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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33> 재3세계의 눈으로 서구열강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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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3-08-02 09:19 조회23,4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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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은 <연재 33>번째글에서 "부정부패한 한국의 권력자들과 도를 넘어선 타락한 교회들 그리고 손에 정권을 쥐고 스스로 우상화하고 있는 망국적인 꼴들이 너무나 절망스럽다. 하지만 어찌하랴 너무 절망하지 말아야한다. 박근혜 허수아비 정권에게 쩔쩔매고 있는 비겁한 모든 언론들과 방송들이 일절 모르쇠로 외면하고 있지만 이미 학생들과 민중의 촛불은 2 5000을 넘었다..."고 지적한다. 이글 전문을 싣는다. [민족통신 편집실] 
 
 
 
 
<연재 33> 3세계의 눈으로 서구열강을 파헤친다
 
     
어쩌다 이지경에 이르렀는가?
       오늘의 미국, 오늘의 한국 그리고 오늘의 교회
 
 
 
*글: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말하기를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혹시 종교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하느님도 죽었고 마르크스도 죽었으니 우리에게 별 신통한것이 없다라고 했다.
 
철학자의 말이 아니드래도 21세기 오늘 세계는 바야흐로 비관주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역사상 오늘날처럼 미래에 대하여 암담한 전망을 가진 때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2차 세계대전 후 1945년대에 들어서서 서구에서는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자식들을 양육하기 위한 고생을 피하고 자유롭게살겠다고 하는 향락주의적 욕망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식들이 미래에 있어서 제 명대로 살지 못하리라고 하는 엄려 때문이라고 했다.
 
이유야 어쨋던 1945년대에 들어서서 유럽의 백인사회의 인구가 대량 줄어들기 시작한것만은 사실이었다.  유럽인들이 인구감소로 인하여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제3세계에서 노동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3세계의 비백인 이주노동자들이 유럽 국가들의 번영을 위해서 절실히 필요했 던 것이다. 그럼으로 제3세계 이주 노동자들은 유럽에서 예외없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하는 밑바닥에 속하는 운명에 처해 있을 뿐이었다.
 
오늘 유럽 사회에서 이른바 인종차별적인 문명충돌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뿌리 깊은 제3세계 이주 노동자들에대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였으며 백인 정복자들이 낯선 토착민족들과 맞닥뜨렸을 때 유럽인들은 어떻하였는가?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메리카 토착민족들에 대하여 착취하고 노예로 삼을 뿐만 아니라 수족을 절단하는 가혹한 행위들은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다.  
 
미국의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유럽의 개척자들이 서쪽으로는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남쪽으로는 멕시코를 향하여 행진하면서 영웅적이며 긍정적인 방식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거대한 나라를 창건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종교적으로 아메리카 창건은 신의 축복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을 오직 선만을 행하는 나라로 그려저 있다.  히지만 미국의 역사에 대하여 재3세계의 눈으로 옳바로 보고 거짓에 대하여 수정된 시각으로 바로 평가를 하는것은 오늘 이시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1. 유럽 침략자들과 아메리카 토착민의 눈물
 
 
1492년 후부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했을 때 토착민들은 백인들이손에 무기를 들고 출현한 정복자를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유럽인들은 방대한 대륙을 획득하고 토착민들을 수천만 명을 비참하게 살해하고 살아 남은 토착민들을 노예화하여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었다.
 
토착민들은 야만인이기 때문에 혹독히 부려먹어도 아무 죄가 없다고 정당화 했다.
하지만 유럽의 백인들이 아메리카대륙의 토착민들의 영혼을 무참히 짓밟는데  대하여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라스 까싸스(Las Casas)이었다.
 
1547년에 까싸스는 스페인 황제 칼 5세에게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백인들의 비인도적이며 비기독교적인 끔찍한 일들을 자세히 기록하여 상서 했다.
 
까싸스가 황제 칼 5 세에게 상서한 기록을 간추리면 대략 다음과 같다.
<유럽의 백인 정복자들이 그렇게도 비참하게 아메리카 대륙의 순결한 영혼들을 학살하는 것은 오로지 황금을 얻고자함이며 엄청난 부자가 되려고 하는 욕심 때 문이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토착미들이 겸허하고 인내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짐승으로 여기고 수천만 명을 마구 살해하고 있다>
 
까싸스가 상서한 기록에 감동되여 스페인의 황제 칼 5세는 까싸스를 아메리카 인디언의 호민관으로 임명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말인가?  스페인 황제 칼 5세의 보좌관인 쎄뿔베타(Sepulveda)는 까싸스를 모략하여 유럽의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토착민들에 대하여 행한 모든 처사들은 정당하고 옳은것 이라고 황제 칼 5세에게 보고했다.  쎄뿔베타는 다음과   같이 4가지 거짓된 보고문을 작성하여 황제 칼 5세에게 까싸스를 모략하는 글을 올렸다.
 
. 아메리카 토착민들은 야만인이기 때문에 문명인에게 예속되는 것은 당연하다.
. 아메리카 토착민들은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에 자연법을 어기는 범죄자들이다.
. 아메리카 토착민에 의하여 유럽인들이 희생되는 유럽인들의 생명을 구하기위하여 취해지는 모든 행위는 절대로 필요한 개입이며 정당방위를 위한 처사이다.
. 아메리카 토착민에게 기독교 복음화를 촉진하는 목적만 달성하기만 하면 모든 방법은 정당하다.
 
황제 칼 5세는 까싸스를 모략하는 글이 분명한 데도 불구하고 보좌관 쎄뿔베타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처음 까싸스를 아메리카 인디언 호민관으로 임명한것을 철회하고 말었다.  까싸스의 임명이 철회되고 쎄뿔베타의 모략의 글 4 가지조건이 황제의 명령에 의하여 채택됬던 것이다.
 
그 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서 침략과 자본주의적 제도의 구축은 4 가지 원칙하에의하여 확정되였으며 그 확정된 역사는 아메리카 후대에까지 전래 되였던 것이다.
 
쎄뿔베타의 모략의 글 4 가지 조항의 내용들이 그대로 아메리카독립의 기본적인 교리(Doctrine)인 공식정책의 골격으로 채택되였다. 아메리카 독립의 기본교리21세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효하다.  
 
그럼으로 아메리카의 인종차별주의에 관하여 말할것 같으면 1500년대 쎄뿔베타의 모략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미국독립의 역사와 19-20세기를 통틀어 제2차 세계대전 후 1945년 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그대로 연속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역사의 사회적 지식에 있어서 가장 두두러진 점은 미국의 주류사회에 있서서 사회과학이 인종차별문제의 쟁점에 대하여 직접 맞닦드린 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 한 토막이 있다. 부시 대통령이 공화당의 대통령후보자로서 선거운동을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 있었던 이야기 이다.
 
미국의 보수주의 요새적 대학인 밥 존스 대학( Bob Jones University)에서 부시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자로서 선거운동 연설을 했다.  밥 존스 대학은 도대체 어떤 대학인가?  밥 존스 대학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첫째 이 대학은 근본주의적 개신교 대학으로서 로마 캐톨릭 교황을 적그리스도와 악마로 규정하는 대학이다.
 
