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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64] 제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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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3-30 15:49 조회10,613회 댓글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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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은 "세월호 참사회생자들의 유가족들이 1주기가 되도록 거리를 헤메면서 진상규명을 울부짖고있다. 그들의 울부짖음에 대하여 정부의 대답은 전혀 없고 오직야만적으로 사회를 시끄럽게하는 귀찬은 군중으로만여기고 억압하고 있다.  이러한 나라 대한민국이 과연 제대로된 정상적인민주주의 나라인가?" 라고 지적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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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64] 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세월호 잊지 않은 교황과 세월호 잊은 부끄러운 박근혜


세월호 침몰 1주년을 회고한다.

 

 

 

 

글: 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프란치스코 교황이 2004 8 13-18일에 한국을 방문하여 의미 깊은 화제들을 남겨 놓고 떠나 갔다.프란체스코 교황은 그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방한일정5일 동안에 네번이나 세월호 참사의 가족들을 접견했다.

 

 

  서울 광화문 시복미사를 집전하기전에 차에서 내려 단식중이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손을 붓잡은 장면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격의 눈물로 채워 주었다.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에 내내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떠나가는 비행기 안에서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은 이유에 대하여 말하기를<나는 고통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가슴에 리본을 단것과 민중들이 열광적으로 교황을 환영하고 추종하는 모습들을 보고 불쾌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던 청와대는 교황이 떠나간 직후에 세월호 유가족회와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민중들을 압박하기 위하여 황당한 <외부세력배후론>을 들고 나왔다.

 

 

  청와대는 세월호 유가족304명을 민중들로 부터 분리시키고 억압하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전략 으로 구원파를 세월호 침몰 사건의 중심적 주인공으로 둔갑시키는 등 엉뚱하고 싸늘한 이념적 분위기를 전국적으로 조성 했다.

 

 

  2015 39일에 한국 천주교 주교단14명이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여 프란체스코 교황을 접견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주교들에게 묻기를 < 한국의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됬는가?>라고 물으면서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하지만 한국의 김희중 대주교와 염수정 추기경 등 한국의 14명 주교단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월호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낸 질문에 대하여 주교단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들인가 일절 말이 없다.

 

 

  노란색 리본을 달고 세월호 가족을 네번 접견한 교황의 고귀한 인품을 살펴 본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969년에 사제로 처음서임받은 후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관구장, 교구장, 추기경(2001)으로 봉직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카톨릭 주교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추기경이 되여 제공되는 고급 리무진을 마다하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것과 식사도 손수 준비하는 평민적 삶을 즐겨 실행했다.

 

 

  그는 오직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 44년 동안 봉직한 토백이 출신이며 2013년에로마 Catholic교회 역사상 최초로 비유럽권에서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대륙출신으로서유일한 교황이 됬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라틴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포루투갈, 우크라이나어 그리고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수재적 학자이다. 그는 대학에 서 철학과 신학의 교수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적으로나사적으로지극히 검소함과 겸손함과 소박함으로 유명하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회적으로 소수자, 가난한자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관용을 촉구하는 반정부투쟁에 시종 헌신했다. 그는 아르핸티나의 슬럼가를 위한 구제사업과 <사회정의 복음화>를 최대의 사명으로 인식하고 강력히 추진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44년 동안 봉직하고 있을때아르헨티나는군사 쿠테타로 육군총사령관 비델라가 무서운 독재정치 (1976-1981)를 하면3만 명 이상의 무죄한 민중들을 투옥과 사형으로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베르고글러 교구장(프란치스코 교황의 그 때 당시의 이름)은 비델라 독재자의폭정<더러운정치-무서운독재>라고 공개적으로 규탄하면서 비델라 독재자에게참회할것을 주장했다.그리하여 베르고글러 교구장은 <정의의 투사>로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정의의 투사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침몰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잊 어버리지 않고 있으면서 한국의 주교단 14명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됬는가 ?>라고 염려를 표명했다는 사실은 벅찬 감격이 마음속에 넘친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염려처럼 우리도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됬는가?> 가에 대하여 세월호 침몰사건 1주기 (2014 4 16)에 즈음하여1년동안 박근혜의 무관심속에서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파헤쳐 보아야 하겠다.

 

 

 

 

1.세월호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좌경으로 모는 박근혜

 

 

 

 세월호 침몰의사망자와 실종자부모들의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과 울부짓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민족적 비극이다. <제발 모두 다 살아오기>를 바라는부모들의절박한 소망과 애원의 기도소리는 무정한 바다의 파도소리속으로 살아져 없어지고 들리지 않는다.

 

 

  한달이 넘게 단식하는 현장의 유가족들의 눈물의 바다는 비극의 절정이었다. 세월호 참사회생자들의 유가족들이 1주기가 되도록 거리를 헤메면서 진상규명을 울부짖고있다. 그들의 울부짖음에 대하여 정부의 대답은 전혀 없고 오직야만적으로 사 회를 시끄럽게하는 귀찬은 군중으로만여기고 억압하고 있다.  이러한 나라 대한민국이 과연 제대로된 정상적인민주주의 나라인가?

