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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4~6]코리아전쟁, 그 진실을 알아본다(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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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3-21 09:39 조회21,318회 댓글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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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거주 동포가 제공한 자료 "코리아 전쟁 진실을 알아본다'라는 4~6번째 연재글을 종합하여 소개한다림원섭 선생은 이 자료들은 6년전부터 오랜동안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며 코리아전쟁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며 모은 내용들이라고 밝힌다.[민족통신 편집실] 

[연재-4~6]코리아전쟁, 그 진실을 알아본다(동영상)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제공:림원섭(스웨덴 거주동포)


[4]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윌슨 대통령은 “세계민주주의의 안전을 위하여” 라는 이유를 들어 참전하였고, 2차 대전에도 프랭클린 루즈벨트도 같은 이유를 들어 참전하였다. 이런 “명백한 운명” 주의에는 숨길 수 없는 군수산업에 의한 경제적 이익과 인종 차별적 편견이 사려있음을 알아야 한다. 

1915년 미국의 불황에 접어드는 듯 했으나 서방의 군수품 주문으로 군수산업이 활기를 띠고 번영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으로 번영을 누리기 시작 했는데 독일의 잠수함 작전으로 군수품 수송에 차질을 빚자 미국은 참전을 결정하였습니다. 

민주주의와는 상관없이 군산복합체의 결정에 의한 것입니다.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유와 미국이 여기에 뛰어든 이유는 모두 자국의 경제적 이익 때문이지 민주주의 운운 하는 것은 수식어에 불과한 것입니다. 민족주의가 일어난 것도 경제적 배경이 상이하기 때문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승전국들은 패전국의 식민지를 나눠 가졌다. 그 후 패전국이 식민지를 되찾기 위한 2차 세계대전이 뒤를 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원인은 미국의 경제공황(대공황)에서 시작합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와는 달리 자본주의 자유경쟁 체제에서는 주기적으로 호경기, 불경기, 그리고 대공황이 주기적으로 나타납니다. 

자유민주 체제에서의 대공황이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뜻합니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엄청나게 경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산은 많아지지만 소비는 크게 늘어나지 못합니다. 만들어내 는 상품은 많고 사는 사람들은 많이 없으니 남는 물건이 많아 창고에 쌓이게 됩니다. 

재고량이 많아지자 기업. 공장 같은 곳은 망하게 됩니다. 기업이 망하고 문을 닫으면 직장을 잃은 실업자가 증가하게 되겠죠. 실업자가 증가하면 개인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또 소비가 감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부도, 실업자증가, 소비감소, 기업부도 ...가 반복됩니다. 

이렇게 살기가 어렵던 중 미국의 주식가격이 폭락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미국은 경제 대공황에 이르게 되죠.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대공황은 세계로 확산되어갑니다. 각 나라들은 경제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뉴딜정책이라고 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뉴딜정책이란, 생산 활동은 억제하고 실업자 규제를 위한 대규모 공공사업 입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경제공황을 극복하기위해 식민지를 수탈하게 됩니다. 식민지에 물건을 파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진국이 아닌 가난한 나라에서는 식민지를 만들 수도 없죠. 방법이 없으니 사회가 불안해져갑 니다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이럴 때 사람들은 누군가 나타나서 자신들을 도와줬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게 되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독일에 구원자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히틀러입니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후 잃어버린 식민지를 되찾고자 전쟁을 벌입니다. 이것이 2차 세계대전입니다, 한마디로 1,2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입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가 국내에서의 자유경쟁을 끝내고 세계로 포식자의 손을 뻗치는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최종단계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참혹했다. 전쟁에는 승리 했지만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와 소련은 전쟁의 피해를 입었다. 반면 미국은 전쟁을 치렀으나 자국의 산업에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아 경제적 여력을 갖고 있었다. 이 여력을 이용하여 식민지를 독식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식민지들을 독립시킨다는 명목으로 경제적 지원과 함께 미국은 자국의 식민지 (미화해서 말하면 자유세계)에 포함시켰다. 소련은 유럽의 나라들과는 달리 미국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수도에 까지 깊숙이 침략한 독일을 물리치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미국의 신생독립국에 대한 영향력확대에 맞서 혁명으로 산업화를 이룩한 소련도 승전국의 지위를 주장하면서 동유럽 국가들을 공산화 하였다. 미국은 식민지나 지배권역의 확대를 꾀하면서도 민주주의니 자유니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고 속임수를 쓰는 나라입니다. 