둘쨰는 이 대학은 남녀 결혼에 있어서 타인종간의 결혼을 절대로 불허하는 인종 주의적 대학이다. 이 두가지 원칙은 이 대학의 절대적인 규칙으로서 놀라움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의 놀라움이 또 유명해 젔다. 그것은 부시 대통령이 훗날에 발언한 변명 때문인데 부시 대통령은 말하기를 <내가 그 대학에 갔을 때 그 대학의 두 가지  규칙에 대하여 반대하는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라고 말 했다.  이 얼마나 흉악한 부시 대통령의 이중인격적인 가소로운 발언인가?
 
미국 주류 사회과학자들이 순진한 민중을 사상의 불구자로 만들어 놓고 있다. 럼으로 민중들 스스로가 자각하여 사회과학자들이 하지 못하는 인중차별주의에 대한 타파운동을 전개하여 인종차별주의를 미국 사회에서 몰아 내야 하겠다.
 
20132 26일에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흑인 소년을 범인으로 오인하고 총격을 가해 사살했다. 흑인 소년을 죽인 살인죄를 범한 짐머먼은 백인이다. 그런데 무죄한 소년을 죽인 살인범에게 배심원들은 15개월만에 무죄를 선언했다.
 
배심원들은 6명 중 5명이 백인들이고 1명이 히스패닉으로 구성되여 있다고 한다. 배심원의 판결은 명확한 인종주의적인 차별적 판결인 것으로 분명히 판명됬다.
 
이로 인하여 <인종차별>항의 시위가 시작되고 있으며 문제는 반드시 크게 확장될 전망이다. 그런데 이게 또 웬말인가? 오바마 대통령은 말하기를 <흑인 소년의죽음은 비극이지만 배심원의 판결은 수용해야 한다>라고 언명했다. 그러면서 또오바마 대통령은 말하기를 <이러한 사고를 기회로 삼아 미국의 총기단속법의 조속한 통과를 강조한다>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흑인들에 대하여 배신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다.
 
오바마가 흑인으로서 대통령이 된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움과 맬컴 엑스의 인종차별철페를 위하여 몫숨을 걸고 투쟁하다 희생당한 그들의 피값으로 인하여 흑인으로서 가히 미국의 대통령이 될수 있었다.
 
그럼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어느 한 순간에 있어서 킹 목사와 맬컴 엑스의 고상한 순교정신의 피값을 소홀히 여겨서는 절대로 않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6 26일에 아프리카 순방에서 세네갈, 탄자니아와 남아공 세 나라를 방문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 케냐에 가지 않고미국으로 돌아 왔다. 수 백년동인 아프리카는 침략과 살해 그리고 노예무역에 대한 한맻인 눈믈이 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리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저버리고 그냥 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케냐의 부통령은 공개적으로 오바마의 행동에 대하여 실망하여 불평을 터뜨렸다. 
 
오바마 대통령이 왜 그랬을까?  누구나 다 알수 있는 판단은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들의 <눈치의 노예>가 되고 있는 흑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백인들에 대한 눈치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혈연의 친척식구들이 학수고대하고 기다리고 있는 조상의 고향을 정정당당하게 방문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그냥 돌아오고 말었다.
 
무죄한 흑인 소년을 살해한 백인 살인범에 대하여 백인 배심원들이 무죄판결을 내린것에 대하여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 말을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백인 배심원들의 인종주의적 판결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백인들이 주인이 되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된 흑인 오바마는 백인들의 <노예 대통령>이 되고 있음
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6 26일에 아프리카순방 길에서 케냐를 제외한데 대하여 케냐 민중들은 분노하여 오바마가 자기 조상의 나라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세계 언론 들은 이것을 크게 보도했다.  케냐 부통령도 오바마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여말하기를 <오바마의 아프리카에 대한 태도는 문제가 있다> 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오바마 대통령 개인에 대한 평가인 동시에 또한 미국이 오바마를 인질로 붇들어매고 있는 제국주의에 대한 평가와 불평이라고 볼 수 있다.
 
백인들의 눈치 때문에 아프리카 순방길에서 자기 아버지의 나라 케냐의 이웃 나라들의 옆을 뱅뱅 돌면서도 감히 찾아 가지를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적인 업무로 인하여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한다한들 그 누가 믿을까?
 
백인들의 <눈치의 노예>가 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역대 전직 벡인 대통령들 보다 근본적으로 조금도 변함이 없다.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엄 촘스키의 말이 생각난다.  촘스키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자가 낙선되고 민주당의 오바마가 당선된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미국의 대통령은 누가 당선된들 미국의 세계지배 야욕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라는 강대국은 세계에서 이윤획득만을 추구하는 지배체제하에서 변화는 없을 것이다>라고 오바마 대통령 당선에 대하여 논평했다.
 
중동에서 오바마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정책에 있어서 부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기 때문에오바마에 대한 평가는 추락하고 있다.   중동에서 대표적인 친미국가인 요르단에서조차도 오바마에 대한 호감도는 22%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오바마에 대한 불신임의 원인은 오바마가 진정한 의미의 변혁의 이미지를 중동의 민중들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중동의 나라들 중에서 에집트를 비롯하여 모든 나라들에서 반미적 내란과 폭동이 계속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오직 미국은 끝없이 이윤과 패권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어산지와 스노든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이 아직도 고질적인 세계정복의 야욕의 덫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가문>을 향하여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고 언론들이 크게 보도 했다. 오버마 대통령은 전날에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을 극찬한 기사가 있었고 오바마는 다음으로 아버지 부시(89)를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융승한 대접을 제공했다.
 
오바마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 말하기를 <미국은 당신 덕분에 친절하고 더 너그러운 나라가 됬다>라고 어처구니 없는 아부의 말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이 된것을 <부시가문>의 친절과 너그러움 때문이라고 아부하는 말을 했으니 제3세계는 미국의 흑인 대통령에게 바랄것은 오직 허망뿐이라고 말하게 됬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백인우월주의적 패권을 의지하여 통치하려고 별의 별 수단을 다 쓴다 할지라도 오바마 대통령은 실패를 향해 점점 더 깊숙히 빠저들뿐 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UN의 이름을 이용하여 조선에 대한 제재를 남발하고 있다. 지만 미국의 제재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것을 조선은 분명히 선언했다. 지금까지 미국은 세계를 향하여 방대한 공중무력의 천하무적 강국이라고 과시해 왔다.
 
하지만 오늘 조선이 구축한 세계 최강의 6중 공중방벽 앞에서 미국은 사실상으로 무력화 되고 말았다.  조선의 핵융화 전자폭탄은 경량화, 소형화되여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지구상 그 어느 곳 이던지 선제타격을 하여 분쇠할 수 있게 됬다.  그럼으로 미국은 함부로 대북제재를 말할 수 없게 됬다.
 
미국의 상투적인 군사적 압박, 봉쇄와 제재 그리고 전쟁의 위협에 대하여 조선은 그저 할테면 해보라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조선의 메시지이다. 미국이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미국이 달리 선택의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 알아야 한다. 미국은 하루 속히 기만적인 휴전헙정을 포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깨끗이 조선반도에서 떠나가야할 운명에 처해 있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백인우월주의 정치의 노예가 되여 불가능한 대북적대정책에 매달리고 있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정해진 임기도 제대로 다 채우지 못하고 미국은 불바다속에서 역사의 끝을 맺개 될 것이다.   미국이 어쩌다 이지경에 이르렀는가 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후회와 한탄을 한들 그 때는 이미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2. 오늘 한국이 어쩌다 이지경에 이르렀는가?
 
