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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파는 처녀》 홍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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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4-05-18 00:00 조회14,606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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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분이네 집은 양지산 앞 언덕진 기슭에 있다. 그리고 꽃분이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 순회와 함께 살고 있다. 오늘도 들로 산으로 꽃을 따모으기 위해 헤매이던 소녀 꽃분이에게 문득 6년 전의 그날이 가슴을 에이며 또오른다. 그녀의 집에 그처럼 엄청난 비운을 몰고온 그날이….
배가라는 지주놈 집에 종살이를 하다가 세상을 뜨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 집에 머슴을 살고 있는 꽃분이의 오라버니 철용이, 그날 철용이는 배가의 여편네가 산삼을 다릴 숯을 받아오라 하여 20리 길을 가서 참나무 숯을 한짐 받아가지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한참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던 철용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거기 한그루 소담스런 철쭉꽃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철용이는 정히 꽃나무를 따서 숯짐 위에 얹었다. 꽃나무를 보고 좋아할 두 여동생을 생각했다. 《명년 봄엔 어머니와 동생이랑 우리 집 앞뜰에 이 철쭉꽃이 피는 것을 보게 되겠지!》 철용이는 걸음을 재촉했ㄷ. 그런데 얼마쯤 가다 보니 거기 뜻밖에도 어린 동생 순희가 돌배나무 아래 서 있질 않은가. 꽃분이는 나무 위에 올라가 배를 따느라고 애를 쓰고 있고, 순희가 오빠를 보자 너무 반가워 《오빠야!》 환성을 지르며 달려와 안겼다. 순희는 오라버니 지게 위에 태우고 3형제는 그렇게 좋아라 뛰며 놀며 집으로 왔다. 그리고 뜰앞에 산에서 떠온 철쭉꽃을 심었다. 순희가 말했다.
《오빠야, 이건 오빠꽃이라고 하자, 응?!》
오동골에 가서 품을 팔아 쌀을 얻어 가지고 오는 어머니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이제 이것으로 지난 봄에 꾸어다 먹은 빚을 갚으면 6년 동안 머슴살이를 살던 아들 칠용이를 배 지주놈 집에서 버젓이 데려 내올 수 있기에.
《얘들아 이제 오빠를 아주 데려 올 수 있게 되었다. 내일 엄마가 저 쌀을 주사님 댁에 갖다 갚아 드리면…》
어머니는 목이 메여 했다.
《그럼 명년부터 오빠와 엄마는 농사를 짓구 꽃분이와 순희는 저 꽃밭을 가꾸어서 꽃을 듬뿍 심어 놓구 꽃처럼 웃으면서 살자꾸나.》
삼남매와 어머니는 정녕 행복한 그날이었다.
배 지주놈 집에서는 어머니가 그 집 종살이를 그만두고 나온 뒤에도 아직 빚이 남아 있다는 제세로 시두때두없이 어머니를 불러다 일을 시키곤 했다. 그날도 어머니는 아침부터 배 지주 댁에 불리워 갔다. 어머니가 배 지주 댁에 들어서자 온 뜰안에 향긋한 탕약 내음이 가득했다. 어머니가 무심히 약탕관 앞을 지나치려는데 때마침 배 지주 여편네 장씨와 마주쳤다.
《이봐! 저리 비켜 가지 못해?! 부정타겠네. 산삼이 부정타!》
앙칼진 장씨 말에 어머니는 소스라쳐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재빨리 몸을 피했다.
어머니가 지주놈 집에 불리어간 뒤 꽃분이는 무엇부터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했다. 어머니는 돌아올 때 오빠를 데리고 온다 했다. 이 기쁜 날 오빠가 돌아오며 어떻게 즐겁게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꽃분이는 순희의 머리를 곱게 땋아 주었다. 그리고 오빠가 사다준 갑사댕기를 곱게 드려주었다. 그리고 나서 물도 길고 집 안팍도 깨끗이 쓸어 내었다. 그런데 그날은 꽃분이네 집에서는 끼니를 이을 양식이 없었다. 순희가 배고프다고 칭얼대기 시작하더니 엄마에게 데려다 달라고 졸라대었다. 언니가 아무리 애타게 달래어도 소용이 없었다. 꽃분이는 순희를 등에 업고 배 지주 댁으로 갔다. 그리고 대문깐 어구에 동생을 내려놓고 이렇게 타일렀다.
《순희야, 너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엄마 있으면 데리구 올게. 아무데두 가지말구 기다려. 알겠어? 꼼짝하지 말구 응?》
그리고 언니는 주인집 눈에 뜨일까 후원담 모퉁이를 향해 달음질쳤다. 홀로 남은 순희는 언니가 사라진 담모퉁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런데 큰 대문 안으로 지게꾼 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지게꾼은 틀림없는 오빠 같았다. 순희는 오빠를 찾아 한 걸음 두 걸음 아장아장 대궐 같은 집 뜨락으로 들어갔다. 뜰에는 화롯불에 약탕관이 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대청마루엔 하이얀 종이에 빨간 대추들이 널려 있지 않은가. 빨간 대추, 언젠가 오빠가 가져다 준 그 맛있는 대추, 순희는 저도 모르게 새 대추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냉큼 한 알을 집어 입에 넣으려는 순간, 그때였다.
《요년! 약으로 쓸 대추에 손을 대! 엉?! 요년아!》
화다닥 미닫이 문이 열리면서 뛰쳐나온 지주 여편네, 다자고짜 순희의 머리끄댕이를 움켜쥐고 힘껏 나꿔챘다. 그리곤 순희의 머리를 움켜쥔 채 마구 흔들어대더니 순흐를 냅다 내동댕이쳤다. 《으아!》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진 순희의 몸에 화로가 부딪쳤다. 순희는 뒤집어지는 화로와 함께 마당에 굴러 떨어졌다. 약탕관이 순희의 머리맡에서 쭤악 소리를 내며 깨어졌다. 순희는 뽀얗게 불더미 재를 뒤집어쓰고 데굴데굴 굴며 뒤채이었다. 그러자 지주 여편네 또한 기겁을 하며 비명이다.
