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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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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이활웅선생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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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7-07-20 12:33 조회5,722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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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부인을 잃은 이활웅 선생(92)은 요즘 어떻게 지내실까민족통신 노길남편집인은  오늘 이활웅선생 댁을 방문했다.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세이야기 그리고 조국통일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이활웅 선생은 무엇보다 주한미군을 내보내는 일을 선차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한미군을 그냥 두고서는 한국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역사적 현실로 되어 왔다고 지적하면서 주한미군을 한국에서 보내야 한국의 민주화도 그리고 남과 북의 통일도 가능하게 된다고 거듭 힘주어 말한다. 방문일지를 여기에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기획]이활웅선생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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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힐스=민족통신 노길남편집인] 지난 45 부인 김옥희여사의 장례식을 치른후 3개월을보낸 이활웅선생 댁을 찿았다. 사모님의 임종을 얼마 앞둔 시기의 이활웅 선생 모습과 요즘의 모습은 무척 달랐다.

 

임종을 앞둔 시기에는 90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모님의 손발이 되어 24시간 곁에서 시중을 드느라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번 방문에서의 이활웅 선생 모습은 아주 평온하였다. 하지만 부인을 땅에 묻고, 13 아이들은 떠나고 이후에는 무척 적적한 나날들이었다고 돌이켜보며 외로움을 달래는것이 무척 힘들다고 고백한다.

 

요즘에는 그래서인지 13 자녀들이돌아가면서 일주일 내지 열흘가량 함께 있다가 가곤하지만 그것도 마음에부담이 가는 심정인 것같다. 성장하면서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문화속에서 지내서인지 혼자 살면서 부엌살림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요즘에는 그래도 혼자서 아침, 점식, 저녁 식사를 혼자 해결한다고 말한다.

 

아침 630분께 기상하여 30 가량 동네 둘레를 도보로 걷는 운동을하고 돌아와 토스트, 우유, 빠나나, 그리고 커피 한잔 정도로 아침을 땐다고 한다. 그리고 신문과 인테네트자료들을 컴퓨터로 열람하고 점심에는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모찌, 등을  놓은 것을 점심으로 대신하고, 저녁에는 동포 마케트에서 파는 된장찌개등을 끓인것과 밑반찬들, 그리고 밥하고 식사를 한다고 설명해 준다.

 

90 넘은 나이에도 자동차 운전하는데에는 조금도 지장이 없다고 말하는 이활웅선생은 부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간병으로 돌볼때 잠시 시장에 갔다오기 위해 운전을 할때가 가장 마음이 편안한 시간이었다고 돌이켜보기도 한다.

 

대화는 이활웅선생의 태어난 곳과 걸어 발자취를 잠시 돌아보았다. 1925년 4월23일 중국 용정에서 태어나 4살때 지금의 북조선 선봉이었던 웅기로 부모를 따라 이사를 갔다. 5년동안 이곳에 살다가 9살때 나진으로 옮겨 1945년까지 대서방을 운영하던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1946 이곳에서 중학교만 마치고 남녘 땅으로 단신으로가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고학으로 학교를 마치고 1955년에 외무부에 들어가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동안 캄보디아 등지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1959년에 뉴욕 영사관에서 3년가량 근무했고, 1968년에 로스엔젤레스 영사관에서 근무하다가 1971년에 현지에서 사임하고 자영업을 운영하면서 13녀를 길렀다.

 

기자는 1980 5 광주민중항쟁 시기 전후에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미주본사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제도권 언론생활에 한계를 느끼고 코리안스트리트 저녈에서 편집국장으로 일하던 시기에 이활웅선생을 알게 되었다. 기고글을 통해 한국의 모순문제들을 많이 지적해 주었고, 개인적으로는 <통일>이라고 스틱커를 만들어 자동차에 부착하여 다니도록 선전활동도 꾸준히 벌려 겸손한 활동가로 기억된다. 그는 영어실력이 뛰어나 미국 주류사회에 영문 기고문을 투고하여 코리아반도 문제를 미국인들에게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고, 한때는 해외동포언론인  <민족통신> 한국의 <통일뉴스> 고정필진으로 활동하면서 조국의 통일문제와 관련된 글들을 많이 기고한바 있었다.

