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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항쟁>이 민주화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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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03-27 00:00 조회1,3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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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민주화인정 구로구청사건 관련자 양원태씨

“`구로항쟁"이 역사적으로 자리매김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양원태(37·경기 용인시)씨는 11일 최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이우정)가 구로구청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지정했다는 소식에 담담한 표정으로 이 사건의 `역사적 재조명"에 먼저 관심을 뒀다.

0050000001200103111214p135.JPG그는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직후 구로갑 선거구의 부재자부정투표에 항의해 구로구청에서 농성을 하다 진압전경에 쫓겨 건물 5층에서 떨어진 뒤 하반신 마비로 두 다리를 못쓰게 됐다. 휠체어를 탄 그의 모습은 지금껏 구로구청 사건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구로항쟁"은 선거부정을 규탄하는 시위로 시작했지만, `민주주의"와 `군사독재"라는 분명한 대립이 있던 시기에 독재타도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습니다. 1024명이 연행돼 208명이 구속된 대규모 민주화투쟁이었지만, 대선분열의 후유증으로 묻혀지고 말았지요.”

그는 “그렇게 묻혀졌던 구로항쟁의 정당성이 공식 인정됐다니 기쁘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서울대 경영대에 재학중이던 양씨는 8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고 복학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와 장애인단체 활동, 민주당 장영달 의원 비서 등으로 현실 참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최근 3년 동안 사법고시에도 도전했지만, 지금은 모두 그만두고 쉬고 있다.

“시민단체 등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지금은 저만의 영역을 만들고 싶습니다.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양씨는 아직 민주화운동가 보상신청을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민주화가 `보상"이라는 금전적 계산을 할만한 단계에 왔는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참된 민주화가 이뤄졌을 때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최혜정 기자hjclove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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