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2-24 08:45
동포연합 20주년 행사때 감동준 노둣돌 이현정씨 연설에 눈시울 적신 참석자들...
 글쓴이 : 편집실
조회 : 2,273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창립20주년 행사때 젊은 세대들로 구성된 뉴욕지역의 1.5세와 2세들 중심으로 된 단체인 <노둣돌>을 대표하여 축하해 준 이현정씨의 연설은 참석자들 모두에게 깊은 감동과 감명을 주었다. 이날 이현정씨 자신도 우리말로 연설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였지만 그의 연설을 듣는 선배들은 모두가 "감동받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반응했다. 민족통신 기자는 그날 연설원고를 부탁하였으나 그 원고가 오늘에 도착하여 여기에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참서자들 모두에게 깊은 감명과 감동을 준 
뉴욕<노둣돌>의 이현정씨 연설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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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연합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년은 어떻게 보면 세월이라 느껴지면서도 짧으면 짧은 시간이죠.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요즘은 10 전하고 20 전이 햇갈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20년전이면 1997,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셨습니까? 해는 많은 분들에게 어려운 시기였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남은 IMF 위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시달렸었고 이북은 고난의 행군 시기였었죠.

 

오늘 20주년 축사를 준비하면서 동포연합 여러분들이 단체를 설립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셨을 1997년도에 나는 하고있었나, 자신의 20 모습을 떠올려봤습니다.

 

그때 저는 민족, 통일, 이런거에 전혀 관심 없는 아이었습니다. 오히려 통일운동 한다는 친구들을  한심하다는 쳐다보며그런걸 ?”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 동안 어떤일이 있었길래 제가 여러분들하고 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걸가요? 오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저는 자라면서 삐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옷차림이 그게 뭐냐” “여자애가 술담배를 왜하냐” “결혼은 안하냐” “ 빨갱이냐

 

등등..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에 맞지않은, 저도 정확히 왠지 모르는 반항기 때문에 항상 조금씩 삐딱했었죠.

 

1997년도, 저는 당시 뉴욕 아시안 이민자들을 위한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는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날밤 길거리에서 폭력을 당해서 많이 다쳤답니다. 그래서 날밤 직접 만났습니다. 친구 ,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어떻게 일이냐고 물었더니, 전날밤 친구들이랑 한인타운 32가에 있는 클럽에서 늦게까지 마시고 추면서 놀다가 새벽에 집에 가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클럽에서 한국 남자들 여섯명이 따라나왔답니다. 갑자기 다가와서너희들 호모냐?” 라고 물었답니다. 그래서 친구가그래. 어쩔건데?”라고 하는 순간 여러명이 한순간 달려들어서 마구 패고 발로 차고 해서 심하게 구타를 당했답니다. 그날밤 우리들의 이야기는 동성애자에 대한 한국사회와 동포사회의 혐오, 그리고 우리가 성소수자로서 살면서 겪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 이어졌습니다.

 

수십번 수백번 듣는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하느냐라는 말이 너무 힘들어서  집을 나오고 한국사회를 떠나서 무작정 자유의 도시란 뉴욕으로 왔는데 낯설고 말이 통해 적응 되고, 죄인처럼 숨어서 사람을 사귀고 사랑하고, 외로움,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저희 주변에 너무 많았습니다. 한인타운은 많은 동성애자 유학생/노동자들이 일하는 일터이자 우리가 서로 만나서 즐길 있는 유일한 안식처인데 거기서나마 구타를 당하고 안전할 없다는게 억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짐했습니다. 더이상 침묵하면 안되겠다. 불안감에 떨고있는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동포사회를 향해서 우리의 인권에 대해 당당하게 말해야겠다-라고.. 당시에 있었던 동포사회의 여러 진보 청년단체들에게 한인타운에서 일어난 구타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동성애자 인권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언론사에게 같이 내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뜻밖에 모든 단체들이 거절했습니다.

 

이런걸 예기할 시기가 아닌거 같은데..”

그럼 언제가 좋은 시기일까요?”

글쎄, 이런 예기를 하면 사람들이 받아드리기가 …”

처음엔 그렇겠죠. 하지만 여러 단체들이 목소리로 이야기 하면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요?”

나는 개인적으로 지지하죠 당연히. 하지만 우리 회원들은 절대 이해 못할거예요.”

회원들 동성애자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절대 그런일은 없습니다. 부탁인데 우리 단체 이름은 성명서에 넣지 말아주세요.”

