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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08]"박정희 동상위에 변소를 같이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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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06-30 10:47 조회7,595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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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 재미동포 자유기고가는 박정희라는 인물은 매국노이고 경제발전 운운하는 것이 사기선전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하면서 이러한 인물을 우상화하는 남한사회에 대해 분노를 나타내면서 한겨레신문 한토마에 실었던 2개월 전의 글을 다시 올린다고 설명하면서 아래 글을 보내왔다.[민족통신 편집실]


"매국노 박정희의 경제발전 사기선전 우상화"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 부정선거로 민주주의를 개박살내고 청와대를 강탈하자 비열한 언론과 매국노종들이 다카키 마사오의 동상들을 세우고 신격화를 위한 찬양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매국노의 외세에 빌붙어 창녀질하고 살인 강간 강도질만 없었더라면 우리 남부조국은 탄탄한 기반위에 더욱 잘 살았을 것이다. 인민들의 윤리 도덕 정의감도 지금 처럼 뱀 같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요즘 다카키 마사오 우상화에 열내고 있는 좀비들을 보면서, 이런 똥구데기만도 못한 것들이 나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쪽 팔려서 전에 썼던 글을 다시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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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동상위에  변소를 같이 세우자"   


박정희 동상을 지하에 세우고,  위에  공중  변소를 지어,  오줌이 박정희 동상 머리에 떨어지도록 동상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자라나는 사람들이  저런 매국노, 변절, 배신, 강간, 헌정파괴, 살인, 사기, 폭력, 도둑질 해먹은 인간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되겠구나라는 것을 배울것이다.              

박정희를 찬양하는 자들은  그 동상 밑에서  오줌 핥으면서 살면  것이다. 

 

박정희의 죄과는 너무도 많이 발표되어서 자세히 쓸 필요는 없겠지만 똥구데기 머리를 가진 자들을 위하여 간단히 쓸까한다.

 

 스스로 이름도 다카키 마사오로 바꾸고 일본에  처럼 충성 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악질로유명한 관동군의 정보 장교가 되었다. 당시 관동군의 정보장교란 독립군을 잡고, 고문과 살인을 하던 자들이다. 독립군을 110여회 토벌했다고 한다. 

일제의 억압과 착취 때문에 만주까지 흘러가 살던우리 동포 사회에  첩자를 심는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독립군과 내통한다고 마을을 불태우고 싸그리 죽였다. 견벽청야 전술이라며 지리산 빨치산 토벌한다고  주위 사람들을 싸그리 죽이고 

마을을 불태운 것도 관동군 매국노 출신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짓이다. 연해주까지 흘러가 살던 우리 동포들을 스타린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시킨 기막힌 슬픈 이야기도  뿌리는 관동군 첩자들이 동포사회에 많이존재  것이 당연시 

되었기 때문이었다.  ( 미국도 2 대전때 미국에 살던 일본인들을, 첩자가 있다는 아무런 증표도 없는데 사막에 강제 이주시켰었다).  

스스로 찾아가 관동군 정보장교 매국노가  박정희를 존경하는 자들은 똥구데기들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서정주 제자들이 “선생님, 어쩌자고 그렇게 친일 하셨읍니까?” 라고 묻자 서정주가 일본이 그렇게 빨리 망할  알았나?”  하고 대답했다 한다.  박정희도 일본이 그렇게 빨리 패망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8.15  되자 재빨리 공산주의자로 변신한다. 아마도    박상현이 정수 공산주의자 였기에 주위 모두가 쉽게 받아 들였을것이다.  그러나 여순 반란사건으로 사형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남로당 조직과 동지들(?)  배반,낱낱이 고해바치고 목숨을 건진다.

 

 “일본에 충성했던 자들은 우리에게도 충성한다.” 라며 친일 매국노들을 중용하던 당시  군정 당국은 박정희의 관동군 정보장교 이력을 긴요하게 쓸수 있다고 판단 했을것이다. 다만 ‘변신과 배신을 잘하는 자를 어디까지 신용할 것인가’ 라는 

의문에  동안   박정희의 행동을  지켜봤을 것이다. 결국 박정희의 충성은 미국 정보국의 신용을 얻게되었다. 

