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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노동자 ⑤ 북녘에 부는 변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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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4-05-13 00:00 조회10,9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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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내일을 위한 개혁과 개방

경제적 ‘실리’ 중시…과학기술발전ㆍ정보화에 주력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서 남북노동자가 만난다. 남한의 양대 노총과 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직총)은 30일부터 5월3일까지 평양에서 ‘6·15 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2004년 남북노동자 5·1절 통일대회’를 갖기로 했다. <매일노동뉴스>는 뜻깊은 행사를 직접 취재하기 위해 송은정 기자를 평양에 보내기로 했으며, 행사를 앞두고 다섯차례에 걸친 기획연재 ‘북한의 노동자’를 통해 북한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을 미리 살펴본다. <편집자주>

1. 직장배치와 기술교육
2. 직장생활과 여가생활
3. 노동보수로 생활하기
4. 노동자 조직 ‘조선직업총동맹’
5. 북녘에 부는 변화의 바람

2004년 4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과 뒤이은 ‘용천참사’로 연일 세계의 눈과 귀가 북한에 쏠리고 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주목받았는데 첫째, 두 나라가 ‘조선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는 점, 둘째, 2000년 이후 세 차례의 방중 동안 김 위원장의 ‘경제참관’이 빠짐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 2000년 5월, 1983년 이후 18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의 중관춘(中關村)에서 첨단정보산업을 둘러봤고, 8개월 뒤인 2001년 1월 다시 중국을 찾았을 때는 개혁ㆍ개방의 상징인 상하이를 방문, 푸둥(浦東)개발지구의 하이테크산업과 상하이증권거래소를 참관했다. 이번 방중 때도 역시 자신은 대규모공업도시인 텐진(天津)시를 시찰하고, 연형묵 자강도당 책임비서와 박봉주 내각 총리는 모범농촌인 베이징의 한춘허(韓村河)로 보내 농업발전현황을 알아보게 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2000년대 들어 북한 주민들에게 “지난 시기에 마련한 터전에서 그 모양대로 살아 나갈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그 면모를 끊임없이 일신시켜 나가야 한다”며 “모든 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높이에서 보고 풀어 나갈 것”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변화가 시대의 대세라면 먼저 개혁ㆍ개방에 나선 중국에게서 교훈을 찾겠다는 김 위원장과 지도부의 의지가 잦은 방중과 경제참관, 그리고 최근 북녘의 ‘개혁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040430_ansan.jpg ▲ 2003년 6월30일 개성공단 착공식 ⓒ 사진제공=현대아산

북녘은 개혁 중

이미 북은 사회주의권 붕괴로 경제난이 시작된 1990년대 초반 제한적인 개혁ㆍ개방을 시도했다. 안으로는 부족한 소비품 생산 강화, 기업소 독립채산제 심화, 생활비와 상품가격 인상, 화폐개혁 등을 단행했으며, 밖으로는 1991년 9월 UN가입으로 국제사회활동을 본격화하고 12월에는 ‘라진ㆍ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를 설치했다. 또한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991년 12월), 비핵화공동선언(1992년 4월) 등을 통해 남쪽과의 화해ㆍ협력의사도 적극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이러한 북의 노력은 미국이 1991년부터 동북아시아 전략을 공세적으로 바꾸면서 난관에 빠졌다. 1993년 미국의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와 영변 핵사찰 공방으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1995년의 큰물피해(대홍수) 등 연이은 자연재해까지 겹쳐 경제난은 극도로 심각해졌다. 결국 북은 위기극복을 위해 군사(軍事)를 중시하고 경제건설에 군대를 내세우는 이른바 ‘선군정치’(先軍政治)를 실시했고, 미국과의 핵?미사일 협상 타결, 김대중 정부의 대북지원 등 외부조건이 나아지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은 199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다시 개혁ㆍ개방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첫째, 북의 최근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지는 건 기업소와 노동자 모두 경제적 ‘실리’를 중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공장ㆍ기업소는 국가의 전폭적인 재정, 자재, 에너지 지원 아래 계획된 생산목표만 달성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2001년 7월부터는 국가가 제품에 제 값을 쳐주고 일부 제품은 국영상업기관이 아닌 ‘시장’에서 팔 수 있게 해주는 대신 기업소에 대한 지원은 대폭 줄임으로써 ‘이윤’을 못내는 기업소는 문을 닫는 상황도 올 수 있다. “사회주의 사회의 기업은 파산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깨진 셈이다.

노동자들도 주로 생활비로 생계를 꾸리게 되면서 물가변동에 예민해지고, 어떻게 하면 지출을 효과적으로 할지, 또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수입을 올릴지 ‘계산’을 자주 하게 됐다. 최근 북을 자주 오갔던 이들은 한결같이 “북쪽 사람들이 매대에서 물건을 파는데 과거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말로 평양의 바뀐 분위기를 전해준다.

