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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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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평양방문-민족통신 특파원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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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0-12-27 00:00 조회2,4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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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통일대축전 10차범민족대회 평양/판문점 참관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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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장소감 (8/13/99 김일성경기장 개막식)
(2) 유리관 속의 김일성주석을 바라보며...(8/12/99 금수산기념궁전)
(3) 황혜로 한총련 대표가 범청학련 농구선수로 활약(8/13/99 김일성대 농구장)
(4) "프에블로호" 미간첩선을 평양강변에.....(8/14/99 통일로 거리 입구)
(5) 3.8 선이 그어진 판문점 광장서 남녁을 건너보며... (8/15/99)
(6) 민족예술의 극치를 보여준 작품들과 폐막식행사(8/16/99 동평양 대극장)
(7) 아쉬운 작별 "또만납시다!!!"
*사진들은 민족통신 사진자료실에 비치돼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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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장소감 (8/13/99 김일성경기장 개막식)

민족대단결에 기초한 통일열기는 아무도 막을수 없다!
전국연합대표들, 민노총대표들, 범민련 남측대표들, 한총련 대표가 참가하고 전세계 해외동포들이 참가한 99 범민족통일대축전,10차 범민족대회는 그야말로 뜨거운 용광로를 방불케하는 민족대단결의 범민족축제로 불붙었다. 북녁동포들의 가슴가슴마다 불타는 통일열기에 어느 누구하나 용해되지 않는 참석자들은 없다. 통일은 이미 시작됐다. 민족통일을 원치 않는 외세와 이들과 한통속이 되어 애국동포들을 탄압하는 극소수의 남한 집권세력을 제외하고 이같은 열기에 용해되지 않는 7천만 겨레는 없으리라.
민족분열자 일부를 제외하고 7천만 겨레의 소망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통일대축전에서 이미 성취되고 있다. 전국연합대표들이 당당하게 통일의 시대를 선언하고 나섰다. 한총련 대표는 그 어느 누가 막아도 북녘동포들을 매년 찾아오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노총축구대표단은 남북노동자들은 하나라고 선언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방해해도, 일본 우익세력들이 반대해도, 남한 분열주의자들이 탄압해도 남,북,해외 7천만의 뜨거운 통일열망은 그누구도 막을수 없다. 남,북,해외 3자연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것은 벌써 10년을 맞는다. 조국통일 범민족연합이 결성된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범민련의 성과는 이번 "범민족통일대축전"을 맞음으로써 남,북,해외의 공고한 연대의 결실을 맺게 됐다.

이 뜨거운 통일열기에 가슴설레이지 않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쉬지않고 타오르는 통일의 용광로가 이곳 주체의 수도 평양에서 활활끓어 오르고 있다.

13일 열린 김일성광장에서의 개막식은 이곳을 취재하는 미국의 CNN뉴스팀마저 입을 벌리며 감격하고 있다. 이자리에 참석한 외국인 형제들도 그 열기에 심취해 버리고 만다. 광장의 4면에는 "애국애족의 기치,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온민족이 굳게 단결하자",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로 90년대의 마지막해인 올해에 기어히 조국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자!",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민족대단결 5대방침을 철저히 관철하자!", "위대한수령 김일성주석님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등의 프랑카드들이 경기장 사방에 나붙어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보면서 민족대단결의 길에 용솟음쳐 오르는 통일열기는 아무도 막을수 없다는 확신을 검증하게 된다. 남,북,해외의 3자연대는 기필코 통일을 이룰것으로 믿는다.

