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태권도연맹 최홍희 총재와 한 담화* > 조선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3월 28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조선이야기

*국제태권도연맹 최홍희 총재와 한 담화*

페이지 정보

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1-01-05 00:00 조회2,572회 댓글0건

본문

김일성주석이 국제태권도연맹 최홍희 총재와 한 담화:
우리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을 통일하여야 합니다.
 
김 일 성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
 
(국제태권도연맹 총재와 한 담화
1979년 5월 12일)
 

나는 최홍희선생이 멀리 해외에서 사회주의조국을 찾아온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열렬히 환영합니다. 우리들의 이번 상봉은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손잡고 함께 나아가며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데서 큰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선생이 훌륭한 글을 써보낸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선생이 써보낸 그 글은 우리들의 상봉과 단합을 상징하는 기념으로 될 것입니다. 선생은 그동안 조국에 있는 일가친척들을 다 만나보았습니까?

이번 제35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 미국국적을 가진 조선사람이 미국탁구선수단의 통역원으로 평양에 와서 몇십년만에 자기 어머니와 누이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서먹서먹해하였는데 혈육의 정으로 하여 인차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미국탁구선수단 성원으로 온 다른 한 재미교포는 우리 나라에 올 때 돈에 매수되어 남조선 《중앙정보부》놈들한테서 임무를 받았다는 것을 자백하고 자기의 가족을 만났는데 그들의 상봉이 대단히 감격적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재미교포조국방문단을 받자고 합니다. 미국에 있는 교포들이 합법적으로 조국에 많이 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최근에 우리 나라에서 만든 예술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를 보았습니까? 우리 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다른 나라 대사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수준이 대단히 높다고 하였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분장을 잘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소련과 합작하여 영화를 만들지 않았는가고 물었다고 합니다.

나는 선생이 흉금을 털어놓고 지난날에 있었던 일들을 다 말한데 대하여 만족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조국은 영원히 분열될 위험에 처하여있습니다. 안팎의 분열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영구분열의 올가미를 씌우려고 책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의 분열이 이렇게까지 오래 갈줄 몰랐습니다.

조선민족이라면 북과 남에서 살든 해외에서 살든 또 나이가 많든 적든 관계없이 모두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투쟁하여야 합니다. 물론 조국을 통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민족의 영구분열의 위험을 막고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여야 합니다.

조국을 통일하자면 자주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자주의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조선사람들끼리 조국통일문제를 다룬다는 것입니다. 외세를 등에 업고 그에 의존해서는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없으며 설사 실현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짜 통일이 아닙니다. 조국을 통일하고도 남의 지배를 받는다면 통일한 의의가 없습니다. 조국통일은 전쟁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자면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조국통일을 위하여 북과 남의 각계각층 인민들이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로 굳게 단결한다는 것입니다. 7. 4남북공동성명에는 조국통일을 위한 이 세가지 원칙이 다 반영되어있는데 박정희가 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7. 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앞서 북과 남사이의 고위급정치회담에 참가하기 위하여 남조선에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대표로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나는 그와 만나 담화하면서 조국통일 3대원칙을 내놓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조국통일은 첫째로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실현하여야 하며, 둘째로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대단결을 도모하는 원칙에서 실현하여야 하며, 셋째로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는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남조선과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북조선은 두 극이기 때문에 북과 남이 절대로 합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조국통일문제는 민족내부문제이다, 조선사람은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민족적 견지에서 볼 때 북과 남이 하나로 합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한 나라안에서 신앙과 정치적 이념이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이 사는 나라가 많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당신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사이에 계선을 긋고 우리 민족이 합칠 수 없다고 하는가, 우리는 우리 민족이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얼마든지 단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나의 말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가 조국통일 3대원칙을 찬성한다고 하기 때문에 돌아가서 내가 내놓은 조국통일 3대원칙을 박정희에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남측 대표가 평양에 왔다간후 우리측 대표가 서울에 가서 박정희를 만났습니다. 우리측 대표가 박정희에게 우리가 내놓은 조국통일 3대원칙을 다시 설명하였는데 그도 찬성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측 대표가 그 자리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자고 하니 그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얼마 있다가 남조선당국자들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자고 하였습니다. 아마 미국상전한테서 그렇게 하라고 지령을 받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제의에 응한 것만큼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해 7월 4일에 조국통일 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게 되었습니다. 남북공동성명의 발표는 북과 남이 조국통일 3대원칙을 공동으로 확인하고 그 이행을 온 겨레와 세계 앞에 엄숙히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조선의 한 당국자는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그 이튿날 우리와 합의한 공동성명의 사항들을 뒤집어놓았습니다. 그는 남조선에 있는 《유엔군》은 외세가 아니며 《반공법》은 취소할 수 없고 더 강화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은 이런 식으로 7. 4남북공동성명에서 제시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모두 부정하였는데 이것은 민족앞에 다진 서약도 조선민족으로서의 양심도 다 집어던진 범죄행위이며 우리에 대한 용납 못할 배신행위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오는가를 두고 보자는 생각에서 참았습니다.

