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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19]북 가요해설: 계몽기가요에 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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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5-11-12 14:26 조회5,485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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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준무 지휘자겸 단장(뉴욕 우륵교향악단)은 민족통신에 119번째 기고한 북녘 음악에 대한 글-'계몽기 가요에 대하여'를 통해  "1920년대부터 해방이 될 무렵까지 이어진 문화의 암흑기에도우리 창작가들은 초야에 묻혀 민중이 당하는 슬픔과 수모를 노래로 승화시켜 보급함으로써 잃어버릴뻔 했던 우리문화의 명맥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였다이때 불려지던 가요들은 대부분 암울하고 체념적이었지만 조선팔경가, 조선타령, 조선찬가》 등은 조선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내걸고 민족의 혼을 깨우쳐주는 희망적인 노래들이었다."고 설명하며 북녘 계몽기 가요에 대하여 해설한다.[민족통신 편집실]


*계몽가요 몇가지 소개-동영상

https://youtu.be/CLzrkdPeoDw





[연재-119]북 가요해설: 계몽기가요에 대하여 (1)


*글:리준무(뉴욕 우륵교향악단 지휘자겸 단장)


 


“계몽기가요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이다”

 

예술분야에서도 정치, 군사분야 못지않게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계몽기가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였다. 우리민족이 역사적으로 이룩해 놓은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살려나가는 것은 우리당의 시종일관한 문예정책의 하나 입니다

 

김정일로동당총비서는 2007 3 20일과 31일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문학예술부문 책임일군들을 소집한 자리에서“계몽기가요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이다”라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김위원장은 계몽기가요를 덮어놓고 무시해버리는 편협한 태도를 보이는 일부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민족이 창조한 문화유산을 주체성도, 민족성도 없이 대하는 허무주의적 처사라고 힐난하게 비판하였다.

 

우리는 여기서계몽기가요가 민족음악유산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한 그분의 견해를 살펴가며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남녘에서는 계몽기가요를‘흘러간 노래’라고 하여 그 역사적 가치에 무게를 두지 않고 오히려 퇴폐적인 유행가로 치부해 버리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자료를 보면 이북에서도 계몽기가요에 대한 시선은 그렇게 너그럽지는 못했던 것같다.

 

1920년대부터 해방이 될 무렵까지 이어진 문화의 암흑기에도, 우리 창작가들은 초야에 묻혀 민중이 당하는 슬픔과 수모를 노래로 승화시켜 보급함으로써 잃어버릴뻔 했던 우리문화의 명맥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때 불려지던 가요들은 대부분 암울하고 체념적이었지만 조선팔경가, 조선타령, 조선찬가》 등은 조선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내걸고 민족의 혼을 깨우쳐주는 희망적인 노래들이었다.

 

계몽기가요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져야 한다

 

김정일위원장은 계몽기가요를 어떻게 이해하고 취급하는가 하는 것은 민족문화유산 계승과 관련되는 심중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이문제를 시대적 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한때 일부사람들이 항일혁명가요만을 정통가요로 인정하고, 일제통치시기에 나온 계몽기가요는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좌경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문제를 보고받은 김일성주석은 계몽기가요도 당연히 우리문화의 하나로 인정하고 잘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교시하였다.

 

항일투쟁시기에는 주석님이 직접 창작한꽃파는 처녀, 조선의 노래, 사향가 반일전가, 조국광복회 10대강령가 등 창작가요와 조선의 별같이 혁명투사들이 직접 가사를 쓰고 작곡한 노래들도 있었지만 혁명투사들의 노래에 대한 숫적인 욕구를 채워주지는 못하였다.

 

김일성주석은 혁명가요란 응당 혁명을 추동하는 주체들이 직접 창작하여 불러야 옳겠지만 매일 전장을 누비며 강행군을 이어가던 유격대에 전문적인 작곡가가 있을리 만무하였다. 때문에 다른 나라의 민요나 명곡에 혁명적인 가사를 붙여 군가로 부르기도 하였다고 회고하면서 유격대가 부르던 노래들 중에는메데가라는 노래도 있었는데 이 노래도실상은 일본사람들이 부르던 노래를 개조한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주석님은 다른나라의 노래일지라도 유격대가 창작한 가사를 붙여 부르게 되었다면 이것은 조선의 혁명가요로 되는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항일 유격대원들은 이것을 혁명적 음악예술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또한 주체적 음악예술의 시원이라고 믿었다. 뿐만아니라 조선의 음악역사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역사적 뿌리라고 주장하였다.