 

 

  야만적으로 약자를 업수이여기는 악의적인 박근혜정권을 규탄하고 퇴진을 요구하 는 민중의 소리는 끝치지 않고 1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부모들은슬픔의 울부짖음을 극복하면서 정의로운 사회의 안전을 위한 건설적 계기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유가족들의 심정은실로 존경스렵다.

  

  

 오늘 한국 사회는 이와 같이 존경스러운 세월호 유가족들의 참뜻을 받들어 그들과 함께 정의로운 사회 건설의 길로 우리 모두 앞으로 나아가야하겠다.

 

 

  지금으로 부터28년전에 박종철을 폭행과 물고문으로 죽였다. 그런데 그 때 살인 을 저질렀던 중앙정보부의 박상옥은 주장하기를 <탁치니><억하고 주었다>라고 죽음의 원인을 변명주장했다.  그런데 오늘 박근혜는 그 박상옥을 대법관으로 임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말인가?  28년전 박종철-박상옥 사건과 마찬가지로오늘 세월호 참 사로304명이 사망한 비극을감추고 축소하기 위하여 박근혜 정권은 <못 살린것> <안 살린것>양면을 애매모호한 말로혼돈시키면서 책임을 회피하면서 음모를 조작하고 있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박정희 시대>의 중앙정보부의괴변과 그리고 오늘<박근혜 시대>에 있어서<못살린것> <안실린것>을 교묘한 괴변으로세월호 사건을 변명하는 국정원의추악한모습은 동질의 수법이다. 그럼으로 옛날박정희 시대의 <중앙정보부>와 오늘박근혜 시대의 <국정원>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세월호 침몰원인을 1주기가되도록 감추고 있는 박근혜 정권에 대하여 시민들의 비판의소리는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이에 대하여 박근혜는 <북의 지령, 좌파들의 음모>라고 하는 이념적 색갈론으로 매도하면서 진상규명을 회피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의 원인을 밝히지 않고 숨기고 있는 박근혜 정권을비판하는 국민적분노는 당연한 분노이다. 정의를 요구하는 민중의 웨침은 1넌후 극도에 달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종북색갈론>을매도하고 있으며 국정원과 검찰은불법적으로CCTV를동원하여 세월호 유가족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박근혜의 최악의방법은 악당깡패집단으로 유명한 서북청년단까지 동원하여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면서 위협하고 있다.

  

  

오늘 한국에서 정상적인 시민들이 애국자가 될여면 목숨을 걸고 국민의 권리를 완전히빼았긴 후에야비로서 애국자의 행위를 감히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월호 참사발생 1주기에 상처에 대한 치유는 없고 오직 아픔과 의혹만 쌓이고 있다.

 

 

 

 

2.세월호의 5가지 의혹

 

 

 

 세월호 참사로 배가 침몰하여 304명이 죽은 비극의1주기 (4/16/15)가 됬다. 1주기 동안 진행한 모든 수색에 대한 보도에 있어서 정답은 전혀 없고오직 거짓으로 포장 된 의혹들만이 증폭되고 있을 뿐이다.

 

 

  세월호 침몰의 수 없이 많은 의혹들 중에서 지면상 제한으로 5가지 의혹을 밝힌다.

 

 

  첫째 의혹,그 동안 세월호 승객들의 증언에 의하면 배의 선수 쪽에서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좌현쪽으로 급히 기울어 졌다. 또 선박과는 상이한 어떤 <물체>바다속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들이 속출했다. 세월호 밑바닥에는 대규모의 긁힌 자국이 있고 커다란 뚤린 구멍이 발견됬다.

 

 

  그 뚤린 커다란 구멍은 잠수함 충돌이 아니고는 뚤릴 수 없으며 그 구명으로 배에 물이 들어왔다.  박근혜는 잠수함과 뚤린 구멍을 감추기 위하여 시간을 끌고 있었으면서304명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앞바다 지역의 수심이37미터 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잠수함이 기동할 수 없다>라고 헛소리 주장을 되풀이 한다.

 

 

  그런데 이명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엉터리 정권인가?   20105 20일에 백령도앞바다에서 북한의 잠수함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고 이명박근혜는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지역의 바다의 수심은 25미터일 뿐이다.

    

    

 수심<25미터>에서는 북의 잠수함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수심이 <37미터> 가 되는 깊은 진도 앞바다에서는 잠수함이 활동할 수 없음으로 세월호를 침몰시킬 수 없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그 얼마나 엉터리 정권인가를 스스로 의혹을 폭로하고 있다.

 

 

  부산 앞 바다에서 미군 잠수함이 한국 어선과 충돌한 사건들이 여러번 있었다고 한 다. 또 일본의고등학교 실습선을 미국 잠수함이 충돌하여 침몰시키고 도망갔다는것이다. 하지만일본은 배의 침몰원인을 국민에게 사실대로 알리고 미국에게는 강력히 항의하여  피해 보상 을 충분히 받아냈다.