덜레스가 휴스턴 대학에서 ‘자기가5.16 구테타를 일으켜서 한국을 발전시킨다 했다 한다. 

덜레스는 1953년부터 1961 년까지 CIA국장을 지낸자로 공식 기록상으로도, 선거로 선출된 과테말라와 이란의 대통령을 군사 구테타로 몰아내고 미국 꼭두각시를 세운자이다. (이렇게 세워진  팔레비 샤는 자기를 반대하는 자는 250만명을 죽여도 좋다고 뇌까리며 온갖 부정과 독재를 하다가 민중혁명으로 쫒겨난 놈이다. 샤가 도망가기 3 전에도 레건  대통령은 우리는 샤를 지지한다. 샤는 건재하다” 라고 말했다.)

 

 5.16 구테타는 분명 헌정 파괴이다. 

헌법이 파괴되면 모든 법은 없는거나 다름 없다. 모든 법은 무시해도 되는 사회라는 말이다. 

모든 법은 헌법 안에서 존재하고 헌법에 위배되면 그 법은 무효이기 때문이다. 

헌정질서를 짖밟고 양민들을 학살한 군인 반란을 ‘성공한 구테타는 불법이 아니다.’ 라고 판결 했다는 ,  판사를 몽둥이로  죽이고 그의 딸과 아내를 강간 살인해도 살인 강간을성공 했으니 불법이 아닌가? 

나경원의 ㅂㅈ구멍을 찢어서 개에다  발라 주었다라고 동영상에서 어떤 사람이 말했다면, 주어가 없으니 동영상에서의  사람이  한것이 아닌가?  

나라마다 역사가  틀리니 우리에 맞는 “한국적 민주주의” ‘유신헌법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히틀러는 나치 파쇼정치를 ‘독일적 민주주의, 스탈린은 ‘쏘련적 민주주의, 이디아민이 ‘앙골라적 민주주의’ 라고 이름하면 민주주의가 되나? 

말도 안되는 똥구데기 소리를 서슴없이  밷는 한국의 법조계 인사들 – 소위 서울대 법대 나온 앨리트중의 앨리트라는 자들의 대가리가 이 정도라면 한국에서 판사 검사의 과장급 이상은 선거로 뽑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상대편의 판례와 공소가 어떻게   되었는지 유권자들에게 설명하도록 하고,  대가리같은 그런 판례나 공소를  자는 건설현장에서 무임금으로 막노동을 5년이상 시켜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5.16 구테타를 일으키고 처음 일성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하고 ” 였다. 

국시란 국가가지향해야  최고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 국시라니, 이런 똥구데기만도못한 자들이 어디 있을까 미국에 충성을 보여도 분수가 있지…  일국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자들이 나라의 체면도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은 일제 매국노들의 연장선에서나 찾을  있지 않겠는가? 

 

이영희 선생님의 기록에 보면 박정희가 케네디 앞에서 차렷자세로 무엇을 보고하는 식이었고, 케네디는 발괴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재미있어 빙글빙글 웃으며 박정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고 써있다. 

 영희 선생님께서 너무도 창피했다고 했다. 

박정희는 틀림없이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이고, 자기는 종주국의 대통령(왕이나 다름없는) 총독으로 임명받아 보고 드리고 있다.” 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있겠는가?

 

헌정을 파괴하고 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일당들이 어떻게 독재했고, 간첩사건을 조작해서 고문하고 사형시켰으며, 사기치기 어려우면 암살하고,  많은 여인을 권력의 힘으로 강간했는지, 한일협정, 차관 등에서 얼마나 도둑질 해먹었는지는 

이미 여러분들이 썼으므로 생략하자. 다만하나, 쓰레기 다카키 마사오가 아니라 차라리 초등이 대통령을 했더라면 오히려 경제도  발전했을 것이다. 도둑질은  했을테니까.