 1898년 4월 20일 미 의회는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고 동시에 전쟁에서 승리해도 쿠바를 병합하지 않겠다는 결의안도 채택했다.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 뛰어든 것은 남미로의 영토팽창에 있었다. 미국은 전쟁에 승리한 후에 쿠바를 보호령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명백한 약속위반이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쿠바의 철도, 광산, 사탕수수 회사를 접수해 버렸고, 미국의 산업은 남미 대륙의 경제를 침식해 들어갔다. 그중 미국의 연합 과일 회사는 남미 국가들의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까지 조정하는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멕시코의 경우, 미국은 멕시코 자산의 43%, 석유시장의 50%를 독점해버렸다. 전쟁의 이유가 경제적인 문제였다는 점이다. 

 미국이 이라크 침략 목적은 자유세계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 내에 친미 정권을 세우고 석유를 독점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를 통해서 OPEC 산유국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스페인과의 전쟁은 불과 10주에 불과한 '빛나는 소 전쟁(splendid, little war)'이었다. 이 전쟁에서 미군 전사자는 450명에 불과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였던 셈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나서 5200명의 미군이 죽었다. 원인은 말라리아와 황열병이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는 4년 동안 필리핀 독립군과 전쟁을 치르면서 막대한 인명 피해를 보았다.



[5]

 

이라크와의 전쟁도 일방적인 승리였다. 미군 전사자가 불과 130명 정도였다. 그러나 이라크 게릴라들의 공격은 계속되었고 매주 3∼6명꼴로 미군이 전사하고 있다. 벌써 이라크 전 때보다 더 많은 미군이 전사하였다. 미군의 희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는 미군과 함께하는 동맹국들의 희생도 발생하게 될 것이다. 

 100년 동안 미국의 폭력성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횟수가 더 많아 졌다. 구소련의 몰락으로 견제 세력이 없어진 지금, 세계는 자칭 경찰국가에 의해서 더 많은 지구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원주민을 학살하면서 죄의식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자신들은 세계의 모든 종족들을 개화시켜 관리할 책무가 있다는 논리를 확립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 정복이 그들의 의무가 됐습니다. 

이승만은 일제 때부터 조선독립의 운명을 미국의 외교노선에 맡기자고 한 외세의존형의 인간으로서 독립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미국은 식민지 건설을 위해 일제 패망 전부터 이러한 이승만을 길러왔다. 이승만은 항일투쟁을 목표로 민족의 단결을 위해 활동한 사람이 아니다. 
  
정반대로, 해외에 있던 항일 독립단체들을 미국의 조정에 따라 파괴하고 와해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안중근 같은 항일애국투사를 테러리스트나 살인범으로 부른 사람을 미국은 독립투사로 위장하여 초대 대통령으로 앉혔다. 우리민족은 나라의 분열을 원치 않았다. 분열에 앞장선 이승만 정권을 원치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국민의 희망에 의해 국민이 탄생시킨 정권이 아니고 미국이 한국인의 소망을 짓밟고 반대하는 민중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친일파들을 규합해 강제로 세운 정권 즉, 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참여가 배제된 채 세워진 정권으로서 우리의 자주적인 정권이 아닌 오직, 미국의 대륙지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권이며 미국의 보호가 없으면 하루아침에 국민들에 의해 무너질 괴뢰 정권이었다. 
 이승만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반공법을 만들었는데 우리의 국가가 어디에 있는가? 국가안보 보다는 국민들로부터 이승만의 안전을 보호 할 괴뢰 안보라 해야 맞는 말이 될 거다. 

자료: [김갑수 근·현대사]25 송진우·여운형·장덕수·김구, 누가 죽였을까? 

가)1945. 12. 30 새벽 6시 한국민주당 수석총무(실질적인 당 대표) 송진우가 서울 원서동 자택에서 한현우 등에게 피살되었다. 
나)1947 7. 19 여운형이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하던 중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19세 한지근에 의하여 피살되었다. 

다)1947. 12. 2 서울 제기동 자택에서 한국민주당의 실세 장덕수가 경찰관 박광옥 초등학교 교사 배희범 등의 권총 저격을 받고 피살되었다.
라)1949. 6. 26 오전, 민족 지도자 김구가 거처인 경교장(京橋莊)에서 포병 소위 안두희에게 피살되었다. 옮긴이 림. 

미국은 해방 후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구등 민족지도자 암살, 민중항쟁 탄압등 미군정이 저지른 죄악을 조선인끼리 다툼으로 수습하여 자신들의 소행을 감추려고 이승만 괴뢰가 필요 하였다. 

