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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77] 제3세계 눈으로 식민지 한국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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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01-28 12:37 조회11,161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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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태영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한국 노동운동권에 있어서 <영원한 등불>의 씨앗이 됐다. 전태일이 영락교회의 뜰에 처음 뿌린 씨앗은 교회에서가 아니라 차라리 청계천에서 노동조합 전국연합이 처음 창설됨으로서 그곳에서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유태영 박사 글을 싣는다. [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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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77]

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노동의 가치일하는 보람을 망가치는 박근혜

            박근혜의 <노동개혁> 에 숨겨진 <노동개악>

      노동자를 억압하는 <기업-정권-언론> 3위일체 재앙

 

*: 유태영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2016년은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46주년이 되는 해이다. 1960년대에 있어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갑짜기 <저곡가 정책>과 급속한 <공업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 하면서 선진화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700만명의 농민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밀려들었다.

 

전태일은 1964년에 농촌을 떠나 무작정 상경하여 신문팔이와 구두딱이를 하다가 1965년에 평화시장에 있는 신흥 공장에서 말단 직공으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전태일의 월급은 하루14-16시간 노동을 하여 겨우 50원이였는데 그것은 그때 부자들의 커피 한 잔 값정도 밖에 안되는 노동자들의 월급이었다.

 

당시 평화시장 일대에는 새로 들어선 회사들과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번창하고 있었다.  박정희 군사 정권과 결탁한 신생기업체들과 생산공장들은 급속히 발전하고 성공하여 회사의 고위직 간부들과 업주들은 불과 1-2년 사이에 땅도 사고 고급 주택도 짓는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공장의 노동자들은 그 많은 먼지 속에서 중노동을 하고 밤 늦게 집에 돌아가는 허기진 모습은 너무나 비참했다.

 

전태일은 바보처럼 착취를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비극을 호소하고 항의하는 노동운동을 시작하여 <바보회-삼동회> 등 노동운동단체들을 조직하였다. 전태일은 불의한 기업주들을 규탄할뿐만 아니라 박정희 정부의 잘못된 노동정책의 개선을 요구하는 항쟁을 시작했다  

 

전태일은 <삼동회>의 주장으로서 8개 요구조건의 건의서를 작성하여 평화시장의<주식회사>를 찾아가 제출했다.

 

하지만 전태일의 <삼동회> 노동운동은 시작 초기부터 박정희 군부독정권의 무지막지한 탄압으로 인하여 노동운동을 계속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 운동에 동참한 노동자들이 줄줄히 재판도 없이 감옥으로 끌려가는 비참한 현실이 끝을 모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서울 영락교회의 앞뜰에서 발생했는데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길에 휘말린 채 전태일은 길거리로 뛰쳐 나왔다.

 

하지만 영락교회는 전태일의 장례식을 거절했다. 왜냐하면 영락교회는 보수주의와 반공주의로 유명한 교회로서 <자살은 죄된행위>라고 단정하고 오직 국가보안법을 준수하는 것이 교회의 정당한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전태일의 장례식은 연동교회에서 거행했다.  그 때 당시 영락교회는 한국 기독교의 대표적인 거대한 교회로서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락교회는 사회적 부조리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악정에 대한 교회의 발언권을 스스로 거부하고 오직 반공주의적 기독교 복음주의 부흥에만 집중했다. 왜냐하면 영락교회는 6.25전쟁때 월남한 기독교인의 대표적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영락 교회는 전태일의 자살을 죄된 행위로만 정죄하고 사회정의 문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1970 1113일에 22살의 꽃다운 나이로 분신한 전태일의 품에는 근로기준법의 책 한권이 안겨 있었으며 전태일은 불에 타 죽는 과정에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불상한 노동자들의 웨침을 끝치지 않고 부르짖었다.

 

<노동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하라>>고 끝까지 웨쳤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한국 노동운동권에 있어서 <영원한 등불>의 씨앗이 됐다.

전태일이 영락교회의 뜰에 처음 뿌린 씨앗은 교회에서가 아니라 차라리 청계천에서 노동조합 전국연합이 처음 창설됨으로서 그곳에서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다.

 

1972년에 동일방직과 원풍모방이 전태일 분신에 힘입어 노사분쟁을 이르켰으며   YH 무역회사에서도 역시 민주노조를 창설하기 위한을 노동자들의 투쟁이 요란하게 전개됬다.  다시말하면 전태일의 분신사건은 한국 민중의 평등사상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계기의 불씨가 됐다.

 

전태일의 분신사건으로 인하여 <민족-민주-민중>이라고 하는<3민주> 운동이 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태일의 분신은 박정희 5.16군사독제정권에 항거하여 투쟁하는 민중항쟁운동의 계기가 되였으며 학생운동권, 기독교계의 도시산업선교, 불교 등 타종교들의 민주화운동, 빈민구제사회사업운동 등을 비롯하여 장준하의 <사상계>월간지와 함석헌의 민중을 위한 <씨앗의 소리> 등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노동자와 농민, 학생들과 지식인들, 종교인들과 문학예술인들이 도시와 농촌에서다양한 민족주의운동- 민주화운동 민족통일운동을 전개하여 박정희 군부 독제정권의 장기집권 종식을 강력히 독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은 군부와 대기업가들과 서로 결탁하여 튼튼한 정치력을 확보하고 있을뿐만 아나라 미국의 막강한 자본주의 체제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끄떡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강화되여 독재와 탄압정치는 끝을 모르고 굳건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는 직속부하 김재규에 의해 살해됬다.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쐈을가?

 

1979 10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측근 3, 4명이 참가한 연회장에서 김재규의 총격에 의해 살해됐다.  

 

미국의 CIA문건은 20-60 년 동안 비공개되는 극비에 속한다.  20-60 년후에 시효가 지난 후에 비밀문건이 공개된다. 하지만 극비에 속한 정보의 일부는 여전히 삭제되며  극비에 속한 비밀로 한없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쨋던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혹이 세가지로 요약되여 제기되고 있으며 그 요약된 것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사주설.  당시 박정희와 지미 카터 대통령 행전부와의 관계가 매우 악화되고 있었다. 그럼으로 미국 CIA는 김재규를 사주해서 박정희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 미국의 단순한 묵인설.  김재규의 비밀공작이 성공하여 박정희를 제거한 후에 한국에 새롭게 친미적 민주주의 정부를 다시 구성된다는 결론을 미국은 미리 내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미국은 김제규의 거사를 묵인하고 바라보고 있었으며 또 미국은 김제규의 박정희 저격을 혁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 박정희의 핵카드에 대한 미국의 반대 음모설.  미국과 김재규는 박정희가 마음속에 <핵개발>에 미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럼으로 미국CIA는 왜 어찌하여 사전에 김제규를 미국에 초청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명확히 연결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핵개발 야심을 품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있는 박정희와 그것을 한사코 막으려 했던 미국과의 충둘이 바로 김재규가 왜 박정희를 쐈을까에 대한 정답이라는 것이다.

