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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63]강산 방북기-금수산태양궁전과 김주석 본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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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5-10-03 06:51 조회6,16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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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동포 강산 선생은 4반세기 전인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축전 행사참가로  북부조국을 방문한 이후 지난 해인 2014년 9월에 민족통신 노길남 대표와 함께 다시찿은 북녘 땅에서 보고 듣고 느낀 소감들을 70회 연재로 방문기를 썼다. 그는 이 중 63번째 방문기에서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을 뵌 추억을 담았다.[민족통신 편집실]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63


금수산태양궁전과 김 주석을 뵌 추억


*글: 강산(시애틀 동포)


추석 다음날인 9월 9일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창건 66돌이 되는 명절이었다.  오늘은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하게 되는 날이다.   정장을 하고 우리를 태우러 온 버스를 타고 제법 한참 동안 시가지 외곽으로 달린다.  어제 비온 후 햇살이 찬란한 가을날이라 거리는 더욱 깨끗하고 여기저기 공화국 창건일에 맞춰서 내건 깃발이 힘찬 구호들과 함께 펄럭이는 것이 인상적이다.







공화국창건 66돌인 9월 9일 낮의 거리 풍경



안내원이 오늘은 사진기와 필기도구 등 아무 것도 소지하지 않고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해야 한다고 말해주었고 따로 건물 자체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가 금수산태양궁전에 대해서는 방문한 지 한참이나 지난 후인 지금 자세하게 묘사할 방법이 없다.  이곳이 얼마나 크고 넓으며 화려하게 지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공개된 여러 자료들이 많으니 궁금한 독자들은 인터넷에서 자세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금수산태양궁전.  내가 카메라를 소지하지 못하여 찍을 수 없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을 모셔둔 곳으로 ‘주체의 최고성지’라 불리어진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여 건물 한켠으로 들어가니 이미 전국각지에서 이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늘어서있다.  일부는 걷고 일부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길과 에스컬레이트 등으로 연결되는데 끝이 없어보일 만큼 기나긴 복도를 따라 김 주석의 삶의 역사가  사진과 유품들과 함께 잘 정리되어져 있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아주 엄숙한 분위기여서 안내원이 목소리를 내어서 설명을 해줄 그런 장소가 아니다.  방문객 스스로가 복도를 지나면서 북부조국 지도자의 삶에 대하여 이곳에 전시되고 진열된 수많은 사진과 자료들을 통하여 가슴 깊이 되새겨보면서 추모하는 공간이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의 모습으로 넓은 방 가운데에 모셔져 있었다.  장중한 음악이 나즈막하게 울려나오고  부동자세로 호위병이 지켜선 곳이다.  다섯 명씩 함께 나란히 서서 머리 숙여 추모를 하고는 잘 보존된 시신 주위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서 나온다.  


이제 방을 나오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시신이 모셔진 곳으로 향하게 된다.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을 모신 곳도 비슷하게 참배하도록 되어 있다.  복도와 넓은 방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삶과 그 업적이 사진과 유품들로 잘 정리되어 있다.  인민을 위하여 지방을 순시하다 순직하게 되었던 열차도 여기에 준비해두어서 그 집무실 내부를 살펴볼 수 있게 해두었다.  열차를 살펴보던 인민들이 애써 울음을 참고 속으로 흐느끼는 숨결이 내 귀를 스친다.  북부조국 인민들 가운데 일상의 담담한 마음으로 조국의 두 지도자를 모신 곳을 찾는 사람이 있을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누구나 속으로 깊이 애도하고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이곳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을 수밖에 없으리라.  