그 이후에 북남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남조선에서 대표들이 평양에 왔습니다. 나는 그들을 만나 담화하면서 북과 남의 경제합작문제를 새롭게 제기하였습니다.

합작이라는 것은 힘을 합쳐 공동으로 일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시작한 북남대화를 한걸음 더 전진시켜 합작을 해야 북과 남사이에 오해를 실질적으로 풀고 이해를 깊이할 수 있었으며 조국통일의 기초를 튼튼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 북과 남은 정치, 경제,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합작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경제합작문제에서 제기한 것은 지하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남조선의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대책이었습니다.

나는 남측 대표들에게 남조선에서 실업자가 많아 그들을 다른 나라에 내보내고 있는데 대하여 내놓고 말하였습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은 실업자들을 서부독일과 브라질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에 노동력으로 팔아먹고 지어 여자들과 어린이들까지 팔아먹고 있었는데 그것은 민족의 수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제발 그런 놀음을 하지 말고 실업자들을 공화국북반부에 보내어 쇠돌을 캐가도록 하자, 공화국북반부에는 쇠돌이 무진장하게 매장되어있다, 당신들은 노력을 대고 우리는 기계설비를 대어 쇠돌을 캐자, 그렇게 하면 당신들이 먼 오스트레일리아나 인도에 가서 쇠돌을 사다가 제철소를 돌리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에 관개공사를 해주는 문제도 제기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새마을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일본에서 수지기와를 사다가 초가집이영을 바꾸어잇는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새마을운동》을 해서는 의의가 없다, 《새마을운동》을 하려면 관개공사를 하여 농민들이 농사를 잘 지어 배불리 먹고 잘 입고 편안히 살며 아들딸들을 마음껏 공부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남조선에서 관개공사를 하면 농사를 잘 지어 쌀을 많이 생산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기간 관개공사를 해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당신들의 관개공사를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나라가 해방된 다음부터 치산치수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 저수지를 많이 건설하였는데 지금 저수지가 1,500여개나 됩니다. 이 저수지들에는 언제나 물이 가득차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흉풍을 모릅니다. 나는 남측 대표들에게 남조선에서 치산치수를 잘하고 관개공사를 많이 하면 지금 있는 부침땅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식량을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관개공사를 기본적으로 끝냈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나가 관개공사를 도와주고 있다, 우리가 남조선에 관개 기술자들과 설비들을 보내어 관개공사를 도와주겠으니 일본사람들한테서 빚을 내어 초가집이영을 울긋불긋한 수지기와로 바꾸어 잇는 놀음을 하지 말라, 빚을 지기는 헐해도 그것을 갚자면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말해주었습니다.

경제합작과 관련하여 우리가 제기한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남조선어민들이 우리의 어장에 들어와 물고기를 잡아가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남측 대표들에게 남조선에서 어민들이 바다가 오염되어 물고기를 얼마 잡지 못하는데 우리 어장들에 들어와서 물고기를 잡아가도록 하자, 신포앞바다를 비롯하여 동해안의 어장들은 난류와 한류가 합치는 곳이기 때문에 물고기가 많다, 해마다 명태철이 되면 명태가 떼를 지어 몇백만톤씩 밀려오는데 우리는 60만톤밖에 잡지 못한다, 그러니 남조선어민들이 우리의 어장에 와서 물고기를 잡아가게 하면 잘살 수 있다, 만일 그들이 물고기를 잡다가 풍랑을 만나면 우리가 구조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경제합작문제를 제기하자 그들은 다 찬성하는데 합작이란 말이 재미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중국에서 장개석이 국공합작을 했다가 녹아났기 때문에 그런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합작이라는 표현을 다른 표현으로 바꾸도록 하자, 그런 말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말하는 합작의 내용인데 그 뜻을 알겠는가고 물으니 알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북남합작문제를 제기하면서 지금 남조선언론계에서 《대화있는 대결》이요, 《대화있는 경쟁》이요 하는데 대결이나 경쟁은 말그대로 서로 승부를 겨룬다는 뜻이다, 북과 남이 대결하고 경쟁하면 민족의 단합을 이룩할 수 없고 조국통일도 실현할 수 없다, 북과 남은 대화있는 단결, 대화있는 합작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북과 남이 경제합작을 하면 북과 남사이의 격폐상태가 해소되고 서로 이해 안되는 문제도 저절로 풀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조선의 공업과 농업이 펴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조선 자본가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남측 대표들은 다른 변명을 하지 못하고 그저 지당한 말씀입니다라고 하면서 돌아가서 박정희에게 전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돌아가서 우리가 내놓은 경제합작은 그만두고 금강산이나 공동으로 개발하여 관광업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결국 금강산에 기생관광을 차려놓자는 수작이었습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은 우리가 제기한 대화와 합작을 외면하고 금강산개발이니 뭐니 하면서 시간을 끌어오다가 갑자기 《북으로부터의 남침위협》이란 구실을 대고 《계엄령》위에 《비상계엄령》까지 공포하고 파쇼적인 《유신체제》라는 것을 꾸며냈습니다. 북과 남이 대화를 시작한 것은 서로 불신임을 풀자는데 목적이 있었으며 또 우리가 남측과의 대화에서 《남침》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조국통일은 어디까지나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들은 대화의 끝장을 보기 전에 《비상계엄령》을 공포하고 대화를 파탄시켰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북남대화를 계기로 우리의 영향을 받은 남조선인민들이 민주인사들과 힘을 합쳐 4. 19와 같은 인민봉기를 일으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저들의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로부터 남조선당국자들이 극악무도한 《유신체제》를 조작한 것 같습니다.