 

 

  2010 326일에 천안함이 침몰한 원인을 이명막 정부는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려 했지만 결국 한미군사훈련에 참가한 미국-유대 잠수함인것이 분명히 밝혀졌다.

 

 

  2014 4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에 대하여 선장의 맨처음의 발언에는 세월 호가 <암초와 부딛친것 아니다>라고 했다. 맨처음에 침몰광경이 사진에 밝혀졌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현장의 사진을 퇴치시키고 조작한 합성사진을 유포했다. 

 

 

  그것은 분명히 처음부터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감추려는 박근혜 정부의 음모이다.

 

 

  하지만 미국도 떨떨음한 포정으로 세월호 침몰이 사실상 서해안에 합동훈련과 관련된것을 사실상 인정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4 16일을 전후하여 한국-미국-호주 등 3국이 합동훈련을 서해상에서415-18일 사이에 진행하고 있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하여 숨김없이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일부 일설에 의하면 세월호를 침몰시킨 잠수함은 미국-호주 두 나라중의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는 주장이 있으면서 혹시 호주 잠수함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주장이 있기도 하다.

 

 

  뿐만아니라 구원파는 주장하기를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주장은 100% 거짓된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의 침몰원인을 <과적>이 침몰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구원파는 주장하기를 그동안 세월호는 100여회 운항을 했는데 그 중에서 이번 운항에는 짐을 가장 적게 실은 5번째 운항이라고 밝혔다.  그럼으로 세월호의 침몰의 원인을 <과적>이라는 박근혜 정권의 주장은 100% 거짓된 주장이라는 것을  구원파는 밝혔다.

 그 외에도 구원파는 박근혜 정권이 주장하는 세월호 침몰원인에 대하여 모든 것이사실을 왜곡하는 원천적 거짓을 꾸미는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그 외에도 구원파는 박근혜 정권이 주장하는 세월호 침몰원인에 대하여 모든 것이사실을 왜곡하는 원천적 거짖을 꾸미는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둘째 의혹, 세월호의 실소유주는 국정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발견된 <노트북>에 의하면 <국정원 지적사항>이 기록되여 있다. 그리고 그  국정원의 지적사항에는 세월호 <운영규칙 100가지 항목>이 자세히시되여 있다.

 

 

  한국에 수 없이 많은 민간 선박들 중에 <국정원 노트북 지적사항 100가지>를 명시한 선박은 오직 세월호뿐이다. 그럼으로 어느 누가 보아도 세월호의 운영주는 분명히 국정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세월호는 일본이 18년 동안이나 사용한후에 용도페기처분한 고물배를 127억원에 사들여와 51억원을 들여 증개축을 했으며 국정원은 2013 3 15일에 세월호가 첫출항을 할때까지 매우 꼼꼼하게 직접 점검하고 모든것을 관리한 것이 밝혀졌다.

 

 

  이 모든 밝혀지고 폭로된 사실들을 보면 세월호의 실세는 국정원인것이 분명하다.

 

 

  세째 의혹, 유병언의 변사체는 의혹투성이다.  한국에서 매년2 5000명의 변사자 가 신고되지만 사인을 밝히는 법적 부검률은 20%뿐이라고 한다.  그러니 한국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를 의심하게 된다.

 

 

   그런데 금번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인하여 유병언의 변사체 괴담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유병언의 실체와 또 변사체 괴담에 대하여 실체를 알아봐야 하겠다. 유병언은 명목상으로 세월호를 운영하는 세모구릅,청해진 해운의 회장이다. 

 

그런데 유병언은 개인채무조정으로 100억원을 탐감 받은 기록이 있다.  또 그는  1471백만원 가운데 65000만원을 변제하고 1405100만원 감면을 받았다. 이것은 유병언-청해진 해운- 국정원-구원파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여 있는것을 분명히 말해 준다. 동시에 국정원이 내막적으로 세월호의 실소유주라는 것을 뜻한다.

 

 

  구원파의 증언에 의하면 유병언은 절대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럼으로 박근혜 정권이 유병언의 변사체 소동을 이르키는 것은 정권-청해진-국정원이 서로 얼키고 설킨 연관된 관계를 감추기 위한 확실한 조작극이다.

유병언의 아들(유대균)이 도피하다 잡혀서 수감중인는데 DNA 대조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유병언 변사체의 진실 여부를 분명히 밝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은 유병언의 생존과 사망 여부를 고의적으로 밝히지 않으려고DNA 대조 검사를 끝까지 하지 않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유병언의 죽음이 자살이던 타살이던 또 혹시 살아 있던 아무 관계 없이 유병언의 입을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것이 오직 박근혜와 국정원의 적폐를 숨길 수 있는 유일의 길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유병언의 변사체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유병언의 변사체에 대한 국정원의 조작극은 의혹 투성이다.  백골이 되도록 풀습속에서 멍석을 깔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곳에 죽은 시체가 누어 있었다는 것은 납득이 않된다.

 

 

  사람이 죽었을 때 최초의 현장 사진을 밝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어느 보도에 서도 유벙언 사망의 최초 사진을 확인할 수 없다. 오직 식별할 수 없는 백골 뿐이다.