내가 김정일 위원장을 생전에 뵐 기회는 없었지만 김일성 주석은 평양축전으로 25년 전에 북부조국을 찾았다가 가까운 곳에서 뵐 기회가 있었다.   내가 함께했던 미주지역에서 참석했던 동포들 백여 명과 함께 정장을 하고 김일성 주석을 뵙게 되는구나하는 짐작만 하고는 이동하여 당시의 이곳 금수산의사당으로 기억하는 어떤 거대한 실내의 계단식으로 되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된 곳에서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는데 오른편 복도에서 김 주석이 입장을 하였다.  그때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소련에서 평양축전에 초대를 받고 참석했던 수백 명의 동포들도 우리 왼 편에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가 김 주석이 입장할 때 박수로 환영한 것과는 달리 그들은 온 건물이 떠나가도록 만세~ 만세~ 만세~하고 외치면서 열렬히 환영하는 것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우리 미주동포들은 북을 처음 방문하였지만 이미 여러 차례 북을 방문하면서 교류하고 있던 원로들까지도 저 중국과 소련에서 온 동포들의 열렬한 환호에 비하여 너무도 대조적일 정도로 아무도 만세를 외치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도 내 기억에 뚜렸하다.  그 이유를 살아오면서 내가 종종 생각해보았는데 물론 김 주석의 항일혁명과 해방이후의 인민을 위한 북부조국의 사회주의 건설에 대하여 깊고 올바른 인식을 갖지 못하였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미주 동포들 모두가 남부조국에서 받았던 반공교육의 영향이 워낙 강하였기 때문이라는 결론이었다.  




89년 세계청년축전인 평양행사때의 필자와 함께하였던 미주동포들



남부조국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른다는 것은 바로 감옥행이고, 여차하면 목숨까지 내놓게 되는 커다란 사건이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잠재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상황에서 몇몇 사람들이 설혹 북부조국에서 김 주석을 뵙게 될 때 이곳의 모든 인민들이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그대로 발산하여 우레와 같은 만세를 부르며 환영하는 것처럼 똑같이 행동하고 싶었다하더라해도 나머지 미주동포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자제하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반공교육으로 깊이 세뇌되었다 깨어난 우리들은 용기를 내어 북부조국을 찾기까지는 하였지만, 절세의 애국자 김일성장군을 만나뵙게 되는, 대부분이 평생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기회를 갖게 되면서도  입으로는 만세를 외치지 못하고 그저 박수만으로 김 주석을 뵙게 되었던 것이다.  


김 주석은 줄지어 선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며 바라보신 후 미주동포 전체의 대표로 꽃다발을 드리도록 하였던 어떤 동포 여성과 악수를 나누신 후 우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셨다.  사진촬영 후 손을 들어 우리와 작별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동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면서 다시 만세~ 소리가 온 건물을 진동하는 가운데 김 주석은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열렬한 중국과 소련 동포들의 환호와는 너무도 비교되는 남한 출신인 우리들 모두의 환영 방식을 그분은 이미 이해하고 계셨으리라.  비록 북부조국 모든 인민들과 다른 해외 동포 대표단들과 달리 단 한 사람도 만세를 외치지 못하였지만 우리들 대부분이 남부조국에서 그런 지독한 반공교육과 보안법의 영향을 받고서도 통일을 염원하며 북부조국을 찾아왔다는 것 하나만 보고는 우리 미주동포들을 깊이 이해하고 마음속으로부터 따스하게 맞아주셨으리라 나는 믿는다.


금수산태양궁전 방문을 모두 마치고 긴 복도를 통하여 다시 밖으로 나올 때쯤에서야 안내원이 말문을 연다.  이곳 금수산태양궁전의 내부를 방문할 때 금속탐지기를 거치고 세찬 바람으로 먼지와 세균을 털어내고 들어가는 것과 달리 이곳 광장과 주변은 공원으로 개방되어 있어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러 찾는 곳이라고 한다.  살펴보니 광장은 수십만 군중이 집회를 할 수 있을 만큼 넓고 건물 주변은 조경이 잘 되어 있다.  



금수산태양궁전 광장공원.  인터넷 자료에서


내가 이곳 대공원을 온 인민들에게 개방한 이유를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조국과 인민을 깊이 사랑하였던 두 지도자도 시민들이 편안하게 찾아와 이곳을 공원으로 이용하는 것을 원하였으리라.  두 지도자가 잠든 곳 부근이 삼엄한 경계로 사람들이 가까이 가는 것이 차단되거나 너무 한적하여 쓸쓸하지 않고, 평양시민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찾아와 휴식하면서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며 두 지도자를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돌아가신 후에도 두 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그치지 않는 수많은 인민들이 서거한 두 지도자가 잠든 곳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려하는 마음을 당에서 읽고 배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도자의 깊은 사랑을 받는 북부조국의 인민들은 행복하다고 말하듯이 이렇게 서거한 후에도 인민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두 지도자 또한 행복하리라.