북남대화는 남측 대표들과 남조선인민들에게 주는 영향이 컸습니다. 남북적십자회담을 할 때 첫 남측 수석대표로 공화국북반부에 온 사람은 평양출신이었습니다. 그는 평양에 와서 지난날 자기 집이 있던 보통벌에 나가보고 놀라와하였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오막살이밖에 없었던 보통강반에 현대적인 평양체육관과 인민문화궁전이 일떠서고 공원이 펼쳐져있으니 그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북적십자회담 때에 평양에 왔던 남측 기자들이 거리에 나갔다가 지나가는 우리 어린 학생들에게 학습장과 만년필을 주었는데 어린 학생들은 우리에게는 학용품이 다 있으니 그것을 도로 가지고가서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고 구두닦기를 하는 남조선어린이들에게 주라고 하면서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남조선기자들은 돌아가서 북조선어린이들에게도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어린이들이 잘 교양된데 대한 비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북적십자회담 때에 우리 기자들은 서울에 나가 점잖게 행동하여 그곳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 기자들은 여관방도 자기 손으로 정돈하고 구두도 자기 손으로 닦아 신었으며 목욕도 자기 손으로 물을 받아하고 양복도 자기 손으로 다려입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관에서 심부름하는 사람들에게 봉사비는 봉사비대로 주었습니다. 우리 기자들가운데는 술을 마시고 주정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남측 안내성원들이 우리 기자들을 기생집에 데리고가려고 할 때에는 그것을 단호히 뿌리쳤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번 목격한 남조선 여관관리원들은 자기들끼리 우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북조선사람들이 머리에 뿔이 나고 무섭게 생긴 사람들인줄 알았는데 정작 만나보니 제일 점잖은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많은 남조선사람들이 우리 대표단성원들을 만나보겠다고 여관에 찾아왔습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은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하여 남조선인민들에게 주는 우리의 영향이 커지자 적십자회담을 평양과 서울로 내왕하면서 하지 말고 판문점에서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 인민들이 사상정신적으로 건전하고 단결되어있기 때문에 평양과 서울로 왔다갔다하면서 회담을 계속 하다가는 저들이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이라는 타산에서 그런 제기를 한 것 같습니다. 박정희가 《유신독재》를 만들어가지고 남조선의 민주인사들을 비롯하여 애국적 인민들을 마구 탄압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위구심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문제는 그 주인인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이 진정으로 화합하고 단합하면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서 기본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나라의 현실을 놓고보면 민족대단결을 반대하는 것은 박정희 같은 극소수의 매국노들 뿐이고 절대다수의 인민들은 민족대단결을 실현하여 조국통일을 성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대단결문제는 오늘에 와서 내가 처음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민족의 대단결문제를 벌써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제기하였습니다.

나는 길림에서 공부를 하며 청년운동을 할 때 민족의 단결을 이룩하는데 저해를 주는 두가지 현상을 목격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민족주의운동의 거두라고 하는 사람들이 단결하여 나라를 찾을 궁리를 하지 않고 밤낮 모여앉아 말싸움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길림 복흥태정미소에서 신민부, 정의부, 참의부 거두들이 모여 3부통합회의를 하였는데 나는 학교에 갔다오다가 자주 거기에 들려 구경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때마다 밤낮 모여앉아 말싸움이나 해서야 어떻게 조선의 독립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계속 서로 자기 주장만 고집하면서 부질없는 말싸움만 하기 때문에 좀 자극을 줄 목적으로 《3인1당》이라는 연극을 만들었습니다. 《3인1당》은 민족주의자들이 서로 등을 돌려대고 권력싸움을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풍자극이었습니다. 나는 학교에 다닐 때 그런 글을 쓰는데 취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느날 손정도목사의 예배당을 빌려 거기에서 연극을 공연하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길림육문중학교에 다닐 때 손정도목사의 집에 자주 들리군 하였는데 청년운동을 하면서부터 그 예배당에서 회의를 하였습니다. 내가 민족주의운동의 지도자들을 찾아가 회의를 하느라고 수고하는 선생님들을 위해 연극을 준비하였는데 와서 구경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회의를 계속 하여 지루감을 느꼈던지 좋아하며 구경을 왔습니다. 공연의 첫 대목은 노래와 춤 같은 것이어서 그들이 좋다고 보았는데 마지막에 세사람이 서로 자리다툼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풍자극이 나오자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다음날 아침 그들을 찾아가 왜 공연도중에 나갔는가고 물으니 자기들을 욕하는 연극을 만들었다고 노발대발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남의 나라 땅에 와서 말싸움만 해서야 어떻게 나라를 독립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극을 받았는지 그후 신민부, 정의부, 참의부를 통합하여 국민부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때의 사실을 여자독립군으로 유명했던 이관린이 잘 알 것입니다.