(2) 유리관 속의 김일성 주석을 바라보며.....(8/12/99)

금수산기념궁전은 지난 시기 김일성주석이 집무하던 곳이라고 한다. 3층 건물의 맨 윗쪽에 자리잡은 집무실에 특수처리한 유리관 속에 잠을 자는 듯한 모습으로 둥근 베게에 누워 있 는 생전의 모습이다. 10년전인 1990년 8월18일 제1차범민족대회를 마치고 함경북도 주을 온천이 있는 곳의 주석공관에서 각지역 대표단 임원들을 접견할 때의 그 모습이다.
입구에서 시신이 있는 유리관까지 가는 과정은 너무나 엄숙했고 그리고 경비도 세심하다. 북부조국의 동포들이 가장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곳으로 생각된다. 건물전체가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고 3층으로 안내되는 과정에는 계단들도 많았지만 길다란 에스커레이터들이 설치 돼 있다. 이렇게 설계된 건물이나 시설물들은 필자가 사는 미국에서도 보기가 힘들 정도의 놀라운 건축설계와 재료들로 만들어 져 있다. 미국의 CNN 기자들은 눈이 둥그레진 채 사 방을 둘러보는 광경도 보게 된다.

시신이 안치된 방을 나오면 그가 생애에 외국으로부터 받았던 훈장, 공로패, 명예박사증들과 수여식때 입었던 예복들도 유리보관함들에 영구보존돼 있다. 그위에는 큐바의 피델 카스토 로 지도자를 비롯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카다피 지도자, 니카라과 민족해방혁명을 수행했 던 산디니스타 영웅들중 대니얼 올테가 지도자등 세계 지도자들과 찍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 다. 이 방을 나오면 외국을 예방할 때 생전에 주로 사용하던 열차 집무실을 통채로 이 건 물 3층으로 운반해 설치해 놓았고 출구 가까이에는 1994년 7월8일 서거전 까지 이용하던 승 용차(벤즈 600)가 금수산기념궁전 복도에 전시돼 있다.

이곳을 나오는 순간 평소때 말수가많던 해외대표들도 아무 말이 없다. 필자도 한마디로 놀람을 금치 못해 할말을 잊고 있다. 나라의 지도자를 이렇게 까지 소중히 모시는 지구촌 나라들은 또 어디에 있을까라고 자문하면서 세계의 여러나라들을 머리에 그려본다.

항일유격대를 꾸리면서 일제에 타격을 주었던 인물. 할아버지 김보현(1871 - 1955), 부친 김형직(1894 - 1926) 두분은 모두 일제에 항거한 애국자들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자주적으로 나라를 세우지 못하면 강대국의 노예신세를 면치 못한다고 강조했던 20세기의 진보적 지도자 김일성 주석은 그의 철학, 주체절학(김일성주의)을 남기고 이세상을 떠났지만 이곳 동포(인민)들은 그는 영원히 자신들의 곁에 있다고 믿으며 주체의 강성대국 건설에 밤낮을 잊고 있다.

(3) 황혜로 한총련대표, 범청학련 통일농구대회 선수로 활약(8/13/99 김일성대)

남,북,해외동포 청년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연환팀과 연합팀으로 나눠 범청학련 농구대회를 가졌다. 대학대표선수들이 아닌데도 실력들이 대단하다. 여기에 황혜로 남측 범청학련 대 표선수가 끼어 전후반 쉬지 않고 다른 선수와 교체 없이 뛰고 있다. 황선수의 실력은 신통 치 않은데 박수갈채는 가장 많이 받는 인기선수로 부상한다.
응원구호도 연세대의 "아카라카 칭"이나 고려대의 "입실렌체호 칼마시케시코"의 연고전 구호 가 아니라 "조국통일" "조국통일" "조국은 하나다"이다. 337박자 박수소리에 맞춰 경기를 벌 이는 광경은 남녘에서 열전을 벌이곤 하는 연고전을 방불케한다.

그렇게 관중들의 환호속에 응원을 받았으나 황혜로 한총련대표선수는 전후반 통틀어 1점을 기록했다. 이 한점도 반측으로 얻은 두꼴 가운데 하나만 성공시켜 얻은 귀중한 점수였다. 그러니 황선수가 조국통일에 대한 열과 성은 백만학도들의 모범이나 농구경기 선수로서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후평들이다. 아무튼 황선수가 여러차례의 기회를 놓친 것 때문에 관중들의 한숨을 자아냈고 폭소를 만들어 준것만은 사실이다.