 

다만 여기에서  붙여 쓰고자 하는 것은, 많은 국민들 심지어 학자라는 자들과 민주운동 했다는 자들조차 믿고 있는 경제 부흥에 대하여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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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 박정희가 경제발전 시켰다는 사기   

 

2 대전이 끝나자 트르만  독트린의 선언과 함께 세계는 냉전시대에 들어갔다 . 

간략히 1950년대  특징은 

1)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발전과,

2)  쏘련이 미사일 인공위성 실험을 함으로서 미국의  우위력 붕괴,

3) 유럽 일본의 경제가 회복되면서

4) 미국의 상대적 경제력이 약화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민족해방 운동의 고양으로 이어져 ( 예를 들면 쿠바 혁명(19591), 월남전,  우리나라에서의 

4.19 민주화 투쟁 ) 개발도상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감소, 심지어는 반미 또는 사회주의 편향으로 학산되고 있었다. 

미국은  이유로서 후진국들이 너무 가난하기 때문이므로  후진국들을 어느 정도   있도록 경제개발을 시켜야 

된다고 결정했다. 

시카고대학 경제학팀 (일명 시카고 사단 )  후진국 경제개발을 위한 이론은 :

1)      너무 가난해서 산업을 시작  자본() 없기 때문에 차관을 들여야 한다(차관경제).

2)      외자 도입이 쉽도록 법령 제도 등을 뜯어 고쳐  투자 기반을 조성해야 된다(국제자본의 투자를 위한 법령개조).

3)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안정된 강력한 정권을 세워야한다 (군사 독재의 필요성). 

이렇게 해서 일단 산업이 돌아가기 시작해서 뜨게 되면 (비행기 처럼)  스스로의 추진력으로 날아 오르게 된다(발전한다) 것이다.

 

로스토우 노선(1958년의 근대화론) 공산주의 이론에 대응   있는 경제 성장 이론으로서 케네디의 후진국 경제전략이 된다.

1)        반미, 민족주의 세력에 전복 되지 않을 장기적이고 안정된 정권 창출,  때로는 군부 통치가 필수 불가결하다.

(1962-74년사이, 101 군사구테타가 있었고, 38개국에 군사정권 수립 (세계 150여개 국가중 25% 해당)) . 

2)        차관을  갚을  있도록 ‘경제의 계획화, 그리고 외국의 투자 유치가 쉽도록 법령 제도들을 고쳐 

산업화의 토대를 만든다. (폭압적 노동통제, 저임금  저곡가 체제, 수출자유지역설치 ).  

 정책적으로는  봉기 진압을 위한  유연 대응전략’ 으로, 게릴라와 민중을 고립시키기위해  일정수준의 농지개혁

(후진국들은 대개 농업생산 위주였다) 하게 하고, ‘진보를 위한 동맹’ 전략을 수립했다.  프로그램은 후진국에서 

군은 경제발전사회 발전에 추진 능력이 있는 전문기술조직이므로 

이들로 하여금 민간 역활을 하게 하고, 만일  ‘진보를 위한 동맹’ 정책이 실패하면 군이 정치에 개입하고, 필요하다면 미국이 직접 군사 개입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잠간 언급  것은 1959 9월에 “아시아의 현실, 미국의 정책이라는 ‘콜론’ 보고서가 있었다. 

 보고서의 한국 관련 보고에 “군사정부가 들어서는 것은 불가피” 하다고 했다 한다.

1960, 4.19 혁명으로  장면 정권이 서게되고, 남북교류 주장에 주한 미군 사령부가 “남북회담이 열릴 경우 

그것은 반드시 UN 사령부의 사전 승인을 얻어야 한다 경고 (한국일보1960.11.30)했고, 1961 56 박정희 쿠테타가 있었다.

경이로운 주권의 이양이라는 군사권도 미국에 있고남북교류 조차 미국이 허락해야 할 수 있는 나라  식민지라는 말이다.