 

소위 말하는 진보, 통일과 민주주의, 이민자 민권을 외치는, 동지라고 생각했던 친구들로 부터도 결국 소외와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결국 성명서를 포기하고 동성애에 관한 혐오와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시각을 바꾸기 위해 동포사회를 위한 교육 캠패인을 여러 방식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통해 615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고 클린톤 정부는 임기말에 결국 북한붕괘론을 포기하고 조미 공동 코뮤니케를 선언했습니다. 이남에서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등장했고 노둣돌도 당시 탄생했고 모두들 통일이 들떠서 민족대단결을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잔치에 같이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꾸는 코리아 민족이란 그림 안에는 결국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결혼도 하고 술담배 하는 삐딱한 여자, 동성애를 하는 비정상 아이도 과연 통일이 되면 같은 민족이라고 환영할까?”저는 이런 생각으로 노둣돌 창단 멤버들을 삐딱하게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얼마 되서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점령했습니다. 나라의 이민자와 유색인들을 이등시민으로 취급하는 제도적 인종주위를 반대하던 저는 자연스럽게 미국의 제국주위를 반대하는 반전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부시는 이란 이라크 노스 코리아를 악의 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왜일까라는 의문이 생겨 그재서야 저는 조미 관계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625 전쟁과 미국의 한반도 개입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의 부모님들의 , 미국땅까지 와서 살게된 이유, 자라면서 겪을수 밖에 없었던 인종차별, 모든것들이 전쟁과 분단의 결과물이라는걸 깨달았고, 코리안으로서 제국주위와 맞장서려면 통일을 해야겠다고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종종 미국언론에서 6자회담에 대한 뉴스를 접했습니다. 사람 심리가 항상 다윗과 골리아스 사이의 힘겨루기를 보면 언더독을 응원하게 되듯, 6자회담 과정을 지켜보는 저는 남의 나라를 전자오락 하듯이 무차별로 폭격하고 전쟁포로들을 말못할 정도로 수치스럽게 고문하는 부시정권에 맞서 당당하게 협상을 진행하는 노스 코리아를 속으로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과 사회주의 블록이 무너져도 살아남고 힘든 고난의 시기를 견뎌내고 세계 초강대국의 군사적 경제적 압박을 받으면서도 기가 죽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그러던 제가 2011년에 드디어 동포연합 덕분에 노둣돌을 통해 북을 방문했습니다. 솔직히 분단된 같은 민족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보다는 세계가 경제위기로 불안해하는 와중에 도대체 어떻게 나라는 거의 무너졌던 경제를 되살렸을까 하는 학술적인 호기심이 앞섰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같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 창밖을 무심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여기는 온나라가 삐딱한 사람들이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위가 요구하는 세계질서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백악관 눈에는 삐딱하게 보이지 않겠어요? 마치 자기 식구들을 어느날 발견한 미운 오리새끼의 느낌이랄까? 외롭게 지내던 삐딱이가 삐딱한 코리안들만 모여사는 나라를 뜻박에 발견한 느낌. 느낌이 너무 벅차서 속에서 썬글라스를 끼고 고개를 숙이고 혼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몇칠 해외동포 원호위원회에서 저희를 위해 통역자로 파견한 한유경 선생님과 잊을 없는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만 하비 밀크에 대한 영화를 보신적이 있다 하셨습니다. 하비 밀크는 1977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으로 당선됐으며 미국에서 최초로 선출직 공직자가 동성애자였습니다. 한지만 불행하게도 그 다음 해에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동료 시의원으로부터 살해 당했습니다. 그는 동성애자 권리 옹호 기반을 닦은 사람으로 널리 기억되고 있습니다. 저도 하비 밀크에 대한 영화를보고 감동 받았기에 신나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선생님과 나눴습니다. 그 와중 한선생님은 하비 밀크의 용감함을 존경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설래이는 마음으로 “김정일 동지는 동성애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한선생님은 뭐라고 대답하셨을까요? 궁금하시죠? 여러분도 궁금하실텐데 그 순간 저의 심정은 어땠었겠습니까?

 

곰곰히 생각하시던 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글쎄요. 김정일 국반위원장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지만 개인의 정체보다 중요한건 좋은 혁명가이냐 아니냐이라고 하실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는 40년동안 몸에 쌓였던 긴장감이 녹는 듯했습니다.