북녘의 대학생들도 남녘의 대학생들 못지 않게 잘생겼다.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을 남, 북, 해외로 구별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비슷한 모습들이다. 머리 유형만 다를 뿐이다. 질서있 고 인사성 예절을 갖고 단정하게 행동하는 것이 북녘 대학생들의 공통적 특징으로 느껴진다.

또하나의 특징은 농구장 주면에서 만난 대부분의 김일성대학 학생들의 얼굴에서 걱정스런 표정을 O아 보기가 힘들다. 무상교육이라 학비걱정이 없어 그럴까. 어찌 표정들이 이렇게 밝을까하며 의문을 던져준다. 북녘의 학생수는 전체인구의 4분의 1이 된다고 한다. 10년전 통계를 보니 초등학교수가 4,792개, 고등중학교가 4,738개, 전문학교가 473개, 그리고 대학교가 235개가 있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탁아소는 3만개, 유치원은 2만개로 나타났다.

북녘의 교육제도가 무상이라는 데 부러움을 갖지 않는 사람들은 없다. 특히 자본주의 나라에서 온 해외동포들인 것 같다. 특히 사립의 등록금이 너무 비싼 이유일것으로 짐작된다. 또한가지는 평양시 한가운데 자리잡은 인민대학습당(국립도서관)의 규모와 내용. 여기에 1천만권의장서가 있고 외국어 시청각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이용자들의 지식의 산실이 되고 있다.

(4) 68년 "프에블로호" 미간첩선을 동해서 나포해 평양강변에...(8/14/99)

통일로 거리 입구에 명물로 될 탑 하나가 또 설립된다. 그 이름은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 이다. 이것은 (1)조국통일 3대원칙(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포함 (2)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및 (3)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의미한다.
남측의 범민련대표 나창순고문과 서원철 청년대표, 전국연합의 이성우, 박기수, 강형구대표 들, 한총련의 황혜로대표, 그리고 3백여 해외동포들과 북측 대표단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거행됐다. 남측대표단들은 북측과 해외측 대표들과 함께 모두 삽질을 하여 착공의 시작을 알린다.

고려호텔에서 통일로 입구로 가는 도로변에 강물이 흘렀고 그 가장자리에 1968년 동해바다 에서 납치된 미국의 간첩선 "프에블로 호"가 강변에 묶여져 이곳 동포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저렇게 큰 배를 어떻게 이 강변까지 운송되었을까"" 하는 해외동포들의 의문들이 많다.

통일로 거리 양측에는 새 고층 아파트들(살림집들)이 최근에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신기한 것은 한반도전쟁(북에선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함)시기에 이곳 평양에는 40만명이 살고 있었는데 전쟁당시 미군 비행기(B-29)가 여기에 떨어트린 폭탄숫자만 무려 42만8천7백개나 된다는 분석이다. 미국 비행기가 이곳을 폭격한 횟수도 1만3천1백41차례였다는 것이다. 이래서인지 안내하는 분들은 전쟁시기 평양시는 완전폐허되었다면서 남은 건물은 당시 화신재벌의 건물인 제일백화점의 뼈대만 남은 것이 전부라고 설명한다.

"당시 미제는 백년이 가도 조선은 일어설수 없다고 장담했으나 김일성수령님의 현명한 영도에 의해 맨손으로 일어섰다"고 이 안내위원은 지나간 전쟁시기를 돌이켜 본다. 그는 이어 이때에도 소련이나 다른나라에 신세지지 말고 우리손으로 일떠세우자고 강조한 분이 김일성주석의 철학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고조된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일성수령님의 위대한 유훈을 계승하기 위해 때로는 제기밥(주먹밥을 의미한다고 함)을 드시며 나라일을 돌보고 계신다"고 설명한다. 이곳 동포 들은 무슨 예기를 하든지 "수령님"이나 "장군님"의 말이 빠지는 적이 거의 없이 여러번 반복 하는게 특징이기도 하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거론 하듯이...