 

양심적인 문예인들은 식민지치하의 엄중한 시기에도 민족음악을 지키고 반일사상으로 각성시키기 위하여 직접 작사하고 작곡을 하였는데, 이렇게 힘들여 내놓은 계몽기가요를 절대로 소홀히 대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주의를 환기시키었다. 창작가들은 계몽기가요의 가사내용에 당시 민중들의 생활감정과 염원을 사실적으로 반영함으로써 근로대중의 반일애국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크게 기여를 하였다.

 

 계몽기가요는 무엇을 노래 하였나

 

계몽기가요들은 보고싶은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과 두고 온 고향산천 그리고 어릴때 뛰놀던 고향동무들에 대한 감정을 뜨겁게 노래하였는데, 모두다 나라잃은 설움과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고야 말겠다는 철석같은 각오와 불타는 감정을 은유적으로 비유한 것들 이었다. 고향의 봄, 고향하늘, 찔레꽃, 타향살이와 같은 노래들이 이 시기에 나온 대표작들이다.

 

황성옛터》는 허물어진 고려왕조에 비추어 망국에 대한 설움과 조국애를 노래 하였는데 이노래가 창작되던 1920년대 말, 무대위에 선 가수도 울고 청중들도 울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날 공연장에서 노래를 듣고 있던 청중들은 참았던 울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의자를 집어던지고 부수는 소동까지 벌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노래는 반일의 불씨를 지펴,애국적인 투쟁으로 민중을 묶어세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계몽기 가요들에는 조국해방에 대한 염원과 확신을 담은 노래들도 많았다. 봉선화, 눈물젖은 두만강은 나라잃은 민족의 설움과 함께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을 절절하게 표현한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봉선화는 새세상을 갈망하는 민중의 강렬한 희망을 표현했다면 눈물젖은 두만강은 해방전 우리민족의 비통한 생활상을 통하여 조국해방에 대한 민중들의 강렬한 염원을 노래한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눈물젖은 두만강을 사랑하며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나는눈물젖은 두만강》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내가 두만강을 사랑하게 된 것은 두만강이 나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만강은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혁명투쟁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뜻깊은 강이며 우리 어머님께서 어리신 나이에 부모님들을 따라 망국노의 피눈물을 뿌리며 건느신 강입니다라고 하였다. 두만강 기슭에는 조국땅을 넘나들며 민중을 반일의 투쟁대열에 힘있게 불러 일으키신 어머님의 혁명활동자욱이 새겨져 있다고 뜨겁게 추억하였다

 

아시다시피《눈물젖은 두만강》은 이남에서 뿐만이 아니라 북과 해외동포들 속에서도 많이 불려지는 노래이다. 일본에 사는 김연자가수와 재중동포 최경호가4월의봄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여 호소력 있고 특색있는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서, 평양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는데 그때 청중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매우 열광적이었다. “그리운 내님이여, 그리운 내님이여!”라고 부르며 몸부림치는 가수의 열창! 혼신의 정렬을 쏟아부으며 부른 이 노래가 과연 남녀간의 사랑만을 노래한 것 이었겠는가?

 

눈물젖은 두만강》을 부르며 방황하던 민중에게도 꿈이 있었다. 그것은 잔악한 일제를때려부시고 도탄에 빠진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기 위해 혜성처럼 나타날 위인을 맞이하는 그런꿈 말이다. 김정일위원장은 김일성주석탄생90돐과 조선인민군창건70돐을 맞으며 기획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 《눈물젖은 두만강》을 집어넣어 관람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그리운 강남》과 《반달》과 같은 동요는 착취와 압박이 없는 세계를 그리는 노래로 어른들 사이에서도 애창이 되었고, 《감격시대》 와 《낙화유수》도  항일무장투쟁에서 조국해방에 대한 확신이 넘쳐흐르던 시대상을 잘 표현한 노래들이다.1919 3. 1 민중봉기가 좌절된 후 우리민족에 대한 일제의 핍박은 더욱 악랄해져만 갔다. 이런 악랄한 탄압을 피해 많은 독립투사들은 어쩔수 없이 조국을 하직하게 되였는데, 그때의 참담한 심정을압록강의 노래》에 담아 부르며, 아픈 마음을 달랬었다고 한다.