 

위의 세가지 의혹들에 대하여 확실한 뒷받침이 되는 또 한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김재규가 군법재판을 받는 모든 관정에서와 또 사형을 당하는 사형장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김재규가 줄곳 주장하면서 웨친 말이 있다.

그것은 <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라고 수십번 웨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김재규는 오직 미국의 이용만 당하다가 마지막에는 미국의 버림을 당한 것이 억을하다고 웨친 것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박정희는 1961 516일에 쿠테타를 이르켜 정권을 탈취하여18년간 반민족적 이며 반민주적인 민중탄압의 정치를 강행하다가 우방인 미국의 버림을 받고 또 심복중의 심복인 김재규의 배신에 의하여 1979년 1026일에 비참하게 죽었다.

   

             1. 전두환이 저질은 민족반역과 노동자 인권 유린

 

19791026일에 박정희가 사망함으로 18년동안 꽁꽁 냉동됐던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게 재생되여 새로운 정치활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국회는 그동안의 군부의 독재정치 체제를 해체하고 개헌 논의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사망한 민주주의를 다시 소생시켜 정의로운 사회운동에 열성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전두환을 중심한 군인들의 <하나회>가 돌출하여 1979 12 12일에 이른바 <12.12 군사반란>을 이르켜 또 다시 신군부의 등장이 노골화 되고 있었다.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여 비상대책을 한손에 쥐고 게엄령 10호를 선포하여 김대중을 비롯한 모든 야권 정치인들 수백 명을 구속감금을 하였으며 군인들이 국회를 봉쇠했다.

 

이러한 전두환 군부의 망국적 돌출에 반대하여 전국적으로 항의운동이 전개됐다. 하지만 가장 치열하게 군부에 대항하여 항쟁을 이르킨 곳은 바로 광주이었다.

 

광주의 시민들과 학생 운동권은 일제히 봉기하여 세 가지를 구호를 웨치면서 전두환의 군부가 일으킨 제2의 쿠테타에 항젱했다. 1) 김대중석방 2) 전두환 퇴진 3) 상 계엄령해체 등을 웨치면서 항쟁했다. 

 

위기에 당면한 전두환의 군부세력은 1980 5 18일에 미리 준비해 놓은 공수부대를 38선 전방에서 철수하여 광주시에 투입시켜 무차별한 살인행각을 저지르면서 광주항쟁을 진압했다 

 

공수부대의 무차별한 살인행각으로 인하여 발생한 인명피해는 다음과 같다.

사망자 163, 행방불명자 166,  부상뒤 사망자 101, 생존한 부상자3,139, 그리고 기타 여러가지 형태의 피해자들이1,589명으로 집계됬다.

 

방화와 건물파괴 들을 돈으로 계산하면 천문학적 거액의 재산피해를 당했다.

 

그런데 도대체 이러한 천인공로한할 만행을 전두환 군부의 단독으로 진행됬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비밀이 해체된 미국CIA의 문건에 의하면 1979-1980년에 미국  CIA와 전두환의 계엄사령부 사이에 오고간 비밀문건들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CHEROKEE FILES 비밀문건 모두 4

NODIS비밀문건 모두2

KOREA FOIA  비밀문건 모두 9

 

광주 5.18 민중항쟁을 전후하여 미국CIA와 전두환의 군부계엄사령부사이에 오고 간 비밀문건들의 수는 모두 15건이였다. 전두환 계엄사령부가 38선 전방에 있는 공수부대를 미국의 승인하에서 광주로 이동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15개 비밀문건들이 분명히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을 비롯한 한국 제도권 언론들은 <광주 반란사건에 북한군의 개입됐다>라고 하는 새빨간 거짓말 보도를 아직까지도 은근슬적 기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것은 한국의 역대 친미적 독재정권들이 언제나 위기에 직면하게되면 출구를 찾기 위하여 상투적으로 반공주의를 사용하고 있는 치밀한 집권 시나리오가 오늘도 박근혜 정권하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뜻한다.

 

지면상 제한으로 전두환 정권이 저질은 태산같은 비리들중에서 한 가지 사건만을 더 추가하여 기록한다.

 

이 사건은 부산에 있는 불량아 수용소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며 이 사건은 바로 전두환 정권의 통치하에서 상투적으로 발생하는 일예에 불과하다.

 

1987322일에 에서 직원의 구타행위로 1명이 사망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35명이 <현제복지원>을 탈출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불씨가 되여  그동안 <형제복지원>에서 12년간 무려531명 원아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폭로 됐다.

 

사망한 불량아들의 시신 하나의 값이 300-500만원으로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뿐만 아니라 불량아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정부의 보조금을 매년 20억원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부실한 운영과 허술한 식사를 제공하여 거액을 착복했으며 또 박인근 원장은 원생들을 개인의 사업에 무상으 강제노동을 시킨 불법행위들이 모두 다 폭로됐다.

 

1987년에 박인근 원장의 비리가 폭로되여 법원의 구속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전두환은 박인근 원장에 대하여 기막힌말을 했다.

 

전두환의 발언은 이 사람이 정말 대통령인가 하는 의심이 되는 발언이었다.

 

<형제복지원의 박인근 원장은 훌륭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박인근 원장 같은 사람의 덕분으로 길거리에서 문제를 이르키는 불량아 거지떼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좋은것 아닌가?>

 

전두환의 이러한 기막힌 발언이 있은 후에  부산지역 검사들과 부산시 경찰들은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의 비행에 대한 법적 수사를 축소하고 그의 부정행위를 오히려 음페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두환의 본색이 그대로 폭로된 참혹한 이야기들 중의 일부의 이야기인 것뿐이다.

 

또한 전두환 정권하에서 <박종철><이한렬 >두 열사가 경찰의 극심한 고문으로 인하여 사망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박종철 열사를 물고문하여 죽인 경찰은 박상옥이었다. 박상옥은 박종철을 죽여 놓고 변명하여 말하기를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고 말하여 더욱 악명 높은 경찰관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박근헤는 물고문으로 박종철열사를 죽인 바로 그 전과자 박상옥을 대한민국 법원의 최고의 위친인 대법원장으로 임명했다.

