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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8]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br><br>김명철 북조선 비공식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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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1-06-24 17:50 조회3,8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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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카=노길남 민족통신 특파원] 국제사회에서 "북조선 비공식 대변인(?)"으로 호칭받아 온
재일동포 김명철 조미평화센터 소장(68)의 근황을 알고 싶었다. 일본 방문 길에 수소문하여 그의
연락처를 알았고, 그와 전화통화로 약속하고 낮선 시골길을 가기 위해 전철에 올랐다. 지바 방향으로
가는 JR을 타고 "긴시쪼"역까지 가서 다시 다른 기차 "한조몬 라인" 급행으로 갈아 타고 급행이 서는
정거장인 "신고시가야"라는 곳에서 내렸다. 역전에서 전화를 걸어 도착을 알리자 5분 정도가 지난 시간에
김명철 소장은 그의 부인 구순덕 여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역전 서쪽입구에 나타났다. 그와의 만남은
아마도 미국서 마지막으로 본 이후 10년만의 해후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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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8]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김명철 북조선 비공식 대변인(?)



[히타카=노길남 민족통신 특파원] 국제사회에서 "북조선 비공식 대변인(?)"으로 호칭받아 온 재일동포 김명철 조미평화센터 소장(68)의 근황을 알고 싶었다. 일본 방문 길에 수소문하여 그의 연락처를 알았고, 그와 전화통화로 약속하고 낮선 시골길을 가기 위해 전철에 올랐다. 지바 방향으로 가는 JR을 타고 "긴시쪼"역까지 가서 다시 다른 기차 "한조몬 라인" 급행으로 갈아 타고 "신고시가야"라는 곳에서 내렸다. 역전에서 전화를 걸어 도착을 알리자 5분 정도가 지난 시간에 김명철 소장은 그의 부인 구순덕 여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역전 서쪽입구에 나타났다. 그와의 만남은 아마도 미국서 마지막으로 본 이후 10년만의 해후인것 같다.

<##IMAGE##> 김명철 선생은 예전이나 다름없이 정열적이다. 그러나 그의 거동은 불편했다. 그의 말도 억양이나 높낮이는 과거와 같았지만 발음이 다소 분명치 않는 것은 예전과 달랐다. 그는 지난 5년 가량 조용히 치료하면서 뜨문뜨문 문필활동을 해 왔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문필활동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주로 영문시사 쟁점을 국제사회 언론을 통해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는 근간에는 아시아타임스(Asia Times)에 기고하면 이것을 받아 유럽이나 서방언론들이 인용보도하는 경향이 많았다고 말한다. 5년 전부터 문필활동을 줄이게 된 것은 왼쪽 팔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오른쪽 한손으로 타자를 찍어 왔다고 말한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 한손으로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도 발전했다고 밝히면서 여러가지 약들을 복용해 왔지만 조선의 "홍삼가루"와 "상향"이 효험이 있었다고 설명해 준다.

나는 도꾜에서 전철을 타고 한시간 반만에 이들을 만났는데 이들 부부는 "신고시가야"에서 나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또 다른 한시간 반 거리에 있는 "히다까"라는 곳으로 안내한다. 일본 땅에서 별천지를 보는 장소였다. 7세기의 고구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 온 기분이 들었다. 사이타마 현 히다까시에 고마신사("高麗神社")라는 글발이 보였고, 이 살림 우거진 대 공원 안에는 사찰, 단군묘, 광개토대왕 및 고주몽의 묘를 형상화한 모습들도 보였다.