《아이구 산삼이 산삼이 몽땅 녹았구나!》
온집안 사람들이 안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어머니와 꽃분이도 황급히 달려왔다.
《순희야, 순희야 네가 웬일이냐?》
어머니는 순희를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야, 네 새끼가 대추를 훔쳐 먹구 산삼 달이던 약탕관을 뒤집어엎었다. 너희 집 년놈들 깝데기를 벗겨두 산삼 값이 될 줄 아느냐?》
지주 여편네가 이번에는 어머니의 머리끄뎅이를 잡아 흔들며 악다구니질을 했다. 이때였다. 한달음에 달려온 철용이, 어머니 머리채를 쥐흔들고 있는 지주 여편네를 밀쳐 버렸다. 그리고 함께 분이 나서 삿대질을 하고 있는 배가놈의 지팡이를 빼앗아 와지끈하고 꺾어 버렸다. 철용이가 순희를 껴안고 집으로 달려나갔다. 어머니와 꽃분이가 허둥지둥 그 뒤를 따랐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급히 간장종지를 가져다 순희의 목덜미부터 발라주었다. 철용이가 벌떡 일어나 오더니 약과 대추 몇 알을 들고 왔다. 꽃분이가 오빠에게 매달려 울부짖는다.
《오빠, 순희가 순희가, 눈이 안 보인대, 캄캄하대!》
철용은 허공을 더듬는 순희의 두 손을 잡았다.
《오빠야, 나 안 보여, 눈 없다. 눈 어디 갔니?》
《그게 무슨 소리냐, 눈이 없다니! 왜 눈이 없단 말이냐! 순희야, 오빠가 대추 사 왔다. 어서 눈을 뜨고 봐라. 자 어서….》
《대추?! 나 대추 안 먹고 싶어. 싫어, 싫어, 대추 무서워, 가져가!》
순희가 대추를 쥔 오빠의 손을 힘껏 떠밀었다.
《아이구 분해라. 대추 한 알에 우리 순희가 눈이 멀다니, 으흐흐…》
어머니가 땅을 치며 통곡했다. 철용이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만 문을 박차고 미친 듯 달려나갔다. 얼마 후 배 지주놈 집에 큰불이 일어났다. 온동네에 대소란이 일어났다. 철용이는 곧 체포된 몸이 되어 이디론가 끌려가고 말았다.
《못간다. 너까지 잡혀가면 우린 누굴 믿고 살란 말이냐.》
아들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어머니, 발을 동동구르며 울부짖는 꽃분이를 뒤로 한 채….
8년의 징역을 받고 철용이 집을 떠난 지도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나어린 순희도 이제 11살 소녀가 되었다. 오늘도 앞 못 보는 순희는 봄볕이 쏟아져 내리는 토방머리에 앉아 배 지주놈 집에 빨래 해주려고 간 어머니, 장마당에 꽃 팔러 간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염없이 토방에 앉아 있던 순희는 꽃밭이라고 짐작되는 곳으로 내려가 손더듬으로 철쭉꽃나무를 찾아 더듬거렸다. 철쭉꽃나무를 어루만지면 오빠의 얼굴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곤 했다. 순희는 결국 오빠가 떠다 심은 이 꽃나무에 피는 꽃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아, 그렇게 곱게 핀다는 철쭉꽃을 한 번만이라도 봤으면 꼭 하루만이라도 눈을 떳으면 얼마나 좋으랴》
순희는 혼자 서럽게 울었다.
이른 봄부터 산나물을 뜯어다 팔던 꽃분이는 요사이 활짝핀 철쭉꽃과 수수꽃다리 꽃망울을 단 살구꽃 복숭아꽃을 꺾어 한 광주리씩 담아 이고 장터에 나서곤 한다. 그것은 하루속히 돈을 모두어 어머니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장터에는 바이올린을 켜며 약을 파는 고학생이 있다. 꽃분이는 그 청년을 봉때마다 오빠 생각이 난다. 어서 약값을 마련하여 어머니 병환을 고쳐 드리면 그땐 꼭 오빠를 찾아가리라. 꽃분이는 마음속으로 다짐해 보았다. 그런데 그땐 꼭 오빠를 찾아가리라 꽃분이는 마음속으로 다짐해 보았다. 그런데 어머님 병환은 날로 위중해 가는데 그동안 푼푼이 돈을 모아 왔지만 아직도 약값이 모자란다.
요즘에 와서 어머니는 부쩍 허약해지셔서 배가놈 집에서 일하시다가도 쓰러지기 일쑤이다. 한편 배가놈 집에서는 벌써부터 꽃분이를 계집종으로 넘겨주지 않는다고 성화요 걸핏하면 협박을 해오곤 한다. 그렇지 않으면 꽃분이는 아예 술집에 팔아넘기겠다고. 그날도 어머니는 일을 하다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 꽃분이가 달려가 보니 쓰러진 제사 음식을 망쳤다 하여 지주 여편네가 발방아 찧듯 마구 발로 걷어차고 있지 않은가. 꽃분이가 달려가 어머니를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어미니를 들쳐 없고 지주 놈 집 안마당을 뛰쳐나왔다. 꽃분이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쏟아져 내렸다. 그날부터 꽃분이는 어머니 대신 지주놈 집 종살이로 들어가기로 결심을 했다.
