일꾼들을 만나면 호텔에서 잠도 재워주면서 좋은 음식들을 대접하고 보스턴 인근의 유명한 장소들을 안내하며 구경까지 시켜주며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대접해 주는 성격이다.

 

 그의 아내인 정성구여사(84)도 말한다.자기 가족들보다도 남북이 통일되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고 소개한다. 통일운동 일꾼들이 집을 찿아오면 롭스터르 를 비롯하여 좋은 음식집을 가서 비싼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남편의 체질로 되어 왔다고 귀띔해 준다. 아내나 가족들에게는 롭스터 한번 사준적이 없을 정도로 생활비를 아끼면서도 통일운동하는 사람들만 만나면 무엇이든 아끼지 않는 것이 남편의 품성이라고 말해준다.

 

박기식선생은 또한 통일운동 진영의 단결단합을 강조한다. 통일운동진영의 특징은 사회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가장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동지애>라고 지적한다. 그는 미주운동권내 이러저러한 문제들도 <동지애>로 풀어나가면 좋겠다고 자신의 운동철학을 힘주어 말해준다.

 

그는 이어 한국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순들 때문에 적폐청산이 시급하다고 설명하면서 후진들은 이러한 적폐들가운데 특히 분단적폐가 본질적인 모순에 비롯된다고 진단하면서 남북문제와 한미문제에 숨겨 있는 모순들을 청산하는 일들이  원만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재미동포들은 미국시민으로서 미국이 국내문제 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도적적인 나라로 거듭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실은 민족분단 문제도 미국의 대코리아반도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분단 70년이 되도록 그 모순의 고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한미문제도 정상화되어야 한고 북미문제도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동포들의 지위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재미동포들이 제 역할을 한다면 분단적폐 청산을 위해 큰 몫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주변국 일본이나 중국의 문제도 남과 북이 화해협력으로 힘을 합치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박기식 선생은 언론들의 문제점들도 심각하다고 꼬집으며 조선일보 같은 매국언론은 이미 일제시대부터 친일언론으로서 활약해 왔고 분단시대에 들어와서도 친일,친미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건물로 되어 있는 광화문에 있는 코리아나 호텔도 일본 이도쯔 상사의 도움과 박정희정권과의 결탁으로 이뤄진 재산이다. 그리고 한국언론중 가장 반민족 악질언론으로 조선일보 계열이 손꼽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적폐는 한국사회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한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외교, 교육 등 곳곳에 적폐들은 묻혀 있다. 이러한 적폐들은 원천적으로 분단적폐에서 야기된 것으로 진단되어 왔다. 박기식 선생은 이같은 분단적폐가 청산되어야 한국내 각계각층에 숨어 있는 모순들을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박기식 선생은 남북의 화해협력과 통일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로 해내외 동포들이 힘을 합쳐 남북화해협력의 기초위에서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기식선생의 내조자,정성구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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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요즘의 사모님, 정성구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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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뒷 마당 크고 작은 나무들을 사모님이 대부분 심어서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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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화초들도 사모님이 심어서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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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화초들도 사모님이 심어서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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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택 앞마당의 화초들도 사모님이 심어서 길렀다


박기식 선생의 사모님 정성구여사(84)도 남편 못지 않게 애국자이다.반일감정이 대단히 높았고, 민족자주 정신도 아주 높았다.

 

일제 36년의 역사를 반추해서인지 일본사람들을 <왜놈>이라고 불러 왔다고 고백한다. 사모님은 평소에는 아주 조용한 분으로 느껴왔는데 이번 만남에서는 자신의 속마음을 많이 노출해 보였다.

