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05-18 00:00
역도산의 딸 김영숙
 글쓴이 : minjok
조회 : 5,653  
1938년 단오, 함남도 동해가 어느 솔밭에 씨름 경기가 벌어졌다. 변방에 한다하는 씨름꾼들이 저마다 힘을 겨루고자 모여서 참전한 가운데 씨름판은 열기를 띠고 구경꾼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 씨름판에서 1등을 하면 자그마치 황소 2마리, 2등이면 황소 1마리, 3등이면 광목 32필을 상품으로 받게 돼 있다. 화창한 5월의 봄볕 아래 기골이 장대한 장수들이 엎치락뒷치락 번갈아 경기를 벌이고 있고 저만치 천막을 친 귀빈석에는 주로 친일파계의 소위 지방 유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반백의 쪽발이 사나이가 또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세도가 대단한 이 지방 경찰관 주재소 소장 오가다도라이찌의 장인으로서 잠시 조선 땅에 나들이를 온 자다. 그의 이름은 모모다이노스께. 그는 일본에서 기생업을 하는 자로서 열렬한 씨름 애호가다. 그는 줄곧 어느 한 청년에게 현혹이 된 듯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마침내 씨름판이 끝이나고 시상식이 차려졌다. 1등에 김항락, 2등에 아무개, 3등에 김신락이다. 형님 김항락, 아우 김신락 2형제가 1등과 3등을 휩쓸었다. 모모다 곁에 있던 친일 앞잡이 순사놈이 1등을 차지한 김항락에 대해 아첨어린 소개의 말을 늘어놓고자 했다. 모모다는 흥미 없어 했다. 그 보다는 왜인지 3등을 한 김신락에 여간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저 청년은 스모또리(일본 씨름)를 시키면 틀림없이 유명한 스모또리가 되겠는데…. 저런 감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소. 체격만 봐두…》
《네? 저 1등을 한 김항락 말씀이지요?》
《아니요 3등을 한 김신락이 말이요. 아까운 청년이요. 저런 청년이 이런 시골에 묻혀 있다니… 한 번 만나 볼 수 없을까?》
《모모다 선생 염려 내려 놓으십쇼. 제가 내일 저 청년을 데리고 소장 댁에 가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의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운명이 축제의 북소리, 꽹과리 울리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음모되고 흥정되었다. 애당초 그들에게 본인의 동의나 승인 같은 것이 필요했던가. 그러나 순반한 우리 조선의 청년, 김신락은 번민하며 저항하며 울부짖었다. 내 어찌 왜놈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칠소냐. 그는 단호히 말했다.
《스모또리는 싫소, 난 고향 땅에서 농사 짓겠소.》
그들 제안 앞에 무조건 복종이냐 아니면 본인뿐 아니라 온 가족 형제들까지도 징병 또는 징용이냐 하는 공갈, 협박 앞에 신락은 어쩔 수 없이 굴복, 차라리 자신의 한몸 희생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강제로 옷을 벗기우고 치욕적인 신체 검사를 당한 뒤 그는 죄수 아닌 죄수가 되어 결국 고향, 사랑한는 보모형제를 뒤에 두고 현해탄을 건널 때 그가 가장 가슴 아파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어쩜 엊그제 신방을 차렸고 이미 홀몸이 아닌 아내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미지의 자식 때문은 아니었을지….
일본 땅에 떨어진 김신락, 어느 날 하룻밤 잠에서 깨어나고 보니 그는 자기 아닌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본명 : 김신락, 생년월일 : 1920년 11월 14일생, 호주 : 김선태의 3남, 본적 : 함경남도 흥원군 룡원면 신풍리》이어야 할 신락의 호적초본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이름 : 모모다 미쯔히로, 생년월일 : 1924년 11월 14일생, 본적 : 일본 나가사게현 오무라, 호주 : 모모다 이노스께》로 둔갑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는가. 신락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모모다가 아니라 김신락입니다. 이거야 너무하지 않습니까. 본인도 모르게 부모형제들도 모르게 성과 이름 그리고 출생지가 바꿔지다니!》
《뭐가 너무하고 억울하다는 거야. 징병, 징용도 다 면제해 주었지, 게다가 마늘내 나는 조선 민족을 사꾸라 향내나는 야마도 민족에 황국 신민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고맙다고나 할 일이지, 에잇 이 배은망덕한 놈!》
불같은 따귀가 후려갈겨 졌다. 바닥에 꼬꾸라진 신락의 코와 입에서 피가 철철 쏟아졌다.