지주놈 집에는 일감이 끝도 한도 없이 많았다. 첫 닭이 울 때부터 일어나 머슴들의 새벽 조반부터 시작해 안채 열두 방과 기역자로 꺾어진 긴 마루 유리창을 털로 닦아야 했다. 그리고도 빨래요 망질이요 온종일 일감이 코 끝에 매달려 있었다. 뿐인가 밤이면 밤마다 지주 여편네는 팔다리를 주물러라 발을 씻겨라 밤새도록 꽃분이를 시달구다가 자정이 훨씬 넘어야만 집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밤길을 달려 집으로 간다. 어머니는 지난 사흘간을 의식을 잃은 채 누워 계셨다. 부랴부랴 부엌에 들어가 미음을 끓여가지고 어머니 입에 떠넣어 드리고 그날은 새벽부터 산으로 올랐다. 그리고 서둘러 나물을 뜯고 꽃을 꺾어 한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장터로 나갔다. 언제나 꽃분이를 불쌍히 여기고 따뜻히 대해 주는 인정 많은 생선 가게 아부머니에게 먼저 갔다. 그리고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함도 이야기 했다. 그러자,
《옛다, 이거문 되겠는지, 보태서 얼핏 약을 지어 가지구 집에 가 보아라. 이 나물과 꽃은 내가 맡아서 팔아 주마. 자, 어서 받거라!》
아주머니는 1원짜리 한 장을 꽃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 1원 1원이면 이제 엄마 약값이 될 것이다. 꽃분이는 참고 참았던 설움이 복받쳐 왈칵 눈물이 솟았다.
《고마와요. 아주머니, 인제 울 엄마는… 울 엄마는 살았어요. 고마워요. 정말…》
꽃분이는 뛸 듯이 기뻐 약국을 향해 단숨에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낯익은 음성,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꽃분이는 이상한 에감이 들어 그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거기엔 사람들이 하얗게 모여 있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보았다. 이것이 웬일인가. 군중들 한가운데서 처량하게 노래를 부르고 서 있는 건 바로 순희가 아닌가.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어여쁜 빨간 꽃 향기롭고 빛깔 고운 아름다운 빨간꽃 앓는 엄머 약 구하려 정성 담아 가꾼 꽃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이꽃 이꽃 빨간 꽃》
사람들은 흥미롭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
《야, 거 병신 아이가 노래는 명가수로다. 얘야, 여기 돈 또 줄 터이니 어디 한 번 더 불러 봐라》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동전잎들이 떨어졌다. 순희가 손을 더듬으며 그것을 주워 모으려 했다. 순간 꽃분이의 두 눈에 시뻘건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꽃분이는 앞을 막아선 사람들을 물리치고 쏜살같이 달려나가 순희의 덜미를 와락 잡아 젖히었다.
《순희야》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언니야, 왜 성내니? 이거 받어. 엄마 약 어서 지어 드리자 응?》
순희가 꼭 쥐었던 주먹을 펼쳐보였다. 동전잎 몇 개가 그 속에 있었다. 아, 세상에 누가 이따위 것을 만들어 내어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가. 이 더러운 것이 무엇이기에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앞 못보는 순희를 거리에 끌어내어 땅바닥을 기어다니게 하는가. 꽃분이는 몸서리를 쳤다.
《누가 너더러 꽃을 팔라구, 거지 노릇을 하라구 했어?! 우린 암만 가난해두 거지는 아니야!》
꽃분이는 순희를 붙들고 마구 흔들어대며 외치고 울부짖어도 뻐그러지고 찢어지는 가슴을 달랠길 없었다.
꽃분이는 어머니의 약을 다리기 시작했다. 온 집안에 약내가 풍겨 오자 기진해 있던 어머니가 일어나 앉으셨다.
《꽃분아, 네가 기어이 약을… 난 너희들 정성만으로두 살아난다. 살아나구 말구…》
어머니가 혼자 말하듯 기운 없이 말했다. 꽃분이는 정성껏 약을 짜서 사발에 담았다.
《어머니, 약 드세요》
꽃분이는 공손하게 두 손으로 약 사발을 받쳐 어머님께 내밀었다. 어머니는 딸의 얼굴을 망연히 바라보시더니 말없이 약 사발을 받으셨다. 꽃분이는 약사발을 받아 든 뼈만 남은 어머니의 손이 후들후들 떨리시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부엌에서 냉수 한 사발을 떠 가지고 오던 꽃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 우뚝섰다. 부엌에서 냉수 한 사발을 떠 가지고 나오던 꽃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 우뚝섰다. 약 사발을 입에 가져가려던 어머니 또한 영문을 몰라했다. 서슬이 시퍼런 배 지주놈과 그 집에 집달리 백만이놈이 뜰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요 앙큼한 년! 주사댁을 어찌 알고 밤에 집으로 몰래 도망쳐?!》
백만이놈이 악을 쓰며 다자고짜 꽃분이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러자 꽃분이의 손에서 사발이 떨어지면서 쟁가당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어머니가 밖으로 나오시려다 쓰러졌다. 다시 비칠거리며 달려나왔다.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산산이 헝클어져 내렸다.
《안된다. 안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너를 못 들여보낸다.》
어머니는 끌려가는 꽃분이는 붙들며 부르짖었다.
