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바로알기]경제 운영체계 분석① > 조선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3월 29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조선이야기

[이북바로알기]경제 운영체계 분석①

페이지 정보

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0-12-30 00:00 조회11,662회 댓글0건

본문


해외 원로 통일운동가이며 은퇴학자인 선우 학원 박사(82)가 보는 이북의 경제운영체계 분석을 통해 이북의 한면을 알아본다. 4번에 걸쳐 매일 소개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

[차례]

[1] 이북의 경제체제는 어떤 것인가?
[2] 경제 건설의 기본전략에 대해서
[3] 경제 관리방법에 대해서
[4] 관리제도가 현행관리로 되어있는가?

...............................................................................................................

이북의 경제 체제 분석


"경영형태 개조와 인간개조를
통일적으로 실천하여 성공.."



*글: 선우학원 박사(정치학자.평론가)



남북수뇌회담에서 발표한 역사적인 6.15선언문 중 남북경제교류와 협력의 조목이 명시되어있다. 그 조목에 따라서 남북경제인들간의 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남한이나 해외동포들이 북의 경제체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 그러면 북한의 경제체제는 어떤 것인가?



sunwoohakwon.jpg북한경제 체제는 1945년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시작하여 지난 50여 년 간 많은 발전 변화가 계속되여 왔다. 토지개혁의 필연성은 봉건적, 제국주의적 착취와 압제 밑에 있던 현실에서 해방하기 위한 첫 단계였다. 토지개혁은 빈농민에게 혜택을 주었고 지주들을 고립시키는데 성공했다. 북의 토지개혁의 특징은 단시 일내 빠른 속도로 실시되었고 지주들의 위치와 세력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무상몰수한데 있었다.

토지개혁과 동시에 중요산업의 국유화가 실시되었다. 일본제국주의와 민족반역자와 매판자본가들의 소유인 천 여개의 산업시설이 무상몰수 되었다. 그 결과 일본제국주의와 민족반역자와 매판자본가의 경제적 기반이 몰살되었고 사회주의 경제형태가 발생 되여 국민경제에 지도적 지위를 점령케 되었다.

이런 상황은 미군이 점령한 남한의 정세와는 반대되는 현상이라 하겠다. 북의 경제체제를 농업과 공업으로 분리해서 논의하는 것이 편리하다.

농업은 토지개혁으로 시작하여 농업협동화로 발전된 것이다. 농민생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농경영 제도를 협동화해야 했다.

조선노동당은 평화적 건설기(1947-1949)에 국영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국영 농목장, 농기계 작업소, 개간관리소 등 국영농업기업을 시작하였고, 농촌은행, 농촌 소비조합 등 협동조합을 조직하여 협동화의 전제조건을 창시했다.

그러나 아직도 협동화의 실천할만한 사상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만 한(조선)반도전쟁(1950-1955)이후 정세는 일변됐다. 모든 것이 파괴된 정세 속에서 소농경영으로는 식량문제 해결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전시중 빈농이 급증되었다. 그것은 협동화에 유리한 조건으로 된 것이다. 우선 농민들의 정치적 자각이 발전 되였다. 이런 변화를 보고 조선노동당은 중앙위원회 제 6회 총회(1953.8월 초순)에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하고 동시에 경공업과 농업을 급속도로 발전한다.」를 전후경제건설의 기본노선으로 책정하게 되었다.

그러면 농업협동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중요한 원칙의 하나는 농민의 자발성의 원칙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노동당의 정책은 시종일관하여 농민의 자발성을 지키고 실물교육을 통해서 농민을 협동경영의 우수성을 교시하는데 노력했다. 농민들이 자기들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데 치중시켰다. 그래서 협동화를 추진시키는 과정에서 빈농을 중심으로 하였고 중농과 동맹을 강조했고 부농을 제한했다.

농업협동화는 1954년에 시작하여 58년에 완성되었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은 물론이고 빈농에 대여한 식량과 종자들이 30만 톤이나 되었고, 영농자금의 대부액이 243억 원에 달했다.

농업협동화가 일시에 성취된 것이 아니다. 발전과정이 있었다. 처음 경험적 단계에서 시작하여 대중적 발전단계를 그리고 마지막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처음 빈농(전체 농가의 40%) 중심으로 시작한 협동화가 대중적 발전과정에서 중농을 협동화의 길로 대량 이동함으로 광범한 발전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협동화는 양적으로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큰 성과를 보게 되었다. 그것이 1956년도였다. 농가총수의 80%, 경지면적의 78%을 포함하는 협동화의 성과를 보게되었다.

농업협동화의 성과에 기초하여 조선노동당은 제 3회 대회에서 제 1차 5개년 계획(1957-1960)을 선포하여 협동화운동을 최종적으로 완성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농업협동화 운동이 사회주의 공업화를 선행하게 되어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전통적으로는 농업협동화는 농업을 근대화한 기술에 의해서 물질적, 기술적 기반이 존재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주의 농업경영은 근대기술의 혜택 없이는 이룰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협동화는 시기상조라는 이론이 대두했었다. 즉 공업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농업협동화가 불가능하다는 주장 이였다. 이런 주장은 소련의 경험을 본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자기들의 고유한 경험에 의해서 농업협동화를 추진했다.

또 하나의 북한 농업협동화의 특징은 협동화운동이 단기간에 이룩된 것이다. 북한에서는 동구라파에 비교해서 5년, 중국에 비교해서 2년 늦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5년 내로 완성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렇게 성공한 배후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전쟁 때문이고 또 하나는 농촌에서 계급의 관계가 농업협동화를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하였다. 물론 토지개혁으로 인해서 농민들의 토지수유(수요와 공급)관념을 희박하게 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북한의 농업 협동화는 경영형태의 개조와 동시에 인간개조를 통일적으로 실천하여 성공했다. 이것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볼 수 없는 조선 사회주의의 특징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제1차 5개년 계획을 통해서 국민경제의 전 분야를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로 통치하여 성공했고, 역사적인 승리를 이루었다.[내일 계속...]


*(필자는 1918년 2월2일 출생으로 평생을 통일운동에 헌신해 온 해외운동권 원로 지도자이며 한반도문제 전문 학자로 활약해 았다. 고령에도 최근(1997년)에 "한미 50년사"[1997.4.25 일월서각 출판]를 비롯 5권의 한글판 저서와 한반도문제 영문판 저서 20여권을 출판했다.그는 1950년 체코국립대학에서 정치역사학 박사를 받은 유일한 우리나라 인물이다.)*



민족통신 11/10/2000 minjok@minjok.com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