 

 

  박근혜와 국정원은 저들이 만든 유병언 변사체를 100% 이용하여 박근혜 부정선거 문제와 또 세월호 침몰 문제의 본질을 뒤로 돌리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제도권 언론은 유병언 변사체 괴리조작극을 연출하여 박 근혜 정권의 위기와 세월호 문제의 촛점을 딴곳으로 돌리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하지만 유병언의 <생존시의 의혹><변사체 의혹><구원파 의혹> 등으로 가득차 있다.

  

  

네째 의혹, 박근혜의 감춰진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하여 반드시 해명이 되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 4 16일 오전 8시에 세월호 침몰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위급한 국가적 위기의 시간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행방불명으로 없어졌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청와대의 문고리3인방도 역시 박근혜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묵묵 부답이다.

 

 

  이 지구상에 도대체 이런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 또 다시 어디 있을가?

 

 

 박근혜의 7시간 동안 행방불명의 극비밀 사건을 청와대 내부와 국무총리 그리고 여당의 국회 의원들 아무도 아는 사람이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여 폭로되기 시작됐다.

 

 

  이러한 시급한 불을 끄기위한 비상대책으로 <조선일보>는 박근혜의 개인적 신상에 본래 숨어있던 병균을 몸에 다시 침투시킴으서  면역의 효과를 보는 의학적인 노리를 적용하였던 것이었다.  <7사간 의혹 문제의 관심>을 딴곳으로 돌리려는  선일보의 술책인 것이다.

 

 

  조선일보는 <박근혜-정윤회 7시간 밀회>라고 하는 깜짝쇼 기사를 일부러 발표하였다.  사실에 있어서 <박근혜-정윤회의 비밀의 밀착 연결>은 결코 새로운 소식이 아님으로 조선일보가 재탕의 효과를 노린것 뿐이다. 

   

   

박근혜-정윤회 7년간 밀착된 비서생활과 또 극비속에서 둘이 평양을 함께 방문한밀접한 비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국민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의혹 스캔달이다.

 

 

  그럼으로 조선일보는 <박근혜 7시간 동안 세뤌호 의혹의 불>을 끄기위한 무마의 방법으로 의도적으로 <박근혜 7시간 정윤회와 밀담> 설을 퍼뜨렸던 것이다.

 

 

  순진한 한국의 민중들은 조선일보의 잔꾀에 또 다시 속았다.

 

 

  박근혜는 세월호가 잠수함 충돌로 침몰과정을 현지보고를 받으면서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면서 미군 잠수함 충돌사건을 무조건 감추고 수습하기 위한 7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는 304명의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것은 잠수함 침몰사건의 진상을 감추기 위한 비밀처리 방법을 모색하느 것이 보다 더 시급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조선일보 최보식의 <박근혜-정윤회 불륜관계>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여 일본의 우익을 대표하는 산케이 신문 서울 지국장 다츠야가 박근혜에 대하여 <결혼한 적이없는 66세 대통령이 유부남과 비밀만남>이라는 기사를 발 표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쥐드도이체는 조선일보가 출처이며 또 일본 산케이 신문의 기 사를 그대로 인용하여 <박근혜 은밀한 장소에서 유부남과 만났다>라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의 웃기는 처사는 <조선일보 최보식>은 그냥 놔두고 최보식의 기사를 인용한 일본인 산케이 신문 서울 지국장 다츠야에게만 명예훼손의 책임을 추궁하여 강제 출국명령을 내리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연극을 연출했다. 

   

   

산케이 신문을 문제삼으려면 먼저 조선일보와 최보식 기자를 문제삼아야 이치에 마땅하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권의 하수인이며 동시에 박근혜 정권은 조선일보의 보호자 이다.  청와대와 조선일보는 <박근혜의 7시간 비밀>에 대하여 짜고치는 꼬스톱을 연출하고 있었다.

 

 

 박근혜는 세월호 배안에서 죽음에 울부짖고 있는 304명의 생명을 제일 먼저 구출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미국 잠수함이 세월호를 침몰시킨 사건을 감추기 위한 비밀 공작을 꾸미는데만 7시간 동안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의 <숨겨진 7시간> 미스터리는 바로 여기에 이었던 것이다.

 

 

  다섯째 의혹, 세월호 1주기가 곧 되는데 선체인양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월호 침몰의 <진실규명> <선체인양>은 쌍두마차이다.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여 침몰의 진상을 밝히는것이 진실규명의 열쇠가 된다.  박근혜가 세훨호 선체인양을 하지 않는 이유가 명백하다. 그것은 세월호의  배밑에 있는 상처 구멍을  감추기 위함이다.

 

 

  세월호 1주기를 한 달 앞두고 있는  3월초 현재에 5,000명이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행진에 동원하고 있으며5만건이 넘는 세월호 선체인양 촉구 문건을 박근혜 정권에 제출할 것이라고 가족협회는 말했다.