《뭣이 어쩌고 어째?! 뭐 죽어두 못 들여보내? 좋다. 안 들여보내겠으면 그만둬라. 여보게, 꽃분이를 끌어다 곳간에 가뒀다가 내일 아침 뚜쟁이를 불러서 술집에 팔아 넘기게. 썩 끌어가지 못할까?!》
뒷전에 서 있던 배가놈이 분에 못이겨 씨근덕거리며 악을 썼다. 어머니는 끌려가는 꽃분이의 치맛자락을 다시 거머쥐었다. 그러자 배가놈이 달려들더니 한 발을 들어 어머니의 가슴팍을 힘껏 내리 찼다. 어머니는 《억》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나가 넘어졌다. 꽃분이가 배가놈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 어머니를 안아 일으켰다. 그러나 어머니의 몸은 꽃분이 품에 들리운 채 축 늘어졌다. 《어머니, 어머니…》 꽃분이는 어머니를 흔들었으나 늘어진 두 팔만 건둥거릴 뿐 대답이 없었다. 배지주놈과 백만이놈이 투덜거리며 뒷걸음쳐 가 버렸다. 꽃분이는 급히 어머니를 아랫목에 눕히고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순희가 《엄마, 엄마》 울며불며 울어댔다. 어머니의 몸은 어느 사이 차겁게 식어가고 있었다. 두 딸이 아무리 불러도 찾아도 어머니는 이미 더 이상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꽃분이가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그 자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꽃분이네 집으로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고 밤이 새도록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꽃분이네 집에서 상여가 나간 것은 다음날 저녁 어스름 할 때 상여 뒤에 꽃분이가 순희의 손목을 잡고 따라나섰다. 그리고 몇 사람 안되는 마을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장례를 치른 그날 밤, 비는 억수로 쏟아지는데 울다 울다 지쳐 쓰러져 잠든 순희를 내려다보며 꽃분이는 구름처럼 몰려오는 만가지 사념에 생각이 착잡했다. 이제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시름없이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는데 어둠속에 인기척이 났다.
《얘야, 배가네가 너를 기어이 술집에 팔아 넘겼구나. 아침에 너를… 도망을 치던지 무슨 수를 써야겠다.》
내가네 집 황노인이 허겁지겁 찾아온 것이다. 꽃분이는 황노인이 돌아간 후에도 그렇게 비바람 속에 한참을 서 있었다. 이윽고 꽃분이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영란이네 집으로 갔다. 영란이네 부모님이 꽃분이가 순희를 데리고 오빠에게 가려는 것을 만류하면서 순희는 자기 집에 맡기고 가라 했다. 꽃분이도 다시 생각해 보니 영란이네 부모님 말씀이 옳은 것 같았다. 어린 것을 추운 겨울에 데리고 가다 굶어 죽을 수도 있고 얼어 죽을 수도 있지 않은가. 순희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순희야, 기다려라 응, 언니가 꼭 데리러 온다. 오빠를 만나 보고, 추워지기 전에… 첫눈이 내리기 전에 온다. 인제 오빠랑 다 만나서 함께 살자 응…》
꽃분이는 눈물 젖은 순희의 두 볼에 얼굴을 대고 비비었다. 영란이 어머니가 어서 날이 새기 전에 떠나 가라고 곁에서 조바심을 했다. 꽃분이는 눈물을 머금으며 양지마을을 떠났다. 오빠가 갇혀 있는 감옥을 향해 700리 머나먼 길을…
꽃분이가 마침네 700리 길을 걸어 감옥이 있는 도청 거리에 다달은 것이 양지마을을 떠난 후 그 얼마만일까. 굶으며 비바람 맞으며 쓰러졌다 깨어났다 하면서 다만 별빛을 벗삼아 걷고 또 걸어온 날들이 그 얼마일까. 드디어 꽃분이의 눈앞에 감옥의 높은 담장이 나타났다. 아, 그리운 오빠 그 늠름한 모습, 다정한 목소리만 한 번 들어도 기운이 부쩍 솟아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족 면회의 날이 되었다. 감옥 앞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하얗게 모였다. 마침내 간수가 나와 면회자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꽃분이 차례가 되었다.
《음, 철용이 동생이란 말이지?》
간수들은 저희들끼리 무언가 잠시 쑥덕거렸다.
《네 오빠는 뒤졌다. 죽었단 말이야!》
《예?!》
꽃분이가 놀라기 바쁘게 간수놈은 철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죽다니요? 울 오빠가 죽다니요? 오빠가…》
꽃분이는 울부짖었다. 온몸을 철문에 동댕이치며 부르짖었고 주먹으로 두드리고 몸으로 부딪쳐도 철문은 끄덕하지 않았다.
《오빠!》
꽃분이가 피터지게 불러도 대답 없는 오빠, 정녕 그 오빠마저 이 세상에 없단 말인가. 모질다 이 세상, 차디찬 이 세상, 찾아와도 찾아가도 괴롬뿐이요 눈물뿐인 이 세상… 꽃분이는 실성한 듯 파도 넘실거리는 물결 속에 달려나갔다. 그리고 몸을 던지려 했는데 순간 일렁이는 물결 속에 순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죽어도 순희와 함께 살아도 순희와 함께 살아야 한다. 꽃분이는 다시 북쪽을 향해 눈보라 속을 걷기 시작했다. 불덩이 같은 몸을 이끌고 꽃분이는 그만 정신을 잃고 눈밭에 쓰러졌다. 하이얀 눈밭들이 꽃분이 위에 내려쌓이고 있었다.

이 시간 배 지주놈 집에는 무당이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이다. 지주 여편네 장씨가 얼마 전부터 이름모를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놈의 병인지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눈자위가 휘딱 뒤집혀가지고 고래고래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지랄을 부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좋다는 약은 다 써 봤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그래서 명의도 약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소문난 무당을 불러들인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무당이 방울을 흔들고 부채를 펼쳤다 접었다 하며 중얼거리는 소리, 《살이로다. 살이로다. 동남간에 오는 살이로다. 액맥이를 하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로다.》 하지를 않는가. 《동남간에서 오는 살이라!》 그것을 잭각 알아차린 건 언제나 음흉하고 간교한 백만이놈이다. 동남간이면 바로 꽃분이 어머니의 산소가 있는 수리봉 언덕쪽이요 날이면 날마다 떠나간 언니를 찾으며 순희가 울고 서 있는 그쪽이 아닌가. 백만이놈이 무언가 배 지주놈에게 귓속말을 했다.
