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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 강좌(2): 몇가지 제기되는 문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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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1-01-05 00:00 조회2,3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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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체사상교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혁명의 주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혁명적 수령관을 튼튼히 세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혁명위업에 충실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혁명의 주체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민대중은 역사의 주체이지만 언제나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착취계급사회에서 인민대중은 소수 지배계급의 착취와 압박을 받아왔으며 역사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착취계급사회에서도 역사를 발전시킨 것은 인민대중입니.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의사 대로가 아니라 많은 경우에 지배계급의 의사에 따라 역사를 창조하는 무거운 부담을 걸머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인민대중은 아직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로 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는 선진적 노동계급이 출현하고 그들의 자주적인 혁명사상에 의하여 근로인민대중이 의식화되고 조직화됨으로써 비로소 역사무대에 널리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발전에서 획기적인 전환으로 됩니다. 이때부터 근로인민대중은 자주적인 혁명사상을 가지고 자기 운명을 자체의 힘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인민대중이 혁명의 자주적인 주체로 되기 위하여서는 당과 수령의 영도 밑에 하나의 사상, 하나의 조직으로 결속되어야 합니다. 조직사상적으로 통일단결된 인민대중만이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습니다. 혁명의 주체는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입니다.

인민대중은 당의 영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결속됨으로써 영생하는 자주적인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게 됩니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육체적 생명은 끝이 있지만 자주적인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속된 인민대중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의 육체적 생명과 구별되는 사회정치적 생명이 있다는 것을 밝혀주시었습니다.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은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인 사회정치적 집단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개별적인 사람들은 오직 이러한 사회정치적 집단의 한 성원으로 됨으로써만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닐 수 있습니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는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만큼 거기에는 사회적 집단의 생명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개별적 사람들의 생명의 중심이 뇌수인 것처럼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은 이 집단의 최고뇌수인 수령입니다. 수령을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뇌수라고 하는 것은 수령이 바로 이 생명체의 생명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수령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이해관계를 분석종합하여 하나로 통일시키는 중심인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창조적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입니다.

당은 수령을 중심으로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인민대중의 핵심부대로서 자주적인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추를 이루고 있습니다. 개별적인 사람들은 당조직을 통하여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인 수령과 조직사상적으로 결합되어 당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 때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게 됩니다. 사람들은 당조직과 당이 영도하는 사회정치조직의 한 성원으로서 조직사상생활에 적극 참가함으로써만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인 수령과의 혈연적인 연계를 공고히 하고 자기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빛내어 나갈 수 있습니다.

수령, 당, 대중은 하나의 생명으로 결합되어 운명을 같이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는 서로 도와주고 사랑하는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는 개별적 사람들을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지금까지 자유와 평등의 귀중성에 대하여서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여왔습니다. 주체사상도 자유와 평등이 귀중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세계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그 누구에게 예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자주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원리는 자유와 평등의 원리와 같은 차원의 원리가 아닙니다.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관계도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전제로 하여야 하지만 자유와 평등의 관계가 있다고 하여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관계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은 평등한 관계에 있다고는 할 수 있어도 반드시 그들이 동지적으로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관계와 대립시키는 것도 옳지 않지만 그 어느 하나를 다른 것에 용해시키려고 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하나의 사회적 집단을 단위로 하여 볼 때 평등의 원리가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예속과 불평등을 반대하고 개인의 자주성을 옹호하는 데 이바지한다면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는 사람들을 운명을 같이하는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시키고 사회적 집단의 자주성을 옹호하는 데 힘있는 작용을 합니다. 평등의 원리가 개인의 생명을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기는 개인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하고 있다면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원리는 개인의 생명보다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을 비할 바 없이 더 귀중히 여기는 집단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정치적 생명체 안에서도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원리 뿐 아니라 평등의 원리가 작용합니다. 여기서 개인들 사이의 평등은 그들 사이의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에 모순되지 않습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압박이 근절되고 사람들 사이의 평등이 보장된 조건에서만 참다운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는 사람의 자주성과 창발성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더욱 믿음직하게 보장하여줍니다.

만일 사회적 집단의 통일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사람의 자주성과 창발성을 억제한다면 집단 안에 참다운 통일이 보장될 수 없으며 반대로 사람의 자주성과 창발성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집단의 통일을 파괴한다면 개인의 생명의 모체인 사회적 집단의 생명이 약화되어 개인의 자주성과 창발성 자체가 보장될 수 없게 됩니다. 사회적 집단의 통일은 사람의 자주성과 창발성을 높이 발양시키는 데 이바지하도록 이루어져야 하며 사람의 자주성과 창발성은 어디까지나 집단의 통일을 보장하는 테두리 안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평등의 원리와 동지애의 원리를 통일적으로 구현함으로써만 개인의 자주성과 창발성을 높이 발양시키는 문제와 집단의 통일을 강화하는 문제를 다같이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여줍니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 집단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지휘가 필요하다는 것을 한두 번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수령은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인 것만큼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도 수령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는 수령과 전사들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표현됩니다. 운명을 같이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 안에서는 개인들 사이에서도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가 작용하지만 그 어느 개별적인 성원도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으로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는 절대적인 것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뇌수로서 집단의 생명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동지애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으로 됩니다.