내가 길림에서 청년운동을 할 때 목격한 것은 또한 조선공산주의운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국제당의 승인을 받겠다고 감자도장을 만들어가지고 돌아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인민대중을 묶어세워 혁명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엠엘파, 화요파, 북풍회파로 갈라져 《영도권》쟁탈을 위한 당파싸움에만 몰두하였습니다. 나는 그때 어린 마음에도 저런 식으로 해서는 공산주의운동도 조선독립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름있는 종파거두들을 거의 다 만나본 것이 이때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당파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는가,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감자도장까지 만들어가지고 국제당에 승인받으러 다니는가, 조선혁명을 잘하면 자연히 국제당에서 승인하지 않겠는가, 우리 청년들은 공산주의운동을 해도 그렇게 너절하게 하지는 않겠다, 우리보고 누가 승인받으러 오라고 하면 걷어차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결심을 가지고 백산청년동맹 결성모임에서도 종파를 철저히 반대배격할데 대하여 선포하였습니다.

나는 혁명활동의 전기간 언제나 민족의 대단결을 주장하였습니다.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체인 조국광복회를 창립하고 그 두리에 로동자, 농민, 인테리, 종교인들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을 묶어세웠습니다. 천도교중앙의 최린은 일본제국주의자들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하층 천도교인들은 우리를 지지하였습니다. 천도교의 령북도정이였던 박인진도 우리를 지지하였습니다.