 
오늘 한국의 기득권 사회는 민족문제에 대하여 잔인할 만큼 무관심해 젔고 비겁할 만큼 모르는척 하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인하여 얼마간 흐뭇한 마음으로 민족문제에 대하여, 물론 외세의 끝침없는 방해공작은 있었지만 대체로 한국인들은 성숙한 민족문제에 대한 역사의식을 나타내 보였다.
 
그런데 오늘 한국은 역사상 일찌기 없었던 전직과 현직 대통령들 모두에게서 발견되고 있는 천문학적인 비자금 문제가 터저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한국인의 자존심이 정치적 한파에 의하여 비극적인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게다가 이 땅의 인권신장을 위하여 온 몸으로 헌신하며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위하여 평생을 뛰다시피 살아오고 있는 순수한 민족운동가들을 국가보안법으로 마구잡이 구속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 박근혜 정권하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의 현실은 분단된 민족의 후진성을 세계만방에 알려지는 민족의 수치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침략과 잔인성을 세계에 폭로하는 것이 되기도 하다.
 
한국이 이런식으로 가다간 더 큰 망국적인 운명에 처하게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민족적으로 벼랑에 떨어진 부끄러움이며 도대체 어찌하다 분단 68년에 이르는 오늘 이 지경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외세를 의존하는 망국적인 기득권 세력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민족통일의 길을 이제라도 더 늦추지말고 민중운동을 적극적으로 책임성 있게 추진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2013 8 15일에 <8.15 10만 촛불>운동을 통합진보당이 결의했다고 한다. 라기는 시민단체들, 진보연대와 참여연대를 비롯한 200여개의 모든 조직단체가총동원하여 민족의 운명을 강탈하고 있는 이명박근혜로 연결된 정권을 심판하는민족적이며 획기적인 거사가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고 새누리당의<도우미>역할을 하고 있다고 민중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김한길 민주당 총재도 이번 <8.15 10만 촛불>행사에 적극 동참하여 추락된 민주당의 이미지를 완전히 회복하는 희생의 기회로 삼기를 해외 동포들은 간절히 바란다.  만일 민주당이 이번 획기적인 기회를 외면하고 민중들에게 또 다시 실망을 안겨 준다면 그 때 민주당은 완전히<맛잃은 소금>이 되여 민중의 버림을 받을것 이다.
 
다음은 박정희 대통령의 군부독재정권의 불행한 시대로 부터 오늘에 이르는 수 십년 동안 역사상 최대의 불행한 사건들이 계속하여 터지고 있는데 대하여 간추린 기록들을 살펴본다. 폭로를 위한 폭로가 아니라 이런식으로 가다간 분명히 닥처오게될 민족의 망국적인 운명에대하여 크게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 박정회 군부 쿠테타와 유신정권에 대하여 (1963-1979)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는 청와대시절에 200여명 미인형 연예인 여성들을 청와대로 강제로 끌어다가 매일 밤을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대선에 출마하여 선거운동 연설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을 했다. <우리 나라에서 성범죄자들에게 전자팔지를 끼우고 또 사형제도를 강력히 추진
하겠다> 박정희가 저지른 성범죄 대상이된 200여명에 대한 사건을 망각한 박근혜의 연설이었다. 그런데 200명이라는 수는 단지 청와대 내부의 관련된 비서관의 수첩에서 발견된것 뿐이고 그 외에 엄청 난 수의 더 많은 여성들이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 집권당시 비밀로 매일밤 청와대에 강제로 끌여가 욕을 당한 젊은 여성의 수는 이루 다 헤아라릴 수 없다고 한다.
 
문제는 그 때 당시 청와대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던 박근헤(25-27)는 젊은 여성으로서 또 아버지의 딸로서 아버지의 몹쓸 짓이 계속되고 있는데 대하여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한 박근혜가 어떻게 선거운동 연설에서 감히 <성범좌자>에 대한 연설을 뻔뻔스럽게 할 수 있었을까?
 
박정희의 여성 탈취에 대하여 꼭 한가지 이야기를 해야겠다. 1950년대에 있어서 한국의 미모로 유명한 영화 배우 김xx가 있었다.  그녀는 결혼하여 첫 아들까지 얻은 행복한 가정주부 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작이 비극의 운명이 그 녀에게 닥쳐왔다. 청와대에서 20분후에 집에서 출발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각하의 부르심으로 청와대로 모셔오라는 명령입니다> 청와대 비서는 검은 차에 그 녀를 태우고 남편과 아들에게 말 한마디도 할 수 있는 기회도 없이 집을 떠나야 했다.  그후부터 그녀는 남편과 아들에게 딴세상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후 그녀는 박정희에 의하여 강제로 미국인 노인과 결혼하여 미국에 와서 살면서 평생동안 성범죄 악몽에 시달리면서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 전두환의 비자금은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가능한 사건이다.
 
전두환의 범죄에 대하여 언론들이 자세히 보도를 했기때문에 여여서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음 3 가지 매우 중요한 요점을 간추려서기록한다.
 
(1) 1996 4월에 밣혀진 기사에 의하면 전두환의 비자금으로 1만원권 현찰이  가득히 들어 있는 과일 상자 25개를 찾아 냈다. 그런데 전두환 비자금의 총규모 1조원에서 450만원이 부족한 거액으로 밝혀젔다.
 
(2) 전두환의 직게가족들이 비자금 관리에 연결된 건수는 총 28건으로 밝혀젔다.
특히 전두환의 세 아들과 전두환 동생 전경환이 조성한 비자금도 역시 천문학적 수의 막대한 돈이지만 전경환은 사기죄로 5년 감옥살이 선고를 받은 후에 단 2개월만에 형집행 정지로 사면되여 출옥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또 있겠는?  그는 1975년에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있을때 박근혜를 경호했다고 한다.   
 
(3) 1997년에 검찰은 전두환의 비자금이 9,500억원 이라고 발표를 하면서 추징금으로 2,205억을 명령했다. 이것은 분명히 검찰의 <솜방망이> 판결이었다. 지만 전두환은 이와 같은 솜방망이 판결임에도 불구하고 아지까지 추징금을 완전히 국가에 지불하지 않고 있다.
 
오늘 박근혜 정권은 전두환의 숨겨놓은 비자금에 대하여 소리만 요란스럽게 언론들을 동원하여 연극을 꾸미고 있을 뿐이다.  사실적인 내용은 오히려 전두환의 신변을 보호해 주기 위한 정치적 쑈에 불과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10.26 사태후에 전두환이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 비밀금고에서 9억원을 발견하였는데 그 중에서 6억원을 박근혜에게 나누어준 인연이 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박근혜 정권은 민심을 오도하기 위하여 언론에 소리만 요란하게 낼뿐 전두환에 대하여 결코 실질적 처벌은 하지않으려는 기만적 수단이다.
 