 

 

기자는 이번 방문을 통하여  이활웅선생께  조국의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중점적으로  해야 되겠습니까?”라고 질문해 보았다.

 

이활웅 선생은무엇보다 주한미군을 내보내는일을 선차적으로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주한미군을 그냥 두고서는 한국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역사적 현실로 되어 왔다고 지적하면서 주한미군을 한국에서 보내야 한국의 민주화도 그리고 남과 북의 통일도 가능하게 된다고 거듭 힘주어 말한다.

 

그는 남한 당국자들이 자기 할일을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북측이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시함발사하면 그것을 도발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가 안간다고 말하면서 요즘과 같은 시대에 색깔론으로 정치판을 혼란시키는 것은 유치한 심리상태라고 지적할 있다고 질타한다. 그는 우리 국내외 동포들은 무엇보다 자주독립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주의식이 중요한데 자주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동포들이 적지 않다고 안타까와 한다.

 

이활웅선생은 일제 말기에  우리 동포 지도급인사들 간에는 우리가 차라리 일본 식민지로 남는게 유리하다면서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풍조가있었다 상기시켜주면서 그런 친일사대매국 세력이 남한의 정치세력을 장악하여 것이 문제였다는 뜻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시아 나라들 가운데 베트남과 필리핀같은 나라들의 국민들이 얼마나 자주의식이 강한지를 밝혀주면서 남한의 정치지도자들이나 국민들이 무엇보다 강한 자주의식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조국의 통일문제도 주한미군을 보내는 일부터 착수해야 한다고거듭 강조한다.

 

기자는 이활웅선생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주한미군을 내보내려면 남과 북이 손만 잡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6.15남북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 선언은 이미 우리민족끼리 손잡은 선언들이기 때문에 공간에 외세가 발붙일 자리가 없다. 그럼으로 남과 북이  6.15선언과 10.4선언을 충실히 이행하고 고수하면 그것이  이활웅 선생께서 바라고 염원하는 주한미군철수라고 생각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도 이것을깨닫고 실천할 있기를 기대한다.()

 

*주소: 17935 Ridgeway Rd., Granada, CA91344

818-368-9754

 

 

[2]이활웅선생 사모 김옥희여사 장례식 진행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8163


[미주]이활웅 선생, 2012년 늘푸른청년상 수상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5732


[탐방대담]이활웅 선생: ≪북한이 남이 아니다≫

http://saramilbo.com/bbs.html?Table=ins_bbs2&mode=view&uid=1072

 
<이활웅 선생의 기고활동>

이활웅 선생이 그 동안 기고했던 매체로 코리언스트릿 저널, 크리스천헤랄드, 한국신보, 뿌리, 코리언뉴스, 민주조국, 세계신보, 미주현대불교, 뉴 라이프, 코리언 저널, 시사주보, 통일마당, 코리언 드림, 민족통신, 통일뉴스, 한국기자협회보, 라성 한국일보, 미주 동아일보, 미주 중앙일보, LA Times, Nautilus Institute 등 총 4백여 편의 글들을 기고했다.”고 돌이켜 본다. 그는 또한 영어 문장력이 뛰어나 미국 주류사회 연구소 홈페지를 통해 한반도 평화문제, 북미관계 문제 및 통일문제에 관한 영문 원고도 많이 기고하여 발표한 바 있었다. 

그의 최근 도서 ≪평화통일은 비기는 통일이다≫(2007년 10월31일 통일뉴스 출판))를 통해서 이활웅 선생은 “나이가 퍽 들어서 나는 ‘통일지향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남북문제와 통일문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의식을 가다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하고 생각 한 것을 글로 적어서 정리해 두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미국 내 동포언론에 독자투고를 몇 번 해봤다. 그랬더니 로스엔젤레스의 시사주간지 ‘코리안 스트릿저널’에서 정기적으로 칼럼을 써보라고 제의해 왔다. 그러자고 했다. 이것이 제나라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서투른 글을 쓰게 된 경위이다.”라고 밝힌다.

