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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G20서 시진핑 <싸드>설득은 박근혜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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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09-02 10:54 조회3,57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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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시보 중국논평원의 글은 "G20에 대해 한국 언론들의 초점은 회의 자체보다도 중국과의 정상회담이 이뤄지느냐 마느냐에 맞춰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만나서 사드배치에 대해 설명하여 진척을 보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이러저런 추측들이 나오는데, 단독회담이 성사되더라도, 회의 주인으로서 시진핑 주석이 이틀 동안에 예정된 일이 굉장히 많을 테니 시간은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2010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출처불명의 설계도를 펼쳐보이면서 원쟈바오 중국 총리에게 천안함을 조선(북한)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가 침몰시켰다고 설득하던 것처럼 긴 시간은 생기지 않을 것으로 예견하는 한편 싸드를 설명하는 박근혜에게도 별로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 같지 않다는 진단이다. 자주시보 9월1일자 보도를 원문 그대로 여기에 게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분석]G20에서 사드관련 시진핑 설득은 박근혜의 망상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6/09/01 [11: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 그리고 오바마, 사드 배치는 한미일 군사공조를 본격화하는 것으로 중국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언론보도들을 보면 G20회의가 개최국 중국에서보다도 한국에서 더 거들어진다는 느낌이다. G20하면 우선 생각나는 게 몇 해 전 G20회의가 한국에서 진행하게 되니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이 예전 날의 변두리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되었다고 감격해하던 일이 떠오른다. 이제 와서 G20이 중국의 항저우시에서 열리니 항저우가 세계의 중심으로 되는가? 중국에서는 누구도 회의 한 번으로 중심을 운운하지 않는다.

 

G20에 대해 한국 언론들의 초점은 회의 자체보다도 중국과의 정상회담이 이뤄지느냐 마느냐에 맞춰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만나서 사드배치에 대해 설명하여 진척을 보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이러저런 추측들이 나오는데, 단독회담이 성사되더라도, 회의 주인으로서 시진핑 주석이 이틀 동안에 예정된 일이 굉장히 많을 테니 시간은 제한될 것이다. 통역시간을 빼면 실질적인 얘기를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적어도 2010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출처불명의 설계도를 펼쳐보이면서 원쟈바오 중국 총리에게 천안함을 조선(북한)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가 침몰시켰다고 설득하던 것처럼 긴 시간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G20에 대한 이명박식 호들갑이나 원쟈바오 총리를 설득하느라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원 총리가 소개를 들으면서 듣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음음 소리를 낸 걸 놓고 원 총리가 북한어뢰폭침설에 찬성한 것처럼 과대포장하여 호들갑을 떨던 것들이 중국에 널리 보도되었더라면 한류스타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한국의 이미지가 별로였으리라.
 
여러 해째 중국은 한국과 친하게 보내려고 한국의 좋은 점들을 많이 소개했지 정객들의 한심한 모습들을 많이 보도하지 않았다. 이점도 있지만 나쁜 후과도 있으니 사드의 한국배치 때문에 양국 관계가 급냉각 될 때 얼마 전까지 좋은 면만 알려지던 한국 대통령이 왜 저런 결정을 내렸느냐고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워낙은 한국의 정쟁을 충분히 소개해야 형평성이 맞는데 중국식 언론통제가 스스로 허점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난 주 어느 날, 필자는 병원에 가서 한동안 기다리게 될 일이 생겨 가끔 병원에서 보는 한족 아주머니와 한담했다. 필자가 조선족임을 아는 그 아주머니는 말말 간에 갑자기 왜 박근혜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고, 또 어쩌면 여동생, 남동생가 사이가 그렇게 나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얘기를 꺼냈다. 한국언론들과 사이트들에서 현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면들이 많이 언급되어 조선족들은 형편을 비교적 잘 아는데 비해, 한족들은 한국의 정객들과 정쟁에 대해 잘 모른다. 사드배치결정선포 직후에 중국의 어느 네티즌이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켜 “츠메이싼무(慈眉善目)”라는 표현을 썼기에 필자는 한참 웃었다. 그대로 옮기면 “자애로운 눈섭, 착한 눈”인데, “인자하고 선량한 눈매”라면 비슷할 것이다. 그 네티즌은 착한 모습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왜 저렇게 변했느냐고 약간 안타까워하는 뜻을 내비쳤는데, 한국인들 가운데는 박근혜 대통령을 인자하거나 선량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몇이 될까? 경상도의 일부 사람들이 불상하게 여겨서 대선에서 몰표를 주었다는 말은 있어도.

