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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green>안재구 박사와 아들 안영민씨</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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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3-05-07 00:00 조회1,5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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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옥중생활을 한 것이 16년6개월이 된다. 이들은 최근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발행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했던 안재구 박사(70)와 그 막내아들 안영민씨(35.민족21 기자). 이들에 대해 오마이뉴스 16일자가 신간안내 소개와 함께 보도했다. 전문을 싣는다.[민족통신 편집실]

아버지와 아들 합해 16년 6개월 "징역살이"

poet6_108791_1[2].JPG남조선민족해방전선(약칭 남민전)의 "전사" 안재구(70) 박사와 남북문제 전문 월간지 <민족 21> 기자로 재직중인 그의 막내아들 안영민(35). 부자간인 이들이 그동안 속으로만 삭여오던 서로에 대한 애틋한 정을 털어놓고,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뒤돌아볼 겨를 없이 달려온 자신들의 삶을 반추하는 책을 펴냈다. 두 사람이 공저로 펴낸 책의 제목은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아름다운사람들 펴냄).

그들이 솔직담백하게 털어놓는 감옥에서의 체험담과 세상을 바라보는 두 부자의 관점, 이 땅의 현안에 대한 거침없는 문제제기가 따뜻한 산문들로 묶인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한다.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에 다름 아니며, 책이란 저자의 철학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 김남주(시인·94년 타계),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등과 함께 남민전 사건(1979년)에 연루돼 9년간의 옥고를 치른 안재구 박사는 독특하게도 수학자다. 1933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한 안 박사는 겨우 열다섯의 나이에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2·7 구국투쟁"에 참여하면서 민족자주운동에 몸담기 시작했다.

이후 중고교 과정을 독학으로 수학한 그는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경북대 수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모교와 숙명여대, 동국대 등에서 수학과 교수를 역임한 그는 미분기하학 분야에서는 세계가 인정하는 석학. 남민전 사건으로 사형언도를 받았을 때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한 각국의 학자들이 기꺼이 그의 구명운동에 나섰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수학에서 끝나지 않았다.

안 박사의 손에서는 역사와 철학, 문학과 예술관련 서적이 늘 들려 있었다. 엄혹한 박정희 독재시대에도 운동권 학생을 감쌌고, 그로 인해 재임용에서 탈락되는 불행을 겪었던 휴머니스트 안재구 박사.

88년 가석방 후 집필활동과 연구활동에 전념했지만, 불행의 역사는 다시금 그를 덮쳐왔다. 94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막내아들과 함께 속칭 "구국전위 사건"으로 재구속된 것이다. 다시 지옥 같은 5년의 영어(囹圄). 99년 형집행정지로 감옥을 나왔을 때 그의 나이 66세. 청년기의 절반 가까이를 감옥에서 보낸 노학자의 머리에는 이미 하얗게 서리가 내려있었다.

poet6_108791_1[1].JPG하지만, 극악했던 공안당국의 고문과 협박, 기나긴 징역살이, 그 모든 것을 조장한 서슬 푸른 국가보안법도 그의 올곧은 정신을 꺾지 못했다. 안재구 박사. 그는 일흔의 나이에도 자신과 꼭 같은 "통일과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는 청년학생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삶과 철학을 들려주고 있다. <수학개론> <수학문화사>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의 저자이자, 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지도위원.

감옥에 아버지를 빼앗긴 초등학교 5학년 소년 안영민. 대학교수의 유복한 막내둥이에서 졸지에 "간첩의 씨앗"으로 손가락질 당하던 그 역시 일찌감치 불합리한 현실과 불평등한 세상에 눈뜨고 아버지가 걸었던 험난한 길을 따른다.

아버지의 모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그는 "사회참여"와 "보신(保身)"이라는 판이한 길 앞에서 잠시 갈등한다. 그러나, 안영민은 오래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심장에는 "일신의 안위를 떨친 타자를 위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 안재구 박사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부자 2대의 수난이 시작됐다. 90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구속된 안영민은 이듬해 집행유예로 석방되자마자 경북대 총학생회장에 출마한다. 당선과 동시에 내려진 수배조치. 경찰을 피해 다니던 3년 내내 편안한 잠 한번 자지 못했다. 그리고, 94년 6월 "구국전위" 사건으로 구속. 아들과 아버지가 동시에 살게 된 가혹한 징역이었다.