 

                   2. 노태우-김영삼-이명박으로 이어지는 노동정책

 

우선 노태우 정권하에서 1991년에 <분신자살> 20대의 젊은 희생자11명들의 명단을 살펴 본다; 강경대, 박승희, 김영균, 진세용, 박창수, 김기설, 윤용하, 이정순, 김철수, 정상순, 김귀정 등 11명이 노태우 정권하에서1991년 한해 동안에 분신자살을 했다.

 

이것은 전두환의 5공시대 보다 오히려 노태우 6공시대에 노동정핵이 더욱 더 폭력적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노태우의 전면적인 노동탄압이 1987-1993년에 어떠했는가를 간추려서 ㄱㄴㄷ 순으로 기록한다.

 

. 노태우는 우선 노동운동의 기세를 제압하려고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하여 이른바 <체제수호선언> 을 발표 했다.  이 선언의 의도는 어떤 노동쟁의도 공권력을 투입시켜 전면적 탄압을 행하려는 의도이며 민주노총에 대한  무력진화를 노린 속셈이었다.

 

.19901 22일에 노태우 정권의 제6공화국은 민정-민-공화 등3당의 전격적인 합당을 발표하여 보수대연합 <민자당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민자당시대의 포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노조 진영에 대하여 노동탄압정책을 보다 더 확실하게 못박아 두기 위함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진영에 대하여 이데올로기 공세를 강화하는 성과를 노리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노태우 정권하에서 노사간 대립은 조직적으로 더욱 더 첨예화되고 있었다.

 

. 노태우 정권은 노동운동 탄압을 미화하여 <산업평화> <경기활성화>를 주장하면서 뒤에서는 노동자들의 <연대파업중지- 인금인상 억제강화>를 제기하고 있는 것 이었다. 걸론적으로 노태우 정권의 노동정책은 <총자본> <총노조> 간의 분쟁을 노골화하고 악용하여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노태우는 물태우가 아니였다. 노태우는 어수룩하게 보이지만 흉악한 정치를 했다. 

 

노태우는 김현희를 이용하여KAL기를 추락시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흉악한 노략가이었다. 

 

또한 노태우는 5.18 광주사건을 이르켜 정권을 탈취한 군인출신 동지인 살인마 전 두환에게 면제부를 발행하여 백담사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정치적 연극 을 꾸미는 <고스톱>의 명수이기도 했다.

 

그 다음 김영삼의 노동탄압 정책은 도대체 어떠했나?

 

김영삼은 박정희군사정권을 반대하여 민주화 투쟁의 선봉자로서 한때 학생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면서 민주주의 투사로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김영삼은 야권의 정치적 선배인 김대중과 양김갈등속에서 3당합당을 감행하여 파염치한 변절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김영삼은 여당의 대통령후보자자로 변신하여 야권의 유일한 동지였던 김대중을 물리치고 노태우의 후임자가 되 1993년에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럼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정권하에서 정의로운 정책을 절대로 기대할 수 없었다. 김영삼 변절자의 반민주적이며 사악한 통치형태와 그리고 노동정책에 대하여 간략하게 ㄱㄴㄷ순으로  살펴본다.

 

. 큰 도둑에게는 문이 없다라는 옛말 그대로 야권을 배반하고 군부독재정권에 굴복하고 변절한 김영삼은 여유만만하고 운좋게 정권을 쟁취했다.   하지만 김영삼은 변절의 본질 그대로 정권을 잡자마자 즉시 공안탄압과 노동탄압을 심화시켰다.

 

김영삼을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는 괴변으로 박정희의 쿠테타를 비롯하여 전두환-노태우 등 전임자들의 죄악된 정권들에 대하여 면제부를 선언하고 반공주의를 강화함으로서 전두환-노태우보다 오히려 더 반민주적 청치를 했다.

 

ㄴ김영삼이 전두환-노태우에게 면제부를 부여하고 반민주적 정치를 하는데 대하여 국민적 반대와 항쟁이 전국적으로 물결침으로 김영삼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하여 김영삼은 즉시 전두환-노태우를 채포하고 투옥할뿐만 아니라 눈가리고 아웅하는 <사형선거>를 선언하여 김영삼 특기의 정치적 잔꾀의 연극을 연출했다.

 

    

.김영삼은 정치적 잔꾀로 전두환-노태우의 <가짜사형선고>를 이용하여 위기를 간신히 넘긴후에 김영삼은 자신의 본색을 들어 내는 정권 유지용으로 각종 개헌에 곧 손대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김영삼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정치적 노선과 직접으로 연관된 노동법의 개혁이었다. 김영삼이 우선 노동문제를 개혁의 중심 과제로 삼고 중요시했는데 노동법 개악의 주요 사항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정리해고 도입, 파견제 도입, 변형근로제 도입, 노동임금 동결, 노사자율적교섭 동  , 안기부의 노동운동에 대한 막강한 수사권 부활> 등이었다.

 

김영삼은 온갓 악법들을 합법화하려는 정치적 야욕을 품고 이었다. 그런데 김영삼은 이와같은 노동악법들을 날치기로 국회에서 7분만에 통과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김영삼의 잔꾀정치와 안기부의 강압통치의 부활들이 김영삼 정권의 안정을 절대로 보장해주지 못했다. 김영삼의 본색이 들어났음으로 김영삼을 불신임하는 노동자들의 항쟁이 전국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잠시 관망으로 데모를 유보하고 있었는데 김영삼이 7분만에 노동 악법을 통과시키는 행태를 보고 민주노총은 곧 전국적으로 총파업을 선언했다.

 

민주노총의 파업선포가 발표되자 서울 도심지에서 매일 수천 수만의 노동자들의 투쟁이 산발적으로 벌리기 시작했으며 부산을 비롯하여 도시들  그리고 경희대학을 비롯하여 많은 대학들,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단체들, 각종 업종들이 일제히 전국적으로 오직 김영삼의 퇴진을 웨치는 데모를 시작했다 

 

<더 이상은 못참겠다>는 것이 수십만 전국 노동자들이 데모에 나서는 이유였다.

 

. 김영삼 정권의 몰락을 독촉한 결정적 사건이 19955 12에 경남 일산에서 현대중공업의 노동자 양봉수의 <분신자살>이 계기가 되여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대중공업 회사는 1994 2월에 양봉수와4명의 동지 모두 5명은 부당해고했다. 부당해고를 당한 5명을 대표하여 양봉수는  1 2개월 동안 회사를 상대하여 단 하루도 쉬지않고 부당해고 취소를 요구하는 <민권회복운동> 투쟁을 계속했다.

 

현대중공에 종사하는 3만명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양봉수의 투쟁을 지원하는 역할을 강행했다.  하지만 회사측은 오히려 그 간부들마져 또 해고하는 악순환이 계속함으로 걸과적으로 해고를 당하는 노동자들의 수만 날이 갈수 록 점점 더 증가했다.