미군은 한국전쟁 포로들에게 고문과 생체실험을 행하고 북으로 가서 서방의 민간조사단에게 폭로할까 두려워 불법적으로 교환에 응하지 않고 석방해 버렸다. 그리고는 허깨비 이승만에게 책임을 돌렸다. 포로들은 미군이 관리하는데 미군의 지시를 받는 이승만 괴뢰가 석방 하였다고 둘러댔습니다. 

이렇게 포로교환 하기 전에 포로들을 일방적으로 석방하고서 이제 와서 남한의 친일친미 기생세력들은 북한에 있는 포로를 석방하라고 지껄입니다. 미군이 남한을 직접 통치하지 않고 한국인 허수아비가 필요한 이유는 이와 같이 비난 받는 일은 허수아비에게 책임이 있다는 소리를 해서 자신의 소행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은 팽창주의 야욕으로 일제 패망 전부터 한국 땅에 자신의 괴뢰정부를 세우기 위해 이승만을 관리하고 길러 왔습니다. 한반도 북부는 김일성의 독립 투쟁이 활발한 지역이었으므로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 남쪽에 이승만 괴뢰를 세웠습니다. 

한반도 남쪽만 차지함으로써 소련, 중국 대륙과 좀 띄어서 국경이 정해지므로 은밀하게 대륙침공 전쟁 준비를 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이와 같이 미국은 우선 반도 남쪽을 지배권역에 넣고 다음엔 이를 발판으로 대륙으로의 더 큰 팽창의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6·25전쟁의 원인은 그 보다 앞선 작은 전쟁에 있었고 작은 전쟁의 원인은 미국의 태생적 본능인 팽창주의 야망에 있었다. 6.25 한국전쟁을 포함, 지구상에서 미국이 참전한 전쟁은 모두 팽창주의 야망에서 기인한 것이다.

 


[6]
 
한국전쟁의 원인은 냉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냉전은 미국의 팽창주의를 실행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미국은 1866년 8월 함선 ≪셔먼≫호를 타고 우리나라에 침략의 첫 발을 들여 놓은 때에 벌써 평양에까지 침입하여 인민들의 재물을 강탈하고 부녀자들을 능욕하였으며 대포와 총을 마구 쏘아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그 후 미국은 ≪챠이나≫호, ≪쉐난도아≫호 등 함선들을 연이어 침입시켜 우리나라를 정복해 보려고 날뛰면서 온갖 야수적 만행을 감행하였다. 20세기 초부터 미국은 일제의 조선강점을 적극 지지하여 미주의 독립운동 단체들을 탄압하였고 장지연과 전명운 등 항일독립투사들을 처형하였다. 미국의 외교관 ‘스티븐스’는 일본의 한국 침략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였다.
 
 1948년 2월 5일에 군정장관 A.L. 러치가 미군 철수설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한 이틀 후에 발생한 2.7 사건은 1948년 5월10일로 예정된 남한만의 단독 총선을 앞두고 미군정 지역에서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반대하여 일어났다.

조선의 분할 침략 계획을 실시하는 유엔한국위원단을 반대한다. 남조선의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한다. 양군 동시 철수로 조선 통일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우리 조선 인민에게 맡기라. 국제 제국주의 앞잡이 이승만, 김성수(동아일보의 사주)등 친일 반동파를 타도하라.
 
 경상남도 밀양군에서는 2월 7일 이른 아침에 농민들이 지서 두 곳을 습격하여 경찰이 발포로 맞서면서 10여 명이 사살되고 100여 명이 검거되었다. 합천군에서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농민들이 지서를 공격하여 역시 100여 명이 검거되었다. 이와 유사한 충돌이 전국에 걸쳐서 일어나 2월 20일까지 2주 동안 진행되었다. 전체 참가 인원은 약 200만 명이며, 이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은 100여 명, 투옥된 사람은 8,500 명 정도로 추산된다.
 
 1948년 5월로 예정된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을 앞둔 2월 9일 백범 김구는 〈삼천만 동포에게 읍 고함.〉 라는 제목으로 단선단정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는 등 전 국민이 단선단정을 반대하였다. 이렇게 전 국민의 반대 속에서 탄생된 정권이 대한민국 이승만 친일파 정권이었다.

1948년 창군 당시의 군 수뇌부 인맥은 대부분 일본군·관동군 출신이었고 미군정에 고용됐던 친일세력 들이 그대로 정권 상층부에 자리잡고 있어 민중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였다.
 