 

<<  한상범 교수의 말입니다 : 
5 •16 쿠데타는 미국의 정치공작이었다.. 
(美國 CIA부장을 역임한 "알렌 덜레스" 英國 BBC방송 증언....) 
ⓒ 데일리서프라이즈 2005-05-04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 

--- 미국 중앙정보부(CIA)부장을 역임한 알렌 덜레스(아이크 시절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의 아우),

영국의 BBC 방송프로에 출연해서,

그가 재임 중 가장 성공한 정치공작은 한국의 5 ·16쿠데타라고 했다(오오에시노부(大江志乃夫), 戒嚴令, 岩波書店, 1992 28).

--- ----박정희가 이승만시절의 친일파와 다른 것은 노골적으로 일본 극우와 거래를 한 것이다. 정계와 관료계 뿐 아니고 경제 문화계의 유착이 더욱 깊숙하고 단단하게 맺어졌다. 
전두환이 1979 1212쿠데타 모의를 착수하기 전에 일본대사에게 사전 통고할 정도면 알아볼 정도이다(박선원의 워릭대학 제출 학위, 박선원, 냉전기 한일협력과 국제정치-1980년 신군부 등장과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 國際政治論叢 제42 3 2002년 한국국제정치학회, 258). 이와 같이 박정희 이후에도 친일파의 일본 극우 우익과의 연대는 절대로 동요함이 없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 덜레스가 University of Huston 에서 자기가 5.16을 일으켜서 한국을 일으켜 세웠다고 자랑하였다 한다.>>

 

미국은 1961 7 서울의 미 국제개발처(USOM) 부단장을 박정희 고문으로 임명하고 

1964년에는 번스타인이 AID  감독관으로 취임하면서 박정희의 경제 고문에 임명되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미국무성 산하 USAID(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대외 지향적인 개발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IMF ‘충고 따라  재정 안정화 계획으로서, 

외자 도입, 환율 금리 현실화 조치, 수출자유지역 설치, 무역 자유화 조치  일련의 금융 개방화 조치를 취했다.

 

한편 60년대  선진국들은 중공업에서 고부가 가치(수익성 높은 ) 산업으로 대체 되면서 부가 가치가 낮은  

노동 집약적에너지 집약적(많이드는) 산업체 (, 중화학공업 )들을 

값싼 노동력(저임금) 산업 재해를 받아도 찍소리 못할 산업은 개발도상 국가에 이전하는-- 특히 70 년대 중반 이후의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선진국은 에너지 절약형, 지식 집약적 산업(, 컴퓨터등)으로  ‘

국제  분업 체계 형성하게  되었다.                                                                           

 

(예를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프로그람 CD (미국제품)  한장이 $100 반면,  13인치 진공관TV(중국제)  $49 이다. 

원자제 생산부터 노동력, 운반  소비자 손에 올때 까지의 원가와 경로를 생각해 보라). 

<<<인류 산업의 발달 : 원시채취산업à농경산업à근대 수공업 à중화학공업à정보통신산업à금융산업>>>

 

박정희 시대의 수출 주도형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도 미국의 지시에 따라 한국은 그대로 따라 시행했고, 

결국 국제 분업체제의  부분이었음을   있다. 

 

<<<1962.1.13에 발표한 경제개발 계획은 박정희가 아니라, 이미  장면(張勉) 정부가 짜놓은 것이었다 (1960.4.15에 국무회의에서 의결됨).

1961.5.16쿠테타 이전부터 장준하 선생이 국토개발 기획단장이 되어 농촌을 바꾸는 새마을운동을 이미 진행시키고 있었다. 민주당 정권에서 짜놓은 공약을 박정희가 가져간 것이다.  그런데 나라를 발전시키기는 커녕 국민들에게 엄청난 빚만 남겨놓았다. 5.16 쿠데타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옛날에 선진국에

있을 것이다2013.09.05 대사헌 한토마 >>> 

 

어떤 한국 사람들은 새마을 사업을 성공했다고  하기도 한다.

새마을 사업은 농촌을 떠나 산업도시에 넘쳐나는 충분한 인력을 집합시킴으로서 노동자들을 값싸게 노예 처럼 

부려 먹을  있도록 한것이다.

