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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외무성 대변인, 일본+EU제출 결의안은 사기협잡 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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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5-11-22 14:13 조회4,02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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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외무성 대변인 21일 담화문을 통해 "미국의 조종하에 EU와 일본이 작성하여 제출한 《결의안》이라는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허위와 사기협잡, 악의에 찬 비방중상으로 일관되여있다"고 지적하고 "미국과 서방의 조종하에 유엔이 반공화국모략무대로 롱락당하고있는 조건에서 우리는 그에 맞는 해당 조치들을 강구해나가게 될것이다.  적대세력들은 제아무리 반공화국《인권》모략과 음모책동에 발악적으로 매여달린다 하여도 얻을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천명했다. 담화문을 원문 그대로 여기에 게재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담화

 

 

    유엔총회 제70차회의 3위원회에서 반공화국《인권결의안》이 강압채택되였다.


    미국의 조종하에 EU와 일본이 작성하여 제출한 《결의안》이라는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허위와 사기협잡, 악의에 찬 비방중상으로 일관되여있다.


    우리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집중적표현이며 인권의 정치화, 선택성, 이중기준의 전형적실례인 반공화국《인권결의안》을 우리에 대한 극단한 정치적도발문서로 단호히 전면배격한다.


    이번 《결의안》의 주발기국으로 나선 나라들의 위선적정체와 한심한 현행인권기록을 놓고 볼 때 그들은 남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하등의 체면이나 자격도 없다.


    세계최악의 인권불모지이며 인권유린의 왕초인 미국과 피난민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학대행위를 일삼고있는 EU 그리고 잔악무도한 과거반인륜범죄에 대하여 인정도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고있는 일본과 같은 나라들부터 피고석에 끌어내야 할것이다.


    이러한 세력들이 반공화국《결의안》의 기초로 삼은 이른바 《자료》라는것들은 자기 조국과 혈육들앞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짓고 달아난 《탈북자》와 같은 인간추물들이 제공한 허황하기 그지없는 거짓말들로서 그 진상은 이미 온 세상에 거듭 명명백백히 드러났다.


    남을 헐뜯기전에 먼저 현실을 제눈으로 보기부터 해야 할것이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어중이떠중이들의 허튼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많은 나라 사람들이 찬탄하고 동경하는 우리의 우월한 인권보장제도와 인민중시, 인민사랑의 시책이 펼쳐지고있는 우리의 인권실상을 직접 와서 보라고 EU인권담당 전권대표와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을 비롯한 관계인물들을 초청하였고 인권분야에서 진정한 대화와 협력을 하자는 의지와 아량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납득될수 없는 정치적리유와 그 어떤 외부적요인을 구실로 우리 나라 방문을 취소해놓고는 적대세력들과 공모하여 반공화국《결의안》을 또다시 들고다닌 EU의 태도는 《인권옹호자》로 자처하는 그들의 진짜 속심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번 《결의안》강압채택놀음은 우리 제도전복을 노린 미국 등 적대세력들의 끈질긴 《인권》모략책동의 본질과 부당성을 다시금 적라라하게 보여주었으며 미국과 서방에 얽매여 공정성과 중립성의 원칙을 다 줴버린 유엔인권기구들의 무맥한 진면모만을 더욱 드러내놓았다.


    우리는 인권분야에서의 진정한 대화와 협력을 바라지만 불순한 정치적목적달성을 위해 우리의 성의와 협력의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우리를 압박하려드는데 대해서는 절대로 용납할수 없다.


    정치적혼란과 류혈의 란장판으로 변한 중동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의 비극적인 사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구실로 감행되는 내정간섭을 허용한 대가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잘 말해주고있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현실은 인권이자 국권이며 우리 식 사회주의제도를 전복하려는 그 어떤 모략책동에도 강경대응해나가는 우리의 립장이 천백번 정당하다는것을 웅변으로 실증해주고있다.


    미국과 서방의 조종하에 유엔이 반공화국모략무대로 롱락당하고있는 조건에서 우리는 그에 맞는 해당 조치들을 강구해나가게 될것이다.


    적대세력들은 제아무리 반공화국《인권》모략과 음모책동에 발악적으로 매여달린다 하여도 얻을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주체104(2015)년 11월 21일
    평 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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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국님의 댓글

이영국 작성일

김정일 경호원서 요덕수용소로-이영국

북한에서 오직 한 사람 빼고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리를 보장받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

“나는 김정일 경호원이었다”는 제목의 책을 쓴 탈북자 이영국 씨가 북한의 그런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는데요. 오늘은 북한에서 어떤 사람이 정치범수용소라 알려진 관리소에 가는 지  알아봅니다.

탈북자 이영국 씨는 함경북도 무산에서 태어나 노동당 조직지도부 5과 대상으로 선발돼 입대 후 당중앙위원회 호위부 6처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경호원으로 만 10년 근무합니다. 그리고 제대 후 무산군 당위원회 지도원으로 일하다 탈북합니다.

