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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천리마 기수 진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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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4-05-18 00:00 조회5,8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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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어느 날, 나는 그 곳의 놀라운 건설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지도를 변형시켰다는 남포시 서해갑문을 참관키 위해 대동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평양시를 빠져나가 나타나기 시작한 절경의 대동강변, 그날은 그 무슨 축복의 손길인 양 은실의 봄비마저 뿌리고 있었는데 강변도로 양편으론 만개한 개나리의 대열이 끝이 없었다. 온 천지가 뽀얀 안개 속에 꿈을 꾸는 듯 잠겨 있는데 강물 따라 꽃길 따라 그렇게 마냥 가자니 그 순간, 그 풍치 너무 아름답고 감미해 저 낙원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는가 싶었다. 그래 정녕 그 시간, 그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취한 듯 차에 흔들리며 달린 것이 그 얼마쯤이었을까.
이윽고 꽃길이 끝나고 전원이 펼쳐지기 시작하더니 저 멀리 그 어떤 공장 건물 같은 것이 나타났다. 시골길을 달리면 으레히 드문드문 서 있는 공장 건물들이기에 그저 무심히 지나칠 뻔했는데 문득 공장 건물 가까이 다가갔을 때 공장 대문이라기보다 그 무슨 기념탑같이 세워진 입구에 커다랗게 써 있는 빨간 글씨에 나는 그만 놀라움과 동시에 반가움에 경탄사를 발했던 것이다. 아주 장당히 그리고 정승스레 쓰여진 그 빨간 글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기가 천리마의 고향입니다.》
천리마, 아! 그 얼마나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던가. 그리고 그 얼마나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고 북한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던 바로 그 말이 아니던가.
이 《천리마》라는 말만 없었더라도 우리가 그토록 북한이라는 나라를 이 지상의 지옥으로 상상하지는 않았으리라. 우리는 적화 통일을 그처럼 무서워했고 《북한》과 《천리마》라는 이 두 마디만 들어도 우리는 증오와 공포를 느껴야 했다. 우리는 꽤 익숙해져 왔다. 그 언제부터인가 그 누구에 의해서인가 곧잘 북한을 가리켜 《마수》라 불렀고 그날의 남침을 우려할 때마다 《마수가 노린다. 혹은 뻗힌다》라는 표현을 해왔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은 그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북한 사람이라면 뿔달린 빨간 도깨비를 그린다.
《천리마》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그런 마귀의 갈쿠리 손이나 뿔달린 도깨비를 의미하는가. 혹은 오직 한 사람 그가 판문점을 그처럼 자유로이 넘나들어도 보안법에 걸리지 않는 유일한 특혜자이며 수퍼맨(?)인 우리의 김삿갓이 수년 동안 그의 북한 현지 탐방에서 생생히 들려준 바에 의하면 (방송 프로그램 《김삿갓 북한 방랑기》) 《천리마》운동 그것은 한마디로 아사 직전에 허기진 인민들을 강제 노에 노동에 동원, 악질적이고 무자비한 당원의 채찍과 그 폭정에 의해 혹사당하는 것이라 정의해 볼 수 있겠는데….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이 사람들은 이 천리마 운동의 본거지를 가리켜 이렇듯 자랑스럽게 그 무슨 나라의 《성지》라도 되는 양 기념비를 세워 놓고 있지 않은가. 나는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시 한복판 만수대 언덕 위에 하늘을 치솟아 우뚝 서 있는 천리마 동상을 먼 발치에서 우러러 바라보곤 했다. 아니 내가 우러러본 것이 아니라 그 한 걸음이 금시 천리가 아니라 만리라도 뛸 것 같은 힘찬 도약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가 평양시 온 시가를 굽어보고 있는 것 같았고 그 당당한 위용과 기세는 또한 뭔가 평양시를 지켜 주는 신화적 수호신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나라 옛 전설에 전해진다는 저 천리마, 단숨에 천리를 달린다는 저 날개돋힌 천리마, 저 천리마가 그들에게 과연 그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 무엇을 상징하는가. 저 천리마는 과연 북한 인민들에게 그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혹은 앗아갔는가. 과연 목표하여 저 광야를 건너고 폭풍을 헤쳐 저같은 초속으로 달리고자 하는 그 곳은 세상 끝 그 어디메인가. 나는 감히 이 천리마에게 말을 건네 보고 싶어졌다. 그리해서 그가 흘럭간 세월 과연 북한 인민들과 더불어 그 어떤 애환, 고락을 함께 히온 것인지를 들어 보고 싶었다.