 

그날 필자는 그 아주머니에게 한국 대통령과 정계에 대해 어느 정도 소개를 한 다음, 두 나라 정상들의 안목을 비교했다. 지루하게 기다려야 할 시간 때문에 얘기를 에돌아 시작했다.

 

2~3년 전에 시진핑 체제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점에서 중국의 《광밍(光明, 광명)일보》가 오키나와(冲绳, 중국어발음은 충썽)의 독립문제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글을 발표했다. 민간학자의 견해였고 《광명일보》는 워낙 민주당파의 신문으로서 공산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지만, 일본의 반향은 격렬했다. 전날에 중국 정부와 민간인들이 댜오위다오(钓鱼岛)문제를 놓고 그렇게 항의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일본이 정부와 각 계가 나서서 절대 안되는 소리라고 떠들었다. 왜 그랬는가? 쉽게 말하면 지금 오키나와라고 부르고 옛날엔 유쿠 왕국이 섰던 고장이 독립하는 경우, 댜오위다오는 아예 문제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댜오위다오는 타이완과 오키나와 사이에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일단 유쿠가 독립하여 중립을 지키면 미국이 주도, 일본 참여 수십 년째 중국의 해양진출을 막아온 제1섬사슬(第一岛链)도 끊어지고 만다. 요즘 환츄왕(环球网, 한국에서 꽤나 알려진 《환구시보》의 사이트)에서 펑웨(冯越)라는 유쿠의 지위는 확정되지 않았으니 “冲绳(충썽, 오키나와)”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주장을 내놓고, 그에 대한 인터넷상 토론도 벌리는데, 그 쟁론이 쉽게 그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 오키나와의 인구구성이나 경제구조, 미군기지의 존재 등 여건으로 놓고 볼 때 당장 독립이나 중립유지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외국세력들이 걸핏하면 중국의 어느 지방을 걸고 들어 “독립”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중국의 그런 조치는 합리성과 효과성을 지닌다.

 

그러면 왜 유쿠 말만 꺼내도 일본이 펄쩍 뛰는가? 역사를 돌이켜보면 보다 잘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이 유쿠공정이라는 걸 만들어서 영토야심을 내비친다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명나라, 청나라가 유쿠왕국과 조공관계는 맺었어도 영토를 차지할 야심은 갖지 않았으므로 그런 주장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유쿠라는 말을 꺼내기만 하면 펄쩍 뛰는 일본을 이해하려면 일본의 팽창역사를 훑어보아야 한다.

 

일본은 1860년대의 메이지유신으로 국가체제를 바꾸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뒤 곧 대외팽창으로 나아갔다. 첫 목표가 1879년에 먹어버린 유쿠왕국이었다. 10여 년 지나 갑오전쟁(청일전쟁)을 거쳐 1895년에 타이완을 청나라에서 떼어냈다. 또 10년 쯤 지나 러일전쟁을 거쳐 중국의 뤼쑨에 교두보를 확보했고 중국 동북땅에서 많은 이권을 차지했다. 그 전에 담판을 통해 경계를 나눴던 북방에서 더 북상하여 사할린의 일부도 차지했으니 1905년의 일이다. 또 몇 해 지나 조선을 삼켜버렸다. 그 후 20년 쯤 지나 1931년에는 9·18사변을 일으켜 신속히 중국 동북을 차지하여 괴뢰만주국을 세움으로써 본토 영토의 4배 남짓한 면적을 실효지배하게 되었다. 그 뒤 서쪽으로 자꾸 밀어붙이기를 하여 허베이(河北)와 네이벙구(内蒙古)쪽으로 군대들을 내밀어 주둔시켰다가 1937년에는 7·7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전면침공하는 전쟁을 일으켰다. 길지 않은 시간에 수백 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을 빼앗았으나 잘 알다시피 전면항쟁에 부딪쳤고 중국공산당이 적후로 진출하여 100만 평방킬로미터의 적후근거지를 확보했다. 1941년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발동하여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의 나라들을 상당수 점령하였다. 여기까지가 근 70년 이어진 일본의 대외팽창역사다.

