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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독일 여류작가 루이저 린저와 한 담화(19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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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1-01-05 00:00 조회5,419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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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석이 서부독일 여류작가 루이저 린저와 한 담화
1980년 5월18일  

 

나는 선생이 우리 나라를 방문한데 대하여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서로 초면이지만 이렇게 뜨거운 마음을 안고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다같이 공동투쟁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투쟁하였고 선생은 히틀러파시스트를 반대하여 싸웠습니다. 선생은 파시스트를 반대하여 투쟁하다가 사형선고까지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선생을 만나는 것을 같은 사상과 지향을 가진 전우들의 상봉으로 귀중히 여기며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선생이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적극 지지하고 있는데 대하여서와 나라의 통일과 번영을 위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의 애국적 민주인사들을 도와 성의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현시대는 지난날 억압받고 천대받던 인민들이 세계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자주성의 시대입니다.

자주성을 지키는 것은 매개 민족의 권리이며 그 어떤 민족도 남에게 예속되거나 민족의 존엄이 짓밟히는 것을 허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주성이 있어야 민족의 행복이 있고 영예가 있으며 자주성을 가진 민족이라야 참다운 독립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오늘 자주성을 지향해나가는 것은 하나의 세계적 추세로 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사태와 관련하여 미국이 소련과 이란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구라파의 일부 자본주의나라들은 여유있게 행동하면서 지난 시기처럼 미국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란에서도 제국주의예속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이 힘차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미국의 진면모에 대하여 알고 미국을 비롯한 지배세력에 얽매어 살지 않으려는 의지가 날이 갈수록 표면화되고 있는 것은 아주 좋은 징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매개 나라들이 나라와 민족의 생명인 자주성을 견지하는데서 지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자주성을 견지하여야 혁명과 건설을 편향없이 전진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자주성을 견지하면 좋은 노선과 정책이 나오고 그 실현을 위한 방법론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선생은 나를 세계인민의 수령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세계에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나는 이번에 치토대통령의 장례식에 가서도 세계 많은 나라 지도자들이 조의를 표시하러 온 것을 보고 유고슬라비아지도자들에게 치토대통령이 생전에 블록불가담운동의 정신에 맞게 자주노선을 견지하고 광범한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사업을 잘한 것을 비롯하여 훌륭한 일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자주성의 시대인 것만큼 현시대의 추세에 역행하는 대국주의, 지배주의를 반대하여 투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대국주의, 지배주의자들은 일부 작은 나라들이 저들의 부당한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 나라에 있는 자기네 지지파들을 부추겨 그 나라 당을 반대해나서도록 하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 공산당은 두파로 갈라져 서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단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파벌의 배후에 분열을 조장하는 자들이 있는 것과 관련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시기 자주성을 견지하는데서 파벌을 조장시키는 대국주의를 비롯한 지배주의세력을 반대하여 투쟁하는 것이 절실한 문제로 나서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나라 사회주의건설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지금 세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도 공산주의자들이 건설하는 사회주의에 대하여 공포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건설되면 자기들의 재산을 모두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나는 우리 나라가 일제식민지통치기반에서 해방된 직후에 인민들에게 우리는 소련식 민주주의도 아니고 미국식 민주주의도 아닌 조선식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려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어 모두가 새 사회 건설에 떨쳐나설데 대하여 호소하였습니다. 우리는 민주개혁을 실시할 때 지난날 일제의 앞잡이노릇을 한 극소수의 민족반역자들을 제외한 중소기업가들의 재산에는 조금도 손을 대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과 손잡고 나아갔습니다. 지난날 우리 나라의 기업가들은 명색이 기업가지 식민지나라 기업가로서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새 조국 건설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일정하게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기 위한 토지개혁을 하는데서도 부농들의 땅을 몰수하지 않고 그들에게도 토지소유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 때에 미제침략자들의 야수적인 폭격에 의하여 기업가들과 부농들이 재산을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후에 와서 영락된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도시와 농촌에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거기에 중소기업가들과 부농들도 들도록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체를 세우고 조선식사회주의를 건설하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우리 나라가 처한 지리적 환경과 역사발전의 특수성과 관련되어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리적으로 큰 나라들사이에 위치하여있다보니 역사적으로 큰 나라들의 침략대상으로 되어왔습니다. 우리 선조들가운데는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좋은 일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조말기에 와서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이 친청파, 친러파, 친일파, 친미파로 갈라져 사대주의를 하다보니 우리 나라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먹히우고 말았습니다. 이런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우리는 큰 나라를 등에 업고 분파행동을 하는 사대주의자들과 사대주의사상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였습니다.

