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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0]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br>카나다 김태정 선생 북알리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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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1-10 19:01 조회3,9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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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다 뱅쿠버=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이명박 정부들어와 본격화 된 인터네트
탄압의 희생자로 꼽히는 카나다 동포 김태정 선생(80) 댁을 방문했다. 그는 블러그 등
북녘사회 바로알리기 운동을 벌이다가 이명박 정부당국에 의해 다섯차례나 블러그 및
홈페지가 폐쇄당해야 했다면서 "이명박 정권은 미국이나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얼굴이
간지러울 정도로 아첨하면서 제 동족이며 통일을 해야 할 대상인 이북에 대해서는
전례없는 적대시정책으로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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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0]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카나다 김태정 선생 북알리기 운동에 몰두




"북 바로알리기 인터넽 운동 10여년"


<##IMAGE##> [카나다 뱅쿠버=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이명박 정부들어와 본격화 된 인터네트 탄압의 희생자로 꼽히는 카나다 동포 김태정 선생(80) 댁을 방문했다. 그는 블러그 등 북녘사회 바로알리기 운동을 벌이다가 이명박 정부당국에 의해 다섯차례나 블러그 및 홈페지가 폐쇄당해야 했다면서 "이명박 정권은 미국이나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얼굴이 간지러울 정도로 아첨하면서 제 동족이며 통일을 해야 할 대상인 이북에 대해서는 전례없는 적대시정책으로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지적한다.

이명박 정권하의 국정원과 공안당국은 김태정 선생(필명:봄호수)이 "지난 7년간 7만건의 북찬양 글을 인터넽에 올렸다"고 주장하며 그를 친북인사로 몰면서 한국에 있는 인터네트 사이트들을 이용하여 종북카페를 운영해 왔다고 발표했다.

김태정 선생은 이에 대해 "한국사회가 너무나 이북을 왜곡하고 중상모략하기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바로 알리기 운동을 전개해 왔다"고 답변하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10만여개 이상의 북 바로알리기 글들을 한국 인터네트 공간을 이용하여 발표해 왔다"고 설명한다.

"8순이 되신 나이인데 어떻게 인터네트를 통해 이북 바로알리기 운동에 참여하여 왔습니까?"라고 묻자 "인터네트 활동은 15년이 되었지만 사실 우리 민족과 관련한 활동을 시작한지는 이미 65년전의 일"이라고 대답하면서 그는 이미 14~5세에 항일투쟁에 참여했덙 빨치산 대장 신덕균의 외조카로 경북 청송에 있는 외가댁에서 빨치산 심부름꾼으로 참여한 추억들을 떠올린다.

<##IMAGE##>그리고 그는 1974년 카나다로 이민와서도 토론토 영사관 앞에서 피키트 들고 김대중 선생 구출운동을 시작하면서 이상철 목사, 김재준 목사, 민중신문 만들던 정철기 선생, 강원진 선생 등과 한국민주와운동에 적극참여해 왔다. 1980년 광주항쟁부터는 맥길대학이 제작한 광주필림을 구입하여 교육회관 등에서 상영하여 동포사회에 전두환 학살군사정권의 죄악을 폭로하는 운동에 전념하기도 했다. 전두환이 미국방문하여 로널드 레간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카나다 오따와에 들렸을 때 토론토에서 버스를 타고 40여명과 함께 먼곳을 가서 그의 방문일정을 가로막는 시위를 벌이는 운동에도 참여했다.

김태정 선생은 그 이후 중국길림에서 독립운동하다가 이북으로 갔을 것으로 생각하고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 1981년 평양을 방문했다. 아버지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지만 외삼촌 신덕균과 이모 신갑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 소식은 빨치산 노병회상기에 아버지 존함과 같은 김만수 대원이 행군도중 졸라병에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어 "1981년 부터1995년까지 다섯번 방북해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오진우 무력부장과도 접견하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1980년대에 북과 해외기독자간의 회의들에도 참여했다. 헬싱키, 비엔나에서 열린 북과 해외기독자간의 회의에도 4번이나 참여했고, 1990년 범민족대회 준비회의차 카나다대표로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준비회의에 참여하여 북과 해외대표들이 사전회의를 한 모임에도 참여했다. 그는 또 민족시인으로서도 활동했다. "비록 해외에 산다할지라도 나는 자주를 지키는 전사"라는 그의 시가 북에서 1993년 발간한 통일문학 17호(465쪽)에 게재되기도 했고, 그 이듬해인 1994년 7월8일 김일성 주석이 서거했을때 김태정 선생은 북미주조선친선협회 카나다지역본부 수석의장으로서 동포언론 신한민보와 이북언론에 조시를 발표한바 있었다.