 

정성구여사는 또한 남북이 분열이 되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 어디에 우리나라가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며 통일이 된 상황의 남과 북이 존재해야 그것이 우리나라가 되지 않겠느냐며 지금은 우리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 조국이 없다고 대답한다. 다시 말하면 남과북이 통일되어야 그것이 조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정성구여사도 한국에서는 학교선생 출신이지만 미국에 와서는 조세청(IRS)에서 오랜동안 일해 오면서 모범직원으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

 

여사께서는 나는 일반 동포여성에 속하지만 민족성원의 한사람으로 조세청에서 일할때 다른 직원들이 나를 바로볼때 <코리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민간 외교사절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면서 미국인 직원들과 관계에서 항상 몸가짐과 근무하는 자세에 신경을 써왔기 때문에 조세청 직원들은 좋게 본것 같다고 회고한다.

 

근무시간도 잘 지켰을 뿐만 아니라 근무할 때 조세청 수위실이나 사무실에 꽃을 꽂아 놓은 일도 과외로 했고, 환경미화에도 신경을 써왔기 때문에 미국인 동료들은 나를 보고 코리안을 생각하기 때문에 언행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것이 직원들의 마음을 산것 같다고 설명한다.

 

 사모님은 또 독실한 캐토릭 신자이다. 캐토릭 이름으로는 <엔젤라>라고 이름을 받아 사용했다고 귀띔해 준다.

 

가정에서는 남편을 하늘처럼 모셨고 남편의 말을 법으로 생각하고 복종해 왔다고 한생을 돌이켜 본다.

 

그는 남편 덕분에 70년대 평양에도 함께 갔고, 통일모임에 함께 참가한 경우들이 많아서 남편이 얼마나 통일을 열망하고 있는지 자신도 남편따라 통일염원이 뜨거워졌다고 시사하기도 한다.

 

정성구여사는 남편과 같이 대구출생으로 성장하다가 결혼하고 미국에 와 벌써 46년째 살고 있다.

 

지금 자택 뒷정원 나무들은 거의 전부 사모님이 길러 준 나무들과 화초들이다. 마당 뒤에 자란 나무들은 하늘을 찌르고 있을 정도로 많이 자라났다고 말한다.

 

카토릭 이름이 <엔젤라>인데 그 뜻은 천사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사모님은 천사처럼 마음이 곱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분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박기식 선생과의 부부관계는 현모양처로 한생을 살아 온 분이다.

 

이번 방문에서 민족통신 성원들과는 아주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아서인지 그 어느때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좋은 방문으로 추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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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은 유태영 상임논설위원과 함께 보스턴의 박기식선생 댁을 방문하여 그의 근황을 알아보았다. 그는 90세의 나이에다 일주일에 세번 투석중이면서도 앉으나 서나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해 미주통일운동 진영의 원로인 박기식선생은 요즘에도 청년같이 활동하고 있어 머리가 숙여진다.대담내용을 여기에 게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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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년같이 활동하는 보스턴의 박기식선생(90)





 

보스턴 박기식선생,투석중에도 활동(1)


[보스턴=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90세의 나이에다 일주일에 세번 투석중이면서도 앉으나 서나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해 온 미주통일운동 진영의 원로인 박기식선생은 요즘에도 청년같이 활동하고 있어 머리가 숙여진다.

 

기자는 뉴져지 주 해링톤파크에서 유태영박사(88, 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와 함께 5시간 가량 직접 운전하며 북상하여 매세스츠주의 보스턴 외곽지역에 있는 박기식선생 댁(137 Lovejoy Rd., Andover, MA 01810)을 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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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족통신 성원들을 맞이하여 아침식사를 대접하는 박기식선생 부부

 

그는 민족통신 성원들이 방문하는 것을 미리 알고 자택 탁자위에 여러가지 자료들을 준비해 놓았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지역동포 신문인 <보트턴 코리아>에 남북정상회담을 축하한다는 전면광고를 게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판문점회담은 우리 겨레의 평화와 화합, 통일의 씨앗을 뿌렸습니다.구순 숙원에 희망을 주었습니다.-재미 범민련, 동포연합 고문 박기식-“이라는 글발이 눈을 끌었다.