 

하지만 김영삼은 요지부동으로 노사분쟁에 오직 현대중공업만을 옹호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김영삼 정권의 말기는 해저문 황혼처럼 쉬임 없이 마지막 몰락을 독촉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 양봉수의 분신자살 사건이었다

 

현대중공업의 풀리지 않는 노사문제 뿐만 아니라 그외에도 김영삼 정권 말기에 있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언론사들과 민중들 사이에 오고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 중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1). 김영삼은 항상 입버릇처럼 <나는 십원 한장 안받았고 결백하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태우는 김영삼에게 선거지원으로3000억원을 건겠다라고 밝혔다. 물론 그외에도 거액의 돈이 오고간 이야기들을 여기 다 기록할 수 없다.

 

2).김영삼의 자랑인 아들 김현철도 개인적인 정치활동중에서 불법적인 정치자금 문제로 인하여 법정 구속된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김영삼도 이 사건을 시인했다.

 

3). 김영삼은 집권 기간에 <노동법><안기부법>을 날치기로 통과 시킴으로서 한 때 김대중-감영삼 민주화투쟁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스스로 망쳐 날려버렸다.

 

4).한국 언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공공연하게 김영삼의 숨겨진 아들 <김영준>숨겨진 딸 <가오리>에 대한 기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김영삼의 숨겨진 여인 이경숙과 숨겨진 <아들과 딸>에 대하여 죽기전에 <그들의 한>을 풀어주지 못하고 떠나갔다고 아쉬워하는 원성들이 크게 들렸다.

 

다만 전 안기부 김기섭 실장을 통하여 1993-1997퇴임할때까지 7차레에 걸처 총23억원을 건넸다는 사실만 언론에 보도됐다.  물론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저들끼리만의 사연들이 많이있을 것로 생각된다.

 

5). 김영삼은 퇴임후 2001년에 수원 중앙교회에서 예배시간에 간증을 했는데 그의 간증이 너무도 비신앙적이며 비인격적인 거짓말로 국가적 손실이 염려되는 발언을 거침 없이 쏟아냈다.

 

*.김대중 때문에 한국은 고난에 빠져있다.  *. 이희창은 내가 키워줬는데 나를 배반 했다.   *. 나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숱한 어려움을 이겨냈다.  *.  나는 나라를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23일간 단식을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이 회복됐.   *.  나는 힘들고 어려울때 조용기 목사 등 훟륭한 목사님들에게 기도요청을 하여 힘을 얻었다. (조용기 목사는 누구인가?  그는 매독환자이며 교회 돈을 횡령하여 감옥살이를 했다)   * 김영삼은 재임 기간에 자기 아들 김현철이 뇌물죄로 감옥에 간것을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정의를 실천했다고 어처구니 없는 철면피적 자랑을 했다.

 

이것이 김영삼 장로님이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행한 신앙간증 중에서 1/10정도 되는 이야기들이다.  

 

 

결론적으로 김영삼이 집권말기에  있어서 사면초과로 곤경에 빠져서 극히 외로울때 스스로 한탄하던 모습이 <정치적 산송장>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김영삼은 뿌리 깊은 낡은 형태의 <보수주의> 충현교회의 장로님이시다. 

그런데 <이명박>은 신식 형태의 <보수주의> 소망교회의 장로님이시다.

 

이명박의 소망교회는 왜 어찌하여 신식 보수주의 교회인가?

소망교회는 <반공-반북-친미-예수-죽음천당>만을 역설하는 교회인고로 보수주의교회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조 불구하고 소망교회는 신식 교회이다.

 

왜냐하면 소망교회의 교인들은 거의 모두가 중상층 이상의 교인들이며  또 교회의 분위기가 매우 현대적으로 고급스럼고 사치한 신식적 부위기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소망교화의 장로님들은 거의 모두가 이명박정도로 한국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특권측 사람들의 집단 즉 부자들의 교회이다.

 

소망교회 교인들은 일요일 오전에는 교회에 나와서 화려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역시 화려한 Golf장에서 즐거은 하루를보내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럼으로 소망교회는 천국에 들어갈 소망은 전혀 없는 교회이다.  곽선희 목사는 승용차3억원, 주택 30억원, 은퇴금 해마다 15천만원을 받고 있는 교회인 것이다.

 

소망교회의 장로님이신 이명박 장로님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가?

이명박 장로님은 2008년에 불법적BBK조작음모에 성공하여 미국의 승인을 받고  장로님으로는 부적절한 방법으로 간신히 정권을 탈취하여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이된 이명박은 당시 갑짜기 들어닥친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를 자신있게 극복한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시자마자 물가폭등으로 인하여 서민층이 고난을 겪으면서 빈부의 격차가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었다.

 

급해진 이명박은 <동반성장위원회>를 결성하는 위선으로 연극을 꾸몄다. 하지만 사실은 내막적으로 고질적인 대재벌-대기업-대무역만을 살리는 정책을 위주로 하여 법인세 감세와 금산분리완화 등으로 부자들만을 위한 숨은 정책을 강화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에 자살자가 급증했는데 20세 이하청소년들을 포함하여 모두 2013년에 1492, 2014년에1450명이 자살을 했다.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현재의 견딜 수 없는 생활고와 미래에 대한 절망때문이라고 했다.  

 

이명박의 통치평가를 지면상 제한으로 불가불 악명높은 <4대강> 문제로만 한정 지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명박의 4대강 사건은 너무나 방대한 문제를 품고 있기때문에 필자는  오직 <세발의 피>정도로 중요한 몇가지의 요점을 요약해서 제목들만을 소개한다.

 

1). 4대강으로 인하여 홍수피해 위험, 멸종위기, 수질악화, 지역 문화재 파괴와 지역의 여러 다리와 제방의 유실의 위험으로 지역 농민들의 생존권에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2). 이명박의 숨겨진 한없는 욕망은 4대강사업을 빙자하여 <대운하 건설>을 꿈꾸 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은<국민적 합의> 없이 개인적 야망으로 위장한 사업을 추진한 것은 국가적 범죄행위이다.

 

3). 이병박이 애초에 밝힌 4대강 사업 예산액은 222천억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누가 이명박의 사기성 에산액을 믿었던가?  결론으로 4대강 사업은 50 조억원이 넘는 예산이 아나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다.

 

4). 이명박의 무리한 불법적 강제성 4대강 사업추진의 또 한가지 의혹은 4대강사업을 추진 담당하는 사업체 선정에 있어서의 의혹이다. 사업을 맡은 건설업자는 이명박의 출신학교인 <동지상업고등학교> 동문들이 유독 다수라는 의혹이 있다.