(5) 3.8선이 그어진 판문점 광장서 자유각 바라보며...(8/15/99)

평양서 개성까지 160 킬로미터, 개성서 판문점까지 8 킬로미터니깐 4백리하고 20리가 된다. 그러니 평양서 판문점까지는 420리 길이 된다. 고려호텔서 새벽4시에 준비하여 수십대의 버스로 2천5백여명이 5시에 출발했다. 아침밥은 플라스틱 도시락 박스에 넣은 음식으로 중간 지역에서 해결했다.
24미터 폭의 고속도로로 50여대의 버스들이 달린다. 처음은 어두워 밖의 풍경이 어둠에 깔려 보이지 않는다. 차츰 동이트면서 동녘 산마루에 붉은 태양이 솟아 눈을 부시게 한다. 서 편에 펼쳐진 농가의 풍경들은 남녘의 시골 풍경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논과 밭에는 파릇 파릇한 색갈의 카핏들이 쭉 펼쳐져 있는 것 같다. 산등성이에 가꾸어 놓은 전답들은 알뜰하게 수확하기 위해 촘촘히 정리되어 있는 광경을 보게된다. 시골 아주머니들이 밭을 가꾸는 모습, 어린아이들이 반바지 차림에 웃통은 벗고 동네에서 장난치는 모습, 멀리서 손을 흔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눈에 띈다.

옛 고려 5백년의 도읍지 개성 근처에 다달으자 인구 30만명(도심지에는 12만명)이 살고 있 는 이 도시의 남녀노소 주민들은 10여리나 되는 도로변에 나와 손에 꽃을 들고 범민족통일 대축전 대표들을 열렬히 환영해 주고 있다.

개성서 20리 거리. 판문점에서의 역사적인 남,북,해외동포들의 3자연합대회가 거행된다. 3.8 선 남쪽의 자유각을 지척에 두고 남측의 판문점행사 참가자들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남측정부에서는 금년에도 또 판문점 8.15행사를 봉쇄했다는 사실을 느끼며 씁슬 한 마음으로 자유각을 바라본다. 군복입은 30여명이 자유각 맨꼭대기에서 이쪽 행사들을 보며 사진촬영, 비디오 촬영, 그리고 구경하기에 바쁜 표정들이다.

고구려 복장을 한 나팔수 들이 나와 길다란 뿔나팔로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범민족통일대축전의 3자연합 개막식을 알리는 서주를 하자 그 소리는 판문점 하늘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간다. 수십마리의 비둘기를 날리는 순서가 있자 이 비둘기 떼들은 자기 맘대로 3.8선 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하늘을 누빈다. 여성취주악대와 소고대가 ""민족대단결가""를 연주하며 대회장을 들어 서자 통일열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하다. 범민족통일대축전 깃발이 게양되고 범민련 재미본부 공동의장인 유태영목사가 개회사를 선언하고 허학필 북측대표가 민족자주 와 대단결을 강조한 연설에 이어 남측의 한총련 대표 황혜로 학생이 가슴뜨거운 연설로 참석대표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고 있다.

한총련 대표는 민족의 투쟁사가 깃들어 있는 판문점에서 남,북,해외 동포형제들이 함께 펼치는 대단결의 마당을 보며 앞으로 도래할 조국통일의 그날을 보는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조국통일을 위한 선배투사들의 성과가 있었기에 그들이 열어놓은 통일의 길, 평양방문의 길에 오늘은 남녘의 각계층 대표들이 함께 하고 있다고 하면서 실로 자주와 평화와 민족대단결을 원칙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통일흐름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대세로 됐다고 설명했다. 한총련 대표는 온 겨레가 통일을 노래하고 청년들이 통일시대로 힘차게 진군해 가자고 호소한다.

해외대표로 카나다지역 범민련의 정학필 의장은 연설을 통해 반세기이상 우리나라의 남단을 강점한 미군의 철퇴를 강조하면서 자주적 통일을 위해 남북해외가 하나같이 단결하자고 호소했다. 다음으로는 미국인 평화운동가 스코트 쉐퍼씨가 나와 미국의 새전쟁도발 책동을 규탄하며 주한미군 철수는 평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하며 미군철수를 위해 다같이 투쟁하자고 제안한다.