천리마 운동의 본거지 천리마 제강기업소(구 강선제강소)는 평양에서 그리 멀지 않으 남포시 천리마 구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천리마 운동의 기수 진응원 씨를 만났을 때 나는 처음부터 그간에 내가 지니고 있던 그 어떤 악몽 같은 것이 씻겨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왜냐면 그렇듯 참혹산 생의 길을 걸어 왔을 그의 면모는 마땅히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천리마 강제 노동에 의해 검게 그을리고 찌든 몰골이어야 했겠는데 그런데 그는 너무도 신색이 훤할 뿐 아니라 시종일관 행복에 겨운 미소와 이야기만 쏟아 놓지 않는가. 뿐이랴, 그가 들려주는 천리마 운동의 내력은 저 김삿갓의 취재 내용(?)과는 적잖은 차이가 있음을 우선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응원 씨(65세), 그는 듣고 보니 이남 출신의 월북자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는 남달리 김 주석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의 대상으로써 천리마 작업반 운동의 선봉자로 피택이 되고 그 나라 최고의 영예인 《노력영웅》으로 추대되기도 한다. 그는 월북해서 곧 몸담아 일해 온 강선제강소에서 환갑을 넘은 이날까지 천리마와 더불어 지나온 그의 반생애 회고담을 거침없이 줄줄 외이듯 들려주었다.
1956년 12월 28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김 주석은 강선제강소를 찾아왔다. 뜻밖에 김 주석은 뵙게 된 근로자들은 그에게서 무슨 말이 있을는지 기대에 차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는 환한 미소와 함께 근로자들의 기름 묻은 손을 잡아 주며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난 동무들이 보고 싶어 왔소. 지금 우리는 매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소. 우리네 조상들이 긴 담뱃대 물고 시나 읊다가 왜놈들에게 나라 빼앗기고 또 미국놈에게 다 파괴되었소. 정전은 되었으나 시국은 제국주의 세력과 반당 반혁명 분자들의 책동으로 소란하고 어지럽습니다. 우리는 명년부터 제1차 5개년 계획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자면 자금, 노력, 자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그 중에서도 강철과 강재가 매우 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 어렵게 살아왔고 또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남이 한 발작을 뛰면 우리는 열 발작, 남이 열 발작을 뒷면 우린 백 발작을 뛰어야겠습니다. 우리 조선 속담에 나오는 그 천리마를 탄 기세로 말입니다. 그래야 남이 공산주의로 들어갈 때 우리도 함께 공산주의로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보수주의자들은 종래의 공칭 능력에만 매달리면서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겠는가. 동무들밖에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 보수주의 소극성을 타파하고 인민 경제의 긴장된 고리를 풀어야 할 사람들은 다름아닌 동무들입니다. 그리고 동무들은 해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 나는 여러분들과 함께 의논하로 왔소. 여러분이 우리 공화국 재건에 최선두에 서서 전위대가 돼 주어야겠소.》

하루를 천날같이 어서 속히 전화를 딛고 서서 지난날의 상처를 치유하며 선진 부강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그의 진정어린 호소에 모두는 감동하여 말을 잃었다. 다만 무엔지 모를 뜨거운 것이 눈시울을 흐리게 했고 뜨거운 그 무엇이 가슴에서 격동함을 가누기 어려웠다. 일찍이 느껴 보지 못한 불붙는 애국 애족의 마음, 비상한 의욕과 결의 그리고 사명감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극빈한 농가 출신으로 14세에 부친을 잃고 청상이 된 홀어미를 남한 땅에 남겨 두고 월북하여 한평생 죄책과 한으로 살아왔다는 진응원 씨, 세상 모르던 개구쟁이 시절 집에선 멀건 죽을 끓여 먹는 형편에 어머니가 빚을 내어 마련해 준 학비를 바치고 나머지 거스름돈으로 눈깔사탕 사 먹은 것이 너무도 죄스러워 스스로 뽕나무 3대를 꺾어다 어머님 앞에 놓고 목침에 올라 종아리를 걷어붙였다는 진응원 씨는 감회어린 어조로 그날 그 시간 자신을 포함한 동료 근로자들의 심정을 이렇게 계속 들려주었다.