그는 이러한 동기와 계기에 대해 1984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렸던 올림픽대회를 떠 올리며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때, 처음에는 북한도 온다고 했어요. 나대로 북한 선수들이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온다고 하니깐 가보아야 하겠다. 남한, 북한 경기를 다같이 응원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개회식 입장권을 비롯해서 남과 북의 경기들을 예상하여 미리 경기 관람권을 사놓았다. 그 다음에 응원할 때 무슨 깃발을 들고 응원하느냐에 고민했다. 내 나름대로 응원할 수 있는 깃발을 구상하고 미술가 이명수씨에게 부탁해서 그 깃발과 들어 글씨를 넣어 하나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한반도 지도에 양편에 ≪통일≫이라고 쓴 로고를 만들어 준비했고 그것을 자동차 뒤 범퍼에 부착하고 다녔다. 주위에 있는 분들도 그것을 달라고 하여 주었더니 차 뒤에 붙이고 다녔다.”고 설명해 준다. 바로 그 때부터 그는 남과 북에 대한 통일문제를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 생각들을 정리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1990년 제1회 범민족대회 미주동포 대표단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으며, 1995년에 ‘통일마당’이라는 동아리 조직에 창설회장으로 선임되어 약 1년 동안 활동했다. 현재에는 통일뉴스 상임고문 및 ‘6.15공동선언실천 미주본부’ 고문으로 있다. 

그의 그 동안 저서로는 기고문집으로 ≪통일의 뜻과 통일의 길≫(1993), <<그렇다, 그들도 우리들이다>>(1996), ≪비기는 통일의 구상≫(1999), ≪미군이 나가야 통일이 된다≫(2002), 그리고 ≪평화통일은 비기는 통일이다≫(2007.10.31) 등이 있다. 
<출처:지난 시기 기자의 취재수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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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민족통신 특집

[2]조미관계 현황과 그 전망

이활웅 (통일연구전문가)