우리는 새 사회 건설에서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주체를 세우기 위하여 해방직후부터 후대교육사업에 큰 힘을 넣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작고 돈도 많지 못한 나라이지만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교육사업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세상에 갓 태어난 탁아소어린이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800만명이 훨씬 넘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국가와 사회의 부담으로 키우며 교육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새 세대들을 당과 국가에서 맡아 돈 한푼 받지 않고 무료로 키우며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당, 국가 기관에서 사업하고 있는 일꾼들은 거의 모두가 우리 제도하에서 주체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전후까지만 하여도 주체사상으로 무장하지 못하고 사대주의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람들은 주체사상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 인민들은 주체사상이야말로 우리 민족과 인민을 위한 사상이라는 것을 실지 생활체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민족적 자부심을 높여주는 것과 함께 우리 인민들이 행복하고 보람찬 사회주의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높이 발양시켜나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인민들이 누구나 다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는 권리와 물질적 조건들을 국가와 사회로부터 실질적으로 보장받고 있습니다. 돈밖에 모르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근로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모든 근로자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자기의 능력에 따라 집단과 자신을 위한 창조적 노동에 적극 참가하고 있으며 노동에 따르는 분배와 국가로부터의 많은 추가적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 나라의 경제기술이 발전된 구라파자본주의나라들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찾아볼 수 없으며 누구나 할 것없이 모두다 생활에 대한 근심걱정을 모르고 고르롭게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근로자들이 창조한 물질적 재부가 모두 인민들자신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돌려지고 있으며 사회주의건설이 진척되면 진척될수록 인민들의 물질생활이 끊임없이 풍족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무상치료제와 여러가지 공산주의적 시책에 의하여 건강과 장수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사회주의적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고 발전시키는데서도 자기의 지혜와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고 있으며 풍부한 문화정서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고상한 도덕품성을 지니고 모두가 화목하게 살고 있으며 온갖 사회악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긍지와 희망에 넘쳐 생활하고 있습니다. 언제인가 우리 나라에 왔던 구라파 어느 한 나라 당대표단성원들이 우리 나라 농촌마을에 찾아가본 일이 있는데 그들이 현지에 도착한 때는 한창 일하는 시간이어서 집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포전에 나가고 어린이들과 학생들은 탁아소, 유치원과 학교에 갔으니 집들에 사람이 있을리 없었습니다. 빈집들에는 쇠도 잠그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집을 지키는 사람이 없이 이렇게 비워두어도 일없는가고 하였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그들에게 우리 나라에는 남의 것을 훔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문에 쇠를 채우지 않고 집을 비워두어도 아무 일이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무척 놀라와하였습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건설하는데서 언제나 모든 것을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고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게 할데 대한 주체사상의 요구를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일부 경제일꾼들이 묘향산과 금강산에 금이 많이 매장되어있다고 하면서 거기에서 금을 캐겠다고 하는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금을 몇톤 얻자고 아름다운 조국강산을 파괴하겠는가, 우리 나라에는 금이 매장되어있는 곳이 많은 것만큼 다른데 가서 금을 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묘향산과 금강산에 근로자들과 학생소년들을 위한 훌륭한 휴양소와 야영소들을 짓도록 하였으며 명승지들을 인민의 문화휴식터로 더 잘 꾸리게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학생소년들은 해마다 정기적으로 금강산과 묘향산에 가서 즐거운 야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남조선문제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선생도 알다시피 독일이 분열되어있는 것처럼 우리 나라도 외세에 의하여 분열되어있습니다. 분열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최대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은 남조선땅을 30여년동안 강점하고 있지만 남조선 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을 굴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지금 남조선청년학생들은 미제의 남조선강점을 반대하며 남조선의 군사파쇼통치체제를 뒤집어엎기 위하여 용감히 투쟁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십여만명의 남조선청년학생들이 떨쳐나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여 대대적인 시위투쟁을 벌였습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이 남조선에 을 선포하였는데 남조선청년학생들의 투쟁은 사회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그들의 절박한 요구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을 선포하는 것으로써는 결코 청년학생들의 투쟁을 멈춰세울 수 없습니다.

어떤 물체든지 힘을 가하면 그만큼 반작용이 생기듯이 착취와 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인민들의 반항이 있게 됩니다. 이것은 이미 역사에 의해 확증된 진리입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은 수천명의 애국적 인민들이 갇혀있는 감옥에다 이번에 또다시 수많은 남조선청년학생들을 가두어넣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그것은 오히려 저들의 반인민적, 반통일적 행위를 세계의 면전에서 더욱더 드러낼 뿐입니다.

남조선사회의 민주화가 실현되면 우리 나라의 통일이 빨리 될 수 있습니다. 선생이 남조선인민들의 민주화투쟁을 적극 지지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선생이 세계반동들을 반대하는 글을 많이 쓰다보니 그들로부터 압력과 비난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대신에 선생은 인민대중의 지지를 받기 때문에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민대중의 사랑을 받으면 언제나 반동들의 미움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반동들이 선생을 감옥에 가두어넣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는 선생과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부디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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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루이제 린저의 북녘기행 저희집에도 그 책있는데....!!!! 1980년 4월에 북녘을 처음으로 방문해 1980년대후반까지 무려 수차례나 북녘을 방문하셨던 훌륭한 여성소설가~!!! 루이제 린저 지금은 이미 사망하셨지만 생전에 처음으로 북녘을 방문해 수도 평양시를 구경하셨을때 당시 우울했던 서독(현재는 독일)과는 달리 예나 지금이나 건전하고 소박한 인민들이 모여사는 아름다운곳이라는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고, 서독뿐만이 아니라 당시 많은 서방선진국들은 지금과는 달리 우울증과 자살 매춘 성폭행 아동학대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널려있자 이를 참지못했던 루이제 린저는 자신만의 세상을 찾아 북녘을 방문했다는건 그야말로 큰 뉴스거리였겠죠?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참고로 서방국가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북녘을 방문한사람은 프랑스국적의 기자인데 이름은 잘모르겠고 1969년 1월초순에 북녘을 방문했다네요?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지금이야 수도 평양에도 호텔수가 고려호텔, 류경호텔, 양각도호텔, 서산호텔, 청년호텔, 창광산호텔, 창광외국인숙소, 모란봉호텔, 보통강호텔, 해방산호텔, 평양호텔, 대동강호텔(현재 공사중), 봉화산호텔, 서평양호텔, 량강호텔등 약 20여개의 호텔들이 널려있겠지만 1969년 그 프랑스인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평양호텔이랑  대동강호텔 해방산호텔등 약 3곳정도밖에 안되었다고하니 그만큼 아직까지는 북녘이 숙박시설에 대해 다른나라들에 비해 매우 빈약하다는것을 똑똑히 알게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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