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원섭 수필]"왜 5살부터 반미자가 되었는가?" > 기타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4월 19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기타

[림원섭 수필]"왜 5살부터 반미자가 되었는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5-12-07 15:32 조회7,744회 댓글5건

본문

스웨덴 거주동포 림원섭 선생(필명 다물흙)은 민족통신 기고한  "나는 어떻게 해서 5살부터 철저한 반미자가 되었는가?"라는 제목의 수필을 보내면서 어릴때부터 구체적인 체험담을 통해 자신과 그의 어머니가 미국인들에 의한 구타로 모욕을 느꼈던 일 등을 돌이켜 보며 미국인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감을 갖게 되었다고 회상하는 글을 썼다. 그의 수필을 여기에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나는 어떻게 해서 5살부터 철저한 반미자가 되였는가?"


 림원섭(스웨덴 동포, 다물흙) 

림원섭01.jpg




그때가 아마 1948 가을 날로 기억이 생생하다고구마를 가마니로 가득히 케왔을 때였으니 말이다 전북 김제감곡 사이 평야에서  농사지며 먹고 사는 농사꾼 집안에서 태여낳다

이때 이상하게 생긴 키큰 미양키놈이 통역관을 대동하고 강제로 보리 등등 샅샅이 뒤져 글거  때다.  쇠꼬챙이를 들고 다니며 어디고 푹푹 쑤시며장둑에 된장간장고추장,  김치 단지 뚜껑들을 모두 열어보며 곡식을찾는데 헐안이되였었다이들에게 무슨 민주주의가 있었고 인권이 있었겠는가!

이것을 보고 강제 공출이라고 했는데 이때 우리 할머니는 왜놈들 못지 않는 악질 양키놈들이라고 했었고 우리 아버지는 우리나라가 왜놈들이 미양키 식민지로 인수인계되였다고 하셨었다.  이때 우리 동내 사람들은  굶어 죽어갈 때다그때는 된장까지도 없는 자들은 얼굴이 퉁퉁부어  독으로  죽어갈 때다그런데 어떻게 우리 3형제가 살았는가!  참으로 신기하다

우리 부모님은 장둑 밑을 깊게   속에 곡식들을 숨겨놓고 그위에 된장간장고추장 단지를 올려 놓고 우릴 먹여 살렸다고 하셨다.   이틀에 한번씩  무거운  된장고추장 단지를 들어 옮겨 곡식을  올리는데 아버님께서언제나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12년만에 만나 큰절하던  불초 장남 자식인 나에게 1984 314일에 어머니의 절절한 말씀이였다

이때 내가 19809월에 북녘에 태권도 소개 시범차 북에 갔다 오고  19831-6월까지  태권도를 가르치고 왔더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 목사놈까지도 빨갱이로  매도를 할때였다그런데 나의 어머님은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했으니 장하다고 하시며 어머님만은  편이였다지금은  보고 빨갱이라고 어느 누구가 말하면 감사하다고 하지만 그때는 빨갱이라는 말이 참으로 싫었었다.    어머님의 사랑에 그간 고였던 눈물을  쏟았다.  

 글을 계속해서 우리집에  남의 집에 주인 허락도 없이 강제로  침략으로 들어온 날강도  악마들은 솥에 죽을 끓이고 있는 것을 마당으로  팽게치며 쌀을 내놔라고 – 공갈 협박질로 냅다 고함을 치니 어머니는 미국놈 앞에가서 당당히 쌀이 없다고 하니 통역으로 들어 온  미국 놈은 우리 어머니를 냅다 발로 차니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내가 어머니한테 뛰어 가서 악을 쓰며 울었다그때  악마 미양키놈은 어린 나까지도 발로 찻다

그후  기억이 전혀 없지만 한참후 일어나 보니  놈들은 없었다.  그러나 키가   미국 백인놈이 검은 장갑을 끼고 밀죽 검은 솥단지를 마당에  팽게치고  미국놈이  어머니를 발로 냅다 차고 내가 어머니 한테까서 울 기억이 지금까지도 신기하게도 아주 생생하다그후부터 이상하게 생긴 미국 백인이라면  무조건 미워 저주하게 되였다

그후 몇년이 지나고 – 왜놈들이 김제평야에  농사를 잘지어 퍼가기 위해서 정읍군 칠보 발전소 은한강 수리조합이라고 물길을  만들어 놓은  물길 언덕을 걸으며 그때가 마침 봄이라 삐비를 뽑으며 교회를 가던  갑짜기우리 바로 옆에     –    B-29 미양키 비행기는  우리에게 계속 사격을  했었다.

어느 누구가 시키지 않은 행동으로 아니 훈련이 잘된 병사들 처럼 우리 어린 형제는 즉시  언덕   바닥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그래서 우린 구상일생으로 살았다.  그때가 아마 내가  8 되던 해로 기억을 하니까 1951 어느   5  동생 손을 잡고 교회를 가던  일어난 소설 같은 이야기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그후 세월은 한참   - 내가 커서 군대에  공수부대에 근무를   매년 가을로 미군들과 독수리 합동 훈련을  때면  미군들을 두둘겨 패는데 제일이였다.  그때 나의 중대장은 우릴 도우려  미군들을 폭행했다고 날 빠따를 쳤다 중대장이 미워 술을 잔뜩 먹고   중대장을  폭행을 했었다 후로 술이 취해서 전혀 기억이 없다는  상관 폭행죄로  자체부대 구치소에서 몇개월 생활도했던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여기에  본다.

그래서 나는 5살되던 해부터 키큰 미양키라면 저주하며  세월이 어연 70년이 되었는가 보다.  



4348(2015)
1206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민족통신 대단히 감사합니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다물흙선생님의 칼럼 글 저도 잘보고 있습니다~!!!! *^^*****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으음음님의 댓글

으음음 작성일

미군도 사람인데 미군 이라는 이유 만으로 사람을 두들겨 팼다는 것을 자랑 하는 것 자체가 ISIS 테러 단체들이 무고한 시민들에게 미국 사람 이라는 이유만으로 총질을 하거나 인질들을 참수 하거나 북한 김일성 - 김정일이 87 년도에 무고한 노동자들이 탄 민간 대한 항공기를 폭파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 님이 5 살떄 부터 반미주의자가 되었다 할 지라도 다물흙이 미국이나 한국을 좌지 우지 할 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인물 인가요 ?

대학원생님의 댓글

대학원생 작성일

다물흙 선생님 글 정곡 찔렀습니다.
우리민족이 반미감정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니다.
미군두둔이나 미국두둔만 내세우는 것은 친미사대주의에 찌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조선은 미국 식민지님의 댓글

남조선은 미국 식민지 작성일

남북이 화해하고 통일의 길로 나가기 위한 새로운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소위 대한민국이라는 것은 일제의 왜놈들이 미제 양키놈들에게 항복하면서 그 댓가로 남조선을 인수인계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