우리는 해방후에도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하여 1948년에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연석회의에는 김구, 김규식, 조소앙 선생과 최덕신의 아버지 최동오선생 그리고 홍명희선생을 비롯하여 남조선에서 명망높은 민주인사들이 수많이 참가하였습니다. 김구선생은 《상해임시정부》성원들과 함께 남조선에 들어갈 때 큰 인물로 알려져있었습니다. 그는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할데 대한 우리의 초청을 받고 나에게 보내온 편지에서 자기는 지난날 《상해임시정부》에 있을 때 공산주의자를 오해하고 많이 죽이었는데 그것을 백지화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김구선생의 편지를 그의 서기가 가지고 왔는데 나는 편지를 받아보고 그가 비록 공산주의자들을 죽이고 칭찬받지 못할 일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간 일은 백지화하고 손잡겠으니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러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어 김구선생이 38선을 넘어 평양에 왔습니다. 나는 그와 여러번 만나 담화하였습니다. 우리가 김구, 김규식 선생과의 담화에서 내놓은 기본정신은 남의 장단에 놀지 말고 춤을 추어도 자기 장단, 조선식 장단에 맞추어 조선식 춤을 추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대로 하면 주체를 세우고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말에 대하여 김구와 김규식 선생은 옳은 말이라고 하면서 적극적인 지지를 표시하였습니다. 우리가 4월남북연석회의와 관련하여 앞으로 참고해야 할 문제는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면 여당을 제쳐놓고 야당세력들과만 연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때 우리가 남북연석회의에 이승만의 당도 참가시켰더라면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데서 성과가 더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방직후 남조선민주인사들과의 통일전선사업에서 이룩해놓은 성과를 박헌영이 다 말아먹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남조선에서 통일전선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여러번 강조하였으나 그는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때 여운형선생이 살아있었더라면 남조선에서 통일전선사업을 잘하였을 것입니다. 여운형선생은 세번이나 비밀리에 38선을 넘어와 나를 만났습니다. 나는 여운형선생이 처음 왔을 때 우리 집에서 식사를 같이하고 그와 담화를 하였습니다. 그가 두번째로 왔을 때에는 초대소에 들게 하였습니다. 여운형선생과의 세번째 상봉이 그와의 마지막 상봉이었습니다. 나는 여운형선생에게 우리가 보기에도 남조선에서 활동하는 공산당이 편협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공산당과 합작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박헌영과는 손을 잡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그와 좋게 지내면서 그의 밑에 있는 사람들과 통일전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승만과는 통일전선을 못하더라도 그의 밑에 있는 사람들과는 통일전선을 해야 한다, 범을 잡으려면 범의 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남조선에서 통일전선을 형성하자면 선생이 그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일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일이 안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여운형선생은 우리의 말대로 하겠다고 하면서 남조선에 나갔는데 암살당하였습니다. 지금 여운형선생의 자녀들이 모두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여운형선생이 살아있을 때 두 딸을 키워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하기에 그들을 외국에 유학을 보내어 공부를 시켰습니다. 나머지 자식들은 여운형선생이 죽은 다음에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난날 나라가 망한 것은 큰 나라들의 포위속에 있으면서 민족적 단결을 이룩하지 못하고 봉건통치배들이 친러파, 친청파, 친일파로 갈라져 저마다 큰 나라를 등에 업고 사대주의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대주의를 없애지 않고서는 우리 나라가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존재할 수도 발전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해방후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자주적으로 나갈데 대하여 많이 강조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일꾼들에게 사람이 사대주의를 하면 머저리가 되고 민족이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하고 당이 사대주의를 하면 혁명과 건설을 망쳐먹는다고 늘 말합니다. 나는 북남고위급정치회담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온 남측 대표에게도 사대주의를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박정희가 우리의 본을 따서 《자조》,《자립》,《자위》라는 말을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미국과 일본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자조》,《자립》,《자위》라는 그의 말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권세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만적인 구호입니다. 그가 사대주의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는 한 남조선이 미제의 식민지예속에서 벗어날 수 없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도 이룩하기 어렵습니다.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고수하고 실현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3대원칙을 떠나서는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조국통일 3대원칙을 고수하고 실현하여 조국통일을 이룩하자면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첫째로, 미국, 일본 사람들과의 사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내가 총련의 한덕수의장이 조국에 왔을 때에도 말하였지만 일본에 있는 우리 동포들은 일본사람들과의 사업을 잘하고 미주에 있는 우리 동포들은 미국사람들과의 사업을 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사람들과의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우리 나라의 통일을 방해하지 않고 지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사람들과 사업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잘 보이고 나라의 통일을 구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이해를 바로가지고 우리 나라의 통일을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미국사람들과의 사업을 잘하면 그들이 우리에 대한 이해를 바로가지고 좋게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제35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계기로 미국, 일본, 서부독일, 프랑스를 비롯하여 자본주의나라의 숱한 기자들이 우리 나라에 왔습니다. 서방기자들의 반영자료를 보면 우리 나라에 대하여 좋은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들은 평양이 일본 도쿄보다 살기 좋다고 하였고 아시아에 평양같은 문명한 도시가 있는데 대하여 놀랐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평양이 깨끗하고 질서있는 공원속의 도시라고 하면서 평양에는 극장과 영화관이 많아 사람들이 문명하게 생활하고 있으며 술집이 있어도 술을 마시고 주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지하철도를 참관하고 지하《궁전》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기자들이 이번에 우리 나라에 올 때 반미감정이 높은 우리 인민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대해주겠는가고 우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가서 쓴 글을 보면 좋은 내용이 많습니다. 내가 며칠전에 우리 나라에 왔다간 미국 《에이피》통신사기자가 쓴 글을 보았는데 그 내용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이러저러한 형의 공산주의국가를 보았는데 이번에 조선에 가서 주체와 자주성, 자력갱생을 자기의 철학으로, 자기의 사상으로 내세우고 있는 새로운 형의 공산주의국가를 발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가 우리 나라에 와서 우리 나라가 자주성이 강한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기자들이 제35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계기로 조선에 와보고서야 우리 나라가 철저히 자기 식으로 나가는 자주적인 나라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고 한 사실은 미국사람들이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 대하여 잘 모르고 그 어떤 나라의 위성국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사람들과의 사업을 잘하여 그들이 조선은 그 어떤 나라의 위성국이 아니라 자주적인 나라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미국사람들이 우리 나라는 지금도 다른 나라의 위성국이 아니지만 앞으로 통일되어도 다른 나라의 위성국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옳게 인식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미국사람들은 우리 나라가 소련이나 중국 같은 큰 나라의 편에 붙어서 정세를 저들에게 불리하게 만들지 않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미국사람들에게 우리 나라는 영원히 엄정한 중립국가로, 블록불가담국가로 남아있을 것이라는데 대하여 말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가 블록불가담운동 대열에 들어가려고 할 때에 일부 큰 나라들이 반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는 큰 나라들이 하라는대로 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의 신념에 따라 블록불가담운동 대열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나라는 앞으로도 블록불가담운동의 이념에 맞게 그 어떤 블록에도 속하지 않으며 큰 나라들의 세력권쟁탈전에 끼어들지 않는 엄정한 중립국가로 될 것이라는 것을 미국사람들에게 충분히 인식시켜야 합니다. 이와 함께 미국사람들에게 우리 나라는 모든 지배주의를 반대한다는데 대하여 명백히 말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해에 있은 공화국창건 30돌기념 중앙경축대회에서 한 보고에서 지금 세계에 여러가지 형태의 지배주의세력이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는 그 모든 지배주의를 다 반대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반대배격할 뿐 아니라 다른 나라를 맹목적으로 따라가거나 그 하수인노릇을 하는 것도 반대하며 남의 일에 대하여 시비하거나 간섭하는 것도 반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블록불가담나라들속에서 진보적 나라이니, 비진보적 나라이니 하고 논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나라의 진보의 표징은 자주성에 있으며 자주성을 견지하는 나라가 바로 진보적인 나라이며 그렇지 못한 나라는 진보적인 나라가 아니라고 명백히 하였습니다.

