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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보] 신준영기자 이북방문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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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0-12-27 00:00 조회2,6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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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 자주민보는 조선로동당 창건55돌 기념식 취재로 평양을 다녀온 말지 신준영기자와의 대담을 통해 이북의 최근 속식을 전했다. 이 기사의 전문을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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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만나야 한다

노동당창건 55돌행사 다녀온 신준영기자

"노동당 창건일은 어머니의 생일"

*글: 백운종[자주민보 편집위원]


북은 지난 10월10일 노동당 창건 55돌을 맞이하여 남측의 정당, 사회단체, 개별인사를 초청했고 42명이 북을 방문했다. 1948년 남북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이후 처음 있는 뜻깊은 일이다. 민간급 통일운동의 포문을 열게한 노동당 창건 행사에 참석했던 말지 전문기자 신준영씨를 만나보았다. 신준영씨는 이번까지 북을 5차례 다녀왔으며 현시기 필요로 하는 진보적인 통일전문지를 준비하고 있다.

―북에는 몇 차례 갔는가.
“남쪽 언론사 기자로서는 가장 많이 다녀왔다. 98년, 99년에 한번씩 다녀왔고, 올해 4월, 8월, 10월 총 5번을 다녀왔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갈 수 있었던 이유가 있는가.
“북에서 좋게 생각해 준 것 같다. 이인모 선생님의 수기를 처음 언론에 실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해 준 것 같다. 내가 ‘말’지에 이인모 선생의 수기를 싣게되어 북이 알게 되었고 그래서 송환도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오랫동안 남북관계에 대해서 기사를 써왔으니까, 북쪽에서도 글을 읽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북측으로서는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다. ‘말’지를 통한 인연이다.”

―이번에도 개별인사로 초청을 받았는데.
“이번에 북에 간 사람이 42명이었지만 실제로 북에서 초청한 사람은 굉장히 많다. 정당, 시민사회단체 뿐만 아니라 북과 사업을 했던 경제인 등 지금까지 방문했던 사람 모두 초청되었다. 4번의 방북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초청을 받은 것 같다.”

―정당, 사회단체, 개별인사가 초청을 받아서 북을 방문한 것은 48년 남북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방북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인가.
“방북했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통일문제에서 정부당국간의 협조, 협력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만 굴곡이 많다. 김대중 정부 이후 어떻게 될 것인가도 문제지만 김대중 정부 집권 중에도 굴곡은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정부간의 협조만 가지고는 해결할 수가 없다. 민간단체가 튼튼하게 연계되어 있지 않으면 중단되는 것이다.

또한 48년 남북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한 정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족적 이해가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민간사회단체간의 통일을 향한 굳건한 연대가 필요하다. 1948년 김구 선생과 많은 사람들이 분단을 막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북에 갔다 왔다. 그후 52년만에 처음으로 정당사회단체들이 방북을 했기 때문에 통일을 향한 노정에서 민간사회단체에 첫 상면, 첫 대면의 길을 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 책 속에서나 존재하리라고 생각
했던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가 현실에서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북에서의 방북단 활동이 남측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떠한 활동을 했는가.
“노동당 창건 55돌 행사 참관, 단군릉, 평양 지하철, 개선문, 주체사상탑 등 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으레 돌아보는 곳을 돌아보았다. 남측 정부가 정치적인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고 조건부로 보내준 것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참관만 했다. 북쪽에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워 했다. 방문단이 돌아갔을 때 시비에 휘말리거나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고, 남측
정부도 곤란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외국에서 방문단이 오면 차량으로 만수대 김일성주석 동상 앞으로 가서 참배를 하거나 만경대 생가 방문, 금수산 기념궁전을 관람한다. 이번 미국무부 장관 올브라이트도 갔다. 그런데 이런 절차는 아예 없었고 북에서 가자는 소리도 없었다. 오히려 방문단에서 다른 나라에 가면 국립묘지를 가기도 하는데, 이 나라의 제도를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북측에서는 ‘말씀은 감사하지만 어떠한 문제도 생기지 않기를 원한다’며 순수하게 참관만 할 것을 권유했다.”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를 보고 온 사람들이 ‘경이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실제 행사를 참관한 느낌은 어땠는가.
“왜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에 맞춰 초청을 했는지 가서 보니까 이해가 됐다. 북이 2달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고 하는데 임수경씨가 참가했던 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평양 시민이 2백만인데 백만명은 참여한 것 같다. 거의 모든 집에서 참여한 것 같다. 규모면에서 올림픽 개막식, 폐막식의 수준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잘 꾸며진
행사였다. 북측 사람들이 충분히 자랑할 만했고 방문단도 일생에 한번 구경할 수 있을 까하는 행사를 구경했다.