 

김일성주석은 그의 회고록에서사람이 한생을 살아가노라면 별의별 일을 다 겪기마련이지만, 그 어떤 슬픔도 나라를 잃은 망국노가 되어 조국을 하직할 때의 슬픔에는 견주지 못한다고 하며, 자신도 그 당시에 누군가가 지은압록강의 노래를 부르며,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기 전에는, 절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며 강을 건넜다고 한다.

 

레코드의 출현으로 발전했던 신민요

 

 이시기의 창작가들은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민족의 넋과 애국심을 심어줄수 있는동요들을 많이 창작하였으며, 한편으로는 민중들의 시대적 미감에 맞는 대중가요를 다양하게 발전시켜 나갔다. 창작가들은 자기들이 만들어 낸노들강변과 같은 민요형식의 가요들을 많이 창작하였는데, 이들 노래들을 후에 신민요혹은 유행가라고 하였다.

이 시기에 창작된 인기가요들은 레코드판에 취입되어 팔려나가게 되었는데 총체적으로 볼때, 계몽기가요는 민족적 특성과 대중의 인기도가 서로 밀접한 결합하여 나감으로써 대중예술의 면모를 갖춰 나갈수 있게 되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유행가라는 말은 절대 나쁜말이 아니며 말 그대로 사람들 속에 널리 유행되어 불려지는 노래라는 것이다. 유행가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레코드를 통하여 노래가 사람들속에 널리 보급 되면서부터 라고 하는데, 이시기에 창작된 노래들은 레코드산업의 발전과 함께 속도있게 보급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중들의 시대적인 요구를 잘 반영시킨 노래를 만들어낸 창작가들이 없었다면 아무리 레코드산업이 발달되었다 하더라도 속도 있는 노래보급이 가능 했겠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이렇게 태어난 계몽기가요는, 우리 창작가들의 숨은 노력에 힘입어 해방후에도 꾸준하게 발전할 수 있었으며 또한 대중예술의 중요한 밑천으로 자리매김할 수가 있었다.

 

김정일위원장은 좋은 노래는 빨리 유행하며 사람들의 머리속에 오래 남아있게 된다고하며 퇴폐적인 유행가와 계몽기가요를 명확하게 구분해 주었다. 한때는 유행가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기도 했었다고 하였다.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은, 당시 일부 사람들이 일제의 비호밑에 민중들의 사상감정을 왜곡하고, 모독하는 퇴폐적인 노래들을 많이 만들어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저질 노래들이 유행가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범람했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사대주의에 예속문화에 물들지 않고 나라의 주인으로 떳떳이 살아갈 수있게 민족의식이 투철한 주체예술을 확립해 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빛나는 업적에 다시한번 경의를 드리게 된다.



 

 

  

 *북조선의 실체를 알면 남북관계도 풀리고 평화도 오고, 통일도 이룩될 것입니다.(아래 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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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남북관계님의 댓글

남북관계 작성일

주체104(2015)년 11월 12일 《우리 민족끼리》
 

진정성을 가늠하는 자대로 될것이다

 