《저를 조선으로 도로 보내 주십시오. 저를 고향으로 도로 보내 주십시오.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
신락은 더 이상 소용없는 항변이나 호소 따위를 그치기로 했다. 대신 이제는 오직 힘과 실력으로 투쟁할 결심을 한다. 그는 일단 씨름꾼으로서 1급에 오르고 《역도산》이라는 역사명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왜놈의 씨름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전혀 생소한 프로레슬링으로 전향, 맹훈련에 들어간다. 그의 발전은 비상한 속도로 전진에 전진을 거듭한다. 불과 얼마 안가서 그는 세계 프로레슬링게를 석권, 정상급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특기인 《가라데쪼브(일본 씨름과 레스링의 기법을 절충한 그으 독자적 묘기)》를 당해내는 선수는 세게에 없게 되었다. 승냥이 추장, 체코의 범, 텍사스의 맹수, 살인귀로시야의 숲, 걸어가는 알프스, 멕시코의 코끼리, 인간포탄 등등 그 별명도 으스선한 전세계의 막강한 실력파적수들, 그 누구도 역도산의 《가라데쪼브》 앞에 무릎을 꿇고 패배의 쓴 잔을 마시지 않은 자 없다. 그 중에서도 세계 프로레슬링의 제우스라 불리는 미국의 루·테즈를 타승, 세계 프로레슬링 선수권을 쟁취했을 때 그는 결정적으로 세계 프로레슬링의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말했다.
《세계 프로레슬링의 왕곤이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라고. 그러자 역도산이 단호히 가로 막았다. 《일본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가라데쪼브》를 쓰는 그의 오른손을 가리켜 프로레슬링계에선 《황금의 오른손》이라 불렀고 역도산 자신은 《정의의 오른손》이라 불렀다. 그가 《양키》와 《왜놈》들에 대한 울분이 치밀고 보복심에 발투 오를 때마다 그의 노한 《정의의 오른손》이 오열했고 초인적 힘을 발휘, 과시하곤 했다. 찢기고 물리고 피흘림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침내 그는 한사람의 체육인으로누릴 수 있는 지상 최대의 영예를 얻었고 경제적으로도 또한 거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남모르는 그의 고독을 포효하듯….

《나 역도산은 일본의 영웅이 아니요. 세계 프로레슬링 왕자요. 그리고 나 이 역도산은 조선 사람이요. 조선 사람이란 말이요!》

나는 고려호텔(평양) 면담실에서 역도산의 딸, 김영숙 여사(1943년생)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겨울비가 차겁게 내리고 있었다. 창밖엔 갖가지 빛깔의 우산을 받쳐든 시민들이 분주히 오가고 가득가득 김장 배추를 실은 트럭들이 계속 오고 가는 것이 눈에 뜨인다. 나는 그녀를 기다리면서 상상해 본다. 천하장사의 딸이니 혹시나 그녀 또한 여장부로서 우락부락한 외모에 여성 중량급(?)이나 아닌지…. 더욱이 그녀 또한 체육인이라는 풍문을 들었기에…. 그러나 내 멋대로의 상상은 전혀 어긋난 것임을 곧 확인하게 되었다. 곤색 바바리코트에 우산을 들고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타난 그녀의 인상은 너무도 차분하고 유순했으며 어느 윤택한 가정에 맏며느리형 미인에 속한다 할까. 그 용모 어느 곳 하나 구김이나 맺힌 데라곤 없는 밝고 여성적인 그녀의 부드러움으로 해서 초면의 사람을 만나는 긴장감 또한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리를 마주하자 곧 오랜 지우이기나 한 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모모다 미쯔히로가 아닌 역도산, 김신락의 무남독녀로서 아빠 없이 태어난 그녀가 처음으로 아빠를 대해 본 건 출생 2년 후, 어찌어찌해서 잠시 고향을 다녀가신 아빠를 아빠인 줄도 모르고 꿈인 듯 만나 본 것뿐, 홀어머니 품에서 자라왔는데 그나마 9세 되던 해 어머니마저 병고로 세상을 뜨셨다. 천지에 의지가지 없어진 그녀는 큰아버지 댁에서 자라면서 오로지 국가의 보조로써 학업을 마쳤다. 큰아버지 댁에선 친자식처럼 품어 키워 주셨지만 부정할 수 없는 고아로서의 그녀의 외로움을 달랠 길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부께서는 이미 지상의 사람이 아닌 줄로만 알았던 부친의 생존 소식이 전해져 왔다. 딸은 이 놀랍고 기쁜 소식이 도시 현실로 믿어지지 않았다.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딸은 아빠에게 글월을 적기 시작했다.