남측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고 기계적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기 때문에 그렇고 실제로 보면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고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움직임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 나름대로 축제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0만명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는 집단체조나 150여 가지 그림을 연출하는 배경대(카드섹션)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런 행사는 국가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국민 스스로가 의미있는 일이라는 판단이 없으면 할 수 없다. 국가가 주도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못한다. 강제로 진행되는 훈련만을 가지고는 그런 행사를 할 수 없다.”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의 사상에 기인한 것이다. 전체주의와 구분되는 집단주의의 힘이다. 인간이 흩어져 있으면 약하지만, 모이면 강하다. 지도자가 있으면 더욱 강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행사가 북의 주민들에게는 명절과 같은 분위기였다고 하는데 북의 주민들은 노동당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노동당은 어머니 당이니까 당은 어머니다. 노동당 창건일은 어머니의 생일과 같다. 국민전체가 하나의 대가족이니까 국민전체가 어머니 생일을 기뻐하며 축하한다. 기쁨을 함께 나누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어떻게 2천만 명이 한가족이 될 수 있느냐, 자기 친어머니도 아니고 2천만명이 동일하게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 정부가 강제로 무섭게 해서 하는 것이 아니냐 등 많은 의구심을 제기한다. 그러나 실제 상황을 봤던 목격자로서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지 않았고 오히려 밝았다. 신나고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쉽게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북에는 노동당 이외에도 천주교 청우당과 사회민주당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행사에 참여하는가.
“북에서는 우당 즉 친구당이라고 표현한다. 함께 명절을 즐기고 연대를 강화하는 활동을 한다.”

―북의 주민들은 통일에 대해 열의가 높다고 하던데.
“한결같이 통일에 대해 열의가 높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우리보다 더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경제제재, 군사적 대치상태, 대외 개방 등 모든 것들이 통일을 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상황이다. 통일을 해야되는 이유를 전체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남쪽에서도 어려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교육시키지 않는가.
“민족주의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남측 정부는 그냥 두 나라로 살아가면 어떠냐는 실용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분단상황에서 전쟁이라는 위험도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막고 경제도 한미일 삼각동맹 속에서 해결하자는 것이 남측의 생존방식이다. 이러한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명분론적으로는 통일을 이야기 하지만 속으로 ‘두 나라로 살면 어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북측이 노동당 창건 행사에서 선군정치의 승리라는 말을 하는데 선군정치란 무엇인가.
“지금 미국이 북과 협상을 하는 것이 미사일 때문이다. 전에는 대결과 전쟁만을 추구했는데 북과 대화를 통해 수교를 맺고자 하고 미국의 대통령이 방문하겠다고 하는 것은 북이 미사일이라는 국방력이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돈으로 식량을 충당한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북의 정권을 두고 이런저런 말을 하는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줄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다. 결국 북이 선택한 것은 굶어도 미사일을 개발해서 자기들의 이념과 사상을 지켜나가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뒤집은 나라들이 많다. 칠레, 이란, 베트남, 유고를 뒤집었다. 민심이 정권과 이반되어 있고 틈이 있으면 미국은 파고든다. 소련에서와 같이 분열공작을 한다. 미국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폭격을 하든지 군중의 소요를 통해서 북의 정권을 축출하든지 온갖 것을 두고 판단했을 텐데, 지금 협상을 하자고 하는 것은 미국이 인심이 좋아서가 아니다. 지금 북이 미사일이 없었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북이 군사력이 없었으면 미국은 무력으로 휩쓸어 버렸을 수도 있다.”

―북이 고난의 행군을 끝마치고 구보행군에 돌입했다고 하는데.
“좋아졌다. 98년, 99년, 2000년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해마다 갔기 때문에 변화를 느낀다.

98년은 정말 어려웠고 굉장히 긴장된 모습이었지만 99년은 안정을 찾은 표정이었다. 98년은 중앙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점심을 먹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올해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난 4월 방문했을 때 군사력과 정치력은 확보되었고 경제력만 확보되면 강성대국은 문제없다는 말을 했고 곧 경제력도 해결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에는 외교정상화가 될 것이라는 북의 자신감을 미심쩍어했다. 그러나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다. 경제는 지금도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해마다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이다.

98년도에 자체적으로 중소형 발전소 5천여 개를 세웠다. 또 감자농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북의 식량난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되어가고 있다.”

―최근 북미회담과 관련해서 북 주민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정상회담 전에 북이 남을 보는 시각은 좋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도 비전향장기수도 송환하지 않고 한총련 학생들을 구속시킨다고 좋지 않게 바라봤다. 정상회담 이후 문명자씨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황영접을 나가지 않으면 주민들이 환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북미관계도 그렇다. 10월12일 북에 있을 때 북미회담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북의 주민들은 환영하는 모습이었다. 북 주민들의 판단의 기준은 하나다. 과거에 나쁜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 통일과 민족자주를 위해 힘쓴다면 누구나 함께 한다는 것이다. 미워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기준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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