고마신사("高麗神社") 공원 참관하며 7세기 시대 감상


나는 김명철 선생 부부와 이 공원을 거닐며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누었다. 이곳 시설물들을 돌아보다가 이곳을 설명해 주는 안내문도 발견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IMAGE##>"고마 신사는 고구려국의 왕족 고마노 고니키시 잣코[高麗王若光]를 모신 신사이다. 고구려인은 중국 대륙의 송화강 유역에 살던 기마민족으로, 한반도에 진출하여 중국 대륙 동북부에서 한반도 북부까지를 영유하였고, 약 700년간 군림하고 있었다. 그 후 당과 신라의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668년에 멸망하였다. 이 때 난을 피한 고구려국의 귀족과 승려 등이 다수 일본으로 건너와, 주로 동국(東國:간토[關東] 지방)에 살았는데 레이키[靈龜] 2년(716) 그 중 1,799명이 무사시 국[武藏國]으로 옮겨져, 새로이 고마 군[高麗郡]이 설치되었다. 고마노 고니키시 잣코는 고마 군의 군사(郡司)로 임명되어, 무사시노[武藏野]의 개발에 힘썼고, 다시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사망하였다. 군민은 그 유덕을 사모하여 영(靈)을 제사지내 고마묘진[高麗明神]으로 숭상하였고,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마노 고니키시 잣코의 직계에 의해 신사가 지켜지고 있으며, 지금도 많은 참배객이 방문하고 있다."

<##IMAGE##>김명철 선생의 건강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그 전에 비해 거동이 불편한 탓 때문에 최근 5년정도 여행도 많이 하지 못해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유럽의 외교관들을 비롯하여 미국의 거물급 인사들도 이곳을 다녀갔다고 귀띔해 주면서 그들에게도 이 고마신사(高麗神社)를 구경시켜주고 그 다음에는 이 근처에 있는 온천장에 가서 잠시 휴식을 하는 경우가 그를 찾아 오는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일정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고마신사를 참관한 이후 "마끼바" 라는 곳에 위치한 온천장에서 90분 가량 휴식하고 식사도 나누면서 대화를 주고 받았다.

미국이나 서방 외교관들이 그를 만나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북조선의 비공식 대변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가 가진 정보나 지식들이 보통사람들이 갖기 어려운 정보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있다. 그래서인지 김명철 선생은 일본에서 조선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 미국입국을 담보하는 10년짜리 비자를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재일동포이다.

어떻게 "비공식 북조선 대변인"으로 불리우게 되었는가?


김명철 선생과 그의 부인 구순덕 여사는 입을 모아 반응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도 공화국의 비공식 대변인이라고 말한적이 없다"고 해명한다. 서방언론들이 그리고 미국방성 관계자들이 그렇게 말해 온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자신이 "나는 비공식 대변이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필요도 없어 그냥 넘어갔다고 설명해 준다.

그는 대화 중에 미 당국이나 남 당국이 북중관계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북조선은 북미관계에서도 주동적 역할을 해 왔지만 북중관계에서도 주동적 역할을 해 왔는데 서방국가들은 그것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IMAGE##> -김명철 선생은 "김정일 위원장 일행이 금년 5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은 출장중인 한명을 제외한 정치국의 8명 위원들이 모두 김정일 위원장을 환영하는 자리에 참석했다"고 거론하면서 "이렇게 다른 나라를 환대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중국 지도부는 조선의 도움이 없었다면 중국 공산당이 건재해 올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고 풀이한 김명철 선생은 "김일성 주석께서 조선이 아직 해방되기 전인 1945년 8월10일 중국 모택동 공산당 진영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동북지역에서 그 당시 활동하던 김책과 강건을 통해 동북지역 조선족을 포함한 김일성 진영의 지원병력 25만명을 중국에 지원했고, 그리고 백만명의 병력에게 무장할 수 있는 탄약, 군복 등의 대량의 무기를 지원했고, 그 이후 1946년 하반기에 모택동과 림표가 장개석 국민당에 의해 포위당하려는 위기 상황에서 긴급구원(SOS)요청이 들어와 그 당시에도 김일성 주석이 1만여명의 기마대 부대 병력을 지원하여 구원해 준 역사적 전통이 있기 때문에 금년 5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방문을 방문하였을 때 남다른 환대를 받았다고 그는 분석했다.