 

 

  이제라도 안전한 나라와 책임있는 정부가 될려면 세월호 1주기를 무책임하게 넘기지 말고  4 16일 이전에 인양작업을 착수해야 한다.  비극중에서라도 박근혜 정권이 선체인양을 정성으로 하기만 한다면 그래도 이 시대의 삐뚜러진 사회를 다 시 회복하고 무너진 도덕을 인양하는 계기가 될것이다.

  

  

 물속에 잠겨있는 세월호 선체를 온전히 정성것 인양하는 것만이 오직 박근혜 대통령이 인정할것은 인정하고 사과할것은 사과하여 국민 대화합을 이룰 수 있는 최선과 최후의 기회가 될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304명의 꽃다은 영혼들에게 나라와 민족의 도의를 지키는 예의가될것이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해양수산부가 주관하여 선체인양을 위한 현장조사를 하고 있으며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인양여부를 결정할것이라고 하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임이며 유가족들의 바램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천문학적 인양비용을 빙자하여 반대여론을 조성하는 악마적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월호의 비밀을 끝까지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다는 망국적인 고집을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정말 세월호 선체를 인양할만한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유심히 지켜 보아야 하겠다.  세월호 선체인양이 없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절대로 맞이할 수 없다.

 

 

  

                         3. 세월호 1주기에 떠오르는 이모저모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원하며 울부짖는 희생자의 유가족들과 그리고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도와주기 위하여 그들에게 접근하는 진실되 민중 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겨운 모습들인가?

  

  

 박근혜 정권의 경찰과 국정원은 무조건 좌경으로 몰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 지난 1년간에 세월호 문제를 수습하는 대책인 것이다.

 

 

  이러한 박근혜 정권의 폭정하에서 1년 동안 나타난 자중지란의 이모저모를 살펴본.  박근혜 정권의 막장의 이모저모를 살펴봄으로서 세월호의 진실을 옳바로 이해 할 수 없다.

 

 

  ). 세계의 주요한 외신보도들은 박근혜 정권을 한마디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 의 보도를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최대의 공영 방송국KBS의 보도국장의 발언을 크게 보도했다.<세월호 300명 사망자의 수는 해마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의 수와 비교하면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KBS 보도국장의 말을 NYT는 크게 보도했다.

  

  

미국의 WSJ의 보도 역시 매우 비판적이다. 세월호의 침몰사건에서 분명해진 것은 대부분의 일반 선객들은 사망했는데도 불구하고 <선장 이준석>이 제일 먼저 탈출했으며 그 다음 여객선의 <선원>들이 탈출했다고 보도했다. WSJ은 선장과 선원들만의 탈출은 살인행위와 마찬가지라고 혹평했다.

 

 

  CNN UPI 의 보도 역시 동질의 비판적 보도를 했다. CNN은 어떤 해양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물속에서 어떤 물체를 들이 받은 것 같으며 그때문에 배에 구멍이 나서 대량의 물이 들어 왔을 수있으며 또 그 지역에는 암초가 없다> 라고 보도했다.

  

  

 UPI는 선장 이준석이 혼란에 빠진 승객들을 내버려 둔 것에 대하여 36년의 징역형 을 받은 것을 보도했다.

 

 

  세월호의 침몰 사고 원인에 대한 공식적 조사는 정치적으로 조사위원회의 구성문제를 놓고 한국의 정당들 간에 성난 분쟁 때문에 발목이 잡혀있다고 보도했다.

  

  

  그 외에 허핑턴포스트,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로이터 등 세게적인 유력한 언론들이  박근혜의 종미주의적 정치적 모순이 세월호침몰로 곤경에 빠지게 됬다라고 평했다.

 

 , 이종인이 대표하는 알파잠수부들이 배안에서 아이들이 아직 살아 있는 시간인대도 불구하고 해경은 잠수부들의 활동을 금지시키고 철수를 명령했다.

 

   왜 그랬나?  그것은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왜 상부는 그런 지시를 했나?  그것은 알파잠수부들이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배안의 광경이 생방송될것을 방지하려는 막강한 최고 세력이 해경뒤에 있기 때문이었다.  해경은 상부의 지시를 받고 알파잡수부들을 위협하여 배안에서 아직 살아 있는 학생들을 구조할 수 없었으며 강제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뿐만아니라 300명 학생들이 사망한 후에 희생자 부모들이 유족단체를 만들지 못하도록 협박했으며 정부는 유족들의 성분분석에만 열중하면서 일부 유족들을 포섭하여 그들의 입을 통하여 정부의 처사를 찬양하게하고 제도권 언론들은 포섭된 목소리를 크기 발표했다. 이것이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수습을 몰고가는 국가 재난 컨트 롤타워의 핵심이다.

  

  

 , 홍가혜의 진실과 박근혜 정권의 거짓말이 폭로된 세월호 침몰사건을 알아본다. 

 

 

  416  오후5시에 서해해양경찰청장인 김수현은  <함정164, 항공기24, 구조단178명이 동원하여 학생들을 구조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4 17 0시에 유가족들이 눈으로 목격하고 밝힌바에 의하면 수색작업과 구조활동이 전혀 이루워지지 않고 있는것을 확인했다.  잠수부들은 바다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으며 경비정과 함정들이 오직 세월호 주변만 빙빙 돌고 있었다.