이영국: 사람들은 잘 이해 못 하죠 제가 경호원 10년하고 사회교육을 많이 받고 나왔어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일본 사람이 짓은 집이 그냥 그대로고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경호원들은 마을 사람들이 사는 그런 곳에서 사는 것은 아니거든요. 좋은 곳만 가보다 보니까 잘 몰랐어요. 그때 극동방송, KBS 사회교육방송 라디오를 듣게 됐어요. 나는 당일군이라 주파수 고정을 하지 않은 라디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파장을 맞추다가 이상한 남한 말이 나와서 계속 듣다보니까 제가 경호할 때 알게 된 것과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요. 이불 밑에 들어가서 집사람도 모르게 들었어요. 그때 또 무산에 중국 텔레비전 방송이 잡혔는데 중국에서 하는 샴푸 선전을 봤어요. 여자가 머리를 감는데 상의를 반쯤 벗고 나오는 데 신기하더라고요. 놀랐죠. 그리고 중국에는 고기가 넘쳐나서 안 먹고 길에서 손들면 택시가 멈춰 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당시 난 택시를 몰랐죠. 그런 말을 들으면서 중국에 한 번 가보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은 조선족 친구 분이 집에 나왔다가 단속이 됐어요. 제가 힘이 있으니까 도와줬거든요. 그것이 1994년이죠.

김 위원장의 경호원으로 사회와 완전 격리된 생활을 하다가 고향마을로 돌아간 이 씨에 눈에 보이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남한 방송과 중국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점점 이 씨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는데요. 그러던 차에 알게 된 조선족은 이 씨에게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이영국: 그 양반이 내가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날 계속 찾아왔어요. 하루는 나를 찾아와서 중국을 보지 않겠는가? 연길에 초청을 한데요. 그런데 하나 조건이 있었어요. 두만강 연선  2km를 비워달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기로 하고 94년 10월 1일 중국 국경절인데 저녁 9-10시 사이에 내가 국경경비대 대대장에게 전화를 했어요. 무산의 수원지에 물 소독을 하니 다 나가달라 하고 다음날에 경비를 세워라 그렇게 했죠. 그리고 중국을 갔죠. 연길에 가니 눈이 번쩍하더라고요. 멋있다고 할까? 술도 먹고 했는데 날이 밝아 보니까 군대와 적위대가 많이 나와 있었어요. 물어보니까 나를 보내고 조선족이 밀수를 한 거예요. 나는 몰랐어요. 뒤통수를 맞은 거죠. 무섭기도 하고 그때 당부부장을 했는데 체면도 구기고 해서 못 넘어갔어요. 그리고 중국에서 이북 격술이랑 총 쏘기, 단도 던지기를 화룡 쪽 깊은 산에 들어가 한족하고 조선족에게 5개월 정도 배워줘서 중국 돈 8천원을 받아 연길로 나왔죠.

기자: 당시 직책이 뭐였나요?

이영국: 적위대 부부장이죠. 군사부 부부장이죠. 무산시 당위원회 군사부부장이죠.

북한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처지가 되었던 차에 이영국 씨는 그의 운명을 바꾸게 하는 또 한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 씨는 남한으로 망명을 하면 잘살 수 있다고 권유를 받았고 맘을 굳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가린 채 벤츠 차를 타게 됩니다.

이영국: 차를 내려서 2층 정도 올라갔는데 문을 열고 안대를 벗으니까 김일성하고 김정일 사진이 있는 거예요. 싸움을 하다가 묶였어요. 다음 날 국가보위부 1부부장인가 왔는데 한 이틀 대사관에 있다가 몸에다 깁스를 하고 모르핀 주사를 맞고 수면제를 술에 풀어서 큰 컵으로 해서 먹이더라고요. 눈이 감기면서 정신을 못 차렸어요. 고려항공 제일 앞자리에 태워서 북한으로 왔어요. 연못동에 있는 국가보위부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한 10시간 깨질 못했어요. 죄수복을 입고 혼자 있는데 약기운에 정신을 못 차렸는데 며칠 있다가 총살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영국 씨가 간 곳은 남한대사관이 아닌 중국주재 북한 대사관이었습니다. 이 씨는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편으로 평양에 호송돼 국가보위부 예심국에서 조사를 받습니다.

이영국: 앞이 캄캄하고 맥을 놓고 있었는데 한주일 지났는데 간부 담화를 한다는 거예요. 그때 중국에 나를 데리러 왔던 그 국가안전보위부장인데 군복을 입고 거기 있더라고요. 왕별을 세 개 달고 있었는데 하는 말이 “ 야, 네가 뭐가 부족해서 남조선에 가냐? 김정일 동지의 배려를 받고 경호원하고 대학도 나오고 직업도 당부부장이고 한데 뭣 때문에 남조선가냐?”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너를 잡아오느라고 남조선 녀석에게 25만 달러를 줬어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죠.

얼핏 보면 조선족에게 속아 국경을 넘었고 중국에서는 또 다른 사람에게 속아서 북송이 된 처지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 이 씨가 10년간 김 위원장 곁에 있던 생활을 천국에 비유한다면 수용소의 생활은 지옥이었다고 이 씨는 고백합니다.

이영국: 북한에서 정치범이란 말은 있어요. 그런데 수용소란 말은 나도 못 들었어요. 그런데 정치범이란 말은 있어요. 자고 깨어나면 어느 집에서 밤에 차가 와서 다 데려갔다더라. 부모들이 다 교육을 해요. 말조심해야 한다고요. 그 사회자체가 공포심에서 살면서 정체를 모르는 거죠. 내가 경호를 하다가 김정일을 위해 햇수로 11년을 충성했는데 사회가 가보니까 모든 것이 거짓인 것을 알았죠. 그러니 북한이 지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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