 

유력 대기업들에 의한 컨소시엄 선정과정에서 권력의 실세개입의 의심을 받고 있는 이명박에 대한 의혹은,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의 천황을 방문하여 그 앞에서 비굴하게 허리와 머리를 45도 굽혀 <사이게레>절을 했던 의심스러운 모습보다 오히려 더 큰 의혹을 4대강 사업강행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어쨋던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은 국토파괴, 졸속추진, 군대투입, 근로자들의 사망 등 허다한 문제들이 이명박 개인의 문제일뿐만이 아니라 그것은 국가와 민족문제 차원에서 논의와 해명이 마땅히 이루워 져야만할 중대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3.박근혜에게 노동은 신성하지 않다.

 

경향신문 2016 1 26일판에 2개의 기사가 주목된다.  세월호 피해 유가족을  돕는 <416연대> 조직속으로 정보원이 침투잠입하여 중요한 정보를 빼돌려 박근혜에게 보고는 물론이고 좋치 않은 여론을 사회에 확산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두번째 기사는  조선의 수소탄시험성공에 놀라자빠진 박근혜는  6자회담을 기피하고 조선을 빼돌린 <5자회담>을 제안하는 만용을 부렸는데 중국은 물론 미국도 반대하는 반응을 보임으로서 박근혜는 망신스럽게  됐다는 기사이다.

 

박근헤의 취임후 2년을 들여다 보면 <선거운동용>으로 난발했던 20개 공약들이 실현된것이 눈에 띄는것 없다.  선거때 마다 공약을 홍수처럼 쏟아 내고 실천한것은 쥐꼬리 만큼도 없는 것이 박근혜에게 있어서 오히려 정상이라고 말하 수 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 2013-2014년에 노동자가 노동하는 현장에서 분신자살한 수는  20이 넘는다.  일반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생활고로 인한 자살자는 해마다 수백 수천에 이르고 있는 것이 과거에도 그랬고 박근혜 정권하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으로9년전에 박근혜가 지금의 세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의 국회의원으로서 한나라당의 <전임대표>이였을때 한나라당 <연수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명칭이 <의원연수회>일뿐 내용은 집권말기에 처헤 있던 현직 노무현 대통령에 대 하여 집중공격을 하기위한 목적으로 집결한 깡패식 <성토대회>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참아 입에 담을 수없는 욕설과 험담-쌍소리들만을 열성적으로 쏟아내는 한나라당 <연수회>이었다 

 

<노가리, 육실할 놈, 술주정뱅이, 개잡놈, 불알 값도 못하는 놈, 거시기를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 등 온갓 원색적인 쌍소리 욕설들을 총동원하여 현직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퍼부었다.

 

박근혜 전임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접 욕설은 차마 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박수를 치고 파안대소를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마디 말을 남겨 놓았다.

 

< 노무현, 참 나쁜 대통령이다. 노무현 눈에는 권력밖에 안보이나?>

 

박근해가 여성인것이 참 다행이지 한나라당 당원들의 원색적인 욕설 쌍소리들을 만일 여성인 박근혜에게 해당시킨다면 이를 어찌할꼬?

 

그런데 어쨋던 박근혜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참 나쁜 대통령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박근혜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박근혜는  2015 12 28일에 일본으로 부터10억엔을 받고 정신대-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발표했다.  박근혜는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로부터 유전 으로 내려오는 그 아버지의 그 딸 이라는 <친일DNA>의 유전때문일가? 

 

박정희가 50년전에 일본에게 위안부 면제부를 발행해준 치욕적인 역사를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박근혜는 일본의 총리가 아니라 대신으로 외교장관이 읽어주는 극히 형식적인 일본의 사과문과 10억엔 받고  또 다시 박정희처럼 위안부 문제는 모두 다 해결됐다라고 그렇게도 쉽고 가볍게 발표를 했다.

 

박근혜는 아직도 치욕적 분노와 가슴에 멍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80-90세 나이의 가련한 할머니들의 가슴에 또 다시 일본식 잔인한 단검으로 난자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민족의 정의로운 이름으로 항의하고 규탄한다.

 

<박근혜는 정말 나라와 민족을 일본에게 팔아먹는 나쁜 대통령이다>

 

박근헤의 2013 -2015년에 <노동탄압> <노동개악>에 대하여 무엇이 문제인가를 살펴본다.

 

1). 박근혜는 2014 12월에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비정규직 6077, 000명 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가량이고 퇴직금, 상여금, 시간외수당 등 처우는 모든 분야에서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비정규직노동조합> 결성을 주장하기만 하면 박근혜 정권하에서는 그 누구던지 한 달 만에 해고를 당한다.

 

그럼으로 오늘 박근혜 정권하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이 소원이 아니라 차라리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명을 내대고 <분신자살>을 하면서 까지 <노동조합결성>을 목마르게 요구하는 이유를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통한 말 한미디로 가히 이해할 수 있다. 

 

<지난 5년동안 설 날에 쉰 적이 한 번밖에 없었다>

 

도데체 세계 어느 미개한 나라들에서도 첮아 볼 수없는 오직 대한민국에만 있는 악마적인 <비정규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학구적 논란과 찬반의 비판적 연구 논문들이 수백 수천 PAGE 가 있다. 하지만 여러 말이 필요없다.  형식적인 이론으로 이리저리 말바꾸기들을 하고 있을 뿐이다.

 

 <비정규직> 용어 자체가 시사하는바 그대로 노동자들이 응당 보장받아야할 권리를 대기업주들과 회사들이 박탈하는 행위에 대하여 불의한 박근혜정권이 무조건으로 무제한 보장해 주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의 실상이다.

 

한국이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으면서 <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를 주장하기만 하면 무조건 <좌경으로 정죄>하여 정권을 유지해 온 70년간의 전통이 그대로 박근혜 정권하에서 계속되면서 오히려 더욱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한국의 독재정권을 유지한는 최선의 방법은 <대기업보장-노동자탄압> 이 오직 변함없는 통치수단의 전통이 되고 있는 것이다.

 

2). 2016 112일에 대구에서 시민단체들이 구미에 있는 아사히글라스에서 부당하게 무더기로 집단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6개월간 투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장기적으로 투쟁하는 것을 불상히 여겨 격려하는 뜻으로 연대금 200만원을 전달했으며 또 역시 구미참여연대와 구미YMC도 각각 100만원식을 전달했다.

 

전태일 열사의 46주기를 기넘하는 뜻으로 6개월간 줄기차게 투쟁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격려하는 뜻 이었다.

 

왜 어찌하여 구미 아사히글라스에서 노동자 50명이 해고를 당했나?