박기식선생방문-판문점선언광고.jpg

 

이날 유태영박사는 서로의 만남을 반가워하며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을 때 박기식선생에게 물었다. 1972년 도미하기전에 10년은 학교선생, 10년은 한국중앙정보부 요원으로 일했는데 미국에 와서는 180도 전향하여 미주통일운동에 참가하여 그동안 많은 일들을 하였는데 지금의 그 감회는 어떠한가를 박선생에게 질문으로 던졌다.

 

정보부요원에서 통일운동 인사로 전환한 계기

 

박기식 선생은 뿌리없는 나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설명해 주었다. 일제때에 일본에게 겪었던 그 아픔과 분노는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원을 하다가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들어가 일할 때도 언론담담으로 복무했는데 한겨레신문을 창간한 송건호선생을 비롯 리영희 선생 등 많은 언론인들과 필진들을 관계하면서도 그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요원이 아니라 우호적인 정보원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보원 요원으로 일하면서도 그들에게 불이익이 되는 일들은 피했고, 위기상황마다 그들에게 귀띔을 주어 왔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을 만나면 왜 그런데서 일하느냐고 애정어린 충고도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양심적이고 민족적인 심성때문인지 중앙정보부 출신으로 통일운동 진영으로 들어와 미국생활 46년동안 김대중선생 구출운동을 포함하여 남북의 화해협력을 촉진하는 운동에 헌신해 온 유일한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박기식 선생이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 시절에도 북부조국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한국 기자들과 만나 크고 작은 모임을 가질때에소 북녘 소식들을 기자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미국에 오기전에도 북녘에 대한 이러저러한 정보들을 통하여 일반 언론들이 보도하는 것과는 다른 측면들을 알게 된것 같다.

 

그는 뉴욕의 <우륵교향악단>의 통일음악회가 열릴때 마다 글과 성금으로 후원해 왔다. 2018428<머킨 콘서트 홀>에서 진행된 통일음악회 프로그램에 게재된 축하광고 문안 <꽃피는 사월의 봄> 경축음악회를 축하합니다라는 광고를 통해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민족화합과 조국통일의 노정에 선각자인 임창영박사는 1930년 도미하여 앞서온 서재필,리승만 등 선배들과 연대하였다.임창영박사는 30년대 후반 세계적인,석학인 <아인슈타인>으로 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고 놀람을 금치못했다고 하였다. 그가(아인슈타인) “항일빨찌산 김일성이란 사람이 어떤 분이냐?”고 물어보며 큰 관심을 보인데 대해 충격을 받았었다는 회억의 일화를 임창영박사는 전해주었다.


“1973년초 하바드대학 석학들의 후원으로 김대중구명을 위한 집회가 열렸었는데 동 행사의 연사로 나온 임창영박사를 상봉한후 20년이 넘게 그분의 사사를 받아왔고, 1970년에는 그분의 추천으로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다. 나의 평양방문은 내 생애에 대전환기를 가져다 준 큰 사변으로 되었다. 오늘 태양의 계절에 높은 인류애의 예술성을 지닌 우륵교향악단의 아름다운 선율이 뉴욕의 하늘가에 번지는 경축공연에 뜨거운 박수와 성원을 보낸다. <광고안 사진은 1980년대 중반 어느날 우리를 찾은 임창영박사 내외분과 필자의 집 후정에서 담소하던 순간이다.> -보스턴에서 박기식 씀-“

 

그는 또 12년전 <New England Korean Weekly>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남과북  모두 우리의 조국입니다.”라고 자신의 조국관을 정의하면서 남이나 북이나 그 어느 한곳이 조국이 아니라 남과북이 하나된 그 상태를 조국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뜻으로 대답했다. 다시 말하면 통일을 하자면 친북, 친남을 하여여 가능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의 말들과 글들을 종합하면 그는 단순히 친북인사가 아니라 남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간주하면서 그 남과 북이 서로 화해협력하여 통일을 이루자는 쪽으로 노력하면 그것이 애국의 자세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화해협력하는 것을 반대하고 서로 평화쪽으로 가는 것을 방해한다면 그것은 애국이 아니라 매국이라는 뜻으로 그는 풀이한다.