우리는 얼마전에 유엔사무총장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을 때 그에게도 당신이 우리 나라가 그 어떤 나라의 위성국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 나라는 그 어떤 나라의 위성국도 아니고 남의 지배를 받는 나라도 아니다, 우리 나라는 오늘 뿐 아니라 앞으로 조국이 통일되어도 다른 나라의 위성국으로 되지 않고 철저한 자주적인 국가로, 중립국가로 될 것이며 블록불가담정책을 실시할 것이다, 우리는 자주성을 견지하고 주체사상과 자기의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큰 나라에 예속되어 그 나라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는 놀음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와 미국, 일본은 적대관계에 있지만 그 나라들이 우리 나라의 통일을 방해하지 않고 우리의 자주성을 존중하고 중립적 입장을 지지한다면 미국, 일본과도 좋게 지낼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현시대는 자주성의 시대입니다. 각국 공산당들도 그 어떤 큰 나라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려 하지 않으며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자기 민족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1977년에 프랑스신문 《몽드》주필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나에게 구라파식공산주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구라파식공산주의니, 아시아식공산주의니 하는것 을 잘 모른다, 그러나 최근 구라파공산주의운동에서 많은 나라 공산당들이 자주성을 강조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가 한 말을 프랑스신문 《몽드》가 그대로 실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주의건설도 우리 식대로 하고 있으며 조국통일문제도 민족자주의 입장에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해방직후 신의주에서 반동들의 부추김밑에 학생들이 소요를 일으켰을 때 그들앞에서 연설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나보고 장군님도 공산주의자인가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도 공산주의자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나라의 완전독립과 우리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견결히 싸우는 진정한 애국자들이다, 나는 어떤 다른 나라를 쳐다보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우리 인민에 의거하고 조선인민을 위하여 싸우는 공산주의자이다, 여러분도 공산주의자들을 따라 새 민주조선 건설에 떨쳐나서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실시하는 민주주의는 미국식민주주의도 아니고 소련식민주주의도 아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새형의 민주주의이며 조선식민주주의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소련사람들이 있는데서 내놓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소련사람들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들을 무서워하면서 그런 말을 못하겠습니까. 우리의 연설이 끝나자 청년학생들은 모두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조국통일도 철저히 주체적 입장에 서서 우리 식으로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조국이 통일되어도 공화국북반부에 수립된 사회주의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가장 우월한 사회제도를 버리고 무엇 때문에 백만장자들을 키워내는 자본주의제도를 세우겠습니까. 그렇다고 하여 조국이 통일된 다음에 남조선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하거나 그들을 못살게 굴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자주성을 견지할 것입니다. 미주에 있는 동포들이 미국사람들과 접촉할 때 우리의 이러한 입장을 잘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사람들과의 사업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남조선을 내치고 남조선에 투자한 미국재벌들의 자본을 다치지 않겠는가 하는 미국사람들의 위구심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35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왔던 미국기자들이 우리 사람들을 보고 미군이 남조선에서 나가면 거기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기회를 이용하여 북조선사람들이 남조선을 내치지 않겠는가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질문은 남조선에 자본을 투자한 미국자본가들의 위구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우리 사람들은 남조선문제는 남조선사람들자체가 결심하여 해결할 문제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가 남조선을 내치고 남조선에 투자한 외국자본가들의 자본을 다치지 않겠는가 하는 위구심은 미국사람들 뿐 아니라 일본사람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남조선에 자본을 투자한 일본의 일부 완고파들은 우리 나라의 군사분계선을 저들의 이권을 지켜주는 《반공방파제》라고 하고 있습니다. 몇해전에 일본의 한 야당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우리 나라에 왔다가서 북조선은 모든 것이 잘 째이고 강하기 때문에 북조선정권이 부산까지 나오게 되면 일본의 안전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우리가 미국, 일본 사람들에게 《남침》하려 하지 않으며 통일되어도 남조선에 투자한 외국사람들의 자본을 다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히 인식시켜 그들이 우리에 대한 이해를 바로가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미국독점자본가들이 남조선에 투자한 저들의 자본을 우리가 다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미국의 대조선정책에서 변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정부의 정책은 독점재벌들의 의사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그들이 정책을 변경시키라면 변경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점자본가들은 저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대통령도 갈아치웁니다.

우리가 이번에 제35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계기로 우리 나라에 온 미국기자들과 사업을 많이 하였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적당한 기회에 남조선에 공산주의를 강요하려 하지 않으며 통일된 다음에도 남조선의 현 사회제도를 그대로 두고 남조선에 외국자본가들이 투자한 자본을 다치지 않는 원칙을 지킬 것이라는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선생을 비롯하여 미주에 있는 조선동포들이 미국사람들에게 우리 나라가 통일되어도 미국자본가들이 남조선에 투자한 자본을 몰수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사람들과의 경제관계를 발전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잘 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에 대한 경계심과 위구심을 가지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둘째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전선사업을 잘하며 조국통일에 저해를 주는 현상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건설이 잘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전선사업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을 창건할 때에 당마크에 노동자, 농민을 상징하는 마치와 낫과 함께 인텔리를 상징하는 붓을 새겨넣었으며 노동자, 농민과 함께 인텔리를 내세웠습니다. 당마크에 인텔리를 상징하는 붓을 새겨넣은 것은 우리 당밖에 없습니다. 당마크에 새겨넣은 붓은 우리 당의 인텔리중시정책의 표시입니다.