조미관계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평양측은 그 정상화를 원하는데 반하여 워싱턴 측은 지금까지 그것을 별로 원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걸림돌이 있다면 그것은 미국에서 만든 것임이 분명하다. 미국이 만든 걸림돌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체와 정통성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국이 한반도의 군사적 정체상태를 해소하고 항구적 평화체제를 수립하는데 흥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1945년, 패전한 일본이 물러갈 때, 소련의 동의를 얻어서 한반도를 분단했다. 그리고 남한에 군정을 실시하면서 항일투쟁을 한 좌익계 인사들을 탄압하여 북으로 몰아내는 한편, 친일분자들의 등에 업힌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친미정부를 서울에 세웠다. 이에 따라 항일투쟁 세력을 주축으로 세워진 평양정권과의 적대관계는 불가피하게 되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빈사상태에 몰린 서울정부를 구할려고 출병하여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격퇴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압록강역까지 밀고 올라가면서 평양정부를 지구상에서 말살하려고 했는데 중국군의 참전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니 원래 적대관계로 시작된 조미관계는 원수의 관계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줄기차게 북한정권을 "악의 집단" 혹은 "불법집단"으로 규정하면서 그와 정치적으로 상대하기를 거부하였다. 지금도 미국은 공식적으로 평양정권을 "테로집단"으로 규정하고 각종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의 정부당국자들이나 학자들 혹은 언론은 북한을 "불량배정권(Rogue regime)"으로 호칭하면서 그들의 반북 정책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니 조미관계가 정상화되자면 첫째로 미국이 북한사람들도 원래부터 한반도에 태어나 그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로서, 그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또 북한정권은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있던 35년간, 조선사람들의 정치활동의 근간을 이룬 항일투쟁과정에 있어서, 그 주류를 형성한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해온 세력에 의하여 수립된 정당한 정권이다. 그 지도자들은 결코 깡패들이나 불량배들이 아니다.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은 지금에 와서 보면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은 그 당시의 역사적 지리적 조건에 따른 그들의 선택이었으며, 그것 때문에 그들을 마치 악의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다. 미국은 평양정권이 적어도 한반도 북쪽에서 그 곳 주민들에게 정당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합법정부임을 인정하고 그런 인식에 따라서 그 정부를 대접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미국은 한반도의 군사적 정전상태를 정치적 해결을 통하여 평화상태로 전환하는데 성의를 보여야 한다. 6.25의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여 북한과 싸웠는데 그 싸움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휴전상태로 남아있다. 휴전상태란 교전쌍방의 군 지휘관사이의 약속에 바탕을 둔 매우 불안정 된 상태에 불과하다. 즉 한반도의 상황은 아직도 언제든지 무력충돌이 재발할 수 있는 군사적 대치상태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적 상태이지 최종적으로 해결된 상태가 아니다. 최종적 상태는 양측의 외교교섭을 통한 정치적 해결을 봄으로써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목표는 휴전 후에도 여전히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붕괴"이었으며, 따라서 평양정부와의 정치적 협상에는 일체 불응한다는 것이 미국의 방침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1954년의 제네바 정치회담을 결렬시켜 버렸다. 또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1968년), 미군정찰기 EC 121 격추사건 (1969년) 및 소위 판문점 도끼살해사건 (1976년)등으로 평양 측과의 정치적 타결이 불가피하게 된 경우에도, 가능한 한 이를 비공식, 최소한 혹은 극비리의 접촉으로 제한하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1986년경부터, 소위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북한이란 존재를 더 이상 무시해 버릴수는 없게 되자 미국은 북한과 북경에서의 참사관급 쌍무접촉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가능한 한 국제원자력 기구 (IAEA) 및 유엔을 통한 압력으로 평양 측을 굴복시키려고 했으나, 평양이 이에 굴하지 않고 일전불사의 자세로 나오자, 부득이 1993년 3월부터 평양 측과의 공식적인 외교교섭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결과 만들어 진 것이 1994년 10월 21일의 소위 "북미 기본합의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합의서는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정식 협정문이 아니었다. 영문으로는 Agreement 가 아니라 Agreed Framework 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기본합의서"가 아니라 "합의된 기본요강"이다. 미국의 생각은 아직도 조만간 북한이 붕괴된다는 판단에 따라 비공식적이며 약식절차에 따른 문서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Agreed Framework 의 북한측 이행여부는 어김없이 따져가면서도 자기측 이행사항은 이핑게 저핑게로 질질 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평양정권이 머지않아 무너질 것이라는 미국의 예상은 빗나갔다. 동구권의 와해와 소련의 붕괴로 인한 경제파탄, 절대적 지도자 김일성주석의 돌연한 사망, 식량부족으로 인한 아사자의 대량발생, 고위간부들의 망명등 모든 악재에도 불구하고, 북조선은 여전히 정치적 안정과 국민적 단결을 유지해 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이나 그들이 주장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하여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핵무기도 몇 개는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미국정보당국의 추측이며, 미사일도 알라스카.하와이 뿐 아니라, 어쩌면 미 본토의 어느 지점이든 정확히 때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을 정도로 발달되었다 한다. 즉 북한이 미국본토에 대한 핵 공격 능력을 가진 나라가 됐다는 관측도 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전 국방장관 "페리"를 대북한정책 특별조정관으로 임명했으며 "페리"는 장시일에 걸친 연구와 현지탑사를 거친 후 소위 "페리보고서"라는 정책건의서를 내놓았다. 그 요지는, 북한을 파멸시키기는 어려우니, 대북 관계개선, 각종 제재해제, 경제교류 확대등의 혜택을 주는 일방, 교섭을 통하여 북한의 핵 및 미사일의 개발계획을 포기시키도록 하되, 주한미군은 철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남.북과 미.중의 외교관들 사이에는 4자회담이 단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별 진전이 없다. 그러나 4자회담의 조.미양측 대표사이에는 4자회담과는 별도로 쌍무접촉을 통한 정치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또 양국간에는 머지않아 더욱 고위급의 정치협상도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니까 양국간의 군사적 정체상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구도는 일단 잡힌 것으로 볼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페리"보고서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주한미군은 철수안한다는 방침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으니 이것이 문제가 아닐수 없다. 이는 미국이 정치적 협상은 하되, 주한미군이란 군사정전체제의 미국측 핵심요소는 그대로 둔채, 군사정전 체제하의 북한측 핵심요소인 핵과 미사일의 개발계획을 포기 시겠다는 것인데, 북한이 과연 그런 상태를 대미관계의 정상화로 보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앞으로의 조미관계는 쌍방의 필요에 따라 보다 활발한 접촉과 협상을 할 것이나 그 전도를 낙관하기에는 이른 것으로 전망된다.