노태우가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내여 그곳에서 편히 쉬도록 연극를 연출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박근혜 정권이 검찰 자동차들을 동원하여 전두환의 집과 아들의 집에서 귀중품들을 몰수하 붉은 딱지른 부치는 연극을 벌리고 신문에 요란스럽게 보도하고 있다.  이것은 전두환에 대하여 이제라도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하기 위한 법적인 절차를 위한 처사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국민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언론을 통한 정치적인  고등 수단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권의 권위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순진한 민중들을 또 다시 기만하면서 전두환 비자금 문제를 이용하여 정치적인 쇼를 연출하고 있는것 뿐이다.  
 
사람들이 신문을 모두 다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문맹>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있다. 하지만 신문기사를 읽을 뿐만아니라 기사 안에 깊이 숨겨저 있는 내용을 정확하게 꿰뚤어 보지못하면 <지성의 문맹>이될 수 밖에 없다. <문맹>은 아니지만 <지맹>이 되고 있는 것은 사회적 뿐만 아니라 민족적으로 더욱 불행한 것이다.
 
        . 이명박의 거짓말 정치
 
노태우가 <도둑놈>이라면 이명박은 <토막살인범>이라고 역사학자 J씨는 말했다.
 
     (1) BBK사건은 <이명박> <에리카 김> <김경준> 3 인들 사이에서 BBK 주가조작 사건과 Lke 사이비 종합 금융회사를 설립한 사건들로 인하여 발생한 총 600억원에 이르는 투자사기 사건인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2001 12월에 김경준이 360억원을 횡령한 후에 미국으로 도피한 후에 체포되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600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사기 사건에 대하여 이명박은 <나는 전혀 모르고 있으며 BBKLke에 대하여 아무 관련 없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1 5월에 작성된 Lke 은행의 청산문서에는 분명히
이명박 이름이 인쇄되 있으며 또 2001 7월에 발행한 한 세금계산서에 여전히 이명박 이름이 대표자로 되여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도깨비식 관계>이었다. 2007 10월에 이명박은 대선에 대통령 후보자로 선거운동을 하는 도중에 미국에서 재판중인 김경준에 대하여 한국소환을 요구했다. 미국은 yes, no를 몇번 반복 하더니 결국 2007 11 16일에 미국의 승인을 받고 재판중에 있던 김경준은 한국에 입국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의 검사들은 모두 다 친미적인 우파에 속하는 검사들이였다. 그리하여 2007 12 7일에 김경준에게 무죄를 선언했다. 변호사와 검찰은 이명박이BBK Lke에 대하여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
 
검찰의 발표로 인하여 이명박은 선거운동에서 유리하게 득세하여 2007 12 19일에 있은 대통령 선거에서 정동영과 이회창을 물리치고 당선됬던 것이다.
 
BBK 사기 사건을 간략하게 총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1999 4월에 BBK 투자자문사를 창설하고 2000 2월에 이명박-김경준 공동으로 Lke 은행을 설립했다. 그리고 2000 3-12월에 이명박의 형 이상은씨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다스>의 명의로 190억원을 BBK에 투자를 했다그런데 BBK 운영에 있어서 허위사실이 보고되어 한국 금융감독원이 BBK 동록
을 취소했다.   2001 12월에 김경준은 384억원을 횡령하고 미국으로 도피했다. 2003 5월에 김경준은 미국 연방경찰에 체포되여 LA 감옥에 수감됬다.  수감되여 있는 김경준은 재판과정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은 대통령 후보자로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수감되어 재판중에 있는 김경준의 한국소환을 미국에 요구했으며 미국은 이명박의 요청을 받아들여 김경준은 대통령 선거일 바로 1개월 전에 가석방되여 한국에 급하게입국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그리고 한국 검찰은 김경준과 이명박이 BBK, Lke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역시 이변적인 놀라운 발표를 했다. 그리하여 이명박은 대통령에 당선됬던 것이다.
 
오늘 한국의 검찰들은 정권에 어용되여 있으면서 흑백을 가리지 못하는 색맹의 법관들이 되고 있다.  국민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불의한 정권을 옹호하는 검찰들이 되고 있다.
 
재미동포 미국 변호사인 메리 리 변호사는 BBK와 관련된 미국 내 소송을 담당해 왔는데 지난 8년간 BBK 피해자들을 위하여 미국 내 소송을 담당 했다.  리 변호사는 최근에 BBK 사기 사건과 관련된 책 <이명박과 에리카 김을 말한다> 라는책을 출판했다. 리 변호사는 책 제목에 두 사람의 이름을 밝힌 이유에 대하여 말
하기를 BBK 사건의 핵심은 바로 이 두 사람이 깊이 관련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리 변호사는 또 말하기를 <그동안 망설여왔지만, 이제는 때가 된것 같아 역사에 진실을 남겨야한다는 생각으로 기록했다>고 말했다.
 
      (2) 이명박은 4대강 사기 사건으로 나라를 절딴내고 있다.
이명박은 처음에 <대운하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반대로 인하여 철회하고 4대강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은 추진하는 과정에서 설계와 시공, 건설회사들의 입찰과 주요계약 진행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과 사기로 의혹이 태산처럼 쌓여 있었다.   국민을 속이는 큰 사기극 이었다.
 
이명박은 대운하 건설의 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4대강 건설규모보다 3배를 늘리는 설계와 16개의 대형보를 설치하는 쪽으로 건설규모를 극비리에 추진했다.
 
이명박은 국토부에 대운하 건설의 암시로 제시했으며 대운하 건설을 위하여 사전에 현대건설, 대우건설,삼성물산, 대림산업등과의 컨소시엄을 그대로 4대강 사업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서 낙찰은 사전에 미리 협의한 것으로 감사원의 감사에 들어났다. 
 
4대강 사업에 참여한 건설회사들은 비밀회합을 통하여 2011년까지 준공하기 위하여 4 1천억원 규모를 채우는 담합을 했으며 이명박 정부는 사실상 방조했다.  이와같은 4대강 건설의 결과로 인하여 발생하는 관리비용은 연간 1조원 이상이 될것 이라고 시민단체들은 추산하고 있다.
 
공정위는 입찰의 부정과 담합사건에 대한 처리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의 눈치보기로 인하여 처리한것은 전혀 없고 뒤로 미루기만 했다. 감사원은 대기업들에 대하 <들러리 입찰>등 가격담합 정황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위에 통고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서 이명박의 4대강 비리에 대한 처벌은 아무것도 이루어 진것이 없었다.
 
그럼으로 이명박 정권의 모든것은 공작정치로 시종을 마감한것 뿐이었다.
 