《지주놈들의 수탈에서 일제의 압박에서 미제의 폭격에서 단 한 번도 기를 펴지 못했고 사람 대접 받지 못했으며 배불리 먹어 본 일 없는 우리가 이제 비로소 해방을 맞이했고 우리도 한번 떳떳이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기 위한 것이라면, 국가의 번성은 곧 나의 번성, 그 무엇도 아까울 것이 없으며 그 꿈은 하루 한시라도 앞당겨 이뤄야 한다. 더욱이 사람으로 태어났으되 단 한번도 인간 대우를 받아 보지 못한 미천한 우리 근로자들에게 그는 이같은 막중한 사명을 짊어지우고 선두에 세워 주는 영예를 주었다. 당의 뜻이라면 그리고 백년대계 후손들에게 물려줄 다시는 눈물이 없고 피흘림이 없고 그리고 배고픔이 없는 영광스럽고 찬란한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이 한목숨도 아낌없이 바쳐 조국을 사수할 것이며 태산도 밀어내고 바다도 막으리라.》
그들은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그 당장 현장에서 과업 수행을 위해 기발하고 대담한 방안을 내놓으며 당장 내일부터 실천에 옮길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창 밖엔 여전히 눈이 내리 쌓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몸도 마음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훨훨 타오르듯 뜨겁기만 했다. 이윽고 김 주석이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모두는 김 주석의 차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지켜 보고 서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저만치 100미터도 더 갔던 그의 차가 되돌아오지를 않는가. 다시 돌아온 김 주석은 하차하더니 근로자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털어 주며 이렇게 근심해 주었다.
《동무들, 어서들 들어가보라구, 감기들 들겠오. 자 동무들이 들어가야 나도 가겠소.》
천리마, 그는 이렇게 해서 그날 눈발 휘몰아치던 날 거기 강선제강소를 산실로 하여 세상에 태어났다.

그 어느 해인가. 남의 대물난리가 있어 북에서 수재 원조 물자를 실어 보낼 때 그는 모친의 생사도 소재도 모르면서 무작정, 불효자로서 참회의 긴 사연을 쓰고 옷 한 벌을 마련해 가지고 남쪽으로 떠나는 선박에다 전해 줄 것을 의탁했는데 그것은 결국 되돌아 왔다. 그는 결코 통일이 되기 전 까지는 자식들의 환갑상일랑 받지 않기로 마음 먹었으나 당에서 차려준 억지 환갑상을 받고 모친 생각에 눈물지었다는 진응원 씨. 그는 이제 천리마의 전개를 이렇게 들려준다.