한편 북부조국 두 지도자의 시신을 모신 이곳 금수산태양궁전을 이렇게 최고의 궁전으로 개축하여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았다.  세상에는 거대하고 엄청난 금전과 물질을 들여서 조성한 무덤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집트의 피라미드, 진시황의 무덤 등 유사이래 얼마나 크고 화려한 무덤들이 생겨났던가?  그런데 막상 그 무덤의 주인공들이 민중을 위하여 어떤 귀한 일을 하였는가를 짚어보면  존재할 가치조차 없는 무덤들이 너무도 많다.  민중에게 불행을 안겨준 권력자의 화려한 무덤들은 아무리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해도 그런 무덤을 찾는 사람에게 눈요기거리만 제공할 뿐 아무런 감동도  줄 수없고, 사회적으로 이 세상에 아무런 좋은 영향도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항일혁명으로 나라를 찾고, 사회주의를 이뤄내고 고난의 행군을 끝내고 강성대국으로 향하도록 만든 북부조국의 두 지도자는 서거하였지만 북부조국 온 인민들은 두 지도자들이 그들과 함께 영생하고 있다고 선언하면서 곳곳에 영생탑을 세우고 있다.  두 분 지도자들이 남긴 유지는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날이 갈수록 더욱 심화 발전되어 온 사회에 구현되어지는 곳이 바로 북부조국이다.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은 세월이 갈수록 미국을 비롯한 자본제국들의 온갖 경제봉쇄와 압살정책 가운데서도 북부조국이 자주적인 국가로 살아남고 온 인민이 골고루 나라의 혜택을 누리는 복지국가로 발전하는 기틀이 되어 그 정당함이 인정받게 되고, 그 위대함과 귀중함이 실재로 증명되어지지 않는가?  



                   금수산태양궁전 내부 (조선중앙통신사 인터넷 자료에서)


이렇게 위대한 지도자들을 북부조국 인민들은 앞으로도 당연히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유수와 같아서 이제 새로 태어나고 자라나는 아이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는 두 분 지도자를 듣고 배우긴 하겠지만 전설처럼 여겨지게 되고 옛이야기로 되어질 것이 아닌가?  그런 후세들에게 김일성 장군과 김정일 위원장의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 유품들을 잘 보존하여 직접 만나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전설이나 옛이야기로 여겨지던 것을 이곳을 찾음으로 바로 눈으로 확인하고 사실로 인식하게 될 것이 아닌가.  


세월은 흘러가도 두 분의 귀중한 사상은 지켜나가야 한다.  장차 우리 민족이 온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온 세상이 받아들여야 할 주체사상이고 선군사상이다.  세상의 모든 악이 종말을 거두고 참 평화가 오게 되는 날까지, 그리고 그 평화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그 이후까지 이 사상은 영원히 지켜나가고 발전시켜야 한다.  바로  그것을 위하여  금수산태양궁전을 온 인민의 마음을 담아 웅장하고 아름답고 화려하게 개축하고 보존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금수산태양궁전은 서거한 두 지도자를 영원히 보존하여 기억하는 곳이면서 온 세상을 평화롭고 정의로운 곳으로 이뤄내기 위한 성지다.  어떻게 세상의 화려한 여타 무덤들과 이곳을 비교할 수 있으랴.   이곳은 바로 온 세상의 악을 제거하고 전쟁을 그치게 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도록 만들 ‘주체의 최고 성지’인 곳이다.


*지난 글 보기: 

[연재-62]강산 방북기:"인민군대와 한 홉의 미숫가루"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othernews&wr_id=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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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대한민국 남녘동포들에게 저곳은 아직까진 금단의 지역이라우~!!!!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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