수령, 당, 대중이 하나로 결합되어서만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는 것만큼 그것을 서로 분리시키거나 대치시켜서는 안됩니다. 당과 수령의 영도를 떠난 대중이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로 될 수 없는 것처럼 대중과 떨어진 당과 수령도 역사를 향도하는 정치적 영도자로서의 생명을 가질 수 없습니다. 대중과 떨어진 수령은 수령이 아니라 하나의 개인이며 대중과 떨어진 당은 당이 아니라 하나의 개별적인 집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수령, 당, 대중을 분리시켜 생각하여서는 안된다는데 대하여 늘 강조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수령이 혁명과 건설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데 대하여서도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수령은 단결과 영도의 중심으로서 인민대중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뇌수가 인간활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수령은 어디까지나 당의 수령, 인민대중의 수령인 것만큼 수령의 역할을 당의 역할, 대중의 역활과 분리시켜 생각하여서는 안됩니다. 수령의 역할, 당의 역할, 대중의 역할은 언제나 하나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당에 대한 충실성, 인민에 대한 충실성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당에 대한 충실성, 인민에 대한 충실성이 없이 수령에 대한 충실성만을 가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또 그러한 충실성은 참다운 충실성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과 별개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수령은 당과 인민대중의 생명의 중심인 것만큼 당에 대한 충실성과 인민에 대한 충실성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의 최고표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혁명적 수령관을 확고히 세우고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제일생명으로 간직하는 것이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가의 기본품성이라고 하는 이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이 개인의 생명의 모체이라는 집단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 가운데서도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정치적 생명이 더 귀중하며 개인의 생명보다 사회적 집단의 생명이 더 귀중합니다. 사회적 집단의 생명이 있고서야 개인의 생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이 자기 생명의 모체인 수령, 당, 대중에게 충성 다하는 것은 그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사회정치적 생명의 근본요구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어떤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육체적 생명의 요구나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는 생활은 동물의 생활과 다름없으며 수령, 당, 대중과 떨어져 고립적으로 사는 생활은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배치되는 값없는 생활이라고 봅니다.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들은 오직 당과 수령의 영도 밑에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로 굳게 뭉쳐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공동위업에 몸바쳐 투쟁하는 데서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혁명적 수령관은 혁명적 인생관의 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당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는 결함들을 분석해보면 아직도 우리 일꾼들에게 혁명의 주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며 특히는 수령을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으로 보는 관점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당과 생사고락을 같이 해나가려는 혁명적 신념이 확고하지 못한 데로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당의 방침에 대하여 절대성, 무조건성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으며 난관에 부닥치게 되면 패배주의에 빠져 동요하고 요령주의를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교시와 당의 방침을 그 어떤 명령이나 의무로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그것이 가장 숭고한 삶의 요구이라는 것을 깊이 자각하고 끝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받아안아야 하며 어머니 당과 어버이 수령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크나큰 사랑과 신임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합니다. 이렇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만이 혁명적 수령관이 투철한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패배주의는 당과 수령의 사상을 자기의 신념으로 만들지 못하고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믿지 않는 데로부터 나옵니다. 패배주의자들은 당과 수령, 인민대중을 믿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소총명이나 우연적인 요행수에 기대를 거는 것입니다. 혁명적 수령관이 서고 주체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진 사람은 수령, 당, 대중이 통일될 때 못해낼 일이 없다는 철석 같은 신념을 가지기 때문에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패배주의에 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형식주의, 요령주의를 부리는 것도 결국은 혁명적 수령관이 서있지 않은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형식주의, 요령주의는 혁명에 대한 주인다운 태도와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고용살이 근성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당과 혈연적인 연계를 맺고 그와 생사운명을 같이하는 혁명의 주인입니다. 이러한 자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형식주의나 요령주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남의 것을 쳐다보면서 사대주의나 교조주의를 하는 것도 혁명적 수령관이 서지 않은 표현입니다. 원래 혁명적 의리와 동지적 사랑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이렇게나 저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들이 자기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자기 부모가 반드시 다른 부모들보다 낫거나 그들로부터 어떤 덕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를 낳아키워준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입니다. 혁명적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변함없이 오직 자기 생명의 모체인 수령, 당, 대중과 생사운명을 같이해나갑니다. 만일 그 누가 자기 나라가 뒤떨어졌다고 하여 실망하고 자기 조국에 대하여 다른 마음을 먹거나 조국이 위험에 처하였을 때 자기를 키워준 어머니 조국을 배반하고 자기 한 몸만을 건지려고 한다면 그 어느 나라 인민도 그러한 인간을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혁명적 의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사대주의를 하거나 자기 수령, 자기 당, 자기 조국을 배반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그 어떤 다른 나라의 위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 수령님께서 일제통치의 암담한 시기에 모든 간난신고를 다 이겨내면서 잃었던 조국을 찾아주시고 이 땅 위에 번영하는 사회주의조국을 건설해주시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본제국주의와 미제국주의를 타승하고 천리마조선의 영예를 떨치도록 우리 인민을 이끌어주신 분도 우리의 수령님이시며 오늘 세계 반동의 원흉인 미제국주의와 직접 맞서있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사회주의건설과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혁명위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주고 계시는 분도 다름 아닌 우리의 수령님이십니다. 조선의 모든 공산주의혁명가들은 어버이 수령님으로부터 영생하는 정치적 생명을 받아안았으며 수령님의 사랑과 배려의 손길 아래서 자라났습니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우리 모두의 위대한 스승이시며 정치적 생명의 어버이이십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우리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충실성은 티없이 맑고 깨끗한 것이며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혁명적 수령관을 튼튼히 세워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혁명적 의리로 간직하기 위하여서는 수령과 자기 당의 위대성에 대하여 깊이 알아야 합니다. 당과 수령의 위대성을 체득시키기 위한 교양사업에서는 당과 수령의 사상과 이론의 위대성, 영도의 위대성, 사상정신적 풍모의 위대성을 인식시키는 데 기본을 두어야 합니다.