<##IMAGE##> 김태정 선생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의 블러그나 까페 5개를 운영하면서 통일관계, 남북관계 글들을 10만여 개 가량 올렸으나 한국정부 당국은 그것들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는 명복으로 내가 경영주로 활동하던 사이트들 5개를 폐쇠중단 조치까지 단행했다. 공안당국의 주장은 그 글들이 북찬양이라는 주장이었다. 다시말하면 북을 바로알리기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말한다면 북을 있는대로 알린다면 현 한국정부의 입장이 난처해 진다는 말과도 같은 자세가 공안당국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폐쇄시킨 블로그 중 "봄호수 블로그"는 독자가 95만까지 되었는데 이것도 이명박 정권의 공안당국이 폐쇄시켰다고 폭로한 김태정 선생은 "이명박 정권은 천하의 반민족 세력"이라고 규탄한다.

김태정 선생은 카나다에 이민와서 처음 10년은 토론토지역에서, 그리고 그후 27년은 뱅쿠버지역에 거주해 왔다. 뱅쿠버에 온 이후에는 한국 정보기관으로부터 회유공작도 체험했고, 공갈협박, 고립압박같은 접근도 경험했다. 그는 그러나 "미군이 조국반도에 주둔하는 한 한국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히면서 "식민지 땅에는 발을 딛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IMAGE##>그는 뱅쿠버에서 살면서 때로는 못된 한국정치인이 이곳에 와서 강연을 하는 경우에 그 장소에 직접가서 규탄하며 강연회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그 한 예가 김종필의 뱅부버 방문때였다. 그런가하면 김태정 선생 자신도 동포사회의 극우세력으로부터 시달림을 받기도 했다. "내가 가게를 하며 꽃집을 경영할 때 어용인사들 40여명이 꽃도매상 앞에서 나를 둘러싸고 빨갱이 소동을 벌이며 협박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카나다 정부가 나의 신변을 보호하기도 했다"고 돌아보았다.

그는 이어 "최홍희 장군과의 교제가 시작되면서 한층 더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고,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카나다지역위원회에 대표로 활동하며 조직적인 통일운동에도 참여한바 있었다."고 말한다.

김태정 선생은 뱅쿠버까지 방문해 준 민족통신 특파원에게 "정말로 감사한다"면서 자신의 주위 분들을 급하게 연락하여 10일 점심시간에 함께 오찬을 나누면서 친교시간을 갖는 한편 이번에 조의방북 취재를 마치고 돌아 온 기자에게 이모저모를 질문하며 궁금증을 풀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6.15공동선언실천 카나다지역위원회 유동성 뱅쿠버 위원장을 포함하여 김신규 선생부부, 안태훈 선생 부부, 엄종순 여사(김태정 선생 부인) 등이 함께했다. 기자는 조의방북 과정과 애도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며 끈끈한 친교시간을 가졌다.

김태정 선생은 또한 북녘사회 바로 알리기 운동 이외에 수석(돌) 수집 취미를 갖고 활동해 왔다. 그의 자택 1층, 2층, 그리고 정원 등에는 각종 희귀한 돌들이 전시되어 있다. 1974년 카나다 이민길에 오르기 전에 한국 덕수궁에서 돌전시회를 한바 있었다.

김태정 선생은 1932년 5월30일 경북 의성군 점곡에서 태어났다. 점곡국민학교와 점곡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미술학원에서 미술공부를 마치고 한 광고회사에서 삽화를 그리는 디자이너로 20여년 일하다가 취업이민으로 카나다로 왔다. 3남1녀을 둔 가장으로 자식들은 모두 출가하여 지금 18명의 혈육들이 토론토와 뱅쿠버에 각각 거주하고 있다.

* *김태정 선생 연락처: 1-604-589-3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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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한국 정부가 자칭 <자유민주주의>라고 선전하면서도 알권리를 차단해 왔습니다. 남측 당국은 한국에 거주하는 독자들이 이 보도 자료들을 볼수 없도록 인터네트 열람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통신>은 한국 독자들이 twitter 와 facebook을 통하여 이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주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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