우리가 해방직후에 인텔리들을 포섭할데 대한 정책을 내놓자 그것을 반대하는 파들이 많았습니다. 박헌영같은 우경분자들도 반대하였고 오기섭같은 좌경분자들도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텔리들을 포섭할데 대하여 완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해방후 부강한 새 민주조선을 건설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는 노동자, 농민의 힘에 의거하는 것과 함께 인텔리들의 기술과 지혜를 적극 발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제식민지통치의 후과로 말미암아 해방직후 우리 나라에 기술인재가 매우 부족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인텔리를 포섭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통치시기에 평양에 대학은 하나도 없고 공업전문학교와 의학전문학교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기술인재가 많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새 조국을 건설하자면 인텔리들을 포섭해야 하였습니다. 물론 일제때 공부한 사람들이 돈냥이나 있는 부유한 가정의 출신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때에는 부유한 가정의 출신이 아니고서는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을 하는 사람도 부유한 가정의 출신으로서 일본 도쿄에 가서 사립대학을 다닌 건축기사입니다. 그리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노교수, 노박사들도 대부분 잘사는 가정에서 태어나 공부를 한 사람들입니다. 이승기박사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본에 가서 공부한 사람인데 해방후 일본에서 남조선으로 건너왔다가 우리가 자기 같은 인텔리들을 믿어준다는 것을 알고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왔습니다. 이승만은 이승기박사를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해방직후 남조선에서 많은 인텔리들을 데려왔는데 우리 나라의 유명한 노배우들도 대부분 남조선에서 데려온 사람들입니다. 우리 당의 인텔리포섭정책은 매우 정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해방후 인텔리들에게 당신들은 지난날 비록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공부하고 자본가들과 일제놈들에게 복무하였지만 이제부터 자기 민족과 자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여야 한다, 그러면 당신들도 훌륭한 민족간부로, 혁명가로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인텔리들을 포섭하는 정책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 당의 민족간부로 자라날 수 있었으며 지금 어떤 사람은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사업하고 있습니다. 우리 당의 올바른 인텔리정책에 의하여 오늘 우리의 인텔리대열은 100만대군으로 자라났으며 그들의 힘에 의거하여 현대적인 공장들을 건설하고 돌리고 있습니다. 해방후 좌우경 기회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인텔리들을 배척하였더라면 우리 나라가 오늘과 같이 발전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당의 인텔리정책은 지난날이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이 일관합니다.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전선사업을 잘하는 것은 우리 나라를 둘로 갈라놓으려는 분열주의자들의 책동과 관련되어 더욱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를 둘로 영원히 갈라놓으려는 분열주의자들의 책동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둘로 영원히 갈라질 수 없습니다. 독일은 지난날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한 전패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주변 나라들은 독일이 통일되면 다시 세계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독일과는 달리 일제의 식민지로 있다가 우리 인민의 투쟁에 의하여 해방된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나라는 독일처럼 전패국으로 취급될 수 없으며 우리 나라가 통일되어도 다른 나라에 위협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는 그 어떤 시도도 반대하여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방후 김두봉의 문자개혁을 반대한 것도 그 실례의 하나로 됩니다. 김두봉은 《6자모》라는 것을 만들어놓고 쓰자고 하였습니다. 말과 글이 다르면 하나의 민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공화국북반부에서만 문자개혁을 한다면 한민족안에서 두개의 글자, 두개의 말을 쓰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을 억지로 둘로 갈라놓는 것으로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가 통일되기 전에는 절대로 문자개혁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조선글자가 나쁘지 않습니다. 배우기도 힘들고 쓰기도 불편한 한자에 비하여 우리 글자는 아주 좋은 글자입니다. 우리 글자를 쓰기 쉽다고 하여 언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분열되어있는데다가 글자까지 고쳐놓으면 결국 우리 민족은 두개 민족으로 완전히 갈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글을 쓰고 말을 하여도 하나의 글을 쓰고 하나의 말을 하여야지 절대로 두개의 글을 쓰고 두개의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민족의 공통성을 특징짓는 징표들을 고수하고 살려나감으로써 민족의 분열을 막아야 합니다.

박정희가 《승공통일》을 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망상이며 그것은 본질에 있어서 우리 민족의 분열을 영구화하자는 것입니다. 《승공》이라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을 다 없앤다는 것인데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공화국북반부에 있는 선생의 형님도 죽이겠다는 소리인데 어디 될 말입니까. 놈들은 절대로 우리 노동당원들과 그 가족들을 다 없앨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전선을 잘 형성해나감으로써 적들의 《두개 조선》조작책동을 저지파탄시키고 우리 민족이 두동강이 나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합니다.

지금 해외동포들이 우리의 조국통일방침에 대하여 점차 옳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선생을 비롯하여 해외의 애국적 민주인사들이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해외동포들과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데 유리한 조건으로 됩니다. 해외의 애국적 민주인사들은 민족대단결의 구호를 높이 들고 미국과 일본, 프랑스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에서 사는 우리 동포들과 통일전선사업을 잘하여야 하며 남조선의 인텔리들, 민족자본가들과 통일전선을 형성하는데 주의를 돌리고 남조선의 민주세력과 연대, 연합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남조선의 애국적 민주세력과 단합하고 전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자면 남조선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인식을 바로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조선사람들은 우리에 대한 그릇된 선전만 듣다보니 우리의 통일전선정책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한가지 실례를 들면 남조선당국자들이 북조선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고 교회당도 없다는 악선전만 하니 남조선인민들은 우리가 종교인들을 배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교회당은 우리가 마슨 것이 아니라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미제가 다 파괴하였습니다.

