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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단식에 <열다섯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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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1-14 00:00 조회1,8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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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노상단식 8일째. 어머니는 씩씩했다. 예순의 나이도, 한겨울 폭설도, 주위의 만류도 끝내 어
머니를 말리지 못했다. 1월8일 ‘국가보안법철폐와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부패방지법제정를
위한 인권활동가 연합 단식농성장’에서 만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 오영
자(60)씨. “뜨신 물 한 그릇이 우리 밥이고, 소금이 반찬이제”라며 희미하게 웃는 얼굴에
는 결기가 서늘했고, 부르튼 입술은 “국가보안법 철폐하라!”는 구호를 멈추지 않았다.

“내가 단식하는 게 아니라 우리 선영이가 하는 거야”

둘쨋딸 박선영씨가 “분신한 선배 학우의 울부짖음이, 핏빛의 역사가 머릿속에서 헝클어진
다”며 목매 자살한 87년 이래로 어머니는 딸의 삶을 대신 살아왔다. 15년 내내 시위현장을
떠나지 않았고, 농성장이라면 빠지지 않고 쫓아다녔다. 그러다보니 89년에는 ‘법정 소란
죄’로 8개월 동안 감옥살이도 했다. 오씨는 “선영이가 죽어서 내가 다시 태어났다”며 스
스로를 “열다섯살”이라고 말한다.

“국가보안법 없애는 게 죽은 자식 다시 살리는 길이제.”

아무도 그를 농성장으로 부르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 고생하는 게 안타까워 전남 구례에서
무작정 달려왔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예매해둔 기차표를 찢어버리고 그냥 눌러앉
았다. 오씨는 “선영이가 ‘엄마 가지마…’라며 내 발목을 붙잡았다”고 돌이킨다.

“다들 말려서 처음엔 ‘3일만 하겠다’고 했제.”

동조단식 명목으로 슬그머니 끼여들었지만 사흘이 지나고 나흘, 닷새가 돼도 오씨는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체감온도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젊은 사람들도 하나둘 나
가떨어지는 판이었다. 같이 단식하던 사람들이 “이제 그만두시라”고 권했지만 그때마다
“괜찮다”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기력이 쇠해 링거를 맞으면서 버티던 1월7일 밤, 폭설과
함께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혈압도 점점 떨어졌다. 소식을 전해들은 유가협 회원들이 부랴부
랴 달려왔고, 그의 손을 끌고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오씨는 다시 농성장에 와
있었다. 유가협 회원들이 잠시 외출한 틈을 타 다시 농성장으로 ‘도망’친 것이다. 돌아온
농성장에서 그는 부르튼 입술로 “여기서 죽어나가는 게 영광이제”라고 되뇐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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