최근 남조선당국자들이 북남당국사이의 《대화》와 《접촉》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 많이 말하고있다. 하지만 실지로는 상대방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소동에 열을 올려대고있다.
얼마전 미국과 남조선당국사이에 진행된 제40차 《군사위원회 회의》와 제47차 《년례안보협의회》에서 남조선호전광들은 상전과 그 무슨 《련합방위태세강화방안》이니, 그 누구의 《침략》이니, 《도발》이니 하면서 《동맹의 포괄적 미싸일대응작전개념 및 원칙의 리행지침》과 《전시작전통제권전환계획》을 기본핵으로 하는 《공동성명》이라는것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남조선당국이 《대화》의 막뒤에서 대화흐름을 차단하고 동족을 해치기 위한 북침전쟁을 도발하려 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지난 8월 일촉즉발의 위기를 가까스로 털어버린 후에도 여전히 살얼음장우를 걷고있는 현 북남관계에 있어서 남조선당국이 미국과 함께 《북의 핵, 미싸일위협》을 운운하며 우리 공화국을 무력으로 해칠 위험천만한 전쟁모의판을 벌려놓은것은 북남사이에 불신과 반목을 조장격화시키고 조선반도에 핵전쟁위험을 몰아오는 용납 못할 반민족적망동이 아닐수 없다.
 더우기 이번 쑥덕공론을 통해 미국과 남조선군부호전광들은 북침전쟁을 위한 새로운 《작전계획》완성의 길에 더욱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되였다.
 《4D작전개념》을 《작전계획-5015》에 반영하기로한것을 놓고도 그렇게 말할수 있다. 폭로된바와 같이 《4D작전개념》이란 핵과 생화학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싸일을 《탐지》, 《방어》, 《교란》, 《파괴》한다는것으로서 새로운 북침선제타격각본이 얼마나 구체화되고있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준다.
지난 4월에 있은 제7차 《통합국방협의체》 회의에서 남조선군부는 미국과 함께 《4D작전개념》을 보다 구체화하여 《작전계획》으로 완성시키기로 하였다. 그에 따라 이번의 《년례안보협의회》에서 《4D작전개념》을 《작전계획-5015》에 반영하여 앞으로의 합동군사연습들에 적용하기로 하였다.
《작전계획-5015》는 그 누구의 《급변사태》에 대비한다는 《작전계획-5029》, 북침전면전을 가상한 《작전계획-5027》, 우리의 전략적대상들에 대한 공중타격을 위주로 한 국지전계획인 《작전계획-5026》 등을 통합한것으로서 《북의 핵, 미싸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공격적제거》를 위주로 하고있다. 여기에 《4D작전개념》까지 반영된다면 《작전계획-5015》는 그 실행수단과 수행방식에 있어서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극히 도발적인 침략전쟁각본으로 되게 된다. 남조선당국이 있지도 않는 《북의 핵, 미싸일위협》을 턱대고 미국과 공모결탁하여 우리 공화국에 대한 모험적인 선제공격계획을 추진하고있다는것이 이제는 더없이 명백해졌다.
이것이 바로 매일같이 《대화》를 운운하는 남조선당국의 실지 행동이다. 
남조선당국에 과연 진정으로 북남대화를 바라고있는가에 대해  묻지 않을수 없다.
지금 내외여론은 조선반도에 모처럼 조성된 관계개선분위기가 더욱 고조되기를 바라고있다. 하지만 남조선당국이 지금처럼 외세와 함께 우리와 군사적으로 계속 대결하는데로 나간다면 북남관계개선분위기는 파괴되고 파국적인 후과를 가져올수 있다.
 상대방을 반대하는 전쟁연습이 벌어지는 살벌한 분위기속에서 신의있는 대화가 이루어질수 없고 북남관계가 전진할수 없다는것은 이미 지나온 북남관계사가 뚜렷이 실증해주고있다.
우리는 《대화》의 막뒤에서 감행되고있는 남조선당국의 전쟁도발책동을 예리하게 주시하고있다.
남조선당국이 진정으로 북남관계를 개선할 생각이 있다면 말로만 《대화》를 떠들지 말고 외세와 함께 벌려대는 북침전쟁연습소동부터 중단하고 관계개선의 분위기부터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것이다.
 그것만이 남조선당국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자대로 될것이다.
 
  본사기자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북녘가수들이 부르는 계몽기가요 저도 예전에 가끔 들어본적이 있었는데요? 진짜 울 남녘의 젊은가수들은 이런노래 절대로 못불러요~!!!! ㅡㅡ;;;;;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하기야 유럽권의 젊은이들도 북녘의 계몽기가요를 알기라도 할까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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