우리는 선생을 비롯하여 남조선에 일정한 영향력이 있는 여러 선생들이 잘 활동하면 우리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고 남조선민주세력과 연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남조선종교인들과도 얼마든지 단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있는 여러분들이 동포들과의 통일전선사업을 잘하려면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야 하며 동포들속에서 반목질시하는 현상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선생을 비롯하여 해외의 애국적 민주인사들이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전선사업을 잘하여 5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민족문화를 가진 우리 민족은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세상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애국적 민주역량이 해외에서 벌이는 통일전선운동의 위력은 매우 큽니다. 이것은 에스파니아공산당의 합법화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스파니아공산당은 프랑코독재정권의 탄압에 의하여 1939년에 비법화되었습니다. 프랑코독재정권은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파쇼독재정권이었습니다. 에스파니아공산당은 해외에서 프랑코독재정권을 반대하는 통일전선운동을 줄기차게 벌여 마침내 재작년에 합법화되었습니다.

지난해에 에스파니아공산당 총비서 카릴요가 국회선거를 치른 다음 인차 공화국창건 30돌기념 경축행사에 참가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에 왔습니다.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통일전선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권고하군 하였습니다. 지난해에 나는 카릴요를 만난 자리에서 에스파니아공산당이 근 40년동안이나 비법화되었다가 합법화된 것은 바로 통일전선의 승리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에스파니아공산당 위원장인 이바루리에게도 통일전선의 승리를 축하한다는 나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제2차 북남연석회의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제2차 북남연석회의는 지금 우리가 주장하는 대민족회의입니다.

셋째로, 남조선에서 파쇼독재정치를 끝장내고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여야 합니다.

남조선사회를 민주화하는데서 중요한 것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와 각 정당, 단체들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남조선사회를 민주화하자면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거시키고 민주화의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여야 합니다. 다시말하여 미국사람들이 계속 남조선에 틀고앉아 박정희파쇼독재《정권》을 비호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박정희가 군사파쇼독재를 실시하는 것은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박정희를 비호해주기 때문입니다. 미제의 비호가 없다면 박정희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다무라 하지메를 단장으로 하는 일본의 자유민주당 유지의원단이 우리 나라에 왔을 때 나는 그들과 담화하면서 박정희《정권》을 옛날에 조선사람들이 쓰고 다닌 갓에 비유하여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갓은 머리위에 올려놓고 두 끈을 매야 유지된다, 갓과 같이 박정희《정권》은 두 끈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는데 그 한 끈은 미국이고 다른 한 끈은 일본이다, 이 두 끈가운데서 한 끈만 끊어져도 박정희《정권》은 유지되지 못한다고 말하였더니 그들은 흥미있다고 하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민족의 버림을 받는 박정희는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지배에서 우환거리로 되고 있습니다. 미국사람들은 박정희 《정권》을 그대로 계속 두면 그를 반대하는 인민봉기가 일어나 혼란이 생길 것 같아 두려워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하여 박정희를 당장 떼면 또 다른 난장판이 조성될 것 같아 우려하고 있습니다.

선생을 비롯하여 해외의 애국적 민주인사들이 남조선의 애국적 민주세력과 연합하여 민주화투쟁을 벌이면 박정희《유신독재》는 파멸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원래 파쇼독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란에서 파레비독재정권의 파멸이 이것을 명백히 실증해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이란에서 파레비독재정권이 무너진 것은 그에게 군대나 무기가 적어서가 아닙니다. 파레비에게는 미국의 현대적 무기로 장비된 군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회교의 이념밑에 진출한 이란인민들의 혁명투쟁에 의하여 파레비독재정권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미국사람들은 회교의 이념밑에 결속된 반파쇼민주세력의 힘을 보지 않고 현대적 무기로 장비된 파레비황제군대만 크게 믿었습니다. 원래 정보정치를 하는 제국주의자들에게 주관주의가 많습니다. 어느 한 잡지를 보니 미국사람들은 이제와서야 회교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연구한다고 합니다. 인민대중의 힘을 보지 않고 대세의 흐름을 제멋대로 판별하는 미국사람들의 주관주의가 오늘의 이란사태를 낳게 하였습니다. 요즘 미국출판물들에 실리는 글들에서 미국이 현 남조선독재《정권》을 그냥 유지한다면 남조선에서 이란 같은 사태를 면할 수 없다고 썼는데 이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미주에 있는 우리 동포들은 미국사람들과 사업을 잘하여 미국이 박정희독재《정권》을 지지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남조선사회를 민주화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는데 이바지하여야 합니다.

남조선에서 각계각층의 군중이 단합하면 박정희파쇼독재《정권》을 뒤집어엎고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는 선생이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고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우리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힘쓰겠다고 결의를 다진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민족을 위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선생의 앞으로의 사업에서 성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