행사도중 남녘의 노동자들과 청년학생들의 투쟁소식이 전해지자 2천5백여명의 대표들은 환호성을 외치고 있다. 이 자리에선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범민족선언문이 채택된다. 2부에는 통일예술축전이 열렸는데 이행사에는 세계각지역에서 온 해외동포들과 북녘동포들이 각종 공연을 보여준다. 이와함께 참석자들 모두가 참여하는 통일춤놀이로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갖고 폐막된다.

판문점의 남쪽과 북쪽을 동시에 바라보며 여러 가지 감회를 느낀다. 미국은 어찌하여 우리 민족을 이렇게 오랜동안 괴롭히고 있을까. 미국에도 양심적인 사람들은 많은데 어떤 미국인들이 이렇게 남의 나라를 유린할까. 장사꾼들이다. 무기팔아 먹는 미국상인들이다. 증권투자해 이문을 남기는 장사치 미국인들이다. 부동산 투자해 돈놀이 하는 미국재벌이다. 우리기업을 헐값에 사서 불려서 팔아먹는 브로커 미국상인들이다. 자기물건 들여와 노동자 임금 착취해 이문을 챙겨가는 다국적 미국상인들이다. 우리나라 농업생산 짓밟아 놓고 자기 곡식 팔아 먹는 미국농업재벌들이다. 한우 육성 억압하고 자기육류 팔아먹는 미국인 쇠고기장사 꾼들이다. 중공업과 경공업 한답시고 자기물건 팔아먹는 미국인 대기업들이다. 여기에 일본 재벌들 까지 들어와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그래서 한미일 공조하면서 이북을 들먹이며 자기 볼일들 다 보고 있는 미,일 장사치들. 여기에 제나라 망하는지 모르고 외세에 붙어 나라를 팔아 먹는 사대매국노들을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분단을 통해 떡고물을 챙겨 먹는 분단기득권 세력, 바로 민족분열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정경유착이다. 자, 7천만 겨레의 소원은 통일이다. 그 통일은 곧 이자들을 분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6) 민족예술의 극치를 보여준 작품들과 폐막식 (8/16/99)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폐막식 행사에 이어 진행된 2부의 민족예술공연은 남,북,해외동포 대표들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민족가무 ""내나라 제일로 좋아""로 시작된 공연은 (1)서장(허영희외 24명)에서 ""백두의 해돋이야""에서부터 (13)종장 ""위대한 내나라""에 이르기 까지 열네가지 공연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시종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떠날줄 모른다.

(2)무용 ""내 사랑하는 꽃""(전영숙 외 12명)에서 무용수들의 율동은 빨강꽃을 만들며 하나의 꽃, 12개의 꽃, 그리고 큰 꽃을 그리며 무대위를 꽃밭으로 누비고 있다. (3)가무 ""사계절""은 리순향외 3명이 공연한다.

(4)무용 ""아리랑"" (장명순, 김수성외 20명 출연)은 극치를 이룬 걸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제를 비롯한 외세에 시달려 온 우리민족의 서민들은 외침으로 고난을 당하며 실의에 빠지고 좌절에 빠진다. 그러기 수십년 세월. 그러나 민중들은 깨닫기 시작한다. 민중들이 단결하여 힘을 합치면 어떠한 외세들도 물리칠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 작품의 부제를 "다시는 노예로 살수 없다"로 묘사된다. 공연진들의 몸놀림, 율동, 표정, 그리고 놀랄만한 무대장치가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좌절, 분노, 투쟁의 테마가 단결의 승리로 묘사되고 있다.