둘째, 외자유치를 위해 경제특구를 확대하고 있다. 북은 1998년 헌법 개정 때 “특수경제지역에서의 여러 가지 기업창설, 운영장려”라는 구절을 추가해(제37조) 대대적인 특구 설치를 예고하더니, 2002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특구 개발에 나섰다. 2002년 9월 국경도시인 신의주시를 특별행정구로 지정한 후 그 해 11월 ‘금강산관광지구법’과 ‘개성공업지구법’을 잇따라 발표한 것이다. 이로써 북은 현재 라진ㆍ선봉경제무역지대, 신의주특별행정구, 개성공업지구, 금강산관광지구 등 국토의 동서남북에 4개의 경제특구를 설치하고 있다.

이 중 최근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는 개성공업지구는 남쪽 기업 전용공단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개성공업지구로동규정’(이하 ‘개성규정’)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우선 채용과정에서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직접계약이 가능하다. 이전까지 대북투자기업에 적용되던 ‘외국인투자기업로동규정’(이하 ‘외국인규정’)에서는 기업이 직업동맹과 계약을 맺도록 했지만 개성규정에서는 “기업은 선발된 로력자와 월로임액, 채용기간, 로동시간 등을 확정하고 로력채용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규정했다(제10조).

또한 해고의 경우 외국인규정에는 직업동맹과의 ‘합의’가 의무화되어 있었던 데 비해, 개성에서는 해고사유가 발생했을 경우 당사자에게 30일 전까지 통보하고 해고자 명단을 노력알선기업에 제출하는 것으로 해고절차를 마무리하게 했다(제15조). 개성지구 투자기업은 직업동맹 대신 종업원대표와 노동규칙(노동시간과 휴식시간, 노동보호규정, 노동생활질서, 상벌기준 등)만 협의하면 된다(제13조).

끝으로 기존 외국인투자기업의 경우 기업이 노력알선기관에 노동보수를 선불로 일괄납부하면 노동자가 알선기관으로부터 후불제로 수령했으나, 개성규정은 이와 달리 “기업은 로동보수를 화폐로 종업원에게 직접 주어야 한다”(32조)며 직접지급을 명시하고 있다. 다양한 개인인센티브 제도의 활용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개별적 채용계약과 임금지급이 가능하고 직업동맹은 없는 상황에서 노동보호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이래저래 개성공단은 북쪽 노동정책의 시험대가 될 것 같다.

셋째, “혁명성 하나만 가지고 혁명과 건설을 다그치던 때는 지나갔다. 높은 혁명성 더하기 과학기술, 이것이 사회주의를 성공에로 이끄는 길이다”는 인식 아래 과학기술발전에 주력하고 정보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99년부터 생산수단의 자동화ㆍ현대화, 실용적 기술개발, 첨단산업 육성 등을 핵심으로 하는 ‘과학기술중시정책’을 본격적으로 실행 중이며, 아직 열악한 통신망과 컴퓨터장비 등으로 고전하고 있지만 전국 주요 기관을 연결하는 인트라넷을 갖추고 이를 활용해 이메일과 정보도 활발히 주고받고 있다. 물론 기관별로 홈페이지도 있고 ‘채팅’도 한다.

따뜻한 만남을 준비하며

이러한 북의 개혁ㆍ개방노력은 최소한 2002년 가을까지는 별 장애 없이 진행되는 듯 했다. 돈, 인프라, 노동력 등 온통 ‘부족한 것’ 뿐이었지만 오랫동안 준비하고 신중하게 추진해 온 변화이기에 북쪽 당국이나 노동자들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만 했다.

그러나 2002년 10월 켈리 방북 이후 계속되는 부시 행정부와의 대결이 상황을 나쁘게 만들고 말았다. 군사적 긴장이 다시 높아지자 우선 내부 자원동원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또한 북ㆍ미핵공방이 시작되자 유럽연합(EU)의 대북지원활동이 사실상 중단됐고, 일본도 2002년 9월 당시에는 금방이라도 경협차관을 제공할 듯 하더니 최근에는 ‘납치자문제’를 이유로 경제제재를 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1990년대에는 클린턴 정부가 방해를 하더니 2000년대에는 부시 정부가 개혁의 성공을 가로막고 있다. 왜 북과 미국은 대결할 수밖에 없을까? 냉전 이후 미국이 만들어온 ‘새로운 세계’에 북이 고분고분 순응하며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만들고 있는 세계는 서로를 인정하는 주권국가들이 인류의 전쟁과 가난을 없애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세계가 아니라, 든든한 군사력과 신자유주의라는 무기를 가진 초국적자본의 무한지배가 이루어지는 세계, 전쟁과 가난을 먹고 사는 세계다. 북녘 노동자들은 오늘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과 대결하며 힘겹게 경제를 건설하고 있다. 마치 남녘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어렵고 힘든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곧 꾸릴 평양행 짐가방에 우선 지난 일주일 간 연재된 기사들을 오려 담자.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 용천역 폭발이라는 재앙까지 만난 북녘의 벗에게 전할 위로와 구호물자도 준비하자. 식량난이 정점에 달한 1996년에 태어나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더니 8살 나이에 화상까지 입고 누워있는 용천소학교 학생의 눈망울을 떠올리며. 끝으로 비인간적인 자본의 세계지배를 저지하기 위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남북노동자들이 함께 무엇을 할 것인지 꼭 생각해가자.

김진환 동국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reuni21@hanmail.net

[출처:매일노동뉴스 200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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