악랄하게 굴었던 일제 앞잡이들이 해방후에도 그대로 경찰 조직에 기용되어 치안을 맡아 애국적 인사 들을 탄압하였고 반정부 기운도 여전하였다. 미군정이 관동군 출신을 한국군의 구성의 주도세력 으로 삼았던 것은 일제 때 만주에서 중국 인민군과의 전투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대륙을 회복을 위해 그들의 경험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미 군정청의 자금에 의해 운영되는 친일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를 배출한 단체)의 폭력에 시달리던 제주에서 남한 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의미하는 5.10 총선을 반대하여 일어난 1948년의 제주도 4.3 항쟁과 제주항쟁을 진압하란 명령에 불복해서 일어난 여수·순천의 반란, 그리고 뒤이은 야산 유격대 등으로 남한의 민중들은 저항했다.
 
서북청년단이란!
서북청년단은 주로 이북의 불의한 주지들이나 개신교, 감리교,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극우 반공단체로 북녘에 항일투사님들의 정권이 들어서 김일성 주석께서 토지를 가난한 인민 들에게 무상 분배하니 종교인들 즉 민족에 대 역적 죄인들인 친일파들과 또 지주, 기독교 인들이 살기 힘들자 남하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8.15 후부터 제주도 4. 3때에도 엄청나게 살상한 인간 백정들이다. 이게 바로 북녘 출신 보수기독교 목사들과 뉴라이트 회원들의 뿌리다. 이들이 남녘에 불의한 친일파들과 지주들과 친일 기독교인들이 서로 짝짝꿍이 되여 오늘에 숭일, 숭미, 사대 매국 역적들로서 민족평화 통일을 쌍지팽이를 짚고 반대하며 앞장서고 있는 인간쓰레기들이다. 서북청년단 단체 본부는 서울 영락교회였고 이 교회 창립자가 한경직 목사다.
 
이 서부청년단 기독교 자취는 오늘에 새누리당과 조중동들의 머리속에, 외교, 내무, 범무, 정보, 검찰, 경찰, 국방 군인 똥별들의 머리속에 이명박의 머리속에, 지만원, 전원택, 정규재, 김동길, 조갑제, 유시민, 김문수 머리속에, 유명환, 현인택, 김태영의 머리속에, 보수 기독교 불교 뉴라이트 머리속에, 심지어는 체육인들 머리속에, 해외동포 평통위원들의 머리속에 깊쑥히 뿌리 내리고있다.
확실한 역사적인 근거를 두고 옳은 소리를 하면 빨갱이라고 매도한다.
사실은 빨갱이라는 말이 혁명가란, 뜻인줄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림씀.
- xxx   -

1946년 11월 30일 대한혁신청년회, 함북청년회, 황해회청년부, 북선청년회, 평안 청년회 등 이북 출신 청년회를 통합하여 결성되었다. 위원장은 1946년 2월에 월남한 선우기성이었으며, 활동자금은 한반도 서북부 출신 실업가들과 미군정청 고위관리들, 그리고 이승만 계열의 대한 독립촉성국민회에 의존하였 다.[1] :261~264 서북청년회의 사무 실은 한국 민주당 본부가 있는 동아일보 사옥에 있었다고 한다. [1] :261~264
 
1947년 대동청년단이 결성되자, 선우기성 중심의 합류파는 대동청년단에 가입하였으 며, 문봉제 중심 의 재건파는 이승만의 친위대 역할을 하게 되었다.[1] :261~264 [2] :53~54 그러나 독자적으로 서북청년단의 간판을 사용하던 이들도 있었다.
한편 서북청년단 해체 요구가 나오자 장택상은 강력하게 반발하였다.[3] 조병옥 역시도 치안 상의 문제를 들어 서북청년단 해산을 반대하였다.[3][4] 1947년 3월 3.1절 당시 활동과 관련해 장택상은 서북청년단에 5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3]
 
1973년 문봉제는 증언을 통해 선우기성이 장택상에게 불려가 쌀한가마니에 해당되는 액수의 봉투를 받았다고도 했다.[3]한편 좌파와의 무력충돌에서 승리하자 장택상은 그들에게 특별히 잔치상을 차려 주기도했다.[3] 한편 한민당· 이승만· 김구로부터도 후원을 받았다. 서청 자금의 대부분은 서북 출신 재산 가들이 주로 지원하였다.[3] 그러나 최창학· 박흥식 등의 경우에는 협박을 통해 자금을 얻어내기도했다.[3]
 
일부는 군으로도 들어왔다. 조선경비대 통위부장 류동렬, 경찰청 경무부장 조병옥, 서북청년 회위원장 선우기성 사이에 합의가 있었고, 서북청년회 내부에서도 대동 청년단으로의 합류파 와 재건파 사이에 분열과 반목이 있으면서 제3의 길을 선택한 서청원이 있다고 한다. [2] :171 –
’다음 백과사전’에서 (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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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fqtb2Kx2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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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철도님의 댓글