《아버지! 저는 세상에 태어나서 아버지를 처음 이렇게 불러 봅니다…》
이렇게 서두를 뗐지만 곧 말문이 막히고 눈물만 쏟아졌다. 돌아가신 어머님 사연부터 이어 적어 내려갔다. 어머님 임종시 딸의 손목을 잡고 유언처럼 남기신 마지막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네 아버지는 일본에 가 계신다. 죽지 않으면 조국에 돌아오실 거다. 왜놈들에게 끌려가면서 기다리오, 꼭 돌아오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메 아버지의 그 말을 믿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끝내 네 아버지를 못 보고…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어머니가 아버지를 무척 기다리다가 먼저 갔다고 일러라…》
딸의 사연은 이렇게 계속된다.
《큰아버지가 강승민이라는 분한테서 아버지에 대한 소식을 구체적으로 들었다면서 조국을 그리면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면서 인생을 보내고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처럼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형편에 대해서 알려 주었어요…》
일본에 아버지는 딸의 편지에 대한 회답 대신 현실로 딸을 만나게 해줄 것을 조국에 청원해 왔다. 김 주석은 즉각 이 일을 실현토록 배려해 주었다. 1961년 니이가다항 귀국선에서의 두 부녀의 운명적이며 극적인 상봉이 실현된 데에는 조국의 크나큰 배려로써 그것은 처음이자 마지막 베푸신 신의 은덕이 아니었는지…. 곧이어 두 부녀 앞에 떨어질 저 엄청난 비극을 예견이나 한 듯이…. 니이가다항 귀국선에서 만난 두 부녀는 서로 부둥켜안은 채 끝도 한도 없이 울었다. 면회 시간은 단 3시간, 소연회가 베풀어지고 두 부녀 사이엔 선물 교환도 있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예쁜 목걸이, 시계, 옷감 등으 주었고 딸은 아빠에게 조국의 특산 인삼주와 산나물 등속을 올렸다. 그리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아빠가 딸에게 물었다. 《네 특기가 무엇이냐?》 평소 노래도 잘 부르지만 농구 선수로서 운동에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그대로 답해 올렸다. 《옳거니!》 아빠는 여간 기뻐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당부으 말씀을 하셨다. 《체육대학에 진학해서 더욱 열심히 수련하여 오는 64년도 동경 올림픽에 선수로서 출전해 오너라. 그리해서 우리 그때 다시 만나 보자꾸나.》
딸 앞에 무지개빛 새 인생이 열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딸, 김영숙은 어제의 춥고 외로운 고아가 아니라 동화 속의 신데렐라로 확신한 것만 같았다. 조국으로 다시돌아온 영숙은 즉시 철도 승무원으로 일해 오던 직장을 사직하고 곧장 체육대학 전문부 3학년에 편입했다. 그리고 부친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리라 곧게 다짐, 64년도 동경올림픽 출전 선수로서 맹훈련에 들어갔다. 곧이어 일본에서는 또 기쁜 소식이 전해져 왔다. 일본의 아버지께서 최고급 승용차 한 대를 김 주석에게 선물해 왔고 또한 64년도 올림픽에 참전할 조국 선수들을 위해 호화 숙소를 건립해 주실 것과 일체의 참가 비용을 부담해 주시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욱 더 기쁜 소식이 있다. 그것은 부친께서 다가올 올림픽을 마치면 재산을 정리해 가지고 조국으로 돌아오시기로 단안을 내리시고 그 의향을 밝혀 오신거다. 두 부녀는 64년도 올림픽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이제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 잃었던 행복을 되찾고 새 삶을 맞이할 희망과 설레임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부친의 사망 소식이다.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아버지의 죽음은 한 개인의 사건이 아니었다. 세계적 유명인의 의문사이기 때문이다. 어찌해서 아버지가 뒷골목 깡패의 독 묻은 칼을 맞아야 했는지, 어찌해서 첫 수술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수술이 강요되었는지, 그리고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은 아버지에게 강제로 사이다를 먹이고 달아난 그 사나이는 또 구구인지.
