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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멈추지 않는 죽음의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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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1-04-27 21:04 조회2,9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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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던 봄꽃이 소리 없이 지고 있다. 화사함으로 만개했던 꽃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으며 그 자태를 드러냈지만 소리 없이 지는 꽃은 그저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실려 갈 뿐 자취조차 남기지 않는다.

이땅의 주인으로, 가장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있어야 할, 아니 노동 속에 희망을 제작해야 할 30~40대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도, 파업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노동자들, 투쟁이 두렵게만 느껴져 집회와 시위에도 참석해 보지 못하고, 자본과 권력, 왜곡 된 언론에 주눅든 노동자들이 이름도 떳떳하게 남기지 못한채, 이모씨, 김모씨, 임모씨로 불리며 세상을 떠나가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작 되기 직전 부터 지난 2년간 그렇게 세상을 등진 노동자들의 숫자는 벌써 14명에 이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죽음에 별 관심을 돌리지 않는다. 물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나, 노동계, 일부 종교인들과 진보단체의 활동가와 회원들, 일부 시민들이 죽음을 애석해 하고 안타까워 할 뿐이다.

정치인들의 조문 행렬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은 원혼들이 남긴 뜻을 진정 이해 하려 하지 않는다. 자본과 권력의 재단에 바쳐진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막아 나서려 하지 않는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 이창근 기획실장은 "정치인들은 노동자들의 관 뚜겅을 타고 앉아 복지를 말한다"며 정치인들의 조문 진정성에 대한 일갈은 차라리 절규요, 함성이다.

지난27일 오후 7시30분 우리함께 2층 대강당에서 인권연대(대펴 오창익)에서 개최 한 제85차 수요대화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파업 후 2년을 재조명하는 자리로 만들어졌다.
이날 강사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이 맡아 진행했다, 이실장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현실뿐아니라 오늘 한국사회에서 인간이기를 거부 당하고 초보적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노동자들의 아픈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이찬근 실장은 대기업 취업에 대한 축하의 후레지아 꽃다발을 받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휴식을 미룬 잔업과 특근으로 삶의 희망을 키웠던 시절부터, 어느날 2,646명이 살인으로 대변 되는 정리해고를 당하는 과정, 그리고 재취업의 기회를 잃고 절망하다 급기야 한줌재로 국화꽃 한송이를 영정 앞에 받으며 삶을 마감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고통과 분노로 고발했다.

뿐만 아니라 학습지 교사들의 처우와 근로조건 개선등을 요구하며 20여일이 넘는 단식 투쟁에 나섰다가 병원으로 실려간 학습지교사 유명자 재능 지부장의 이야기, 지난1월 혹독한 추위 속에 고공 크레인 농성을 진행중인 한진중공업 김진숙 위원장의 투쟁 소식, 전주버스노조의 파업 현황을 짚으며 노동자들의 힘겨운 싸움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싸움은 그 정당성으로 하여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창근 실장은 2009년5월22일 시작해 77일간의 파업이 시작 된 후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왜? 죽음의 향불이 꺼지지 않는 것일까? 30대에서 40대 가장인 노동자들이 왜 죽어가는 것일까? 노동조합은 그분들의 죽음에 책임이 없을까 반문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요즈음 2009년과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면 다시 파업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는 명쾌한 답변을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파업이 죽음을 선택한 노동자들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니지만 노동조합 집행부의 책임있는 일꾼으로서 양심의 소리일 것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파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처음에 "함께살자"고 줄기차게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측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깡그리 무시하고, 거부하고, 짓밟았고, 한술 더떠 노동자에게는 살인인 정리해고를 발표해 결국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이 현실로 됐다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싸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의 이면에는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420만명의 노동자들이 있다고 말해 노동자들의 또 다른 죽음을 예견했다.

쌍용자동차가 부실은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니였음도 모든 책임은 노동자들이 져야 했다고 하소연 했다. 즉 쌍용자동차의 부실은 중국에 기술을 유출하고, 해외자본에 기업을 인수하는가 하면, 생산직 노동자들과 영업부 사원들을 대량 감축함으로써 생산과 판매에 차질을 가졌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실장은 구제역 기사를 인용하며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강력하게 부탁했다. 구제역 파동이 지난후 이천에서는 구제역에 걸린 소를 살처분하여 매립하였으나 너무 얇게 묻어 짐승들의 사체가 툭툭 불거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환경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전국의 구제역 실상을 알리는 것처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툭툭 튀어 나온 살처분 된 짐승의 무릎팍 처럼 한국사회 노동자들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안상수 대표의 좌파스님 발언의 주인공인 명진스님이 출판한 "스님의 사춘기"의 한 부분을 인용했다. "스님께서는 이 책의 화두로 "누가 나에게 스승은 누구이며, 무엇인가?"라고 묻는 다면 죽음이라고 답할 것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 말씀은 꼭 나에게 들려 주는 말씀인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아마 명진 스님이 말하고 이창근 실장이 받아들인 죽음은 개인의 죽음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최근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학생, 연예인 들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모순이 만든 타살적 의미를 내포 하고 있음은 아닐까? 그래서 그 죽음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해석해 본다.

지금 남한 사회 민중들의 삶은 죽음보다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채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리라.
자살을 강요하는 사회. 곧 이말은 사회가 자살을 하게 만든 다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자살은 사회적 타살임이 증명 되는 것이다. 왜 사회는 민중들을 죽이는 것일까? 엄밀하게 말해 정치권력을 가진자와 자본을 가진자들은 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가진자들의 탐욕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는 독자들의 양심의 문제이며 판단이라고 본다.

어제 4`27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이 한나라당의 아성이었던 분당을과, 강원도에서 승리했다. 전남 순천에서는 야권 단일후보였던 민주노동당이 승리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에 꽃다발을 주고 받으며 환영과 축제 분위기에 쌓여 있다.
물론 민심의 결과이니 기뻐 할 일이다 그러나 민중들에게 진정한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민중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위해 법을 재`개정하고, 지원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당선자들에게 걸리는 향기나는 백개의 꽃목걸이보다, 천개의 꽃다발 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관위에 놓이는 한송이 국화를 없애는 것이다.

입학과 입사를 축하하여 가슴에 안기는 후레지아, 장미꽃 꽃다발이 다시는 관위에 올려지는 국화송이가 되지 않는 그날을, 구조악에 희생된 영령들과 함께 기자도 꿈꾸어본다.





이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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