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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도서기증사업에 정열 쏟아 온 송기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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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9-04-09 13:48 조회4,1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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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철학과 이념이 북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곳에 혈육이 있고, 우리 민족이니까 뜨겁게 지원해 온 인물이 있다.
그는 80년대 중반 이북의 혈육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도서들을 이북의 교육기관들에 지원해 왔다. 이분은
그야말로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이 다를지라도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도와야 한다는 <우리민족끼리 사상>을 실천해
온 인물 중 한 분인 송기뢰 박사(80)이다.

[대담]도서기증사업에 정열 쏟아 온 송기뢰 박사


1985년부터시작해지금까지 이북에1만5천여 권 기증



<##IMAGE##>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자신의 철학과 이념이 북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곳에 혈육이 있고, 우리 민족이니까 뜨겁게 지원해 온 인물이 있다. 그는 80년대 중반 이북의 혈육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도서들을 이북의 교육기관들에 지원해 왔다. 이분은 그야말로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이 다를지라도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도와야 한다는 <우리민족끼리 사상>을 실천해 온 인물 중 한 분인 송기뢰 박사(80)이다.

기자는 뉴욕에 거주하는 송 박사가 최근 로스엔젤레스를 방문한 기회에 그와 만나 대담시간을 갖고 그의 걸어온 80년의 생애를 들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송기뢰 박사도 민족분단의 피해자이다. 조국분단과 전쟁 때문에 혈육들이 생이별하여 헤어져 살아 온 이산가족들은 무려 1천만여 명이나 되었다. 송 박사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29년 7월25일 함흥에서 태어나 전쟁시기인 1950년 12월 21살의 나이로 단신으로 이남으로 넘어와 15년 동안 청장년 시절을 공군기술장교 후보생에서 시작하여 공군장교 생활로 장기 복무하다가 중령으로 전역하고 곧 1965년 초 도미했다. 그 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44년 동안 살고 있다.

그는 1965년에 도미하여 20년의 세월이 흘러간 1985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북을 방문해 혈육을 만났다. 그는 그 때부터 뭔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미국에 돌아가 도서들을 지원하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북부조국에 1만5천 여권의 과학도서들을 기증하는 사업을 벌여왔다. 그는 한편으로는 이북에서 김일성 회고록 8권을 영문으로 번역한 것을 감수하는 편수관 역할도 했고, 컴퓨터 시스템 관계 도서 16권을 번역한 것을 교열하며 교정해 준 일도 있었다고 돌이켜 본다.

송 박사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통일운동에 참여해 왔다. 그는 지금 재미동포전국연합회(윤길상 회장)의 부회장이며 동시에 재미동포도서기증회 회장, 그리고 재미동포과학기술자협회 회장 일을 맡고 활동하고 있고, 6.15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직도 맡고 있다.

<##IMAGE##>그는 재미동포로서 이북의 고향을 방문한 것은 미국 온 이후 20년만인 1985년 6월이었다고 말한다. 그 때는 이미 부모님들은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과 그의 남편을 만났지만 그 때의 순간과 그 추억은 “그저 일주일 동안 울다가 온 생각 밖에 나지 않는다”고 송 박사는 회고한다. 그는 고향인 함흥에 혈육들이 많다. 친가와 외가 쪽 가족들을 합하면 모두 90여 명의 친척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혈육을 만난 그 순간부터 고향을 위해 뭔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것이 도서기증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 돌아 와 곧 바로 <재미동포도서기증회>를 조직하였고, 그 후 1998년에 또 <재미동포 과학기술자협의회>를 만들어 두 단체를 운영하기 위한 회원들을 모집했었다. 그 결과 지금은 회원들이 모두 120여 명이나 늘어났다고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송 박사가 걸어 온 미국생활 44년이 궁금하여 질문해 보았다. 그는 1965년 6월 미국에 와서 뉴욕에 거처를 정하고 뉴욕대학(NYU) 대학원에 입학하여 경영학을 전공하고 69년 5월에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 이후 계속해서 경영학 박사학위(Doctor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했다고 한다. 그는 남녘에서 공군장교 생활을 할 때에도 제대할 무렵인 1962년부터 1964년까지 2년 동안 군에 있으면서 서울행정대학원을 다니며 석사학위(MA)를 받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1953년에 1년, 1958년에 1년 동안 미국에 와서 군사교육을 받고 돌아갔다고 말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에도 고향방문이 계기가 되어 이북을 40여 차례 오가며 지원사업을 하는 한편 컴퓨터 시스템관계 연구로 이북에서 2001년에 공학박사까지 받았다고 밝혀준다.

송 박사의 직장생활도 다양했다. 그는 미국생활 44년 중 첫 5년은 대학원 생활을 했고, 졸업 후에는 5년 동안 화학제품회사에서 기술행정 감사 역으로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로부터 5년 후인 1975년 7월에는 체이스 맨하탄 은행서 감사 역으로 일했고, 1980년부터 1993년까지 13년 동안에는 메릴린치 증권회사의 증권분석가로 일했고, 그로부터 2003년까지는 연방정부의 컴퓨터 프로그램 자문관으로 일해 오다가 은퇴했다.

그 이후 은퇴생활을 통해서는 주로 이북을 돕는 일에 힘을 쏟아 왔다. 그의 자녀들은 이미 독립해서 나가 살고 있다. 50살 된 장남은 사업가이고, 둘째는 유전공학자로 활동하고 있고, 막내는 일본 도꾜에서 국제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유학 중이라고 한다.

송기뢰 박사는 고향방문 40여 차례나 되는 정도로 이북을 많이 방문했기에 기자는 그의 이북사회에 대한 인상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북동포들 대부분이 열심히 일한다는 점을 비롯하여 학생들과 학자들의 학구열이 불같이 끓고 있는 사회이고, 교육제도가 훌륭하고 특히 나라 방침이 과학자들을 우대하는 사회라는 것을 관찰해 왔다는 소감을 밝힌다.

<재미동포 통일운동권에 관한 평가>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1)일반동포들의 통일관심이 무관심하지만 통일운동권 인사들은 그 관심이 대단히 높고 열심히 일하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2)통일에 관한 연구활동이 높고, 그리고 (3)통일의 길이 어렵지만 그것을 극복하며 열심히 추구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그는 통일운동권에 대한 아쉬운 측면도 아울러 지적한다. 동지적 협력과 협조가 결핍된 점을 비롯하여 분파 성 잔재가 농후하며, 행세주의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도서기증회 문의연락처: (718)357-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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