《죽고 싶지 않거든 지금이라도 역도산이 일본 사람이다라고 말하라》 협박전화, 협박장이 계속 날아들었는지…. 이것이 음모에 의한 계획적 암살이라는 것쯤 아마츄어 수사관이라도 해명하고 남을 명백한 사실, 엄연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진상 밝히기를 회피하도록 목덜미를 잡고 있는 그 검은 손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아무도 이 억울하고 절통함을 그리고 의문을 풀어 주는 이는 없었다.
천길만길 떨어진 듯 낙심한 딸은 더 이상 운동할 기력이 없었다. 심적 충격과 함께 별안간 운동을 쉬게 되니 건강 상태가 급하락했다. 당시의 슬품과 고통의 후과가 20여 년이 지난 이날까지도 채 가시지 못할 정도로…. 절망과 비애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는 딸에게 조국에서는 부친의 《애국열사증》을 하사하여 안겨주었다. 지난날의 기쁨도 슬픔도 한날에 피었다 스러져간 안개처럼 허무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 그녀는 그런대로 옛 상처를 씻고 네 딸의 어머니로 아내로 그리고 직장인(평양, 금성출판사 직원)으로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아들 낳으라는 시어머님 압력(?) 때문에 자꾸 낳다 보니 딸부자가 되었죠. 그러나 재미있답니다. 우리집엔 계집아이들만 많다 보니 양말 같은 게 서로 헷갈리기도 하고…. 우리 셋째 딸은 외국어 대학 프랑스어과 5학년인데 지난번 제13차 세계청년축제 때 통역을 하기도 하고 임수경 양과 함께 단식 투쟁에도 한 성원으로 참여했었죠.》
그녀 얼굴에 함박꽃 같은 소박한 미소가 피어났다.

139번 경기에 단 3번 비겼을 뿐 136번을 승리한 세계 프로레슬링의 제왕이며 세계 프로레슬링의 우상이며 우리 조선 땅 고구려의 남아인 역도산, 백절불굴, 일당백의 기백으로 우리 한민족의 울분과 한을 대신해 싸워 준 조선의 표범, 김신락. 그는 불과 43세의 젊은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나는 상상해 본다. 그 어느 날엔가 그의 신령이 되살아나 우리의 통일을 가로막는 저 매국노들을 그 《정의의 오른손》을 펴서 단숨에 들어 해치우는 통쾌한 장면을….

1992년 2월5일 <내가 만난 북녘 사람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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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14-12-1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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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kee go home
모든 문제는 조국통일만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김정은국방위원회제1위원장님 만세
조국통일 만세
샐리 15-03-0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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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 고물 빨갱일세.....
고물 16-02-03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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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kee go home.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조국통일 만세.
김정은 국방위원회제1위원장님 만세.
친일.친미.사대매국노들 그리고 부역자들
지구끝까지 찾아내 재산몰수 그리고 3대까지 척결.
특히 수구꼴통 견찰
고물 16-02-03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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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kee한테 부역하는 떡검 국개의원들 개독인 개보수 법조인들 이명박근혜 기레기들 학자들 국정원 Westpoint 미육군대학 장교새끼들 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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