수십조원의 사업비가 들어간 4대강 사업의 결과는 어떻한가?  국민들이 그토록 반대해도 강행한 4대강 사업은 한마디로 낙동강 700리의 물이 썩고 있다는 사실이.  항공사진이 보여주는 낙동강의 모양은 물빛이 녹색으로 변했고 나무들은 거의 대부분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부산시민운동본부는 주장하기를 4대강 사업이 대국민 사기극인것이 밝혀진 지금분노와 함께 책임자 처벌을 위하여 박근혜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진상조사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하여 국정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본부는 낙동강 복원을 위하여 범국민적 투쟁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산본부는 주장하기를 수문을 상시적으로 개방하는 것과 장기적으로 낙동강 복원을 위하여 보 시설을 철거하는 길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박근혜의 국정원 <모르쇠> 꼼수정치
 
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어떻게 선거에 당선되여 대통령이 됬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한국 역사에서 뿌리 깊은 국정원의 적극적인 비밀개입으로 인하여 태어나지 말아야할 <귀태>가 삐져 나왔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과 그리고 국정원이 발끈해 야단치는 이유는 그들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아무리 미국과 중국을 찾아가 기만정권을 가장하여 걷치레 외교적 전술을 편다해도 임이 국정원 공작 부정선거 <한국 국정원 새누리스크> 대한 정보는 UN을 통하여 전세계에 임이 알려저 있다.
 
박근혜 <귀태정권>에게는 태생적으로 두 가지 근본적 과제가 부과되여 있다. 째는 이명박 정권의 부정과 사기극에 대하여 꼬리 자르기 식으로 감추려는 꼼수정치를 하지말아야 한다. 4대강 4년동안에 22조라는 천문학적 국민의 혈세가 이명박과 결탁한 토건재벌들에게 들어간 사기극을 박근혜는 모든것을 알면서도 눈감고 모르쇠 꼼수 정치로 일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른바 <박근혜 게이트>에 대하여 명확히 처리하여 국민들의 의혹을 풀어 주고 국민들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국민들은 임이 박동원과 원세훈등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과 TK 핵심들이 NLL관련된 국가기밀을 이용하여 대통령 선거에 직접 관여하였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침묵만 유지하고 뻔뻔스러운 행태만 보인다면 궁국적으로 국회는 장외투쟁으로 나올것이며 민중적 촛불시위는 불가피하게 전국적으로 확산될것이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으로 민족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유신정권의 허물과 전두환  비자금 사건 그리고 이명박의 BBK 4대강 사기극등 쌓이고 또 쌓여 있는 수치스러운 민족의 명예훼손에 대하여 마땅한 대응책으로 결단을 내리고 <민족적 회개운동>과 새로운 민족적 혁신적인 전망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러한 유일한 민족의 삶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여전히 구태의연한 꼼수에 매달리고 미국을 의지하여 살길을 찾으려고 망국적인 매국행위와 반통일 정책에만 매달리고 있다면 그 후에 닥쳐올 총체적인 재난과 화를 자처하게 될것이 확실하며 다른 방법이 없게될 것이다.
 
               
   3.한국 교회는 어쩌다 이지경에 이르렀나?
 
 
 
박근혜 대통령은 20013 3 19일에 종교지도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화려한 오찬을 제공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초청한 기독교 목사들은 한국의 기독교의 공식 대표단체인 <한국교회협의회,NCC>가 아니었다.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초청한 기독교 단체는 도대체 어떤 단체인가? 
그것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했던 것이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한국교회 협의회, NCC>는 한국 교회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공인하는 유일한 조직단체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NCC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초청하지않았다.
 
어찌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한기총>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을 했을가?
우선 간략한 대답을 시도하면서 <한기총>에 대하여 조직의 내막을 알아 본다.
 
<한기총>에는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인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를 비롯하여 한국의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초대형 교회들 대부분이 <한기총>에 속해 있다. 뿐만 아니라 의문의 사람인 최태민 목사가 <한기총>의 중심에서 활약한 역사가 있다. 
 
이와 같이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 교회의 정체성에 대하여 사이비 론란을 이르키고 있는 집단이 바로 <한기총>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하필이면 어찌하여 이러한 사이비 기독교 단체의 대표자들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을 했을가? 청와대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담화 내용은 <북한의 핵위협과 대북강경정책>을 거듭 천명하는 담화가 있었다고 한다.
 
오늘 현재 <한기총>에 가입교단은 보수주의 일색의 69교단이 가입되여 있으며교단이 아니면서 가입된 기독교 보수주의적 단체들은 18개 단체가 있다.  그러면 <한기총>은 어떻게 창설된 단체인가?
 
<한기총>이 창립된 기원은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창설됬다.  박정희 정권의 삼선개헌을 지지하는 보수주의 교회들의 결집이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었다. 
 
그때 당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반공주의를 유일한 정권의 정치노선으로 삼고 있었다.  북한의 적화통일의 야욕을 방지하고 기독교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박정희 군사정권을 위하여 기독교는 단합하여 기도해야한다고 주장히는 목사들이 많이 있었다.  
 
김종필 국무총리는 이와 같은 보수주의 기독교 목사들을 포섭하여 정치적인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그리하여<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김종필의 주도와 후원하에서 창설됬던 것이다.  
 
<한기총>의 기본 요소는 창립초기부터 반공주의와 반통일주의적 보수주의 신앙 노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운영 내부에 있어서는 신앙문제 보다는 오히려 재정부정문제, 교단간의 분규, 일부 목사들의 개인적인 정권과의 지나친 밀착 문제 등으로 인하여 <한기총>은 처음부터 주도권 분쟁적인 조직이 되고 말았다.
 
그럼으로 초장기 부터 한편에서는 <한기총> 탈퇴운동이 끝임 없이 대두되고 있었다.  한 예를 들어 말하자면 최근에 장로교 통합측, 일명 영락교회측  또는 광나루 신학교측에서 <한기총>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한기총>에 대하여 너무나도 많은 복잡한 사연들이 있는것을 숨길 수없게 됬다. 되도록 간추려서 설명을 시도하면서 한국 기독교가 어쩌다 이지경에 까지 이르렀는가를 살펴 본다.
 
            . <한기총> 장로교 합동측 교단의 2012년 총회에 가스총 등장
 
<한기총>에 속해 있는 <장로교 합동측> 교회의 2012년 전국 총회에서 총회장선거가 있었는데 총회가 두 편으로 갈라저서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2012년 총회에서 회의를 진행하는 총무 A목사는 반대편의 공격에 위협을 느겨 <가스총>을 손에 들고 총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총회장소인 교회 주변에 <용역 일꾼>들을 배치해 놓고 총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선출된 B목사에 대한 인신공격도 도를 넘고 있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B목사는 교단 관계자 목사들과 동행하여 여성도우미가 있는 노래방과 노래주점에 출입했다는 의혹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총회장 선출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소란을 이르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지게 되자 선거에 당선된 신임 총회장 B목사는 강압적인 방법으로 재빠르게 총희의 페회를 선언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장로교 합동측 교단은 올해가 교단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총회이기도 하였다.  교단창립의100주년 기념총회는 혼란과 부정과 죄악으로 차고넘치는 총회였다.
 
그럼으로 순진한 교인들은 비명의 한숨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합동측 교단에 소속해 있는 교회 수는 전국적으로 수천 교회들을 보유하고 있음으로 <한기총>에서 가장 큰 유력한 교단이라는 사실이다.
 