 

 

 4 17일 낮에 박근혜 대통령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진도 체육관에 나타나 유가족들에게 말하기를 잠수부 500명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유 가족 대표는 방금 소식을 전하면서 잠수부들이 아직 전혀 투입되지 않은것이 확인된것을 말하면서 분통를 터뜨리고 있었다.

 

 

  4 18 12시까지도 잠수부들의 구조활동이 제대로 이루워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또 다른 중언은 잠수구조대장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해병대 출신인 박모 씨는 사고 당일 오후가 되도록 구조활동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잠수부들이 투입되지 않은 증언들 많으나 지면상 제한으로 이것으로 끝친다.

  4 18일 홍가혜는 MBN 10분 인터뷰에서 박근혜에게 치명적 발언을 했다.

  

 박근혜 정권이 학생들을 구조하지 않은 비밀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폭로했다. 

  

  

 <민간 잠수부들과 정부관계자들과의 협조가 이루위지지 않음으로 불가능했다>

<민간인 잠수부들이15시간 동안이나 대기하고 있었는데 해경은 구조작업이 중단됬다고 하면서 잠수부들에게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돌아가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했다>

 

 

  이것이  4 23일에 홍가혜가 MBN 10분 동안 인터뷰에서 밝힌 폭로성 발언 내용이다.  홍가혜는 이 폭로성 발언 때문에 유언비어란는 죄목으로 구속됬다. 

 

 

  홍가혜가 100일 동안 투옥되여 수감중에 있을 때 검찰은 홍가혜에 대한 재판을 했다.  그런데 재판에서 홍가혜의 주장이 유언비어가 아니라 사실로 밝혀짐으로서 검 찰은 할 수 없이 홍가혜를 무죄로 석방했다.

 

 

  석방된 홍가혜는 광화문에서 투쟁하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합류하여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투쟁을 계속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홍가혜를 정의로는 여성으로 높이 추앙한다. 하지만 제도권 언론들은 홍가혜에 대하여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담을 쏟아 냈다.

 

 

 

 

이 글을 끝 맺으며,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검찰의 수사과정의 의혹, 침몰의 진짜 원인 의혹 그리고 총체적으로 박근혜 정권의 정체성 의혹 등 세가지 의혹이 수면에 떠올랐다. 이에 대하여 진실성 추구의 과제가 한국 사회에서 그 무엇 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몸통을 숨기고 <꼬리>만 발표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제도권 언론들은 검찰이 발표한 <꼬리>를 또 다시 왜곡하고 축소함으로서 본체와는 완전히 변형된 거짓뉴스를 국민에게 날마다 보도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건은 박근혜 정권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정권이 됬으며 한국 국민들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 이웃 나라들까지 박근혜 정권은 미국을 추종하는 사대주의 정권인것이 세월호 사건으로 인하여 또 다시 들통났다.

  

  

 세월호 침몰은 하나의 사고로 발생한 돌발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박근혜는 하나의 돌발적 사고를 처음부터 진실되게 처리하지 못하고 <학생들 전원구출>이라는 허위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 처음부터 시작된 허위보도는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감추기 위한 사기극의 시작이 됬다.

  

  

 그리하여 세월호의 침몰은 결국 <박근혜 정권의 침몰>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의 시녀가 되고 있는 한국 언론도 함께 침몰하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

 

 

  세월호1주기 전에 선체인양을 위한 박근혜 정권의 결단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곧 발표되어야 한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6명의 실종자 부모들은 저 배안에 있을 자식들을 위하여 세월호침몰 1주기를 또 다시 넘기지 말아야한다고 울부짖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자승 스님은 세월호 1주기전에 선체인양을 주장하면서 <정부가 어떤 생각으로 인양을 지연시키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불교계는 조계사 대웅전에서 세월호 1주 기에 세월호 희생자 위령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 총회들과 대형교회들이 세월호 1주기에 회생자들에 대하여 어찌하여 아무 말이 없는가?

 

 

  이완구 신임 총리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간곡히 요청하는 세월호 1주기에 선체인양 실행에 대하여 대답하여 말하기를 < , , 청 다각적으로 검토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라고 대답했다.

  

  

  문제는 이완구 신임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각하>라고 호칭한 유일의 정치인으로서 악명 높은 정치인이다. 그러한 이완구 신임 총리가 <당정청>중의 <청와대>의 허락 없이 과연 세월호 1주기에 세월호 유가족들의 소원인 세월호 선체인양 문제를 해결할지를 지켜 보아야 하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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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동영상 보기-아래를 짤각해 열람하세요!


https://youtu.be/Hf1J-Yh0j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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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꽹과리님의 댓글

꽹과리 작성일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계속적으로 연구논문을 발표하시는 박사님께 경의를 드립니다.

새바람님의 댓글

새바람 작성일

5가지 의혹들을 제기하여 주신 유박사님의 예리한 필치에 감동하며 동시에 이 세월호 사건은 단원호 학생 희생자들 학부모들이 그 진상을 밝히지 않으면 못살겠다며 한이 맺혀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사회정의를 가진 산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저도 지원하고자 합니다.