민족통신에 특별기고 [2000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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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논평] 주한미군 유용론의 허구성/이활웅
 
 글쓴이 : rohkilnam (197.3.3.8)  조회 : 1,503 
         

주한미군의 장기주둔을 꾀하는 것은 민족의 역사에 큰 죄악

*글: 이 활웅[통일평론가,민족통신 고문]


주한미군이 있어야 한다는 핑계의 첫째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남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것"이었다. 그러나 인구, 경제력 및 국방비 지출액에서 월등히 북한을 능가하는 남한이, 더욱이 경제파탄에 직면해 노휴된 무기도 개량못하고 훈련도 제대로 못한다는 북한을 왜 자력으로 감당 못하느냐는 반론에 대해 주한미군 유용론자들은 누가 들어도 그럴뜻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안해 낸 핑계의 둘째가 "주한미군은 동북아지역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억지논리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이 지역의 나라와 전쟁을 치룬 군대가 그 나라와의 적대관계도 풀지 않은채 그대로 눌러 앉아 있는 것은 지역안전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불안에 기여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지역안보를 위해서 주한미군이 과연 꼭
필요한가의 여부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장해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 지역의 관계국간의 협의와 합의를 통해서만 그 타당성이 입증될수 있는 문제이다.

둘째번의 핑계에서 파생된 것이 핑계의 셋째인데 "주한미군이 나가면 중.러.일등 주변강국의 침공을 누가 막느냐"는 것이다. 그럼 한국에는 천세만세 영구히 미군이 주둔해야 하느냐는 반문에 대해 이 주장은 꿀먹은 벙어리이다.

또 셋째와 유를 같이하는 네 번째 핑계는 "주한미군이 나가면 국방비를 늘리고 군복무기간이 연장되는 등 우리의 생활이 재미없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주민으로서의 긍지를 저버린 타락된 소리이다. 이런 논자들이 말하는 "재미있는 생활"이 만약 국방에 전념해야 할 군인들이 정치에 욕심이 생겨 대통령자리를 가로채고 몇천억씩 뜯어먹는 일이나 국방장관이 미모의 무기중개상과 도색행각을 즐기는 일, 그리고 이런 자들의 심부름을 해주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줏어먹는 일 따위를 말하는 것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수 있기는 하나, 그런 짓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국정을 바로 잡는다면 지금의 국방비와 군복무기간으로도 아무 걱정없이 다리 쭉 뻗고 잘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고안된 핑계의 다섯번째는 "대안없이 함부로 주한미군철수를 부르짖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위의 세 번째 핑계와도 연관되어 얼핏 일리있는 소리 같지만 이 또한 답답한 생각이다. 대안이란 자유로운 논의를 통해서 찾아지는 것이다. 주한미군문제 논의를 이적행위로 규제하지 않고 자유로히 개방하면 좋은 대안이 너무 많이 나와서 선택에 애를
먹을 지경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자신은 다행히 보안법의 영역밖에 사는 덕분에 주한미군철수를 오래전부터 주장하면서 나대로의 대안도 생각해 보았다. 그내용을 이 글에 다 소개할 수는 없으나 요점만 추린다면, 1) 남북미 3자간에 불가침을 재확인하고 2) 남북미 3자간에 충분한 단계적 군축(주한미군 철수와 북한 핵.미사일문제를 포함)을 실시하고, 3) 동북아안전보장 6자(남,북,중,미,러,일)회담을 소집하여 한국의 중립과 안전을 보장하며, 동북아안전기구 및 그 산하에 동북아 안전보장군(미군 포함)을 설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상세한 내용에 관심있는 분은 민족통신 논단에 들어가 "한반도 안보문제를 재조명한다"를 열어 보시기 바람.)