             . 이름 7, 부인 6, 승려출신 최태민 목사
 
한때 <한기총>에서 실세역할을 하고 있던 문제의 최태민 목사 (1912-1994)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최태민은 일제 때 황해도에서 일본에 충성하기로 유명한 경찰이었다. 해방전 그의 이름은 최상훈이었다  1951년에는 이름을 최봉수로 바꾸고 1954년에 김 모 여인과 동거를 했다. 하지만 최봉수는 아내인 김 모 여인이 간통죄로 고소함으로 도망하여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최봉수는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됬다. 승려가 되어 이름을 최퇴운으로 또 바꾸었었다. 그리고 1955년에는 옛날 부인 임 여인과 재결합 하였다. 그런데 임 여인은 최퇴운의 5번째 부인이라고 한다.
 
1963년에는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이 됬으며 2년후에는 천일창고회사 사장이 됬는데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구속됬으나 도망하여 도피생활을 하면서 이름을 또다시 바꾸어 이번에는 공해남 이라는 사람이 됬다. 이름을 공해남으로 바꾼 후에그는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천주교 영세를 받았다.
 
종교 가라타기 명수가된 공해남은 아예 종교를 만들기 위하여 계룡산에 들어 갔.  공해남은 계룡산에서 사이비 종교인 <영세계>를 창립하여 교주가 됬는데 그의 이름은 교주 최퇴운이 되였다.  최퇴운 교주는 서울 대전등 도시로 돌아다니면서 교주행세를 하여 많은 종교사기 행각을 했다. 그다음에 최퇴운은 영생교의
교주가 됬다.
 
이제 마지막으로 최퇴운이라는 이름을 또 다시 바꾸어 최태민이 됬다.
 
 
박근혜와 최태민 두 사람의 처음 만남이 시작된것은 1975 3 6일 이었다. 
육영수가 총탄에 쓰러진 기회를 이용하여 최태민은 목사로 둔갑하여 박근혜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위기소침해 있던 박근혜에게 날아 들어온 최태민 목사의 편지는 큰 위로가 됬다.
 
최태민 목사의 편지내용이 그 때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에 의하여 밝혀젔다.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나에게 여러가지를 알려주었다. 육여사는 사망한 것이 아니라 딸 박근혜를 위하여 자리를 비껴준 것이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딸이 한국의 지도자가 될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함인데 근혜는 우매해서 이런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나 대신 근혜에게 전달을 해달라>
 
이러한 편지를 받은 박근헤는 최태민 목사를 <현몽계시자>로 여기고 사람을 시켜 최태민 목사를 청와대로 1975 3 6일에 처음 초청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최태민을 목사로 안수한 교단이나 교회가 도대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신학교를 다닌 기록도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도 받은 기록이 없다.  월간중앙 (1993/11월호)의 기사는 <목사직을 돈 주고 샀다>라는 기사를 발표하기는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최태민 목사의 신학교 교육이나 교회봉사기록 같은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최태민 목사에 대한 개인적인 삶의 기록들은 경찰과 법원에 정확히 나타나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범죄행위 44, 횡령 14, 사기 1, 변호사법위반 11, 권력형비리 13, 이권개입 2, 불법융자간여 3, 성추문과 폭행 사건들은 수 없이 많이 있다고 한다.
 
최태민은 부인 6명에서 9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그가 죽을 때 자녀들에게 수백억원의 유산을 남겨주었다고 한다.
 
최태민 목사가 1975 3월에 청와대에 처음 들어간 날부터 그가 1994년에 사망할 때까지 19년동안 최태민의 삶은 화려하고 멋진 삶이었다. 유명한 종교인으로, 무소부재의 사회사업가로 또 막강한 정치적 권력을 등에 업고 최대의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최태민 목사가 획득한 직책에 대하여 대표적인 직책 몇개만을 소개한다.
 
대한구국봉사단, 구국선교단, 구국기도회,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을 봉사단, 새마을 종합병원, 정수장학회 등 수없이 많은 단체를 조직하여 최태민과 박근혜는 서로 교대하며 회장, 이사장, 고문등의 직책을 계속하여 교대로 맡고 있었다.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최태민의 비행을 여러번 보고 했다. 박정희는 딸 박근혜를 불러다 놓고 사실을 추궁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아버지를 설득시켜 김재규의 보고를 묵인하고 모든것이 최태민에게 유리하게 처리 됬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최태민 목사는 강원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1 6개월 형을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는 청와대에 찾아가 전두환에게 부탁하여 최태민 구명운동을 하여 1년만에 삼쳥교육대에서 석방됬다.  그런데 박근혜는 박지만이 마약 복용으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한번도 감옥에 있는 동생을 찾아가지 않었다.
 
최태민 목사에게 6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5번째 딸의 이름이 최순실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최순실의 남편이며,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희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하여 귀중한 책임을 맏길 뿐만 아니라 정계에 입문시켜 정치인이 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와의 정수장학회 사건에 있어서 얼키고 있는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들에 대하여는 지면상 제한으로 여기서 끝인다.
 
하지만 최태민 목사가 <한기총>에 끼친 영향과 활동에 대한 평가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오늘도 <한기총>이 박근혜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도 <한기총>의 회장인 홍재철 목사 (부천 경서교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면접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여 정치적인 안전을 약속해 주었으며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이 <한기총>을 위하여 정치적인 지원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 한국 대형교회 목사들의 호화로운 생활에 문제 있다.
 
오늘 한국 대형교회 목사들의 호화로운 생활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이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의 비도덕적이며 비종교적며 비신앙적인 죄악들이 언론에 끝임 없이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이른바 대형교회란 도대체 어떤 교회들인가?  
 
대형교회는 건물과 부동산 소유가 수백, 천억원이고 교인 수가 수만명이고 1년 예산이 수십억원이 되기만 하면 대형교회라고 부른다.  오늘 한국에는 이와 같은 대형교회가 서울을 비롯하여 도시마다 굉장히 많이 있다.
 
대표적인 대형교회로 유명한 3개 교회를 알아 본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누리고있는 호화로운 부귀영화는 대형재벌회장이 누리는 것과 다를바없다고 한다.
 
              (1)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은퇴 목사
 
조용기 목사는 골프 연습장이 달린 고급 빌라 두채를 소유하고 그곳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목사로서 한 채는 면세헤택을 받고 있다. 조용기 목사가 순복음 교회에 내는 십일조 헌금을 근거로 하여 1년 수입을 추정하면 2007년의 예로 11억 원에 달한다고 했다.
 
조용기 목사는 교인들에게 영혼축복을 주장하기로 유명한 목사인데 조용기 목사가 하는짓은 교인들의 땀과 피를 착취하여 자기자신의 바밸탑을 높히 쌓고 있다.
 
조용기 목사는 오늘 현재 서을중앙지방법원에 배임탈세와 영산기독교문화원 주식 사기 사건등으로 인하여 재판중에 있다.  순복음 교회는 조용기 목사가 주식사기로 교회측에 157 3800만 원의 손실을 끼첬다고 조용기 목사를 2013 6월에 불구속 기소를 했다. 조용기 목사는 재판에 출석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조용기 목사의 큰아들 조희준도 주식거래에 대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8 26에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조희준은 2005년에 횡령죄로 집행 3, 집행유 5벌금 50억 원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으며, 아버지의 지시로 해외에서 오래동안 도피생활은 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조용기 목사의 큰아들인 조희준이 최근에 양심선언을 발표했다. 조희준의 양심선언은 조용기 목사의 가족에게는 물론이고 순복음 교회와 한국의 보수주의 교회들에게 끼친 영향은 핵무기 폭탄투하와 같은 거대한 파괴력을 나타내고 있다.  지면상 제한으로 조용기 목사의 큰아들 조희준의 양심선언을 간추려 기록한다.
 