세월호 참사 한가지만 보아도 한국정치가 얼마나 썪었는지 반영하고 있습니다.

진달래님의 댓글

진달래 작성일

박근혜는 가짜입니다. 가짜가 세월호 진실 밝히지 않을 겁니다.
끌어내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야당도, 노동자도, 농민도, 청년학생도, 종교인도
모두 모두가 세월호 참사 책임지고
ㅁ박근혜가 물러나라고 외쳐야 합니다.

국정원 댓글 부정 하나만 보아도 대선은 무효입니다.

고슴도치님의 댓글

고슴도치 작성일

유태영 목사님 대단하십니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를 이렇게 자상하게 파헤쳤는지 쪽집개 옳시다.

유태영 박사님 만세
유태영 목사님 만세
민족통신 만만세

이준경님의 댓글

이준경 작성일

유박사님의 이번글로 세월호의 진상을
더 배우게됫습니다.

명박근혜의 음모는
멀지않으날 밝혀지리라믿습니다.

가짜정권 근혜 퇴진하는날까지
계속힘뫃아 알리며 투쟁해야지요.

박사님 좋은글
다시 기대합니다.

한글님의 댓글

한글 작성일

우선 기본적인 철자법 좀 지키세요!

한글이 웁니다.

불벼락님의 댓글

불벼락 작성일

닭알에서 뼈다귀를 고르는 놈은 사라지라!
한글 - 똥이나 먹어라 - 조까치

김갑수님의 댓글

김갑수 작성일

반역의 무리들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무려 304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반역의 무리들은 천안함 침몰을 북한소행이라고 사기치고 46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반역의 무리들은 미제국주의 패권전쟁의 앞잡이가 되어 Korean War 에서 4~5백만명의 무고한 생명들을 앗아갔다. 그 줄기에서 나온 4.3제주항쟁에서도 얼마나 많은 양민들의 목숨을 앗아갔는가?

이제 곧 4.3제주항쟁의 그날이 다가온다.


4.3은 7년 7개월 동안의 양민 학살극
- 마크 리퍼트와 ‘폭력 알러지’들에게 부치는 글

검은 흙구덩이에서는 36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60년 동안 깜깜히 묻혀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두 개의 인장이 따로 발견되었다. 그 세월 동안 마모된 인장의 자획은 희미했지만 오히려 비극은 더욱 선명히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하나에는 ‘희전(熙銓)’, 다른 하나에는 ‘양봉석 (梁奉錫)’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2007년 11월 14일 제주국제공항 유골 발굴 현장에서의 일이다. 며칠 후 제주대학교 조사단은 1947년, 제주도 대정국민학교 김희전 교사, 의귀국민학교 양봉석 교사의 재직 사실을 확인했다.

제주국제공항에는 최소 500명에서 700명까지의 희생자가 암매장되었다. 당시에는 정뜨르 비행장이라고 불렸던 이곳에서는 1949년 2차군법회의 사형수 249명과,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도내 예비 검속자 500명(추정) 등이 총살, 매장되었다고 보고되었다.
여기 말고도 다른 학살 현장의 증언들도 부지기수로 줄을 이었다.

“군 트럭에 실려 온 주민 30여 명이 이곳에서 총살된 뒤 가릿당 동산에 암매장되었습니다.”

“화북국민학교에 집결해 있던 도피자 가족 중 일부는 학교 운동장에서, 여자들은 트럭에 태워져 누러이(제주교대 남서쪽)에서, 남자들은 고우니모루 저수지에서 총살되었습니다. 그때 저수지 물이 핏빛이었지요.”

유족들의 증언은 각종 매체에 선연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들의 말을 취합해 보면 제주도 내 학살 현장은 무려 66곳에 이른다. 희생자가 수만을 헤아린다고 하니, 이에 비하면 66곳이라는 현장 숫자가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이 중에서 우선 집단 학살 지역 11곳의 조사만 이루어지다가 지체 또는 중단된 상태로 있다.

이 비극적인 대량 참극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로부터 해방된 둘째 해인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당시는 대한민국이 없던 미 군정 치하였다. 8.15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그 해 3·1절 기념식에는 3만의 제주도민이 참석했다. 당시 제주도는 전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의 지역이었다. 해방 후 이방을 떠돌던 6만 명의 해외 유입 인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념식이 파할 무렵 일부 군중들이 “통일조국전취”를 외치며 대로로 나섰다. 이때 난데없이 경찰의 총성이 터졌다. 이것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이 무모한 발포로 인해 관덕정과 도립병원 앞에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게 된다.

닷새 후인 3월 5일, 3·1 사건 대책 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어서 3월 10일에는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일제 때에도 전례가 없었던 민·관 총파업이 이루어졌다. 제주도 전체 직장인의 95%가 참여한 파업이었다. 이것은 당시 미 군정의 사후대책이 얼마나 소홀하고 부당했는지를 명백한 반대급부로 일러준다.