지금 당조직들에서 수령님의 덕성 교양을 많이 하고 있는데 덕성교양만 하여 가지고서는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수령님의 위대성을 깊이 체득시킬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 수령님은 가장 숭고한 인민적 풍모와 공산주의적 덕성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러나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주체의 혁명적 세계관이 확고히 선 참다운 공산주의혁명가로 키우기 위하여서는 그들에게 무엇보다 수령님의 사상과 이론, 영도의 위대성을 깊이 체득시켜야 합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신 위대한 사상이론가이시며 미제국주의와 직접 맞서있는 어렵고 복잡한 환경 속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에로 나가는 전인미답의 길로 우리 인민을 현명하게 이끌어주고 계시는 위대한 정치가이십니다. 지금 세계 수많은 나라 진보적 인민들이 한결 같이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창시하신 불멸의 주체사상을 따라 배우고 있으며 그이를 위대한 스승으로 높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수령의 사상과 영도의 위대성을 깊이 체득시키기 위하여서는 수령님의 노작 학습을 실속 있게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노작에는 주체의 사상, 이론, 방법이 전면적으로 집대성되어있으며 혁명과 건설에서 제기되는 모든 이론실천적 문제들과 그것을 풀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이 명백히 밝혀져 있습니다. 수령님의 노작에는 당의 영도 밑에 우리 인민이 간고하고 복잡한 투쟁 속에서 쟁취한 모든 고귀한 경험과 빛나는 업적이 폭 넓고 깊이 있게 총화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근본원칙과 전략전술이 전면적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노작은 혁명과 건설에 관한 진리를 집대성한 백과전서이며 주체사상의 총서입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노작이야말로 우리가 연구학습하여야 할 가장 귀중한 고전입니다. 그러므로 수령님의 노작 학습은 어디까지나 노작원문을 놓고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노작학습이 형식주의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부 일꾼ㄴ들은 노작원문을 가지고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설한 제강이나 참고자료 같은 것만 보고 있습니다. 노작원문을 읽어보면 잘 이해되지만 그것을 해설한 제강을 읽어보면 까다롭고 중심이 명백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전 일꾼들은 이런 제강이나 만들어 아래에 내려보내고 출석이나 장악하는 것으로 노작학습을 대치하고 있습니다.

노작을 학습하는 목적은 수령의 사상과 이론을 깊이 체득하고 그것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데 있습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무엇보다도 자기 부문 사업과 관련된 노작부터 잘 학습하여야 하며 거기에서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는 데 주되는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노작학습을 실속 있게 하자면 학습을 대상의 특성과 준비정도에 맞게 여러 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조직하여야 합니다. 노작에 대한 연구토론회를 논쟁의 방법으로 하는 것은 노작학습을 실속 있게 하기 위한 좋은 방법의 하나입니다. 학습을 논쟁을 하면서 집체적으로 하는 것은 학습기풍을 세우는데도 좋고 내용이 깊이 인식하는데도 효과적입니다. 나는 학습을 서로 물어보면서 문답식으로 하는 것이 학습에 대한 열의를 자극하고 공동의 노력으로 진리를 깊이 체득하는 데서 효과적이라는 데 대하여 일찍이 강조한바 있습니다.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자기 실정에 맞게 고전적 노작들에 대한 연구토론회를 논쟁의 방법으로 널리 조직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노작연구토론회에서는 노작에 담겨진 사상이론적 내용을 깊이 파악하는 데 힘을 넣을 뿐 아니라 거기에서 제기된 원칙과 방법을 현실에 구현하는 데서 걸리고 있는 문제를 내놓고 그것을 풀기 위한 방도에 대하여서도 토론하여야 합니다. 노작연구토론회가 실지 사업과 동떨어진 빈말공부로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체사상교양을 깊이 있게 하여 혁명의 주체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세우고 수령, 당, 대중의 통일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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