하지만, 지긋지긋했던 2년6개월의 감옥체험도 그의 신념을 어쩌지는 못했다. 96년 출소 이후 아버지가 석방된 99년까지 끈질긴 구명운동을 벌였고, 이후 그럭저럭 입에 더운밥이 들어오는 수학강사 생활을 "이런 삶은 내가 원하던 공동체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청산한 그는 현재 <민족 21> 통일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에야 한참 못 미치지만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통일운동가로 살고 있는 안영민.

국보법을 위반한 무서운 공안수(?)들이 전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

"확고한 정치적 신념과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똘똘 뭉친 부자(父子)가 쓴 책이라, 어렵고 딱딱할 것이다"라는 선입견은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그야말로 선입견이었음이 드러난다.

"눈물의 결혼식" "아버지의 이름으로" "청년의 사랑" 등의 소제목으로 명명된 글들은 세상 사람들 모두의 공통적인 고민인 집과 밥, 아내와 자식, 사랑과 미움에 대한 두 사람의 진솔한 생각들을 담아내고 있다.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 세상사 사소한 것들에 대해 소곤소곤 이야기를 주고받는 아버지와 아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따뜻한 글들이다.

안재구 박사의 "꽃으로 산화한 동무들"과 안영민이 쓴 "수배일기"는 해방된 조국이 올바른 길로 가기를 원했던 안 박사의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염원이 담겨 있고, 안영민 특유의 낙천성이 느껴지는 글들이라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의 백미로 부를 수 있을 듯하다.

부자 도합 16년 6개월의 징역을 산 사람들답게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에는 감옥 이야기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관 속 같은 장기수 독방" "종이 한 장의 양심" 등을 읽다보면 "어떻게 저런 시절을 살아냈을까"라는 생각에 독자들의 가슴이 답답해져오지만, 외려 두 사람은 담담하게 그 시절을 표현한다.

"사람 사는 곳은 그곳이 감옥 안이든 감옥 밖이든 어디든 같더라"고 지난 시절의 고난을 웃으며 추억하는 안 박사와 안영민. 이는 부끄러운 범죄가 아닌 자랑스런 이유로 감옥에 갇힌 사람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가 아닐지. 그런 까닭에 감옥 안에서 주고받은 편지가 인연이 돼 결혼에 이른 안영민과 그의 아내 황금이의 이야기가 실린 "교도소 담을 넘은 인연"은 미소를 띄며 읽어도 죄스럽지 않다.

책의 마지막 장으로 묶인 "다시 꿈꾸는 세상을 향하여"는 안 박사와 안영민의 대화로 이뤄져 있다. 통일과 주한미군, 촛불시위와 노무현 정부의 가능성,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에 관해 진지한 의견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은 "산"과 같았던 아버지와 그 산의 그늘 아래서 "제대로" 자라준 막내아들의 뜨겁고도 눈물겨운 만남으로 읽힌다.

"가장 소중한 건 사람의 도리를 공부하는 것..."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를 접한 홍세화와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인간과 민족에 대한 사랑의 길"이었다는, "아버지와 아들이 부자 관계를 넘어 동지적 관계로 더해지며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헤쳐나가는 모습에 부러움을 느낀다"는 말로 출간을 함께 기뻐했다.

안재구 박사의 "내 인생의 물길을 터주신 할아버지"를 읽는다. 60년의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안 박사는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자신만을 위한 지식"이 아닌 "모두를 위한 지식"을 배우고 익히라는 그 말은 안재구 박사와 안영민은 물론 이기(利己)와 일신의 영달(榮達)을 위한 공부에만 휘둘리는 우리 모두의 종아리를 치는 매운 가르침이다.

"공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도리를 공부하는 것이다. 사람의 도리를 모르면 공부한 것이 도리어 사람을 해치거나 해치는 데 이용될 수가 있다. 그런 공부는 사람의 재주일 뿐 사람의 도리는 아니다. 그런 재주라면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의 재주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느냐.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가, 언제나 이 공부를 잊지 말거라."홍성식 기자


[출처:오마이뉴스 200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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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민씨의 연락문의는 yman@minjog21.com 전화는 (02)2264-7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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