<나의 아버지 조용기 목사는 단순한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고 국민일보를 비롯하여 다수의 법인조직을 세우고 친인척들을 요직에 세워 모든 해당업체들을 현재까지 장악하고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 이다. 아버지와 나는 부자관계 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재벌의 총수이며 나는 계열사의 사장에 불과하다>
 
 
<내가 2005년에 해외로 도피할 때 아버지는 나에게 말하기를 해외에 나가 한국의 정권이 바뀔때까지 기다리면서 놀고 먹어라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말 그 대로 10년동안 외국에서 패륜아가 되여 참고 살고있었다>
 
이와같은 조용기 목사의 큰아들 조희준의 양심선언은 어느 소설을 읽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조희준의 양심선언은 오늘 한국 대표적인 순복음 교회에서  터져나온 실화이다. 또한 이것은 오늘 한국의 보수주의 교회들의 내막을 말해 준다.
 
이것은 8.15 해방후 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한국 교회는 친미적이며, 반민족적이며, 반사회적이며, 내세지향적인 속임수 복음주의 교회들이 만사가 상업적으로 타락한 <회칠한 무덤> 같은 교회들이 되고 있음을 드디어 밝혀 폭로해주고 있는 것이다.   
 
반공을 무조건으로 주장하고 있는 독재정권에 대하여 한국 교회는 yes, no를 옳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교회가 오하려 정권에 종속되여 이권에만 눈이 어두어진 타락한 교회들이 되고 말았다.  입으로는 순복음 찬송가를 열심히 부르짖으면서 마음속으로는 가짜복음을 추종하고 있는 상업적인 대형교회들이 오늘 한국의 기독교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2) 이명박 장로의 소망교회는 어떻한가?
 
소망교희 곽선희 목사가 타고 다니는 차는 벤틀리 외제 최고로 비싼차로 한국에 15대밖에 없는 희귀한 차이다.  곽선희 목사는 강남에 있는 30억 원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다.
 
곽선희 목사는 이명박을 장로 세운 교회의 목사로서 그의 설교는 반공주의 일변도와 자본주의 기득권자들이 듣기에 기분좋은 설교로 유명하다.  기득권자들이 주일 오전에는 교회에 나와서 영혼의 축복을 받고 오후에는 골프장에서 육신의 행복을 누리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복음의 김밥>을 주일아침 11시예배때 마다 제공해 주는 목회자로 유명하다.  오즉하면 <고소영> 이라고 하는 <>자가 중간에 끼어 있겠는가?
 
곽선희 목사는 소망교회 은퇴목사인데도 1년에 1 5000만 원을 받고 있다고 한.  강남 역삼동에 직원이 딸린 사무실까지 교회에서 제공해 주고 있다.  곽선희 목사가 지나친 호화로은 대접을 받고 있는데 대하여 소망교회를 비판하는 소리들이  있다. 하지만 곽선희 목사는 말하기를 <교인들이 선물로 주는것 뿐이다. 교인들이 다 바보가 아니다> 곽선희 목사는 성공한 목사라고 자처하고 있지만 <바보들이 천국에 갈 수 있고, 바보가 아닌 사람들은 지옥에 빠진다>라는 사실을 모르고 목회를한 모양이다.
 
         (3) 친일파 김활란의 이름을 붙인<금란교회>와 김홍도 목사
 
1958 11월에 양주군 망우리 금란동산에서 천막교회를 창립한것이 오늘의 대형교회인 금란교회가 됬다. 김활란이 어찌하여 1958년에 교회를 창립했을가?
 
김활란은 한국 여성으로 첫 여성 박사학위를 받은 선구자적 인물로 알려젔다. 지만 어찌하여 오늘 이화대학에 우뚝 서있는 김활란의 동상철거 운동이 거세게 계속히여 일어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
 
김활란은 일제시대에 있어서 용서 받을 수 없는 반민족적 큰 죄를 범한 인물이었. 김활란은 일제시대에 <젊은 남자는 군인으로, 젊은 여성은 위안부로>를 주장하면서 총동원할 운동을 전국적으로 웨치면서 일본에 충성한 여성이 바로 김활란 이었다.
 
2009년에 민족문제 연구소가 편찬한 친일파인사 명당에 김활란의 친일행적이 자세히 기록되여 있다.  우리 나라와 민족에게 끼친 일제의 잔악한 악행에 있어서 선봉섰던 친일 인사들에 대한 정죄와 심판이 거의 다 청산되고 있다.
 
하지만 김활란의 뿌리로 세워진 금란교회는 친일파 잔재에 대한 청산은 커녕 오히려 김활란의 이름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김활란은 8.15 해방후에 자기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하여 살길을 찾아 헤메던 때마침내 이승만을 만나게 됬다. 김활란이 이승만과 가까히 접근하게 된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것 처럼 기쁨과 행운이었다.
 
김활란이 이승만과 가까히 접근하면서 발견한 유일의 살길은 첫째, 이승만의 친미적인 정치노선에 적극적으로 헌신한다.  둘째,기독교를 위하여 열심으로 봉사함으로 이승만의 신임을 얻는다. 세째, 이승만 정권에 충성하여 반공주의 선두에 나섬으로서 친일파의 누명을 깨끗히 벗을 수 있다.
 
이 세가지 길에 튼튼히 서기만 하면 <친일파 죄과>는 면죄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재생의 삶의 길이 전개될 것을 분명히 바라보면서 김활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서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금란교회는 김활란의 친미행각에 대해서는 일절 모르는 척하고 오직 김활란이 이승만정권과 밀착되여 반공주의 노선에 선봉에 섰던 사실만을  금란교회의 전통과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금란교회를 대형교회로 만들고 또 대한감리교의 감독회장을 역임한 김홍도 목사가 어찌하여 법을 어기고 3년의 징역형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는가?
   
금란교회는 교인수 12만 명이고 담임 목사인 김홍도 목사는 36년 동안 시무한  목사로서 가히 세계적인 거대한 교회라고 과시할 수 있다.  그런데 역시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담임 목사가 횡령과 배임, 문서위조 사건과 또한 불륜 등으로인하여 목사가 법정에 서야하고 감옥에 갇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더 큰 문제는 김홍도 목사의 죄과가 법적 처리과정에서 사실적으로 밝혀 드러난데도 불구하고 김홍도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상부의 지시대로 각본에짜인 재판이다. 교회를 파괴하려는 좌파 세력의 음모에서 비롯됬다>  
 
이 얼마나 어이 없는 비이성적이며 비신앙적인 괴변인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자기자신이 죄를 범하고도 <좌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이른바 보수주의<신앙생활>에 익숙해 지고 있는데 이것을 바로 김홍도 목사에게서도 볼수 있다.
 