 

그런데 1945년의 패전으로 일본은 먹은 지 고작 몇 해 되는 남방의 나라들을 게울 수밖에 없었고, 미처 소화하지 못했던 중국의 본토에서 철저히 물러났으며, 1여 년 동안 노예화교육에 상당히 성공했던 중국 동북에서도 쫓겨났다. 36년 통치했던 조선에서도 물러났고 북방에서 사할린을 완전히 잃은 다음 전날 통치하던 섬들도 소련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50년 차지했던 타이완에서도 물러났다. 66년 차지했던 유쿠- 오키나와에서도 밀려났는데 1970년대 초반에 오키나와를 차지했던 미군이 일본에 넘겨주면서 다시 지배하게 되었으나, 지금까지도 그 고장이 일본에서는 지위가 특수하다.

 

워낙 1943년 카이로 회의에서 전후 문제를 토의하면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가 중국의 최고지도자 쟝제스(蒋介石, 장개석)에게 유쿠를 중국에 넘겨 관리한다는 제의를 했는데, 일본을 두려워해온 쟝제스가 사절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일부 유쿠사람들이 타이완에 가서 사정했으나 역시 쟝제스는 거절했다. 유쿠 왕국의 주민들 가운데 푸젠(福建 복건)성에서 간 사람들의 후예들이 많은 건 역사기록이 있고 문화도 푸젠 쪽과 가까운 면이 많은데, 중국에 친근감, 유대감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중국의 반일, 항일 역사에는 일본을 반대하여 중국인들을 도와준 유쿠인들이 적잖이 등장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유쿠 무술인 가라데(唐手, 空手)가 오랫동안 부정적인 형상으로 나타났고, 영화에서도 가라데인들이 악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일본에서 1960년대에 찍었고 중국에서 1980년대 초반에 상영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TV드라마 《스가다 산시로(姿三四郎)》에서도 유도 창시자를 모델로 한 주인공의 주요 적수는 가라데인이었다. 뒷날 어쩌다나니 가라데의 지위가 변했을 따름이다.

 

만에 하나 오키나와가 유쿠로 회복되든지 일정한 독립성을 띈다면 일본은 1879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꼴이다. 100여 년 헛걸음을 한 셈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후에 반공이라는 서방의 최대수요에 편승하다나니 전쟁 전에 편입될 기회가 없었던 서방경제체계에 들어가게 되었고, 국민의 에너지를 경제발전과 제품개발에 투입해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룩했다. 그런데 냉전이 종식되고 반공이라는 서방의 공통한 목표가 사라짐과 때를 거의 같이 하여 일본은 거품경제가 파괴되면서 상대적인 침체상태에 빠진 뒤 지금껏 경제적으로 큰 빛을 내지 못했다. 게다가 서방의 경제구조자체가 삐꺽거리면서 문제점들을 연달아 드러내는 판에다가 오랫동안 만만하게 보던 중국이 무섭게 성장한다. 지은 죄가 있는 일본으로서는 켕기지 않을 수 없는데, 아베는 일본 우익들의 심리를 대표해서 의도적으로 중국을 겨냥하여 갖은 방식으로 억누르려는 활동을 벌인다.(참고로 최근에 아베가 중국 견제 목적으로 아프리카에 대규모 경제협조라는 카드를 내밀었는데, 케니아 대통령이 발언에서 일본을 중국으로 말하는 바람에 아베가 무척 불편해했다. 중국은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에 무상원조과 경제협조, 정치지지를 포함하여 많은 품을 들여왔고 정책이 일관적이며 내정불간섭을 원칙으로 삼아왔기에, 중국의 이미지는 상당히 확고하고, 일본이 급작스런 투자로 중국을 견제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일본이 정말 돈을 아프리카에 넣는 경우 결과적으로는 아프리카의 경제에 도움이 되므로 중국이 반대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일본이 팽창역사에서 차지했던 곳들을 보면, 동남아와 태평양의 나라들은 재점령 가능성이 없고, 북방의 섬들이나 사할린은 러시아가 지배하는데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땅은 넓으나 한 치도 남아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시피 쉽사리 내줄 리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확실히 다스리는 넓은 영토 토한 일본이 다시 점령할 가능성은 영에 가깝다. 타이완이 요즘 새 “총통”이라는 여자가 올라간 후 이른바 “탈중국”조치를 취하면서 지랄 떨고 있지만 중국인민해방군은 예전부터 타이완 군대 말이 나오면 씩 웃곤 했다. 군사적으로 점령하기는 너무 쉬운데 단 대가가 좀 크고 후유증이 심할까봐 무력사용을 자제하는 상황인 것이다.