 

그 이유는 아사히글라스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일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회사를 위하여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측은 하등의 보상이 없고 오직 저임금을 당연시하고 노동자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행태에 대하여 견디다 못해 쓰러지게 되었다

 

이에 분개한 노동자들은 적개심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회사내에서 <노동조합결성>을 할 수 밖에 딴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한 달 만에 해고 통보를 받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부당해고를 당한 50명은 원직복직을 요구하여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구미 아사히글라스 노조투쟁 사건은 하나의 작은 예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아시히글라스 처럼 <쉬운해고>는 한국의 유행병이 되여 번져나아가고 있다.

 

3). 삼성전자의 직업병 문제는 사회에 넓리 알려지지 않았으며 보이지도 않았으나 문제의 심각성은 대단하다.

 

2013년 초부터2015년 까지 3년동안 사회의 무관심속에서 진행된 삼성전자의 직업병 발생자는 280명으로 밝혀졌으며 이 가운데75명이 사망했다.  삼성전자의 직업백혈병, 림프종, 뇌종양 등 12가지 질환들이다.

 

문제는 삼성이 비밀유지에만 총력을 기우리고 있을뿐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문제에 대해서는 금액설정과 관련자료 밝히는데 있어서 극히 비밀이기 때문에 심지어 유가족들에게 비밀각서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을 대리하고 있는 반올림은 삼성의 불성실하고 독단적 행태에 항하여 삼성본사 앞에서 농성을 했다.  히지만 삼성의 위력이 한국에서 그 얼마나 큰지 언론에 일언반구도 보도를 하지못하고 봉쇄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의 생산수출이 세계적으로 한국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기때문에 박근혜는 삼성에서 노동자들의 직업병자가 2년사이에280명이나 발생하고 있지만 하등의 문제를 삼지않고 오직 삼성의 비밀유지만이 국가에 이익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4)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은 개악이며 재앙이다.

 

박근혜가 2015 10월에 제시한 이른바 노동정책개혁이라는 명칭하에 내놓은 것이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다.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를 앞세워서 마련한 노동정책은 사기성으로 가득차 있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초대량의 문건속을 깊이 파들어가 면밀히 분석해 보기만하면 비정규직을 축소하고 감소시키는 정책이 절대로 아니라 그 복잡한 문건들 속에는 오히려 비정규직을 얼마던지 양산하려는 못된정책이 갈피갈피마다 숨겨져 있는 위선적인 개혁정책인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박근혜가 주장하는 해고조건 중에는< 실적부진한 경우>에 해고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았다. 

 

그러면 무엇이 실적부진가?  진짜와 가짜를 분간할 수 없으며 오직 기업주 마음대 <미운놈찍어내기>위한 편법을 <비정규직종합대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박근혜의 잔인한 <임금피크제>라는것이 있다.  <임금피크제>란 처음 듣는 용어인데 도대채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의 나이가  늙어지면 일의 실적과 능력이 감소됨으로 임금을 줄이겠다는 것이 기업주들의 욕심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이러한 기업주들의 부당한 욕망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잔인한 노동법을 <고스텁>식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기업주들의 끝이 없는 돈욕심과 박근혜의 끝이 없는 정권욕이 서로 어울리고 상합하여 모두의 욕심을 법으로 보장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근혜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들의 동의같은 것 은 소용이 없고 오직 중소기업들의90% 가 비정규직으로 만족해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박근혜도 역시 무조건 만족해 하고 있는 것이다.

 

5).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2015 12 10일에 조계사에서 20일간 피신해 있다가 드디어 자진 출두하여 경찰에 체포됐다.

 

한상균 위원장은 민주노총 80만 회원을 대표하는 위원장이다. 그럼으로 한상균 위원장을 마구 체포하는것은 곧 80만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것을 뜻한다.

 

박근혜가 제아무리 한상균 위원장의 체포를 모르는척 하지만 한상균 위원장을 체 포한 숨은 이유는  4월에 열린 <세월호 추모집회><5 1일 노동절행사>에서 박근혜를 육박했기 때문에 623일에 이미 미리 체포영장을 발부해 놓은 것이다.

 

경찰이 한상균 위원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조계사 앞마당에서 성명서를 발표하여 말하기를 < 국민들은 박근혜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또 민심은 박근혜 정권에 대하여 어떻게 요동치고 있는지를 법정에서 분명히 밝힐것이다라고 주장했다.한것

 

그런데 경찰은 그동안 한상균 위원장에 대하여 체포할 이유를 조성하기 위하여 과거에  8차레 집회에서 도로점거한것, 해산명령 불복종, 5차레 폭력시위 등 얼토당토 아닌 지난 날의 먼지를 털면서 체포의 정당성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체포에 대하여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은 논평을 발표하여 <오늘 201512 10일은 이 땅의 권력과 자본이 2000만 노동자의 권리를 가둔 날로 기록될 것이다.  한상균 위원장은 개인이 아니라 이 땅의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대표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노동권을  강제로 가두었다>라고 논평했다.

 

각지역 대표 위원장들의 연대사를 종합하면 <박근혜가 주장하는 죄목 웃긴다>라 는 논평들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6). 박근혜는 민족-민중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정치가 절대로 아니라 오직 과거를 되씹는 <보복정치>로 지난 2년간의 정치행태를 노골적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

 

아마도 아버지 박정희와 또 어머니 육영수가 모두 다  총탄에 쓰러져 사망했기 때 문에 박근혜의 심리-정적으로 <복수심리>가 사무쳐 오르고 있는지도 모를일 이다.

 

어쨋던 우리 나라 역사에서 고금을 통하여 살펴보면 <보복정치>는 민족에게  불행의 연속을 초래하고 있을뿐이었다. 박근혜가 <보복정치>로 오늘의 불행을 또 다사 초래하고 있는데 대하여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여 크게 염려스럽다.

 

201335일에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지였던 이정회를 초청하지 않은 것은 집권 초기부터 <보복정치>를 가히 예측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이정희가 싫다해도 정치적 예의로 이정희를 보라는듯 정정당당하게 대통령 취임식 초청을 했더라면 국민들이 그 얼마나 박근혜에게 박수를 보냈겠는가?

 

뿐만아니라 박근혜의 취임후 2년을 회고해 보면 밝혀진 것이 최고의 <보복정치>로서 김재연을 국회에서 축출하고 이석기를 내란음모사건 조작하여 투옥하고 또 그것도 모자라서 진보당을 해산하여 공중분해시킨 것은 오직 박근혜의 그야말로 <보복정치>의 칼을 빼든 처사 이었다.