《흠, 알겠네. 자네가 오늘밤으로 없애 버리게. 내 보수는 아끼지 않을터이니 》
그날 밤 영란이네 집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순희가 온 데 간 데 없어진 것이다. 온동네가 떨쳐나서 산과 들을 찾아 헤매였으나 끝내 순희의 종적을 찾을 길 없었다.
눈밭에 쓰러졌던 꽃분이는 인정 있는 사람들을 만나 회생을 하기는 했으나 지칠데로 지친 꽃분이의 몸이 성할 리가 없다. 손가락 하나도 더는 까딱할 수 없을만치 기운이 빠졌지만 오직 하나 순희한테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악을 쓰고 일어났다. 그리고 또다시 꽃분이는 고향 집을 향해 기어이 돌아왔다. 칼바람 모진 추위 눈보라 속을 헤치며 . 마침내 병든 꽃분이가 다리를 절며 영란이네 집에 들어서자 영란이네 식구들이 버선발로 달려나왔다.
《아이구 이게 누구냐. 꽃분이가 아니야. 아이구 이를 어쩌나. 우리가 너한테 죽을 죄를 지었구나. 순희가 며칠 전에 없어졌구나.》
《순희가 없다니요?》
꽃분이는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더운물 찜질을 하고 온몸을 주물러대자 조금씩 숨이 고르로와지며 의식을 회복하는 듯 했다. 그때였다. 황 노인이 들어서며 말했다. 순희가 없어진 건 아무래도 배가놈의 작간인 것 같다. 그날 저녁 백만이놈이 웬 아이의 손을 잡고 양지산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 같다고 . 꽃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버선발로 뛰쳐나갔다. 배가놈 집에 두 년놈들이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서 순희를 처치한 후 과연 병이 차도가 있는 것 같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갑자기 쾅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활짝 열어젖히였다. 그 소리에 놀라 드르륵 미당이를 열던 배가놈이 꽃분이를 보자 기겁을 하고 소리쳤다. 여편네도 꽃분이를 보자,
《저 저 저 저게 귀신이 아니야?》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꽃분이가 한걸음 두걸음 도전하듯 두 년놈들을 노려보며 마루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
《우리 순희를 순희를 내놔요. 우리 순희를 어디에 감추었니?! 순희를 내놔라!》
《아니 저년이 썩 물러가지 못할까!》
배가놈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꽃분이는 섬돌 우에 뛰어올라 끓는 약탕관을 화로채로 번쩍 들어 배가놈을 향해 힘껏 내동댕이쳤다. 안채에서 소란이 벌어지자 백만이놈이 달려 나왔다. 그리곤 빗장을 빼들어 냅다 꽃분이의 등신을 후려갈겼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꽃분이가 그 자리에 푹 쓰러졌다. 배가놈이 쓰러진 꽃분이를 또 내리 밟았다.
감옥에서 탈주한 꽃분이 오빠 철용이는 이제 어엿한 조선혁명군대원이 되었다. 그리고 6년만에 그립고 그립던 고향 땅에 돌아왔다. 흘러간 세월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들은 어찌 되었을까. 회상하는 철용은 깊은 감회에 젖었다. 과업을 받아 동지와 함께 고향 마을에 온 철용은 때때로 들리곤 하는 산전막을 찾았다. 그런데 노인 혼자 살던 산전막에 웬 어린 소녀가 함께 있었다.
《읍거리에 양식말이나 사 가지고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어디선가 언니야, 엄마야 하는 아이 울음소리가 나지 않겠소. 그래 소리나는 쪽으로 달려가 보니 글쎄 골짜기 막바지 눈뎅이 속에 이 앞 못 보는 어린 것이 눈무지를 헤집으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요.》
철용은 가슴이 미어져 왔다. 그렇게 보고 싶고 그립던 순희에 틀림없다.
《순희야! 나다! 오빠가 왔다. 내가 너의 오빠야!》
《오빠야 왜 인제야 왔니. 오빠야!》
《순희야!》
철용이가 순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꽃분이를 또 잃어버리고 수심천만에 있던 영란이네 집을 철용이가 순희를 업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배가놈의 천벌을 받아 마땅할 악행의 자초지종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격분하여 들끓었다.
《여러분! 배가네 집을 칩시다! 살인 백정놈을 요정 냅시다!》
어느 사이 여러 명의 청년들이 불망치를 쳐들고 모여와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부르짖었다.
《가자! 년놈들을 쳐죽이자!》
함성이 터져나왔다. 온동네 집집마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 몽둥이, 쟁기 따위를 하나씩 집어 들고 느티나무 언덕쪽으로 와 하고 모여들었다. 철용이가 폭동 군중의 앞장을 서서 달렸다.
그날 저녁 배가놈 집에서는 술판이 벌어져 있었고 읍 순사 부장과 또 한놈 순사가 와 있었다. 그들은 희희낙락하며 창고에 가두어 둔 꽃분이를 잘 처리해 달라고 순사놈들에게 굽신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함성에 깜짝 놀랐다.
《배지주놈을 때려 부수자!》
《꽃분이를 내놔라!》
함성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와지끈 대문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미닫이 문이 쾅하고 나가 떨어지고 와당탕퉁탕 사람들이 방 안에 뛰어들었다.
《저놈 족쳐라》 《죽여라》
아우성치는 가운데 갑자기 총소리가 터졌다. 철용이가 순사놈을 쏴 눕히자 마을 사람들이 달려들어 년놈들을 해치웠다.
꽃분이는 오빠의 넓은 가슴에 온몸을 던졌다.