 

역사와 현실 원인 때문에 미국보다도 일본을 더 경계하는 중국으로서는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팽창을 막기 위해 오랜 세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한국과 친하게 보낸 것도 그런 이유가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 일본군 장교의 후예인 박근혜 대통령을 항일전쟁승리기념 열병식에 초청하여 높은 대우를 한 것도 당연히 한국이 일본과 거리를 두기 바라서이다. 그런데 한국은 금년 초 조선의 핵실험과 위성(장거리미사일)발사를 전후하여 중국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박근혜라는 인물의 성격특징은 일단 누군가를 미워하면 오랫동안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이다. 조선의 핵시험 후 시진핑 주석과 곧 통화하지 못했고 후에 통화내용도 시원치 않았다는 게 원인으로 되었다는데, 중국이 조선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건 뻔하지 않은가.(여기까지 얘기했을 때 그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2월 초부터 한국언론들의 중국관련보도 색깔이 변하더니 이제 와서는 나쁜 소리가 대다수다. 10년 쯤 전에만 해도 댜오위다오 문제로 중국과 일본이 쟁론하면 한국인들이 댜오위다오는 중국 것, 독도는 한국 것하면서 중국을 지지했는데, 이명박정권이 나올 때부터 슬슬 변하더니 이제 와서는 한국언론들이 거의 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라고 표기한다. 변덕스런 정객들도 웃기지만 정부의 눈치를 보는 언론들도 한심하다.

 

이 나라 저 나라들을 돌면서 조선봉쇄에 전력을 기울이던 박근혜가 결국 사드배치라는 결정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망쳤는데, 중국이 그처럼 강력히 반발하는 건 사드자체만이 아니라 시진핑 주석의 큰 체스게임(大棋局)을 박근혜와 한국정부의 무모한 결정이 방해 내지 파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와 국방부는 책임지지 못할 소리들을 연발하는데, 예컨대 국방부는 사드를 배치한 다음 일본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미군이 운영하는 사드의 정보를 누구와 공유하는지 한국군이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그따위 소리를 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과도 공유할 수 있음을 고백했다. 사드배치는 결국 미국, 일본, 한국 군사동맹을 만드는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70여 년 전에 물러났던 지역에  다시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100여 년 전의 꿈을 되살리는 기회로 되게 마련이다. 미국의 쇠퇴를 예견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접근과 결합은 너무나도 큰 위험성을 내포한다. 나는 내가 이처럼 위험한 국제정세의 변화를 직접 보고 느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박근혜의 안목이 너무나도 낮아서 문제를 만든 것이다....
 
대기시간이 다 되어 얘기는 여기서 끝났고 필자는 하고 싶은 말을 채 하지 못했다. 여기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쓰려면 끝이 없을 것이므로 가뜩이나 길어진 글을 더 이어나가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 세계에는 국제 판도를 바꾸려고 마음 먹고 추진해가는 지도자들이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이후에 기회가 있으면 구체적으로 다룰까 한다. 여기서는 단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나도 좁은 세상에 갇히어 높이 서지도 멀리 내다보지도 못해 악수를 거듭 둔다는 걸 지적해야겠다. 지도자의 능력은 원고 없는 대화에서 남김없이 드러나는데, 시진핑 주석은 문화예술인들과 담화하면 작가들도 미처 보지 못한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군인들과 얘기하면 첨단기술과 고도의 전략전술을 말하며 기업에 가서는 지난날의 그릇된 방침을 바꿔야 할 이유와 방식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한다. 수첩이나 보고 암기력을 자랑하는 수준으로는 시진핑 주석과 대등한 대화를 진행하기가 어렵다. 정치가들이란 적대적인 관계라도 웃으며 사진 찍는 게 관례라 괜찮은 사진 몇 장은 만들어 낼 수 있겠다만, 사드배치합리성 설득이란 일찌감치 꿈 깨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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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KimChaek님의 댓글

KimChaek 작성일

씨알도 안 먹힐 계수작이나 하는 수준인줄 온 세상이 다 안다.
닥대가리의 존재 자체가 국가적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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