 

그는 그래서 1971년 중앙정보부를 그만두고 양심선언을 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때 임창영박사(전 한국유엔대사)와 교류하면서 그는 보다 거시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통일운동에 뛰어들게 되었고, 임박사의 권유로 이북을 가게 되어 그 사회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그의 인생관, 그의 조국관, 그의 애국관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임창영박사를 만나는 것으로 하여금 새 사람으로 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 박기식선생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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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기식 선생 자택을 방문한 램지 림박사 부부, 이민용선생 부부 등


 

그런 인연때문에 임창영박사와 그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지만 임박사의 아들들인 램지 림박사, 그리고 차남인 폴림부부와의 관계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때에도 램지 림박사 부부, 이민용선생부부 등과 함께 림박사 부부가 마련한 오찬을 나누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다.


 

남북 해외동포들 가운데 잊지못할 인물들

 

남녘을 포함하여 북녘, 그리고 해외동포들 가운데 잊지 못할 인물들을 꼽는 다면 누구냐고 질문했다.

 

박기식 선생은 남녘 동포로서는 김대중, 송건호, 리영희, 한완상, 강창덕, 자주시보의 발행인 김병길과 주필 이창기 기자 등이고, 북녘동포로서는 김일성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물론이고, 그외에 김영남 상임위원장, 김기남비서, 홍기문, 려연구, 박시형 등이고, 해외동포들로서는 임창영, 최덕신, 최홍희, 윤이상, 로광욱, 최석남, 문명자, 이용운 등이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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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기식 선생부부가 1979년 평양탁구대회에 참석했을 땅시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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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왼쪽부터 려연구,류미옥, 그리고 박기식 선생 부인 정성구여사(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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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전의 로광욱박사와 박기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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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전의 최덕신 선생부부와 박기식 선생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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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기식선생(외쪽)과 최석남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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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왼쪽부터 황석영, 박기식, 유태영, 정인경

 

그는 이밖에도 헤아릴수 없는 인맥들과 인연을 갖고 있어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거론된다.

 

그의 연세가 90이 되었지만 그는 30, 40, 50, 60, 70, 80대 등 각 연령층의 동포들과도 교류하고 있어 민주운동과 통일운동 진영의 대부분 인물들을 알고 있다.

 

그는 또 민족통신 애독자일 뿐만 아니라 자주시보, 통일뉴스 및 이북언론들의 애독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그 누구보다 빨리 이해하고 인식해 왔다.

 

그는 특히 임창영박사가 자신에게 가르쳐 준 것을 잊지 않고 있다고 돌이켜 보면서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을 돈으로 민족의 대단합과 나라의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말은 이것은 김일성주석의 주옥같은 가르침이라고 말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북녘에서 발행하는 신문, <통일신보>200261일자 자신과 대담한 보도자료를 통해 회고해 주었다.

 

박기식선생은 또한 북부조국을 알면 알 수록 북녘동포들은 민족자주 우선주의와 민족통일 우선주의를 느껴 왔다고 말하면서 남부조국을 북에서 이런 애국사상을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강조하면서 남쪽의 애국가를 지었다는 안익태는 일본의 혜택으로 생활했던 사람으로 그의 이름도 <에끼타이 안>이라는 일본 이름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해 준다.

 

그는 이밖에도 자신이 1972년 이민온 이후 오랜동안 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후 고향땅에 들어갔으나 19876월 김포공항에서 강제출국 당한뒤 오랜동안 비자수속하면 번번히 거부당해 왔던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풀어져 갈 수 있지만 건강이 허락지 않아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비록 투석으로 투병중에 있지만 지금 전개하고 있는 남북간의 <판문점선언>과 북미간의 <싱가폴 수뇌회담>이 원만하게 성공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다음에 계속~)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18-08-02 05:53:00 통일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18-08-21 09:45:31 추천논평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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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Yang eunsik님의 댓글

Yang eunsik 작성일

G ood article about Mr.pak ki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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