《오빠, 왜 이제야 오셨어요. 어머니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 끝내 》
꽃분이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소리쳐 울기 시작했다. 꽃분이를 꼭 껴안은 철용은 가슴이 터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렇게 삼남매가 부둥켜안고 울때 온마당에 사람들도 함께 눈물에 젖었다. 이윽고 철용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애들아 인제는 눈물을 거두자. 우리가 이렇게 피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의 나라가 없기 때문이란다.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이 이렇구나》
다시 철용은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마을 사람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우리가 헐벗고 굶주리는 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세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원수 왜놈들을 때려부셔야 합니다. 우리는 조선인들이 행복하게 살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손에 총을 잡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마당 안이 들썩해졌다.
《우리도 싸우자!》 《조선 혁명군을 따라가자!》
마을 사람들의 함성이 터졌다. 배 지주놈 집에 삼단 같은 불길이 너울거리더니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철용은 두 동생을 데리고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떠났다. 다시는 지주가 없고 굶주림이 없고 그리고 눈물이 없는 행복에의 길, 새 나라를 찾아서

이것은 북한의 대표적 문예 작품의 하나요 영화이며 소설이자 가극인 《꽃파는 처녀》를 내 나름대로 축소해 본 미니 《꽃파는 처녀》라고 해둘까. 이 작품은 1930년 중부 만주의 농촌 마을 오가자에서 그 첫 공연을 가졌던 혁명 가극으로써,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 시기 동료들과 함께 친히 창작, 공연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시대를 거슬러 계속 인민의 사랑을 받아 오던 중 그들이 역성하는 바에 의하면 예술의 귀재라 할 김정일에 의해 보다 심도 깊은 작품으로 다듬어지고 보다 차원 높은 세계로 승화되었다 한다. 일제의 식민 통치로 인한 우리 조선 인민의 민족적 비운과 망국노의 설움 그리고 피착취 계급 프로레타리아의 피눈물나는 생활을 그린 이 작품 《꽃파는 처녀》가 영화화된 것은 1972년, 같은 해 체코, 까르로비바리 국제영화제에 출품되어 특등상을 수상한 바 있다. 당시 일화로는 작품이 너무도 우수하기 때문에 1등 수상으로 부족하다 하여 전례없는 특등제를 새로 제정 수상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처럼 눈물과 설움의 쓰라린 시절을 지나온 우리의 가엾은 꽃분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날 앞 못 보는 동생 순희를 데리고 혁명군 오라버니와 함께 떠나간 꽃분이는 지금쯤 그 어느 하늘 아래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꽃분이의 행적을 찾아보고자 했다.
꽃분이의 현재 나이는 35세, 본명은 홍명희이다. 그리고 그녀는 과연 그 오라버니가 이상에 그리며 투쟁해 온 다시는 지주가 없고 자본가가 없으며 외세가 없는 조선인민공화국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국제 도시 평양에 살고 있었다. 영화 《꽃파는 처녀》의 주인공 홍영희 씨. 그녀는 시대에 앞서지도 쳐지지도 않는 다만 자신을 위한 자신에게 어울리는 그런 단아한 양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대체 화장을 한 듯 만 듯한 그 엷은 화장이 그녀로 하여금 더욱더 청순한 감을 갖게 했다. 실은 태반의 북한 여성들이 다 그렇다. 그녀들의 그 엷디 엷은 화장, 어쩜 어딘가 아직 화장법이 손에 붙지 않은 서툰 솜씨 같은 그네들의 화장법. 그런데 그것이 조금도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미를 손상하는 것 같지 않고 그 때문에 때로는 오히려 그녀들이 더욱더 여성적인 향기를 물씬 풍겨오는 것 같은 그 신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최소한 나의 경우로 말하면 그녀들의 그 엷고 서툰 화장은 나에게 때로 마음의 안식마저도 느끼게 하고 오랜만에 내면 세계에 침잠하여 보다 본질적인 것만을 묵상해 볼 수 있는 그런 여유 있는 시간마저 그네들이 마련해주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것은 왜 일까. 거기에 자본가 상인들의 저 극성스럽고 교묘한 상술에 말려들어 날로 광란하는 듯한 우리네 사회 여성들의 난한 화장법 그리고 옷차림에서 느껴야 하는 그 계속적이고 숨 가뿐 경쟁, 하황된 생각을 자극해옴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혼미, 피로케 하는 외관의 화려함, 허세 그런 것들을 볼 수 없기 때문인가. 그러고 보면 참 여성의 미를 가꾸는 데 있어서 값비싼 화장품이나 의상 따위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이 20세기에도 증명해 보여 주는 것이 저 북한 여성들이라 할까. 그러면 그 엷은 화장, 소박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그처럼 사랑스럽게 아름답게 비쳐지는 그 비밀스런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의 인민배우 홍영희에게서 나는 그 신비한 이유를 다시금 감지해 본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스타, 그녀는 한 사람의 이름 없는 해외 동포 내 앞에서도 그처럼 수줍어하고 겸손해 했다. 그 겸양과 다소곳함은 진정 저 아침 안개 속 호숫가에 피어난 한떨기 수선화를 보는 듯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그것이다. 그녀들 가슴속 깊은 곳에 옥구술처럼 소중히 간직돼 있는 영혼의 순결함. 그 앞에는 그 어떤 세계적 유명 메이커 값진 향수도 주먹만한 보석 덩이도 힘없이 빛을 잃고 거세당하고 말리라.