예를 들면 양돈사업을 장려해서 돼지를 기르면 홍콩에 수출 길이 끊겼다고 사육비는 커녕 새끼 사 올때 값으로 떨어진다. 

통일벼를 지으라고 하고 통일벼 쌀을 팔려고 할때는 생산 단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 정부의 말과 반대로 해야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 였다. 싸리나무 울타리나  초가집들은 빚을 내어 시멘트 벽돌 담을 쌓고 기와나 스레이트를  놓고 

산듯한 페인트를 칠해야 했다. 그래서 농촌의 빚은 쌓이고 빚을  농협이 차압을 집행하면 농촌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모양은산뜻한 기와집에 벽돌 담장, 강제로 뺏다시피  옆의 땅들은 잠식해서 반듯하게 길을 내고, 

축산막사들이  뻗어 있으니 기가 막히게 잘사는 것 처럼 보일  밖에….. 

많은 사람들이 농사라면 이를 갈고 굶어 죽어도 평생 농사는 짖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떠났다. 

도시 빈민촌의 대부분이 농촌 출신들아닌가?  

 

<<<<< 1967 - 76년사이 670만명이 농촌을 떠나 이는 한국전쟁 기간중 인구이동 보다도 심대한 것이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저임금정책을 고수해야했는데, 저곡가와 농가부채로 어려워 이농한 농민들을 흡수하여 충당하였다.

박통시절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
 임금은 미국노동자의 1/12정도
 산업재해는 세계최고  (태반의 노동자가 최저생계비도 못버는 상황).

1970년대 중반 서울인구의 1/3~1/5 해당 100~300만명이 도시빈민으로 판자촌에서 비참하게 생활   

 출처: 난해태껌넌롯대껌(salingovi3) 2012.03.28 한토마  >>>>>            

 

저임금 저곡가 정책으로 시바스리갈을 마시며 (TV에서는 서민인양 막걸리를 마시며)  거의 매일같이 씹다 버린 껌 처럼 

어린 여자들을 강간하고 바꾸던 박정희는 그렇게 농촌에 보은하였다. 

1970 한국 통계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최저 생계비 이하의  저임금, 세계 최고  산업재해국 이었다. 

이때 전태일 열사가  노동조건의 개선 요구하며 자신을 불태웠다.

 

미국의 지시대로 시카고 사단의 경제 정책은   휘하에 있던  모든 후진국들에게 적용되었다. 

하지만 한국을 제외하고 모두 처참하리 만큼 실패했다. 

1982  멕시코가  $ 850 달러 채무지불유예를 선언했고, 85 브라질이 파산하는   그야말로 남미가 온통 극심한 경제 난으로 아우성이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시카고 사단의  정책을  쓰지  안하였어도  대만은    것도 없고, 북한조차  70년대 까지만 해도  남한 보다  

훨씬  살고 있었다. 

(북한이 지금 한없이 궁핍한 것은, 

미국의 경제봉쇄와 평화조약을 거부하고 1시간 안에 신의주 평양 원산을 점령하는 작전등의  미국의 침략전쟁위협, 

공산주의권이 무너지면서 미국의 경제제재로 무역이 거의 없고, 심각한 에너지부족과 60년래 최악의 폭우피해가 겹친것이다.)   

 

<<<<<<<                        박정희 시대의 경제 성장률

상대평가에서는 김대중 1, 전두환 2, 노태우 3, 박정희 4 
박정희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3.3% 더 높았으나 대만보다 1.5% 낮았고, 
전두환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5.7% 더 높았고 대만보다 0.8% 더 높고, 
김대중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4.8% 더 높았고 대만보다 3.7% 더 높았다. 
대만을 포함한 주요국(8,,,,,,,)의 연평균성장률을 비교하면 김대중 1, 전두환 2, 노태우 3, 박정희 4위다. 