 

그 후 저는 뉴욕으로 돌아와서 한반도 평화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진보정당 강제해산 반대, 사드배치 반대 등등 여러 국제연대 사업을 열심히 해왔고 계속 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서 저의 사적인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을까요? 저의 이야기가 오늘 행사 주제에 안 맞는다 생각하실 분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젊은 이세들이 통일운동에 참여하게 할 수 있을까,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이런 고민을 하십니다. 저도 더 많은 고민을 해야하기에 답을 드릴순 없지만 우선 말씀드릴 수 있는건 민족대단결이란 우리 다음 세대의 다양한 정체의 모든이들을 포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둣돌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 아십니까? 자기 모국에 대해 알고싶어하는 입양인, 동포사회에서 따돌림 받은 성소수자,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혼혈인.. 언론에서는 노둣돌을 대표적인 종북단체라고 지적하니 많은 사람들은 노둣돌이 대단한 활동가들이 맨날 학습하고 혁명을 이야기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마 직접 와 보신다면 실망하실겁니다. 일반 동포사회에서 소외 받는, 말하자면 삐딱이들이 코리안으로 인정 받고 싶은 간절함으로 서로를 만나서 그저 반갑고 좋아서 장난 치고 노는 시간이 거의 다인걸요. 그러면서 차차 분단과 나의 역사에 대해서 배우고 그러면서 새로운 코리안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나가는 장소가 노둣돌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하려면 우선 그들의 시련을 인정해주고 마음속에 쌓인 아픔을 사랑으로 녹여주고 해방과 통일의 길을 같이 가자고 손 잡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젊은이들과 일하면서 여러번 실수를 통해 깨달은건 우리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한마디로 안먹힌다 입니다. 서로에 대해 신뢰하며 함께 화합하고 통일하려는 쌍방의 노력이 있어야만 시너지가 이루어져 같은 길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야 말로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기회입니다. 한국에서부터 미국까지 백만명의 대중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전례없는 일입니다. 현재의 경제체제가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의 경제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 합니다. 저는 침술사로서 매일 다양한 환자들을 보는데요, 대부분 사람들의 병의 근본적 원인은 경제체제입니다. 풀타임 직업이 없어서 하루에 투 잡 쓰리 잡 뛰면서 스트레스 때문에 고혈압과 당뇨병에 시달리는 사람들, 직장에서 언제 짤릴지 몰라 두려워서 혹은 직업을 못 구해서 불안감 때문에 불면증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신자유주의의 파탄이 서민들의 몸에서 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대중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몰락하는 경제체제 그리고 썩은 정치권의 부패를 거절하고 변화와 새로운 대안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중운동에 뛰어들어 타민족들과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대에 같이 노력해야합니다. 자신의 조상들을 강제로 이 땅에 끌고와 노예로 착취해 새운 나라에서 이등 시민으로 살면서 아직도 자신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며 무차별로 구타하고 쏴죽이고 감옥에 구속하는 공권력과 맞서 저항하는 흑인들. 자신의 조상들을 집단 학살해서 빼앗은 땅에 이제는 거대한 송유관을 설치하기 위하여 환경을 파괴하는 미연방정부에 맞서 자신의 성조들의 땅을 지키는 원주민들. 자신의 조국을 폭격하고 전쟁터로 짓밟아놓고 자신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 인권을 침해하는 정부를 대상으로 항의하는 무슬림계의 청년들. 이들과 연대해 같이 투쟁하면서 우리의 정당한 구호,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 전쟁 도발하는 군사훈련과 사드배치 중단, 그리고 온 민족이 수십년동안 외친 주한미군철수를 위하여 목소리 높여야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동포사회에서 소외된 입양인, 성소수자, 혼혈인, 소의 말하는 삐딱이들이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는 새롭고 발전된 민족의 개념을 만들어가야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이자리에 같이 하기에 20년이 걸렸습니다. 동포연합 여러분들, 존경하는 윤길상목사님, 이미일 목사님, 그리고 이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이제는 자신 있게 자주 평화 통일 운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타민족들과 연대하며 다양한 정체성의 동포들을 포옹하는 통일운동을 여러분과 같이 고민하며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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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훈 17-02-24 10:40
답변 삭제  
저도 이 연설문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이현정씨 고백에 감동 많이 받았어요.
김두만 17-02-24 13:23
답변 삭제  
이현정씨께서
북을 방문하고 북인민들이 그어려움에도 외세에 굴하지않고
 꿋꿋이 모여사는 모습보고 분단된 민족의 아픔을 느끼며
혼자 눈물 흘렸다는 말씀 감동입니다.
계속 민족통일위한길에 이현정씨의  역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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