북한의 영화 《꽃파는 처녀》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말하듯 그처럼 우리로 하여금 감동 속에 몰아넣고 흠뻑 눈물에 젖게 한 꽃분이 홍영희 씨, 그녀는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미인이었고 카메라를 잘 받을 수 있는 입체적인 외모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소녀티가 나는 적당히 오동통한 몸매에 오목조목 아기자기하게 빚은 듯한 그녀의 이목구비는 잠시 비비안리를 연상케도 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흙냄새 나는 우리 조선 여성의 전형이라 할 순박하고 정숙해 보이는 그런 인상이었다. 그녀가 국제적으로 그 명성을 떨친 영화 《꽃파는 처녀》의 여주인공으로 데뷰하고 오늘날 만천하가 그 이름을 외이는 《인민배우 홍영희》가 된 것은 실은 그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녀의 겸손한 표현을 빌리면 가문에 예술가란 없었고 부모님께선 다만 사무원을 하신 평범한 가정에 무남독녀 외딸로 태어났다. 그리고 저 양강도 촌구석의 《산골내기》였다고. 무척이나 음악을 좋아하던 소녀였고 장래 대학 교수가 될 것을 꿈꾸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촬영소 배우들이 직접 나가 배우 모집을 위해 전국을 순회하던 중 양강도에 들리게 되었다. 그때 열일곱 소녀인 홍영희는 《유순하고 아련하면서 민족적 색채기 느껴지는 미인이다》라는 의견이 배우들간에 일치, 그녀가 픽업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래서 양강도 산 색시가 평양,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부설 기관인 배우 양성소로 오게 된다. 그리고 배우 양성소에 오자 곧 두 달만에 카메라 테스트가 벌어졌다. 그때 김정일은 테스트 필름을 보고 이렇게 평을 했다.
《순진하고 소박한 시골 처녀 맛이 난다. 연기 수준이 어리므로 어제부터 새 사람으로 키워내야 한다.》라고.
그후 홍명희의 연기 수업은 주로 박학 선생께서 맡아 지도해 주셨고 그외에도 문예봉, 김선영, 남궁연 씨 같은 대선배님들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홍영희는 대작 《꽃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역을 맡게 되었다. 17세의 어린 나이로 카메라 앞에 처음 서보는 그녀에게 꽃분이의 역할을 해낸다는 것은 참으로 힘에 겨운 벅찬 작업이었다. 짚신을 처음 보았기에 거꾸로 신고 카메라 앞에 나와 촬영진들을 웃기는가 하면 짚신을 당겨 신을 줄 몰라 철철 끌고 다니는 것을 보고 김정일은 《짚신 신는 법 가르쳐 주라》하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에 입은 의상이 가난에 찌들은 꽃분이의 옷으론 너무 깨끗하고 고우니 무명의 허술한 옷으로 바꿔 입으라는 지시가 또 내려왔다. 화장이 지워질까 두려워 냇가에서 땀을 씻는 장면에서 슬쩍 넘어가려다 꾸지람을 듣고 나물캐는 법까지도 세밀하게 일일히 지도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만큼 애를 먹고 힘들었던 장면은 동생 순희가 제딴엔 어머니 약값을 마련한다고 장마당에 나아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격분해 하는 자존심 강한 언니 꽃분이의 역할이었다. 동생을 끌어다 세워 놓고 《우린 거지가 아니란 말이야!》하면서 동생을 붙들고 퍼붓는 눈물은 다만 슬픔의 표현만이 아니고 그것은 곧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격한 반항이요 피끓는 울분으로써 터져나야 하는데 그것이 아무리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잘되지 않았다. 그리고 해도 해도 되지 않으니 꽃분이는 점점 더 카메라 앞에 겁에 질리고 전신이 꽁꽁 얼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장면은 결국 15번이나 툇자를 맞고 되풀이한 후에야 비로소 통과되었다. 그녀는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지금도 자기 작품이 관중에게 기쁨을 안겨 주고 연기가 제딴에 마음에 들때 그리고 관중과 호흡이 맞을 땐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슴속 열망은 뜨거운데 아무리 애를 쓰고 해도 해도 안될 때 그런땐 정말 《죽여줍니다》 호호.》
그녀는 꽃처럼 곱게 웃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열심히 받아적고 있던 나는 잠시 놀랐다. 그녀의 《죽여줍니다》하는 표현, 그것은 우리 남한 젊은이들 사이에 흔히 오가는 속어적 그런 표현이 아닌가! 그런 술어를 여기 평양에서도 듣게 되다니,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이 같은 사소한 일을 통해서도 무언가 남과 북의 혈연적 동질감 혹은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무한이 기쁘고 반가웠다.
《꽃파는 처녀》는 세상에 나오자 대파문을 일으켰다. 1972년 체코 까르로비바리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인 특별상이 수여되었고 그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어느 나라에서도 최우수 작품으로서 뜨거운 박수갈채와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꽃파는 처녀》는 그후 18년이 지난 지금에 있어서도 세계 어디에서다 불후의 명작으로 남는다.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그 서정적 배경 음악과 함께. 그리고 꽃분이는 18세 어린 나이에 공훈배우가 되었고 당의 배려에 의해 4년제 평양영화대학에 진학을 하게 된다.
《대학 시절이 가장 재미있었던것 같습니다. 동무들과 함께 밤새워 공부 논쟁하고 백두산에 실습 다니고 그리고 세익스피어 같은 고전 작품으로 연극도 했지요. 그땐 하늘에 별이라도 딸 듯 포부가 컸지요. 선생님들께 사랑, 귀염도 많이 받고요. 대학 시적이 다시 한 번 돌아왔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명절 같은 때 동창들 만나면 가장 즐겁지요.》
누구에게나 싱르거운 푸른 계절 청춘은 아름다운 것. 이제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 볼까.