 

박근혜의 <보복정치>의 통치방법을 파악하려면 매우 간단히게 두 가지로 요약하면 된다.

 

첫째는 그 어떤 의혹이던지 박근혜에게 손해를 끼칠 야권에 속한 사건이라면 무조건 근본 뿌리까지 파헤쳐서 침소봉대히여 사회와 정치권에 큰 파문을 이르킨다.

 

둘째로 이와는 정반대로그 어떤 부패와 불법적 사건이 발견되여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할지라도 그 사건이 박근혜 정권과 도는  정권의 어떤 실세와 직접 또는 간접으로 라도 연관성이 있는 사건이라면  박근혜는 당장 수사를 중지하도록 지시하여  줄줄 흑막작전으로 연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그 사건에 대하여 맥이 빠지도록 유도하여 흐지부지 하도록 만들어 놓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의 <보복정치> 모든 것이다.

 

7).박근혜는 2016년 신년에 기자회견을 하여 자화자찬의 말잔치로서 해마다 년초 에 반복되는 알맹이 없는 뻔뻔한 기만성 헛다리를 짚는 기자회견을 또 다시 했다.

 

뻔한 사실은 대통령의 기자회견이라면 백보를 양보헤서 대통령이 가자회견을 시작하기 전에 서론으로 대통형이 미리 준비한 원고를 공개적으로 낭독하여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얼마던지 미리 할 수 있다. 말재간이 없으면 차라리 원고를 읽는 것 이 좋다. 

 

어쨋던 대통령의 발언이 끝난 후에 기자들은 <자발적>으로 또<즉흥적>으로 수십-수백가지의 질문들을 정해진 사간내에서 자유롭게 <대화식>으로 진행하느것이 이른바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한국의 대통령의 가자회견이 되어야 마땅 할것이다.

 

그런데 뻔할 뻔자로 금년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짜놓은 각본에 의하여 순서대로 질문을 했으며 또 박근혜 대통령은 미리 짜놓은 기자들에 질문에 대히여 매우 형식적인 자화자찬의 답변을 하는 기자회경이었다.

 

극히 상식적으로 2016년의 한국 대통령의 년초의 기자회견이러면 반드시 분명히<세월호 사건>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있어야 마땅하다.

 

또 박근혜의 <잃버린 7사간>에 대하여 정신이 똑바른 기자들이라면 반드시 질문을 했어야  마땅하다 

 

비록 눈가리고 아웅하는 극히 형식적이라 할지라도 <세월호질문>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질문등 2015년을 회고하는 기자회견이 되어야 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과 답변이 전혀 없는 신년 기자회견을 왜 어찌하여 또 다시 반복하고 있나?

 

그것은 박근혜 자가자신이 <나는 가짜 대통령아다>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누구나 다 생각하는 것은 진정으로 박근혜가 대롱령으로서 국민들로 부터 신임을 받기를 원한다면 박근혜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전에 제일 먼저 새월호 사건에 대하여 스스로 아떤 형태로라도, 심지어 핑계와 변명의 말이라도 먼저 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기대를 와전히 묵살한 것은 박근혜가 그 얼마나 언론들을 통제하고 강압적인 폭정을 하고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또 놀라운 것은 청와대 내부에서 박근혜의 년초 기자회견에 대하여 블평과 성토의 소리가 요란하다는 것이다. 김무성은 아예 묵묵 부답으로 고민스러워 했으며 어떤 의원들은 박근혜의 년초 기자회견의 실수 때문에 선거에도 지장이 있을 것을 미리부터 염려를 한다고했다.

 

어쨌던 박근혜의 신년 기자 회담 후에 새누리당 내부의 분위기는 온 종일 무거웠다고한다. 친박계 의원들 까지도 박근해의 신년 기자회견은 기대에 못미친 하나의 실패작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전해지고 있다.

 

이 글을 끝  맺으며,

 

박근혜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ㅍ업출된 박근혜의 주요 관심을 <안보와 경제>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문제의 해결방법은<비정규직>을 한국의 전체 노동력의 50% 이상으로 끌어 올려서 주요 대기업들의 이익을 증진보장해 줌으로서 국가경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 부자들의 이익을 보장해 줌으로서 국가경제의 안전을 보장 하겠다고 박근혜의 잔인성을 또 다시 표출시켰다.

 

그러면 안보는 어떻게하겠다는 건가?  박근혜는 조선의 수소탄시험성공에 당황하여 횡설수설하면서 미국의 <사드 도입>과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책임지라고 엉뚱한 정신나간 말을 했다.

 

박근혜의 정신나간 주장에 대하여< 중국은 북한의 목을 죄는 유엔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의에 절대로 반대한다> 라고 분명히 임이 밝혔으며 오히려 한국은 미국의 모든 요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를 했다.

 

그런데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이 급해서 중국을 지금 방문중 (2016 127) 에 있다.  New York Times의 기사에 의하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과 케리 미국무장관 사이에 회담이 진행됐는데 결과는 뻔한뻔자이다.

 

케리는 중국에게 야만적인 요구를 하여 <조선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원유제공을 중단하고 북한산 광물 수입도 중단하라>고 강요했다.

 

이에 대하여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멋대로 지껄이지 말라. 조선의 수소탄 보유는  순전히 미국때문이기 때문 미국은 성실하게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정확하게 말해 주었다.  참으로 멋있는 두 사람의 혈전이다.

 

지난 20년동안 의혹속에서 진전된 조선의 핵개발이 이제는 의혹의 장막이 제거되 <핵보유와 인공위성 그리고 수소탄 시험성공>이라고 하는 기적적 현실을 미국 과 전세계의 안목에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

 

미국이 군사강국인 조선과 평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유일힌 길은 조선의 막강한 군사력 뿐만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며 인류의 평화를 위주로 삶의 가치를 주장하고 있는 조선의 <인민정신>과 화해의 손을 서로 붙잡아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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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한석님의 댓글

한석 작성일

한국의 노동자들은 주인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입니다. 그 착취는 2,  3중의 착취입니다. 한국이 미국 식민지이기에 미국한테 뜯기고 한국 자본가들에게 뜯기는 2~3중 착취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불상한 대상들이 한국의 노동자들입니다.

패스워드님의 댓글

패스워드 작성일

3중착취로 고생하시는 한국노동자들이여!
그대들 고통 청산하는 길을
양키넘들 내쫒고 그 앞잡이들
타도하여야 합니다.

박근혜의 <노동개혁> 에 숨겨진 <노동개악>      노동자를 억압하는 <기업-정권-언론> 3위일체 재앙

학생님의 댓글

학생 작성일

선생님 결론 동감해요

미국이 군사강국인 조선과 평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유일힌 길은 조선의 막강한 군사력 뿐만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며 인류의 평화를 위주로 삶의 가치를 주장하고 있는 조선의 <인민정신>과 화해의 손을 서로 붙잡아야 한다.

