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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조동설선생님,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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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7-07-21 07:28 조회13,65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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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노길남편집인은 이번에는 재미동포 통일운동진영에서 가장 거액의 애국헌금을 희사한 조동설 선생댁을 방문해 그의 근황을 알아      보았다. 조동설선생은 미국 탁구대표 선수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되어 고향방문을 하게 되었고 이후 북미관계 개선과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활동하여 왔다. 그래서 1990년대 이행우선생과 이승만목사와 함께 미주동포전국협회를 구성하고 활동했는데 당시 단체가 있는 건물을 희사하여 화제가 된바 있었다. 그는 35만달러 가량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센터의건물의 기증식은  건물을 <William Cho Peace Center> 명명하고 조동설 선생과 이승만목사, 이행우선생, 로광욱박사 부부, 신필영선생, 윤흥로박사, 이재수선생, 서혁교선생 27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991 923  NAKA(미주동포전국협회) 기증한 기념식이 진행된바 있었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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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동설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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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동설선생이 오인동박사 도움을 받아 워싱턴 디씨 평화센터에 전화 하는 모습

 

 

 

[기획]조동설선생님,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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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재미동포 통일운동 진영에서활동하다가 소식이 뜸한 동포들이 있다. 중의 한분은 조동설선생(88)이다. 그는 1929 36 이북 진남포에서 태어나 진남포공립상공학교에서 기계과에서 공부하고30회졸업생으로 마치고 김일성종합대학교 이공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전쟁시기에 월남한것으로 알려졌다.

 

남녘에서는 미대사관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한국사람으로서는 높은 직위까지 올라가 활동한바있다. 그러나 미국에이민와서는 호텔을 운영하면서 중소기업인으로 활동 하였다. 조동설 선생 자신의 기억력에 문제가있어 정상적인 대화를나누기는 어려웠다. 기자와함께 방문한 오인동박사도 조동설선생에 대한 이력과 약력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아 워싱턴 디씨에소재한 미주동포전국협회(NAKA)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그들도 조선생에 관한 발자취에 대해서 알고있지못했다. 서울로 영주귀국한 이행우 선생에게연락하여 자료를 얻도록하겠다고 대답해 언젠가 자료를 입수하면추가로 소개할 계획이다.

 

조동설선생은 미국 탁구대표 선수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할 함께 것이 인연이 되어 고향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후 북미관계 개선과 조국의평화통일을 위해 활동하여왔다. 그래서 1990년대 이행우선생과 이승만목사와 함께 미주동포전국협회를 구성하고활동했는데 당시 단체가 있는 건물을 희사하여 화제가된바 있었다. 그는 35만달러 가량 기증한것으로 알려졌다. 센터의건물의 기증식은   건물을<William Cho Peace Center> 명명하고조동설 선생과 이승만목사, 이행우선생, 로광욱박사 부부, 신필영선생, 윤흥로박사, 이재수선생, 서혁교선생 27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991 923  NAKA(미주동포전국협회) 기증한 기념식이 진행된바있었다.   단체(NAKA) 1 회장은 ()이승만 목사, 2대회장은조동설 선생, 3대회장은이행우 선생, 4대회장은서건일 선생, 5 회장은 윤흥로 박사, 6대에 조동인 회장으로 이어져 왔다.  

 

조동설선생의 애국헌금지원은 조국해방이후 재미동포사회에서 있었던 가장 헌금이었던 것으로기록되었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지난 2006 7월에 로스엔젤레스의 선우학원박사가 <The Harold W. and Sonia Sunoo Peace Foundation>(선우평화재단) 설립하여25만달러를쾌척한 경우가 두번째로 애국성금이었다.(처음에50만달러성금을 가지고 선우평화재단을 설립하려고 주식을구입하였으나 재단을 만들 당시 주식가가 내려앉아25만달러로축소되었던 이유로 25만달러가된것이었음)

 

조동설선생은 2012 62일에 사모께서 세상을떠났고,  21녀를 두었으나 아들도 세상을떠났고, 지금은 엘렌과 손자손녀들이 함께 로스엔젤레스 로스펠리즈 지역에살고 있다. 그의 건강상태는 대단히 양호한상태이지만 기억력에 문제가있어 대화를 길게 나눠야 기억들을되살리는 현상이 있어 정상적인 교제가 어려운상황으로 느껴졌다.