끝으로 주한미군문제는 한미방위조약당사자인 한미간의 문제임으로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론이 최근 서울과 와싱턴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것도 황당한 논리이다. 세월이 너무 흘러 다 잊은 모양인데, 한국휴전협정(1953년 7월 27일) 제4조는 휴전후 3개월내에 정치회담을 열어 외군철수문제등을 해결하라고 했는데 미국이 이를 어기고 그해 10월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여태껏 안 빼가면서 북을 위협하고 있으니 북한이 한.미를 상대로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한미행정협정과 같은 불평등조약에 따라서 주둔하고 있는 외국군대는 외국에 의한 지배의 상징이다. 외국의 지배를 받는 민족은 자주의 기상을 잃고 비굴해 지고 비겁해지고 비열해 진다. 당당하지 못하고 솔직하지 못하고 잔꾀를 부리게 된다. 오래 지배받을수록 그 현상은 더 심해진다.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 남미등지에서 식민지 지배를 오
래 받은 민족들의 특성을 잘 관찰하면 알수 있는 이치이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민족에게도 지난 100년동안의 불행한 역사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당장의 안일이나 눈앞의 잇속에 현혹되어 이 핑계 저 핑계 꾸며 대면서 주한미군의 장기주둔을 꾀하는 것은 민족의 역사에 큰 죄악을 범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2000년 6월 3일)


민족통신 6/4/2000 이활웅 고문 hwal@minj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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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작성일

주한미군과 한반도 평화

이활웅 씀


10년전 "코리언 스트릿 저널"(1989.11.16)에 싫은 글을 통해 나는 바람이 세차게 불면 불수록 외투를 더 꼭 끼어 입던 사람이 바람이 멎고 따뜻한 햇볕이 쪼이자 제손으로 외투를 벗었다는 이솝우화의 이야기속에서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진리를 찾아낼수 없을까고 제의한 적이 있다. 지금 한국의 김대중대통령은 소위 "햇볕정책"을 내세워 북한과의 긴장관계를 협력관계로 대체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전 여러 정권의 대북정책에 비해 훨씬 전향적이고 건설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한편으로는 대북관계 개선을 바란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안보는 어디까지나 미국과의 공고한 군사동맹관계에 의존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미군은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거듭 언명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은 북한을 적으로 지목하고 있는 미.일군사동맹의 부속물인 소위 한.미.일 공조체제의 말석에 안주하면서, 대북정책도 반드시 사전에 미.일과의 협의를 거쳐서 수립.시행하도록 제도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 북한의 문턱에 버티고 서서 북한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주한미군은 지난 46년 동안 북한을 향해 불어제친 매서운 찬바람이다. 그 미군을 지금 뿐 아니라 통일후에도 그대로 붙들어 두겠다고 하면서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자가당착이다. 그런 "햇볕정책"은 기껏해서 "찬바람 휘몰아치는 햇볕정책"이다. 그것으로 북한이 외투를 벗을 까닭이 없다.

어떤 나라를 적으로 상정하고 적대관계를 지속시키는 한 군비확장과 안보체제 확립은 필수적이다. 이 경우 안전보장은 (1) 적보다 더 강력한 군비를 갖추든가, (2) 아니면 적어도 적의 선제공격의지를 꺾을 만큼 강력한 보복공격능력을 기르든가, 혹은 (3) 위의 두가지 방법이 불가능하거나 또는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불안한 경우에, 강력한 제3국(들)과 동맹관계를 맺던가 하는 방법을 취하게 된다. 한반도에 있어서 미국의 입장은 제 (1)의 경우이며 남한의 입장은 제 (1)과 (3)을 합한 경우이며 북한의 입장은 제 (2)의 경우라 볼수 있다. 이런 대치상황과 군비경쟁이 격화되면 쌍방간의 긴장이 고조되어 마침내 폭발할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불안을 내포한채 충돌이 없는 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될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상태의 지속을 평화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경우가 바로 그것으로 1953년 휴전 이래 지금까지 46년동안 산발적인 것을 빼고는 무력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 상태를 두고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됐다 하면서 그것은 주한미군의 덕택이었다고 미국사람들이 자찬하는 것은 그럴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한국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매우 개탄스런 일이다.