해방둥이님의 댓글

해방둥이 작성일

윗글의 패스워드님!, 님이 이야기하신  "3중착취로 고생하시는 한국노동자들이여!
그대들 고통 청산하는 길을 양키넘들 내쫒고 그 앞잡이들 타도하여야 합니다."

에 대해 님이 이야기하시는 대로 소수의 가진자 권력자들 이외엔 우리 모두는 항상 착취받으며 살아왔지요.
그래서 남조선에서 우리같은 일반 대중이 겪고 있는 착취자들이 가해온 온갖 대표적인 만행과 망동에 대해서 논단에서 '유태영 박사님이' 자세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잘 말씀해 주셨쟎아요.
하지만 민족통신을 애독하는 우리들 이외에도 남조선의 착취를 받고 있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의 '유태영 박사님'의 글을 일고 이해할 수 있으면 남조선 사회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럼 우리가 함께 단결해서 착취와 피착취 , 억압과 굴종의 관계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청산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많은 남조선 민중들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사회에서 살게 된 원인, 그러한 사회가 만들어진 원인, 그러한 사회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통치배들의 지배의식을 파악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길러야지요.
남조선에는 계급적 모순을 우선적으로 극복해서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고, (속칭 PD파), 남조선의 그런 사회를 만들어 놓고 사회와 민중을 옳아메고 있는 실제적인 배후세력이라는 미제 양키놈들을 축출시키는 것이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통해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믿는 NL파가 있쟎아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땅에서는 통합진보당의 NL파가 해체되었쟎요.
하지만 반동역적인 남조선 정객인' 김영삼'이의  '닭의 목아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는 말은 우리에게 비록 반동 역적의 말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네요.
조선은 '강성대국'이 이미 되었답니다, 수소폭탄도 만들었고 그래서 적들은 '사드'니 뭐니에서 더더욱 발광을 떨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비록 발광은 떨지만 그만큼 제놈들에게 위기감이 더더욱 켜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간은 점점 '조선'의 편이고 그 뜻은 조선은 더더욱 강해지고 있고 반대로 적들은 점점 몰락하고있는것을 말합니다.
조선은 적들이 어땋게 발광하던 계속 앞으로 전진합니다.
그것이 다 누구를 위해서겠습니까?
그것은 단지 '북조선의 인민들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항상 착취받아 오고 있는 남조선의 다수서민대중을 위해서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기꺼이 감내하고 어떠한 고난과 장애도 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때가 되서'조선'이 땅에서 강점자들과  그 앞잡이들을  완전히 몰아낼 때 '유태영 박사님'이 언급하시는 조선의 '인민정신'이 무엇인지 대다수의 남조선의 민중들도 알게 될 것이며 왜 그토록 모든 '북조선의 민중들'의 자신들의 수령을  '어버이'로 여기고  '조선 노동당'을 자신들이 이익을 언제나 관철시키기 위해 묵묵히 나아가는 진정한 '민중의 힘'이라고 의지하고 함께 싸워가는지를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되면 더이상 계급적 분노는 수령과 당과 조국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으로써 행복이 넘치는 환희의 가슴으로 전변되어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인권유린님의 댓글

인권유린 작성일

미국 "북한 인권상황 여전히 개탄스러운 상태"

국무부 인권보고서…"한국, 국보법 해석 등 문제"

"중국 인권 상황 악화...인권 활동가ㆍ단체 협박"

(워싱턴=연합뉴스) 이승관 특파원 = 미국은 19일(현지시간) 북한 인권상황에 대해 여전히 최악의 상태라고 평가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발표한 '2012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은 여전히 개탄스럽다(deplorable)"면서 "탈북자들은 사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처형을 비롯해 실종, 임의적 감금, 정치범 체포, 고문 등을 지속적으로 보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인권실태 평가는 지난 2009년 '열악하다'(poor)를 시작으로 2010년과 2011년 각각 '개탄스럽다', '암울하다'(grim)에 이어 지난해는 '매우 열악하다'(extremely poor)로 표현이 바뀌었지만 그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보고서에서 동아시아ㆍ태평양 지역 국가 가운데서는 북한과 함께 중국과 베트남 등이 '문제 국가'로 지목됐다. 중국과 베트남은 "2012년에 인권상황이 악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고서는 북한 인권상황에 대한 총평에서 "북한은 60년 이상 김씨 일가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독재국가"라면서 "김정은이 지난해 7월 17일 공화국 원수 칭호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또 "가장 최근에 실시된 2009년 3월 선거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면서 "주민들에게는 정부를 교체할 권리가 없으며, 정부는 주민들의 모든 삶의 영역을 확고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운동도 보장하지 않으며 생명을 위협하는 정치범 수용소가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일부 송환된 탈북자와 그 가족들이 중형에 처해지고 북ㆍ중 국경지역에서는 여성 인신매매가 이뤄진다는 보고도 있다"면서 "그러나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관리에 대한 당국의 처벌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고서는 한국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로 평가했으나 국가보안법에 대한 해석 논란을 또다시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주요한 인권문제는 국보법에 대한 정부의 해석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 인터넷 접근 제한, 양심적 군복무 거부자에 대한 처벌 등"이라고 밝혔다.

또 일부 관료들의 부패, 성폭력과 가정폭력, 미성년 성매매, 인신매매 등과 함께 탈북자와 소수 인종, 동성애자, 에이즈 감염자 등에 대한 사회적 차별, 노동권 제한 등도 지적했다.

한편 미국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취약 부문인 인권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다.

보고서는 중국에서 인권 개선과 공익을 주장하는 인사와 단체들은 박해와 협박을 받고 있다면서 당국이 정치적으로 민감하다고 분류한 인사와 단체는 집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 여행 등에서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중국 당국은 민주화와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변호사들에 대해서도 법외의 수단으로 압력을 행사해 의사 표현을 막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실종, 연금, 변호사 허가 취소, 변호사 사무실 폐쇄 등 법외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는 점도 적시됐다.

또 분리 독립과 자치를 요구하는 신장(新疆)자치구와 티베트(중국명 시짱<西藏>)에선 현지 민족인 위구르족과 짱족의 언론 자유, 종교 자유, 집회의 자유, 행동의 자유 등이 크게 제약되고 있다고 지적됐다.

보고서는 중국 인권은 법외 수단을 동원한 살인,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는 사형 집행, 강제 실종, 임의 구속과 인권 의식이 있는 변호사, 작가, 기자,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각종 압력 등으로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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