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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양은식박사와 강은홍목사 8순축하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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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10-13 07:29 조회8,3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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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양은식박사와 강은홍 목사 가족들이 기념촬영하면서 "통일"을 외치고 있다.[민족통신 촬영]


두분의 8순생일잔치에는 재미동포이민사회에 기여해 온 유영영박사와 이창수박사를 포함하여 재미동포전국연합 고문인  현준기선생, 회장인 윤길상목사 등과 강은홍목사 가족들, 양은식박사 가족들이 함께 자리를 같이해 두분의 8순을 축하해 줬다. 이날 행사에 관련된 보도는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장선인기자가 정리하여 이 조직의 홈페지에 올린  내용을 원문 그대로 여기에 소개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LA, 양은식 박사와 강은홍 목사 8순축하행사

70년 다져온 두 통일 원로의 특별한 우정

 

*글: 장선인 기자

 

양은식 박사(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와 강은홍 목사(재미동포전국연합회 종교분과위원장)의 가족들과 운동권 동지들, 그리고 친지들이 11일 오후 6시 퍼시픽팜즈리조트호텔에서 두 분의 80회 생일축하 잔치를 하였다.

 

행사는 김신애 박사의 사회로 김경서 목사의 기도, 강세영과 양태국의 가족대표 인사말, 김상의 박사와 함용호 장로의 축사가 있었다. 이어 윤길상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장의 축배사, 만찬, 두 분의 동영상 감상, 리준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원과 유태영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의 축하편지 소개, 생일케이크 자르기, 노래하기, 양은식 박사와 강은홍 목사의 감사 말씀, 그리고 사진촬영의 순서가 있었다.

 

양은식 박사와 강은홍 목사는 12살에 평양 서성리교회에서 만난 이후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6.25전쟁 때는 손잡고 함께 피난을 갔다. 둘은 이남에서 군대도 같이 가고, 같이 숭실대학을 졸업하고, 또 미국에 와서 통일운동도 함께 하고 있다. 또한, 재미 학자로서 함께 북을 방문하는 등 지금껏 통일의 수레바퀴를 서로 밀고 당기며 조국통일운동에 함께 헌신해왔다. 부인들은 이들 둘을 쌍둥이라고 하고, 자녀들은 이들을 아저씨라고 부른다. 80세의 백발이나 주름도 이들의 70년 우정을 시들게 하지 않았고, 이 특별한 우정은 늘 새롭게 살아나서 지금도 자녀들과 후배들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고 있다.

 

1934년 평양에서 태어난 양 박사는 한국전쟁 때 어머니를 남겨둔 채 홀로 서울에 내려왔다. 그는 미군 부대에서 급사로 일하며 혹독한 고생을 하면서 고학으로 숭실대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도미하여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아시아 현대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UCLA대학에서 가르쳤다.

 

대학 졸업 후 경주문화중학교 교원을 하고 있었을 때 그는 아주 엄격하였지만, 마음이 무척 따뜻했다고 그의 제자였던 함용호 장로가 회고하였다. 언제나 독수리처럼 비상하는 꿈을 가지고 살라는 선생의 가르침은 가난하고 철없는 어린 소년이었던 함 장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하였다. 함장로는 가난한 홀어머니가 가정방문 오신 선생님께 뭘 대접할지 몰라서 홍차를 사다가 봉지채로 넣지 않고 봉지를 뜯어 넣은 차를 대접하였는데 선생은 둥둥 뜨는 찻잎까지 아주 맛있게 드셨다고 회고하였다. 이 일화는 양 박사의 따뜻하고 넉넉한 인품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당시 양 박사는 축구도 잘했고, 영어도 능통하였고, 또 큰 대회도 척척 조직하여 멋지게 치루곤 했다고 회고하였다. 탁월한 능력과 인품을 가졌던 그는 제자들이 제일 닮고 싶어한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선생이었다고 하였다.