《천리마는 정직했다. 그 첫날의 결의와 맹서를 과연 실천에 옮겼을 뿐 아니라 그가 강선제강소에 지펴 놓은 불씨는 오뉴월 산불처럼 삽시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그 거센 불길 속에 이루어져 나가는 복구 건설은 차라리 유혈 없는 전쟁 같았고 노동은 전투였으며 동료가 전우였다. 근로자들은 이른 새벽부터 직장에 나와 일을 시작했고 퇴근 시간이 지나도 귀가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과로를 염려한 직장마다 그들을 돌려보내는 일이 큰 문제거리였다. 그들을 애써 쫓아 보내고 문을 걸어 잠근다. 그러면 그들은 한밤중 또는 신새벽 누구도 모르는 사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무슨 노동에 신들린 사람들처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왔다. 제1차 5개년 계획이 훨씬 앞당겨 성취된 것은 물론 각처에서 공칭 능력을 넘고 상식을 초월하는 초과 생간, 초과 달성의 신기록과 각 분야에서 비약과 혁신, 창조의 환성이 연이어 터져났다. 천리마 운동은 이렇게 해서 심화되고 무르익어 갔다.》
1960년 8월, 천리마 운동은 다시 천리마 작업반 운동으로 발전, 전국 천리마 작업반 운동 선구자 대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마치 사도바울의 성서 말씀(고린도전서 12:12, 로마서 12:4)을 방불케 하는 저 유명한 그 나라의 대표적 구호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슬로건이 채택된다.
그들이 원대한 꿈을 안고 공산주의적 이상 사회를 향해 《천리마》라는 이름의 대진군을 함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전인민의 철석 같은 단결이어야 했고 그 단결은 오로지 참된 사랑의 핏줄로써만이 가능한 것이며 그러한 사랑을 지날 수 있는 공산주의적 교양과 인격이 갖춰져야만 했다. 참된 사랑 그것은 언제나 크게 혹은 작게 자기희생을 요구해 오는 것. 대를 위하여 소를, 내일의 위하여 오늘을, 동지를 위하여 나를, 그리고 상관이 부하를, 부하가 상관을 위하여 상부상조, 절대협동, 봉사 그리고 희생이 따라야 한다. 또한 그리해서 안일과 이기욕을 경멸하며 조국과 이웃을 위한 투쟁 속에 자신을 불살라 온전히 투신, 헌신할 때에 비로소 인간된 존엄과 보람을 찾고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
천리마 작업반 운동의 첫 봉화가 강선제강소의 진응원 씨에 의해 높이 들려졌다. 천리마 운동의 불길은 공업과 농업의 생간 분야에서 경제, 교육, 문화, 기술로 번져 갔고 이제 인민 모두가 그 같은 차원 높은 인간상의 구현을 위한 인간 사상 개조 운동으로 다다른 것이다. 이 천리마 작업반 운동의 결실을 때때로 사람들은 말한다. 《북조선은 미담의 나라이다》라고. 그것은 너무도 뜻밖에 말이었고 결코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수차례 북한을 방문한 바 있는 독일의 저명한 여류 작가인 루이제린저 또한 말했다.
《십자가 없는 그 나라에서 오히려 기독교 교리를 실천하고 있는 참 기독자들을 나는 만났다》라고.
방과 후에 남아 낙후한 작업반을 돕는다든지 그들을 거들고 이끌어주기 위해 숫제 명예로운 자신의 직장을 떠나 옮겨 가는 일쯤은 《봉사》라 부르지 않는다.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 위해 과외 보수도 없이 가정 심방 특별 지도를 한다든지 낙도의 외로운 생도들을 위해 자원하여 나서는 도시의 교사에게 시선을 주는 일 없고 불행한 일을 당한 동료, 이웃을 위해 자원해 피와 살을 나눠주고 뼈를 깎아주는 일쯤을 그들은 결코 《미담》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 사회에서 이제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의 여사일이어서인지 그런 이야기에 경탄해 마지 않는 우리쪽을 오히려 의아하게 본다.