그리고 성장율은 대체로 선진국에 갈수록 작아진다는 것을 참조하면 김대중과 전두환의 경제는 박정희 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김대중의 경우 한국전쟁이후 가장 큰 국란이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세계 최고수준의 성장을 이루었다. 
김대중은 또한 경제성장에서 세계 최고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5년 만에 대한민국을 IT강국, 전자제품강국, 생명공학의 강국으로 올려 놓았고, 

수출 최대 그리고 흑자,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고 세계 4위로 올렸고,한국의 영화산업을 세계 2위 수준으로 끌어 올렸고, 한류의 꽃을 피웠다. 

  

                   박정희 시대의 수출현황 
박정희는 날이면 날마다 수출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결과는

박정희 18년간 수출 638억불에, 수입 871억불, 무역적자 233억불 
전두환시절; 8억불 무역흑자 (전두환은 8억 흑자를 자랑으로 여긴다) 
노태우시절; 132억불 무역적자, 
김영삼시절; 366억불 무역적자, 
김대중시절; 846억불 무역흑자,
노무현시절, 980억불 무역흑자, 

박정희시절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 산업재해는 세계 최고였다. 
피고용인 가운데 1976 74.9%, 1978 76.7%  근로소득  면세점 이하 였다. 
(태반의 근로자가 최저생계비조차 못 버는 상황이었다) 

출처 :  2013.09.05    대사헌 (ijl1213)      한토마       >>>>>> 

 

<<<<  1979 박정희 사망년도 국가채무는 200 달러가 넘어 국가부도 위기였다…..  

김재규가 부마사태 같은 민란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하자, 박정희는 화를 내며 “앞으로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자유당에는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하여 사형당하였지만,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하면 대통령인 나를 누가 사형시키겠는가라고 말했고, 

같은 자리에 있던 차지철은 “캄보디아 에서는 3백만명 정도를 죽이고도 까딱 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2백만명 죽인다고 딱 있겠습니까라고 큰소리 쳤습니다.              출처: 아이엠피터2012.9.14 현대사    >>>> 

 

<<<< 김대중 대통령이 감옥에 있으면서 엘빈 토플러의 책을 읽고 다음 시대는 정보통신 산업시대가  것으로 알았다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정보통신시설 첨단화와 교육에 힘쓰면서, 중국과 교섭하여 세계 1/4인구인 중국시장의 통신기술 방식을 

일본 방식이 아닌 우리 방식으로 채택하게 함으로써 삼성등 우리나라  IT기업들이 세계적 기업들이  수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예로 우리 인터넷 속도를 미국이 보편화하는데 우리보다  6년이 뒤처져 있었다. 이명박정권이 되면서 우리 정보통신 세계서열이 종합2위에서 16 밖으로 밀려났다. (EIU평가( NIPA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한국 정보통신 IPS 산업경쟁력 지수 순위는 2위를 차지하였으며, 미국이 1, 네덜란드, 영국이 각각 3, 4위를 차지 )  >>>>

 

매국노 변태 변절 도둑놈 살인 강도 강간범 박정희가 아니라,

국민학생이 대통령이었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한국은  성장하였을 것이다.

 

 이유는

     

(1)차관으로 들여온  막대한 돈의  23%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다. 

밝혀진 차관 사용처도1969 차관기업의 45% 부실기업으로 판명되었다. 

정말로 기업을  하겠다는 정신은 없고 무주공산 차관을 먹고 보자는 행태였다  수있다. 

    

(2)한국인의 극성스러운 교육수준은 세계적이다. 

 노동의 질이 높고, 상황에서의 대처 또는 응용능력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다.  

    

         (3)한국인의 악착같은 열성은 세계 두째 가라면 서운  것이다.

          6.25전쟁에서 “ 이상 폭격  곳이 없다. 완전히 석기시대로 돌아갔다. 다시는 회복    없이되었다” 라고 

북한을 말했는데,  70년대 까지도 남쪽보다     만큼 되었던 것도  

우리 민족의 극성스러운 열성이 그렇게 이루었었다. 

독일의 얼어 붙은 엘베 강물속에서 배를 손보고,  

사우디 사막의 쇠에 살이 늘어 붙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두르지 않는 외국인들이 없을  

정도이다. 