이런 안보는 기껏해서 긴장속의 안보, 즉 소극적인 안보에 불과하다. 그런 상태는 결코 평화라 할수 없다. 우선 북한사람들은 주한미군의 존재 때문에 항상 위협을 느끼며 불안하게 살고 있다.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체제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고통스럽게 사는 것도 미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강요되고 또 견디어 내고 있다. 최근에는 기근으로 수많은 아사자가 난다는데 그래도 비싼 돈을 써가며 최첨단 무기개발을 포함한 군비확충에 진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이 신봉하는 체제를 외세의 위협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해서는 군비를 줄일수 없다는 처절한 결심의 표시이다. 주한미군이 없었다면 무기대신 식량을 사서 기아를 해결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한에서는 또 어떤가? 요새는 덜 하겠지만 바로 얼마전 까지만 해도 항상 북한에서 언제 처내려 올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면서 살았다. 그래서 비싼 경비를 대면서 미군을 붙들어 두고 있으며 국가주권의 핵심인 군대의 작전지휘권마저 미군에게 넘겨주고 있다. 또 대북공포심리를 교묘히 조장 이용하는 군사독재체제 밑에서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시달림과 학대와 괴로움을 당했는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엄두도 안나도록 만연된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부조리가 다 그 동안의 철저한 친미일변도의 반공.반북정책의 온실속에서 마음껏 자라온 현상이 아니었던가? 그결과 불어닥친 소위 IMF 사태로 지금은 정부와 기업과 노동계가 팽팽히 맞선 가운데 민생은 고달프기만 하다. 이런 상태를 어찌 평화라 할수 있겠는가? 이러한 상태는 미국의 입장에서 평화일 뿐이지 우리 입장에서는 결코 평화라 할수 없는 것이다.

참된 안전과 평화는 적과의 대결상태 즉 공포의 원인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즉 긴장이 아니라 평온 속에서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 적이 더 이상 적이 아닌 상태, 나가서는 적이 아니라 우방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 참된 안전과 평화를 도모하는 최상의 길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남한과 북한은 원래 적이 아니라 동족이다. 다만 54년전 해방될 때 미국이 그은 38선을 경계로 남북과 좌우로 갈리고, 남북에 각각 분단정부가 서고 2년후에는 남북간에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나면서, 남북간의 동족관계가 졸지에 원수관계로 전락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잠정적 분단선이었던 38선이 마침내는 백림장벽보다도 두텁고 높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반영구적인 군사분계선으로 굳어 지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자각과 역량이 부족한 약점을 기화로, 미국이 대 아시아 패권정책의 일환으로 남북간의 적대감정을 교묘히 조종하고 이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남북간에 서로 용서하고 불신을 해소하고 싸우지 않고 화해하고 협력하기로 작정만 한다면, 우리는 군비경쟁을 하지 않고 또 외국 군대를 우리땅에 묶어 두지 않고도 서로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다리 쭉 뻗고 편안히 잠잘수 있는 환경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즉 적극적인 안보이며 그것 보다 더 이상적인 안보와 평화는 없다. 그런데 그 일을 50년 동안이나 이루지 못하고 남북간에 항상 그 무거운 군비의 짐을 걸머지고 허덕이면서 편안한 잠을 못자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주한미군은 과연 한반도 평화의 수호자인가? 아니다. 주한미군을 그대로 두고는 북한의 변화를 기대할수 없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불안과 긴장의 근본원인이다. 주한 미군의 문제는 비단 김대중정권의 "햇볕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민족이 분단의 벽을 헐고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눈 문제이다.

미주청년님의 댓글

미주청년 작성일

이활웅선생님에 관한 인터뷰글 읽고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한국문제가 풀린다는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G-20가 되고
해방되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도
 7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전시작전지휘권도 챙기지 못하고
 미국에 식민지로 살아가는지
한국 정치인들과 사회지도자들이
 뭐하는지 울화통일 터집니다.

이번에 촛불혁명으로
문재인대통령이 되었는데도
미국, 독일을 다니면서 박근혜대통령처럼 사대주의외교로
똑같이 행동하는걸 보고
 넘 실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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