(5)가무 ""요일풀이 노래""(리순옥 외 6명), (6)무용 ""새들판의 북소리""(김경환 외 6명), (7)가무 까투리 타령"" (신정애, 한석봉), (8) 가야금독주와 병창 ""우리네 위성이 하늘에 떴소""(독주 최헤란), (9)가무 ""대흥단 삼천리""(공훈배우 오란희 외9명), (10) 무용 ""금수강산 좋을시구"" (공훈배우 리순녀외 11명), (11) 가무 ""군민일치 노래부르자"" (리순Z외 5명)의 순으로 이어진다.

(12) 무용 ""념원"" (공훈배우 리순녀, 전영숙 외 12명)도 아리랑 못지 않게 대작이다. 두명의 무용수가 7천만 겨레의 소망이며 염원인 자주적인 통일을 갈구하는 묘사로 이들의 무용은 몸부림 그리고 애절한 소망으로 나타난다. 이들 남북동포들이 그렇게 갈망하고 염원하는 통일은 외세와 분열주의자들에 의하여 이뤄지지 못한 안타까운 우리민족의 지난 역사를 형상화 하는 율동이다. 그러나 절정을 이루는 마지막 장에서는 외세와 방해세력을 뿌리치고 강열한 포옹으로 통일을 이루고 만다. 민족예술의 극치를 뇌리에 새긴다.

(7) 아쉬운 작별 ""또 만납시다"" (8/16/99)

16일 저녁 목란관에서의 저녁만찬은 공식행사로서는 마지막인 환송의 밤이나 같았다. 저녁 식사를 든후 이 자리에서 벌어진 석별공연은 출연진들과 참석자들이 하나가 되어 어울린 밤 이었다. 이북배우들과 무용인들이 공연도중 남측과 해외대표들이 주는 꽃다발을 안고 함께 사진 촬영도 하는 격의 없는 행사였다. 공연이 끝나고 이 자리에 참석한 대표들은 떠나질 않는다. 이 식탁, 저 식탁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쉴세없이 연속되고 있다. 청년들은 "자주통일, 조국통일"을 외치며 청년학생들끼리 구호를 합창하며 밤을 샐 모양들이다. 그러다간 남녀노소 대표들은 기차놀이를 시작한다. "조국통일", "조국은 하나다"를 외치며 기차줄은 온통 연회장 주변을 애워 싼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작별의 신호가 울린다. 주최측에서 오늘행사는 이것으로 마친다는 선언 이 마이크로 흘러나온다. 모두들 아쉬운 표정들이다. "또 만납시다"하며 눈물을 글성이는 사람들의 얼굴엔 아쉬움만 가득차있다.

지나간 일주일은 너무나 빨리 흘렀다. 찌는 무더위 속에서 치뤄진 행사였지만 일각이 여삼추라고나 할까. 시계바늘은 화살처럼 달려가고 말았다. 필자는 내일 17일 떠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 21일 출발계획을 갖고 있다. 그중에는 이산가족들도 꽤 있었다. 46년만에 부모를 만나는 사람들, 누이동생을 만나는 사람들, 형제들을 만나는 사람들, 작은 아버지 혹은 큰아버지, 삼촌등을 만나는 사람들...내일과 모래 이들은 근 반세기만에 가족들을 만난다. 두 번째 세 번째 만나는 대표들도 있다. 재미대표단 성원들 가운데 처음오는 사람들 모두가 가족을 O았다고 안내원이 기뻐한다. 이들은 이산가족의 상봉 때문에 흥분돼 있다. 한 대표는 수개월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겨 있다. 그래도 동생을 만난다는 기대와 부푼꿈으로 어머니를 잃은 아픔을 말없이 참고 있는 표정이다.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도 하루속히 민족의 분단이 종식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쪽의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정전협정으로 머물러 있는 상태를 평화협정으로 만들어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 민족 스스로가 우리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야 된다고 간절히 기원하게 된다. 이들말고 1천만 이산가족들이 있다.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만남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 동족을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과 접촉마져 자유스럽게 할수 없는 악법, 국가보안법을 속히 폐지하는 것이 이산가족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첩경이라고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 민족성원 자신들의 의지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루자고 기도하면서 마지막 밤을 지샌다.

[노길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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