다시 일주일 뒤인 3월 12일에는 경무부 최경진 차장(경무부장 조병옥)이 제주 파업 사태를 언급하면서, “원래 제주도는 주민의 90%가 좌익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고 발언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매카시즘이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1년 동안은 그 다음의 참상에 비한다면 그리 많은 희생자가 난 것은 아니었다. 당국이 어느 정도 단속과 선무(宣撫)를 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새로 내도(來島)한 반공단체 서북청년단에 대한 불만이 차츰 고조되어 가고 있기는 했다.

불행히도 1948년 3월 14일 모슬포 지서에서 청년 양은하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보고 받은 남로당 제주위원회에서는 ‘단정반대’의 행동목표와 ‘무장투쟁’의 행동강령을 최종 확정한다.

이런 제주도민의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이승만은 3월 28일, 방한한 미 육군성 드레퍼 차관에게 제주도를 미군 군사 기지로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피력한다.

이에 남로당 제주도당은 회합을 갖고 무장 투쟁 개시일을 4월 3일로 확정지었다. 급기야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제주도 남로당 무장대가 도내 12개 지서와 우익 인사의 집을 습격한다. 이어 미 군정장관 딘이 극비리에 제주도를 방문했다. 직후 김정호 제주 비상경비사령관은 “밤 8시 이후 통행금지 위반자는 사살하라.”는 섬뜩한 명령을 내렸다.

5월이 되도록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미군 수뇌부는 “무장대를 총공격하여 사건을 단시일 내로 해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6월 2일에는 제주 주둔 미군 사령관 브라운 대령이 “제주도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모조리 휩쓸어 버리는 작전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윽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발했다. 도민들의 불안감은 적중하여 닷새 후인 8월 20일에는 800명의 경찰이 제주도에 증파되었다. 이승만은 법조문에도 없는 계엄령을 반포하여 무자비한 토벌작전을 감행한다. 결과 사태는 일단 진정 국면으로 들어선다. 해안 5km 이상의 중산간 지대 마을이 모두 토벌의 표적이 되어 사람 사는 가옥이 불살라지고 최소 1만2000명 이상의 주민이 다 죽어나간 후였다.

1950년 5월 30일에는 제주도 국회의원 선거가 무사히 치러진 것으로 보아 항쟁은 거의 진압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 동안의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시점에 제주도 지사가 발표한 인명 피해자가 3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1,000명 이하에 불과한 무장대원을 진압하기 위해 수만 명의 양민을 무차별로 죽인 것이었다.

비극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비극은 더욱 무자비하게 심화 확대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6일 ‘전 제주지구 예비 검속자 명부 제출의 건’이 제주도 경찰국장에게 하달된다. 이때부터 예비 검속자에 대한 천인공노할 만행이 벌어지게 된다. 주정공장 수감자들이 사라봉 앞 바다에 수장되고, 서귀포 관내 수감자 150명이 바다에 수장되었으며, 또한 제주경찰서 등지에 수감되어 있던 예비 검속자 수백 명이 제주 앞 바다에 수장되었다.

1950년 8월 19일 밤에는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500명 이상이 제주 비행장에서 총살된 후 암매장되었다. 8월 20일에는 모슬포 관내 수감자 252명이 군에 송치되어 송악산 섯알오름에서 집단 총살되었다. 아울러 섬이 아닌 목포형무소 수감 제주인과 대전 형무소 수감 제주인 300명이 여수 순천 관련자 700명과 함께 영문도 모르는 즉결처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1950년 10월 10일에는 제주도 계엄령이 해제되고 잔류 예비 검속자가 석방된다. 이로부터 4년 후인 1954년 1월 15일 제주도 경찰국장은 잔여 무장대가 6명뿐이라고 발표한다. 이들이 마저 소탕된 1954년 9월 21일에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됨으로써 4·3사태는 7년 7개월 동안의 악몽 같은 검은 터널을 외면상으로나마 벗어나게 되었다.

4·3 항쟁의 초기에는 남로당 제주위원회가 개입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월간조선>이나 극우단체들의 주장대로 제주위원회가 북과 연락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북의 지령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주장은 흑색선전에 불과한 것이다.

제주는 잠들지 않는다. 아직도 숱한 희생자들이 암매장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지 어두운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런데 이른바 선진국일수록 진상 규명과 화해에 적극적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기들에게 이로운 줄을 알기 때문이다.

4·3 항쟁은 2차대전 후 벌어진 세계 최대의 폭력극이었다. 최근 마크 리퍼트 미 대사가 칼침 공격을 당했다. 나는 이 글을 마크 리퍼트에게 읽히고 싶다. 그리고 일제히 “모든 폭력은 안 된다”고 소리를 높인 ‘폭력 알러지’들에게도 묻고자 한다. 어느 것이 폭력인가? 어느 것이 폭력이 아닌가?

사진 1)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 왼쪽 두 번째부터 군정장관 딘 소장, 통역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맨스필드 제주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총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9연대장, 최천 제주경찰감찰청장(1948. 5. 5) -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사진 2) 중산간지대로 피신한 제주사람들.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주로 보인다(1948. 5) -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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