철도 작성일

허접한 짜집기 글로 다물흙 님이 백날 주장 하더라도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보낸 6.25 관련 문서가 존재 합니다

세계 석학들이 모인 싱크 탱크의 연구 논문 축 에도 끼이지 못 하는

님의 소설 같은 짜집기 내용을 올리는 찌라시 민족 통신과 님은 한 편의 개그 쇼 입니다

김신님의 댓글

김신 작성일

림원섭선생님이 사이버 공간에서 발췌하여 소개해준 글을 읽으며
한국역사가 얼마나 잘못 알려줬는가에 대하여 절실히 알게되었습니다.

조,중,동 거짓말이 드러났고
역대 한국 식민지사관에 의하여 사대매국적 관점에서 역사를 왜곡한 어용학자들의
매국사관이 밝혀졌습니다.

사실 1980년 광주항쟁이후 소장학자들의 민중사관에  의거한 역사기술에서도 그 진의와
뼈대는 만천하에 드러났었습니다.

지금도 조,중,동, 종편방송들은 거짓역사들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가 펼치는 거짓말들이 개그 소입니다.

천안함 사건, 세월호 사건 몽땅 거짓들이었습니다.

박근혜 대선부정인데도 지금 뻐젓이 대통령 행세하는 것 자체도 가짜입니다.

참나님의 댓글

참나 작성일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에 의한 노무현 당선자의 불법 선거로 국정원 직원이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10.4 남북 공동 선언을 한 노무현도 가짜 대통령이냐 ?

참나님의 댓글

참나 작성일

우물안 개구리의 한국의 자칭 소장 학자들은 세계 석학에도 끼이지 못한다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가 구 공산권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고

다물흙은 논문 1 편도 쓸 줄 모르는 바보다

참나님의 댓글

참나 작성일

하버드 옥스퍼드 대학등의 싱크 탱크에서는 다물흙의 글은 쓰레기 통에 집어 넣는 휴지 조각에 불과 하다

참나님의 댓글

참나 작성일

엉터리 글로 세상 사람들을 현혹 (선동) 하고

어리석은 이들이

거짓 예언자 (음모론자)들의 주장에 분별력을 잃고

날 뛰는 격이다

이준경님의 댓글

이준경 작성일

림원섭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태권도보급에 큰일을하시는분으로아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국의 현근대사를 섭렵하시고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쓰시는지 존경스럽습니다.

공부많이됩니다.
계속 선생님글 기대되며 연세도 상당하신데 건강유의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드리며.

Lee,Ph.d님의 댓글

Lee,Ph.d 작성일

림원섭 선생님 ~ 한국 현근대사 섭렵 ~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목란꽃님의 댓글

목란꽃 작성일

6 25 한국전쟁은 누구 누구때문에 일어난거냐에 앞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될,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낫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장먼저 생각해봐야 할 문제중의 하나입니다.

다물흙 선생님은 자신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그와 같은 비극이 우리의 후손에게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그 마음으로 글을 쓰시는 거고요.

실제 우리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과 이슈들에 대해 다양하게 탐구하시고, 그러한 이슈를 통해 우리민족이 더 올바른길로 나아갈수 있수 있도록, 생각의 다양한 밑거름들 제시하고 있으신겁니다.

대학원생님의 댓글

대학원생 작성일

알방생들은 한국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해외동포사회에도 알바생들 수두룩합니다. 우리 대학내에도 영사관 심부름하는 학생간부들 많습니다. 총영사관들 마다 국정권 간부가 3명내지 5명 끼어 있어 이들이 공작한다고 합니다. 돈으로 말입니다.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6.25는 동족(민족) 상잔이 절대로 아닙니다.
왜 아닌가를 지가 곧 글을 쓸 것입니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사탄 마귀보다 더 더러운사람들은 바로 친미보수반공주의 먹사들이니라~!!!!! 나도 보수개신교인이지만 교회에 절대적 충성을 강요받는건 오히려 아동학대만큼이나 더 무서운 은밀한 폭력이다~!!!! 공익광고협의회를 동영상으로 보면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행하는 무서운 폭력광고인거 몰랐쥐? 특히 그 해골모양의 푸른색마크 꿈속에서 나타나면 모든사람들이 오줌지릴정도로 무서워 잠도 못잘정도였으니....!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진혁이는 다행히 북녘남자라서 그런거 안보고사니 을마나 좋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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