 

양 박사는 통일이란 두 글자를 입 밖에 꺼내기만 하여도 간첩으로 모는 무서운 군사독재 시절이던 76년에 모스크바를 통해 북으로 가서 어머니를 만났다. 분단의 고통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느꼈던 그는 그 후 수차레에 걸쳐 남북해외기독자회의를 조직하여 학자들과 동포들의 통일의식을 고취시키며 통일운동을 시작했다. 1984년에는 1982년에 함께 북에 간 학자들(선우학원, 김동수, 최익환, 김기항, 송석중, 양은식 등)과 ‘분단을 뛰어넘어’라는 방문기를 출판하였다. 이는 당시 이남의 대박 작품이 되었으며 이북사람들이 뿔 달린 괴물이라고 생각하던 이남의 동포들에게 이북바로알기운동을 촉발케 하였다. 그리고 이 책은 그동안 금기시되어왔던 통일문제를 공론화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또 87년에 그는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을 결성하였고 이로 인하여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가족을 찾아 북을 방문할 수 있었다. 또 이로써 미주통일운동의 역량을 확보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 후 90년대 초에는 범민련 재미본부 결성을 주도하는 등 그는 미주통일운동의 선구자적 역할로 해외의 통일운동을 계속 이끌어 왔다.

 

양박사는 조국통일은 하늘이 내린 지상명령이라고 믿고 그 앞에 자신의 안정된 삶과 명예를 모두 내려놓았다. 이처럼 용기있는 선구자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들의 통일 운동이 일반 대중으로까지 넓게 확산될 수가 있었다. 그는 선생으로서 학생들 개인의 인생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분단의 두터운 벽에 틈을 내어 40년 간 막혀온 민족의 숨통을 틔어주었다.

 

한편 강은홍 목사는 미국 유니온신학대학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장로교회 목사, 해외 선교사로, 또 교단에서 총무로 일해 왔다. 60년 지인인 김상의 박사는 신학교 졸업 후에 갈 곳이 없어 강 목사에게 전화했더니 그가 당장 버지니아에서 오하이오까지 운전해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지내면서 자동차운전면허를 따도록 운전연습까지 시켜주고 갔다고 회고하였다. 이렇게 그는 언제나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살았다. 또 조국분단이 민족이 겪는 고통의 원인임을 깨닫고 북조국 바로 알기에 앞장섰고 조국통일에 헌신하여 왔다.

 

윤길상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장은 험난한 시기를 살면서 이루어낸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에 생을 바친 두 분의 헌신과 우정을 엄숙히 축하하자는 내용의 축배사를 하였고 모두 축배를 들었다.  

 

양태국과 강제영은 가족들을 대변하여 두 분의 80년 삶에서 보여준 진실성은 자기들 힘의 원천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들이 삶과 인격 속에 녹아있는 우정, 정의, 선행, 희생, 평화, 통일의 정신은 자녀들에게도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으며 두 분이 자신들에게 베푼 사랑과 희생에 감사하였다. 그리고 두 분의 행복을 축원하였다.

 

하객들은 두 분이 일본 식민지, 세계 전쟁, 6.25전쟁, 이민, 등 격변의 시대를 사시느라 참으로 많이 고생하시고 큰 일도 많이 하신 것과 더불어 두 분이 갈고 다듬어서 변치 않고 빛나는 두 분의 특별한 우정을 크게 축하하였다. 그리고 미주이민역사와 조국통일역사에 큰 자취를 남기신 두 분이 더욱 건강하셔서 더 많은 행복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왼쪽부터 서정숙 박사, 양은식 박사, 강은홍 목사, 최매선 여사

 

 

▲축배사하시는 윤길상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장

 

 

▲생일케잌을 자르시는 양은식 박사와 강은홍 목사

 

 

▲가족들과 함께


[기사출처]재미동포전국연합회 홈페지

http://www.kancc.org/bbs/board.php?bo_table=news&wr_id=6258


*관련보도 자료: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6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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