그리고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을 김정은 대장과 중국의 시진핑 차기 지도자의 사전준비 작업에 의해 이뤄졌다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김명철 선생은 "나도 그런 정보를 간접적으로 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 남북관계의 걸림돌이 되어 온 "천안함 침몰사건"은 여러가지 권위있는 자료들을 수집해 분석해 보면 "미국의 조작극"으로 본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텔레그라프가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70%가 미국의 오폭으로 보았다고 지적하며 북조선이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런 걸 하여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때문에 그런 일을 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남한의 이명박 정권이 정치를 너무 못한다고 진단하며 그를 지지하던 언론들이었던 조, 중, 동까지 이제는 거리를 두고 있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그와 동일시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IMAGE##> 김명철 선생은 1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한 향후 전망에 대해 “한국정부의 공동수사팀에게 최상의 해결책은 천안함 침몰을 오래된 기뢰탓으로 돌리는 것”이라며 “근거없이 북한을 비난하는 것은 쉽겠지만, 북한에 대한 군사적 보복을 요구하는 여론의 압력이 높아질 것이고, 이는 5분 안에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북조선의 즉각적인 대응을 부를 것”이라고 관측하고 “북조선은 미국이 개입된 이 사건에 핵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김명철 선생은 이어 "미 당국은 북조선에 대해 이제는 바로 알아야 한다"고 전재하고 "북조선은 지금 세계가 전혀 알지 못하는 무기체계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몇일 전 25메가톤급 수소폭탄이 개발된 것을 뉴스닷컴도 보도한바 있다고 덧붙인다. 그는 보수계 언론도 이를 뒷받침하는 일부 내용을 보도했다고 하면서 "북조선은 앞으로 승리하는 길로만 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는 기회주의자 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를 되 물었다. "나는 승리하는 쪽에만 붙습니다"라고 대답한 김명철 선생은 그가 조미관계, 남북관계를 깊이 연구해 본 결과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치일정은 백전백승 승리의 길을 걸어 왔고, "김정일 장군과 김정은 대장의 앞날도 승리의 역사만 예정되어 있다"고 내다 보면서 미국 정부 당국은 이것을 바로 알아야 되는데 이런 내용을 잘 모르고 있어 그 동안 나를 접촉하려고 미국무성, 미국방성 고위급 인사들이 많은 초청을 해 왔다고 돌이켜 본다.


김명철 선생의 약력


<##IMAGE##> 그는 1944년 3월21일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온 재일동포 2세이다. 시바대학 영문과를 졸업했고, 도꾜 대학원에서 국제외교관계를 공부했다. 1966년부터 1985년까지에는 조선신보 자매지인 영문신문 "People Korea"에서 기자로 나중에는 편집국장으로 근무한 바 있었다. 그리고 2000년에 <조미관계 문제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북조선의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로부터 사회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명철 선생은 특히 <김정일 통일전략>이라는 제목의 일어로 된 도서를 출판하여 일본 보수계 인물들에게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무성, 국방성 그리고 유럽의 정치계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남녘의 보수, 진보계 동포들 모두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김정일 통일전략>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그것이 남녘에서 출판되어 파문을 일으켰다. 그 당시 남녘 언론들은 물론 서방언론들까지 북조선이 망한다는 이야기 일색으로 보도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외 정세 또한 북조선에 유리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소련을 비롯하여 동구권 사회주의 나라들이 거의 붕괴되어 오는 바람에 사회주의권 나라들끼리 무역교류하던 상황이 열악한 환경만 조성되었고, 설상가상으로 90년대 중반 북조선은 경작지 75%정도가 물에 잠길 정도로 큰 물난리사태를 맞았다. 그리고 1994년 7월8일 북녘을 건설한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여 북조선으로서는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이 때 번역출판된 <김정일 통일전략>은 어두운 정세를 뒤바꿔 놓는데 청량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 그 당시 남녘이나 해외동포사회 지식인들의 일치된 반응이었다.

그런데 김명철 선생의 요즈음 표정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희망과 기대에 차 있는 표정이다. 부인 구순덕 여사(조대 문학부 졸업생)의 간호로 건강도 좋아지고 있지만 이들 부부가 흠모하는 북조선이 연일, 매달, 매년 성장의 상승곡선을 그으며 발전해 나가는 것 때문으로 진단되었다. 이들 부부는 김일성 주석의 탄신100돌이 되는 해인 2012년에 강성대국의 문패를 거는 해로서 매우 의미 깊은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고 예고하고 있다.

김명철 선생의 연락처:
0489-87-8965 혹은 080-3532-7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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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신사에 관한 일본말 해설 동영상 보기




*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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