LA 왓츠 폭동 이후 흑인 촌에서 유태인들이 고개를 흔들며 떠날때 목숨을  놓고  자리를 

한국동포들이 들어가서 이제는 거의 한국사람이 장악했다고 볼수있다. 

권총을 얼굴에 드리밀고 강도질 해가는 일을  두번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옛날에는 뉴욕이 미국 의류업계의 최대 봉재공장이 었는데  지금은 LA 다운타운의 한인 봉재공장지대가 가장 크다. 

뉴욕의 청과물 시장을 한국사람들이 거의 장악했다. 

한국 사람들을 가리켜 제 2 유태인이다  또는  지독하다고  한다.

     

(4)오늘날  브라질등 남미를 보듯이 군부독재가 아니라 민주정권에서 오히려 안정된 급성장을 하고있다는 사실이다.  

군부독재시대 남미에서는  (2)(3)  부족해서 실패했고, 한국도 여러차레 위기가 왔었으나 우리민족의 특수성과 월남전 특수등으로 기사회생 했었다. 

박정희가  출신이라 월남파병으로 경제를 살였다고 하지말라. 그때 한국군의 통수권은 헌법과 달리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쥐고있었다. 국민학생이 대통령이래도  미국이 “파병” 하면 파병해야 됐다.

90년대 이후 IT(정보통신산업이 세계 주류 산업이 되면서 교육 수준이 높은 한국이 더욱 힘을 받게  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박정희 시대의 경제 성장은 박정희라는 암덩이를 극복하고 시카고사단의 잘못된 경제이론 속에서도, 

깨져가는 경제를 붙들고 유지시킨 한국 국민들의 피땀으로 일궈 냈다는 말이다.

드라큐라에게 피를 처음 빨리는 순간 무조건 드라큐라를 사랑하게 된다는 헐리우드 영화처럼, 

흡혈귀 박에게  빨리고 무조건적으로 흡혈귀 박을 사랑하는  한국사람들...     

이제  한국사람들이 최면에서 깨어나 코끼리가 지나 갈때  지진이 났다하여 코끼리가 지진을 일으켰다고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자유 민주주의란  자체가 한국적 민주주의란  만큼이나 웃기는 사기언어이다) 주장하는 

골빈자들을 앵무새 처럼 따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도를 6600만달러에 팔아 먹은 다카키 마사오, 왜놈 오노 반보쿠가 “아들이라 지칭했던 박정희, 오카모토 미노루(다카키라는 성씨는 아직 조선 냄새가 난다고 명성황후를 능욕하고 살해한 왜놈 오카모도의 성을 따서 자기이름을 또 다시 바꿨다) 그는 한국인이라기 보다는 사꾸라 훈도시에 닙뽄도를 빼어들고 독립군들을 소탕한다면 ~~라고 소리치며 부르던 왜놈군가를 청와대에서도 불렀다는 왜국을 위해서 살았던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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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카나다동포님의 댓글

카나다동포 작성일

간호원아줌마 시원해요
언제나 글이 시원해서 좋아요
그 맛에 애독해 왔어요
다음 글 기대하며
건강챙기세요
화이팅

김재범님의 댓글

김재범 작성일

언젠가 한국사람 평균수명 그래프를 보았는데  진짜 박정희 재임동안 전 세계에서 한국사람 평균수명이 제일 짧았음.

근데 딱 박정희가 죽은년도부터  평균수명이 갑자기 늘더라구요.  미국한테 놀아나서 민족을 탄압한  한심한 사람이죠.

ㅓㅎ님의 댓글

ㅓㅎ 작성일

야 동상은 왜세우냐 돌상두 아까우니 뒤간문에 종퀴새끼대충그려 붙여

나참님의 댓글

나참 작성일

쪽발이들한데서 붙어서 나라찾겠다는 애국자들을 죽인 매국노가 대통령으로 있었으니 남조선 이라는게...뭐가 제대로 되껬어요,그매국노의 그 딸년이 하는꼴이 미국의 개네요..

친일파님의 댓글

친일파 작성일

이년 에미애비도 친일파였을 것이 확실하다. 그런것들이 더 설처 댄다. 때중이 놈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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