《우리 세대주《남편》는 음악가입니다. 사회안전부 극장 지휘자입니다. 그리고 우린 결혼을 늦게 했습니다. 제가 처녀 때 일 좀 많이 해야겠다 하여 늦추었지요. 5년 동안 연애하면서 그이 동무들한테 수태 놀림 받았죠. 홍영희 기다리느라고 30이 넘도록 장가도 못간다고요. 제가 29살 그이가 33세에 결혼했으니까요. 우린 원래 고향에서 앞뒷집에 살던 친구였지요. 어렸을땐 몰랐는데 평양에서 대학 때 우연히 만났는데 무척 반갑더군요. 열정적으로 절 따라다니는 사람 너무 많았지만 . 첫때 음악 세계가 흥미 있었고 날 끔찍히 사랑하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만나면 별로 표현이 없는 게 약이 오를 때가 많았지만 아무리 단 둘이 있어도 절대로 흐지부지한 게 없고 무례하게 놀지 않고 그래서 아주 신사답고 멋쟁이 같이 느껴졌지요. 그리고 둘이 머젓이 다닌 건 정식 약혼식을 올린 후에 일입니다. 난 뭐 괜찮은데 같이 나가면 《야! 홍영이다.》사방에서 그러는 것 싫다구 해서 그냥 만나면 주로 집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죠. 아기들은 5살, 2살 아들만 둘인데 시모님이 잘 돌봐주시고 또 주탁아소에 맡기면 집에서 키우는 것보다도 더 잘 교양해 주고 영양도 딱 과학적으로 너무 잘해 주어서 아이들 때문에 일에 지장 받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하여는 그처럼 겸손했지만 조국, 북한의 작품에 대하여는 최상의 긍지를 지니고 있는 듯 했다.
《우리도 흥행 목적으로 사랑 영화 따위 만들자면 오히려 수월하고 얼마든지 번듯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다운 인간학에 의거해서 생활을 건실하게 그리기 때문에 세계 누구도 공감할 수 있고 그렇게 때문에 우리 영화가 세계로부터 찬사를 받습니다. 우리 영화가 우수하다는 건 해외에 나가 보면 더욱 확신하게 되지요. 작년에 수련영화제에서도 구라파의 이태리, 프랑스 등 상영 중 중간에 모두 나가버렸는데 우리나라 영화 때는 한 사람도 안나가고 절찬 절찬이었습니다.》
그녀의 대표 작품으로는 먼저 《꽃파는 처녀》로 시작해서 《14번째 겨울》, 《첫 무장대오에서 있은 이야기》, 《우리는 묘향산에서 다시 만난다》, 《은비녀》, 《월미도》, 《심장에 남는 사람들》 등을 들 수 있으리라. 그녀는 이제 이렇게 자신의 결의를 다진다.
《양강도의 촌뜨기를 오늘날의 인민배우 홍영희가 될 수 있도록 키어 주신 데는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의 고귀한 은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의 기대에 보답키 위해 영화에 평생을 몸바쳐 일할 결심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더 해서 후대 교육 사업에도 헌신하고저 합니다.》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조선인민공화국 화폐에 꽃분이로 분장한 그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던 것 말이다. 우리는 급히 돈을 구해 왔다. 그리고 어느 편의 제안이었는지는 기억이 없으나 아무튼 그녀가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는 화폐 위에다 싸인을 해주었다. 나는 그녀의 싸인을 보고서 또 한 번 놀랐다. 이것이 대스타의 싸인이란 말인가. 그것은 어느 착실한 여학생의 공책에서나 몰 수 있는 그렇게 또박또박 적어 넣은 너무나 얌전하고 예쁜 글자일 뿐이었다. 나는 문득 우리네 스타들의 싸인이 떠올랐다.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기 힘든 싸인일수록 거기에 무슨 권위라던가 멋 같은 것이 깃들기나 하는 양 그 무슨 요상한 암호인지 기호인지 혹은 낙서인지 규명하기 어려울 만치 개발개발 그 요란법석한 싸인들 말이다. 우리는 접견을 마친 뒤 내 남편과 더불어 저녁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
그러고나니 날이 어두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에게 택시를 잡아 주겠다고 아무리 권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끝내 사절을 하고는 어둠속을 총총히 사라져 갔다.
《다음엔 꼭 저희 집에서 모시고 싶습니다.》하는 진정어린 호의에 말을 남기고 .

해마다 봄이 오면 살과 들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여나건만
나라 잃고 봄도 없는 우리들에겐
언제 가면 가슴속에 꽃이 피려나
눈서리와 찬바람이 사납다 해도
봄과 함께 피는 꽃이 어이 막으랴
은혜로은 태양이 빛을 뿌리니
혁명의 붉은 꽃이 만발해 가네.

《가극 《꽃파는 처녀》중에서 《혁명의 꽃씨앗을 뿌려간다네》》

나는 슈베르트의 라이다를 사랑하지만 또한 그토록 서정적이며 애절한 꽃분이의 노래를 사랑한다. 꽃분이와 더불어 눈물을 흘리면서 .

........................................
1992년 2월5일 <내가 만난 북녘사람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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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홍영희씨가 영화배우로 데뷔하기전에 노동자였다는거 다알고있다! 그런데 반공보수단체에서 홍영희가 김정일의 성노리개가 됬다는등 말도안되는 찌라시보도로 북한언론을 화나게 만들고있다! 김정일의 부도덕한 성생활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적문란한생활에 비하면 굉장히 나은축에 속한다! 하지만 어쩌겠냐 그게 그건데....@!!!!!!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홍영희씨의 외모는 비록 우리나라의 중견미녀여배우들과 비교하면 평범한외모에 속하지만 그래도 수더분하고 소박해보여서 좋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홍영희 고 오미란 김정화는 1970년대~1980년대를 대표한 북녘의 트로이카 여배우들로 고 오미란을 동영상으로 봤지만 실제로 그렇게 예쁜편은 아니었다~!!!! 다만 눈매가 크고 또렷해서 미인이라고 불러줬을뿐 약간 중성적인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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