김홍도 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어마어마한 죄를 범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성장의 요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는 교회가 성령으로 하나 된다.
    둘째는 교회가 영혼구원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김목사는 주장하기를 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신앙>으로 무장하고 다음 <기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뜨거워 저야한다>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김홍도 목사가 법정에 소환된 사건에 대하여 신동아 인터뷰를 통하여 나타난 기사 중에서 중요한 사건의 제목만 몇가지를 기록한다.  지면상 제한으로 그 많은 범죄사건들과 재판과정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할 수 없음으로 간략하게 간추려중요한 요점만 몇가지를 살펴본다.
  
)  금란교회는 북한에 1000명 대형 교회를 세우는 조건으로 2000년에 미국의선교단체로 부터 50만 달러 ( 5 7000만훤)의 헌금을 받았다. 하지만 금란교회는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선교단체에서는 50만 달러의반환을 요구했으며 금란교회는 불응했다. 결국 법정투쟁으로 확대되여 금란교회
는 배상금을 포함하여 1418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고 있다. 오늘 현재 이 사건은 미결로 남아 있다.
 
) 김홍도 목사는 불륜 의혹의 대상인 배 모 여인에게 무마조건으로 1999 11월에 2억원을 지불했다 . 그런데 그 2억원중에 5000만원이 교회의 공금이라는 사실이 밝혀젔다. 김홍도 목사는  또 다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하여 문제를 제기하 4인들에게 3억원을 1999년에 지불한 사실이 드러 났다.  이사건은 불륜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김홍도 목사를 배임죄로 고발했는데 그 고발을 취소하도록 설득시키는 과정에서 3억원을 김 목사를 옹호하는 장로들이 지불했다고 한다.
 
) 김홍도 목사는 1996년에 대한감리교 <감독회장>에 출마하여 선거운동비로 2 3700만원을 사용했는데 그 돈이 교회공금이었기 때문에 행령죄로 법원에 고소를 당했다. 
 
그런데 또 놀라은 이야기는 김홍도 목사와 김선도 목사는 친형제지간인데 1994에 감리교 감독회 회장으로 두 형제가 동시에 출마하여 양보가 아닌 싸움으로 대결하여 결국 형인 김선도 목사가 감독회장이 됬던 것이다.
 
1996년에 감독회장의 임기가 4년제로 개정됬는데 김홍도 목사가 또 다시 출마하였다.  김홍도 목사는 출마하여 선거비용으로 2 37000 만원 사용했는데 그 돈이 교회의 공금이기 때문에 공금횡령죄로 고소를 당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하여 신동아 기자와 대담을 했는데 그 대담내용이 기막힌 이야기 이다.
 
돈봉투문제?  그건 관행이에요.  옛날부터 다 그랬는데.. 그걸 횡령 이라는건 말이 안되죠.
 
선거에 왜 돈을 써야 합니까?     다들 써요. 나뿐 아니라 다 씁니다.
 
선거에 교회 돈을 쓰는 문제?    담임 목사는 교회를 대표하여 출마한다.
 
) 김홍도 목사는 반공-멸공주위 목사로 유명하다.  김홍도 목사는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빨갱이 정치가들이라고 그의 설교에서 항상 역설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후보자에 대하여 설교와 기도로 공공연하게 선거운동을 했다. 김홍도 목사는 정동영을 좌경친북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반드시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홍도 목사는 분배, 양극화, 기득권 등의 용어는 무조건 공산주의 사상에 영향을받은 좌경적인 용어라고 규탄한다.  그러면서 김홍도 목사는 한국의 대기업에 대하여 열열히 지원한다.
 
<대기업을 자꾸 끌어 내려요. 솔직히 커지는것 바라지 않는 사람 누가 있겠어요. 커지는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비성서적인 김홍도 목사의 목회철학이다.
 
김홍도 목사는 <한국기독교탈북자지원협의회>의 이사장 이다. 금란교회는 이북돕기를 일절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북을 도와주면 이북 군대를 도와주는 것이되기 때문에 이북이 망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방주의적 평화주의 신학은 용공주의적 사탄의 신학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김홍도 목사는 교회의 사회참여 문제에 대한 신동아 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교회가 사회참여를 자꾸 강조하면 교회의 본연의 사명, 즉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등한시 하게 되요, 예수 믿고 술 끊고 성령받으면 새사람되여 자연적으로 세상의 문제가 해결되요>
 
김홍도 목사는 금란교회의 여러가지 문제는 모두 다 좌파들의 음모와 공작 그리고 마귀의 세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김홍도 목사는 김대중, 노무현, 386 출신정치인들, 진보적인 지식인들, 금란교회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들 그리고 민족문제에 대하여 관심과 사명의식을 가지는 목사들에 대하여 통털어 좌파이며, 빨갱
이들이며,공신주의자들이라고 정죄하고 있다.
 
 
이 글을 끝 맺으며,
 
 
미국과 한국 그리고 교회에 대하여 비판을 해야만 하는 아픔을 느낀다. 누가 감히비판을 할 수 있을가 하고 되돌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너와 나는 모두 다 인간의 공동체 삶을 살고있지 않은가?  돈을 요구하는 종교의 위선, 권력을 추구하는 더러운 욕심 그리고 정권을 손에 쥐고 우상화하는 허상들에 대하여 어찌 조용히 입다물고 있을 수 있겠는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니체의 웨침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생각 된다. 그래서 칸트는 회의하는 마음은 참다운 진리를 탐구하는 마음이라고 했다고 생각된다.
 
부정부패한 한국의 권력자들과 도를 넘어선 타락한 교회들 그리고 손에 정권을 쥐고 스스로 우상화하고 있는 망국적인 꼴들이 너무나 절망스럽다. 하지만 어찌하랴 너무 절망하지 말아야한다.
 
박근혜 허수아비 정권에게 쩔쩔매고 있는 비겁한 모든 언론들과 방송들이 일절 모르쇠로 외면하고 있지만 이미 학생들과 민중의 촛불은 2 5000을 넘었다.
 
8 15일에는 10만의 촛불이 모일것이 라고 한다.  5.18 광주항쟁을 모르쇠하고  왜곡 보도를한겄이 전두환이었다.  오늘 박근혜도 역시 모르쇠 정치를 반복한다면 전두환의 꼴과 하나도 다를바 없으며 같은 운명의 길을 가게 될것이다.
 
미국의 침략을 끝장내고 반민족적 허수아비 정권을 몰아 내는 길은 오직 민중항쟁의 길 뿐이다. 왜냐하면 민중항쟁은 천심이며 천심은 세상의 역사를 바다의 밀물처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715일에 유럽의회 대표단 29명이 평양를 방문했다.  조선반도에서 전쟁의 위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는데 유럽의 동맹국 대표단이 휴전선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매우 민감하다.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바치고 있는 한국의 사대매국정권의 헛손질이 되고 있음을 예고하는 의미 깊은 유럽의회 대표단의 방문으로 보인다.
 
침략자 외세를 한반도에 그냥 두고서는 우리 민족의 분단의 오명을 벗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이 어찌다 이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이제는 진짜 돌아 보고 우리 민족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 그러하니 이제는 그야말로 정말 네편내편 하지말고 북과, 남과북 그리고 해외의 온 겨례들이 오직 우리 민족끼리의 공동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적 운명의 벼랑끝에 서서 이제는 이길 밖에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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