실인즉 그들이 걸어온 시련의 세울 속에 눈물겹고 감격적인 미담이 수없이 담겨져 있다.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고 장마철에 적들이 띄워 보낸 지뢰들을 없애 치워 제방 공사를 끝내 완수하고 인민들의 생명 재산을 보호한 한 건설 사업소 대원들의 이야기, 48%에 3도 화상을 입고 입원한 환자를 구하기 위해 전의료진들이 침식을 마다하고 치료에 전념, 저마다 살점을 바치고 피를 바치겠다고 앞을 다투어 전국에서 모여든 지원자들의 사랑과 진정을 모두어 끝내 대담한 실험 수술 결과 성공한 흥남 비료 공장의 병원 이야기, 실명하게 된 환자를 어떻게든 살리고저한 애타는 심정에 어느 안과 의사는 최후의 용기를 내어 자기 집 가족들의 각막을 떼어다가 실험 수술한 결과 기적적으로 눈을 뜨게 해준 이야기, 그러 때마다 피와 살을 헌납코저 구름떼같이 모여드는 지원자들로 해서 병원측은 대혼잡을 막아내기에 진담을 뺐고 전국이 감동과 흥분에 휩싸이곤 했다.
그러나 세월이 감에 제2의 지로 사건, 기적적인 제3의 화상 치료, 제4의 각막 치료가 잇달아 있게 됨으로 이제는 그런 정도의 일로 그리 떠들썩하지 않게 되었다 한다.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금 만능주의 세상에 살아왔고 다분히 개인주의 세상에서 살아온 나에게 이렇듯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얘기들이 여전히 내게는 생소하고 도시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나 같은 이방인의 의구심 따위일랑 무관심하게 다만 어제도 오늘도 그 어디를 가나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인민에게 복무되어야 한다. 인민에게 복무되는 일만이 값어치가 있다. 그리고 인민을 복무하는 자만이 인간다운 인간이다》라고.
언젠가 통일이 되면 남한의 극빈 자녀들에게 무료 봉사하는 것이 꿈이어서 사범 대학에 진학했다는 맏딸 자랑을 하는 진웅원씨, 전혀 무학이던 그가 비록 만학이지만 야간 공업 대학을 수료, 어엿한 학사가 되었고 그 어느해인가 공화국 창건 기념일 경축 대회에서 내외 수상급 인사들의 자리인 주석단(본부석)에 일개 체철 근로자인 자기에게 자리가 차려져 김주석을 가까이 했을 때의 그 영예와 기쁨을 회상하는 진웅원 씨. 그는 남한의 피흘리는 통일 투사 그리고 동료 근로자들에게 이렇게 열렬한 격려를 보낸다.

《남포항에서 어머님 선물을 실어 보내던 그날, 배가 떠나가며 고동 소리를 울렸을 때 가슴이 미어져 왔고 그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누워 농성투쟁을 벌이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터져 온다. 첫째도 둘째도 통일이다. 하루속히 통일을 앞당겨 우리가 통일 광장에서 만나기를 기원한다. 우리가 일치단결해 싸우면 못할 것이 있겠는가. 그대들의 투쟁은 결코 외로운 투쟁이 아니다. 우리는 자나깨나 남반부 인민들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는 언제든지 그대들을 기쁘게 안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

그는 두 손으로 내 손을 부여잡고 우리가 헤어지는 시간을 못내 아쉬어하며 몇 번이고 말한다.

《선생님을 우리 집에 꼭 초대하고 싶은데…. 선생님께서 그처럼 바쁘시니, 정말 초대하고 싶은데….》

천리마, 천리마는 지금쯤 어디에 와 있는가. 내게는 여전히 천리마의 힘찬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세계가 경탄해 마지않는 평양의 광복 거리에서, 사상 세계 최대 규모 능라도 경기장(15만석)에서, 그들의 5천 명 출연 가극 《행복의 노래》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보여준 그들의 반제 반핵 평화에 대한 갈망과 그렇듯 화려한 단결의 미학에서, 그리고 그들이 애국 애족을 말하며 통일 염원을 부르짖을 때의 그 열정에서.

1992년 2월5일 <내가 만난 북녘사람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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