 

자신이 직접 성금하여 건립한 <윌리엄 평화센터> 대해서도 자신이 그런 좋은 일을 했어라고마치도 농담처럼 이야기하는것 같아 그의 치매를 모르는 사람들은농담을 하는 것으로착각할수도 있다.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서기억력이 없으니까 크고 작은 걱정들도 없는 같다. 그래서인지 그의 표정은그와 대화를 나누는동안 편안했고, 밝은 미소와 언제나 근심걱정없는 표정들로 나타났다.

 

그는 과거 기억력들이 거의 망각상태이지만 북녘 고위급중에 동창생인 최태복비서에 대해서는 기억하고있다. 같이 학교다닐때 최태복 동창생은젊잖은 학생이었고, 나는 키가 작아 별명이땅개였다.” 농담하며 환하게웃기도 했다. 이에 대한 기억력은 살아있었다. 대화중에 70% 가량은 망각한상태였고, 30%가량은 이러저러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설명하면기억이 살아나 반응하는모습을 보였다.

 

조동설선생은 고향에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기자가 이북에 취재를자주 간다고 하니깐요즘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물어서 본대로느낀대로 놀랍게 발전하고있고, 의식주 문제는해결되었고, 이제는 미국까지날라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하여 미국, 러시아, 중국과 함께 4 ICBM강국이되었고, 6 수소탄보유국, 10 인공지구위성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고알려주자 그는 놀라는표정을 지으면서 정말 그러느냐고 눈이 둥그렣게변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자는 그를 만나고 나오는 순간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조경미 선생을 포함하여조동설선생을 아는 소수의사람들은 그의 자택을다녀갔으나 조동설선생은 누가 다녀갔는지 전혀 그의 기억속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그를 아는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여대화를 나누면 그의 기억들은 조금씩이나마 살아나는 같아 시간이있을때마다 그를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요즘에는보이지  않는 인물들과 궁금한 인물들을떠올렸다.  

 

 문동환목사, 이행후선생, 송기뢰박사, 홍성현목사 등은 한국으로 영주귀국해서 만나기가 어려운 상황이고, 샌후란시스코에 거주해오던 이만영 선생(전화 510-363-8220) 청각이 좋지 않아 전화를 해도 거의 통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데다가 심한 치매 현상으로 가까이 사귀어 사람들의 이름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딱한 사정에 있다.

 

그리고 그외 소식이 거의 없는 인물들은 다우니에 거주해 국영길 변호사도 건강이 좋지 않아 두문불출중에 있고, 뉴욕 업랜드에 거주해 지창보 박사(전화:631-423-2532) 은퇴후 거동이 불편하여 두문불출하고 있는 상황이며, 캘리포니아 남단에 거주해 오던 김헬렌목사와 남편 김세환선생의 연락처가 거의 두절상태이고, 함성국목사 부부께서 뉴욕에서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이사(10870 N Sterling Rd, Cupertino, CA95014 연락전화 650-495-5260) 이후 두문불출하고 있는 상태이고, 이화영선생(전화:559-370-4007) 서정균선생과 재혼하여 살다가 2005 618 별세하자 혼자 자녀들을 돌보며 살다가 멀리 북가주 세코이파크 근처로 이사가는 바람에 행사장에 자주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보스턴의 박기식선생(전화:508-277-2425)께서는 장기간 투석치료를 받는 바람에 통일운동진영 행사에 참석하지 못해 자신도 안타까운 심정 이라고피력하고 있다. 이들을 아는 동포들이 이들에게 전화안부라도 물으면서 외로움을 달래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조동설선생 자택주소: 5284 Los  Diegos  Way, Los Angeles, CA90027

연락전화: 323-469-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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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두만님의 댓글

김두만 작성일

민족통신이 아주좋은 기획으로
통일 운동원로님들의 근황을 전하는군요.
매우 유익한 기획이며 민족통신역활 기대가 큽니다.
계속 통일에 앞장서 일깨워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조동설 선생 기사가 나가자 박기식 선생께서 전화를 하여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박선생께서는 투석중인데 전화할 수 있다고 하면서 오늘 아침 전화로 여러가지 지난 역사를 설명해 주어 이것을 요약하여 여기에 소개합니다.

조동설 선생은 1979년 4월하순부터 5월초에 진행된 평양세계탁구대회에 미국선수들(재미동포들 중심)이 참가했는데 여기에 조동설선생 부부가 후원단으로 참가했다고 알려줍니다.그 때 재미동포들이 국제탁구경기 참관자로 초청받은 7명이 있었는데 그 분들은 박기식선생부부, 노의선목사, 전충림선생, 유화선선생, 배달신문 편집인 장선생, 그리고 김형식선생(가고파 작곡가 김동진 선생 삼촌)이 방북하였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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