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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타계... 세계 지도자들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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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3-23 12:43 조회3,57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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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타계... 세계 지도자들 애도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싱가포르가) 잘못돼 간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병상에서, 아니 무덤에서라도 일어날 것이다.”

현대 싱가포르를 만든 리콴유 전 총리는 후임자인 고촉통으로의 권력 이양을 2년 앞둔 1988년 독립기념일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싱가포르는 리 전 총리가 퇴임한 지 15년 동안 흔들림 없이 발전을 구가해왔고, 리 전 총리는 마침내 눈을 감았다. 서울보다 조금 더 크고 인구도 550만명밖에 안되는 싱가포르를 경제적으로 번영한 도시국가로 발전시켜 ‘국부(國父)’로 추앙받아온 리콴유 전 총리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싱가포르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리 전 총리가 오늘 오전 3시18분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리 전 총리는 지난달 5일 폐렴으로 입원한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왔다. 병세가 악화하자 싱가포르 국민은 리콴유의 선거구였던 탄종 파가르 지역 당국이 마련한 전시장에 그의 건강을 기원하는 기를 달고 서명, 메시지, 꽃 등을 전시하면서 그의 쾌유를 기원해 왔다.

■국민들, 세계 지도자들 ‘애도’

아들이자 3대 총리인 리셴룽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아버지의 타계를 전했으며, “위대한 인간, 위대한 위업. 그의 타계로 세상은 전보다 가난해졌다” “그는 세계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조국에 헌신했다”며 리 전 총리를 애도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발표해 애도를 전하고 가족과 싱가포르 국민과 정부에 위로를 표했다. 반 총장은 “올해 독립 50주년을 맞는 싱가포르의 국부인 그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감을 불러일으킨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놀라운 인물을 잃은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애도를 보낸다”며 “그는 역사의 거인이자 아시아의 위대한 전략가의 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했다. 리콴유의 후임이었던 고촉통 전 총리는 “이 슬픈 소식에 눈물이 샘 솟는다”며 “그는 나의 지도자이자 멘토였으며 내가 가장 존경한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토니 애벗 호주 총리는 성명을 내고 “그는 우리 지역(아시아·태평양)의 거인”이었다며 “그의 지도력 덕에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번영된 나라가 됐다”고 강조했다. 존 키 뉴질랜드 총리는 “그는 직관과 선견지명으로 유명했으나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싱가포르를 성공으로 이끌겠다는 불굴의 결의였다”고 밝혔다.

 
■31년간 총리 지낸 ‘싱가포르의 아버지’

리콴유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인 1959년부터 1990년까지 31년 간 총리를 지냈다. 현대 싱가포르는 ‘리콴유의, 리콴유에 의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유한 중국계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싱가포르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1950년대 초 싱가포르에서도 영국의 다른 식민지들처럼 헌법 개정 움직임이 감지되자 인민행동당(PAP)을 조직했고 1959년 6월 싱가포르 자치령 총리로 취임했다.

총리가 된 뒤 산업화, 적극적 대외 자본 유치, 수준 높은 교육정책 실시, 빈민가 철거, 국민주택건설, 여성해방, 교육확대 등에 주력했다. 인민행동당도 1968년 총선에서 모든 의석을 독점하는 등 재임 기간 굳건한 정치적 기반을 유지하며 힘을 실었다. 로이터통신은 “리콴유는 영국 식민지 시절 모기가 들끓는 늪에 불과했던 섬을 세계 경제 중심국으로 변화시켰다”고 분석했다.

리콴유의 국가전략은 시장에 기반을 둔 경제모델을 강력 추진하면서도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아시아적 발전모델’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웃한 말레이시아에서 장기집권했던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와 함께 리콴유는 ‘아시아 모델’의 대명사였다.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아시아적 발전모델은 허상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서구로부터 쏟아져 나왔으나, 리콴유는 싱가포르라는 성공사례를 발판으로 자신의 노선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지 않았다.

집권 12년차였던 1971년 6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IPI) 총회에서 했던 발언은 서구식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사생활 보장 등에 대한 그의 시각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는 “언론의 자유, 뉴스미디어의 자유는 싱가포르의 통합과 선출된 정부의 우선순위 아래에 종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1987년 4월 스트레이츠타임스 인터뷰에서는 “내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개입한다는 비난을 종종 듣는다. 맞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날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한 줌의 후회없이 말하건대, 누가 내 이웃이고 어떻게 사는지, 어떤 소란을 일으키는지, 거리에 침을 뱉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이런 개인적인 문제에까지 개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이 위치에 오지 못했을 것이며 경제적 번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통치방식은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1960년 말 인구가 늘어나자 경제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두 자녀 부부에게 불임 수술을 권고하기도 했다. 1983년에는 사회개발부를 설립해 고학력 남녀 간 결혼도 지원했다. 모두 서방에서는 우생학적인 정책이라는 이유로 폐지됐던 것들이다.

껌 씹는 것, 술을 마시는 것 등 개인의 생활에 일일이 관여하는 싱가포르 당국을 가리켜 전형적인 ‘보모 국가(정부가 국민의 일상생활에 깊이 개입하는 나라)’라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리콴유에게 ‘국민 생활에의 개입’은 신념이었으며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상황에 맞게’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1997년 펴낸 회고록 <싱가포르 스토리: 리콴유 비망록>(국내에서는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로 번역)에서 “싱가포르가 ‘보모 국가’라고 한다면, 나는 그 점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2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연설했을 때에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민주주의는 신생 개발도상국에 좋은 정부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며 “아시아의 가치가 미국인이나 유럽인의 가치와 반드시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여론조사나 인기투표에 연연하는 지도자는 약한 지도자”라거나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미국을 모방하는 것일 뿐이며 서구의 관행을 생각 없이 빌어쓰는 것”이라는 등의 발언은 그의 지도자관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그의 통치체제는 강력한 법치를 기반으로 하지만 ‘과도한 형벌주의’라는 비난이 적지 않았다. 리콴유는 서방의 비판을 일축했으나, 태형을 공식 형벌로 인정한데다 다른 나라에서는 경범죄로 간주되는 행동도 강력 처벌해 국내에서도 적잖게 반발을 샀다. CNN은 “과도한 언론 통제, 정적들에 대한 보복으로 국민을 갈라놓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리콴유는 1990년 11월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이어 고촉통이 2004년까지 제2대 총리를 지냈고 이후 리콴유의 아들 리셴룽이 3대 총리로 11년째 재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어떤 나라

미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2013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세계 7위, 수출액 15위, 최저 실업률 12위(1.9%), 저축률 9위(44.6%)에 랭크돼 있다.

총 GDP는 3390억달러로 41위다. 국토가 서울의 1.1배에 불과하고 인구도 600만명이 안 되는 것에 비하면 높은 순위다. 1인당 GDP 순위로는 미국(5만2800달러), 독일(3만9500달러), 일본(3만7100달러)보다 앞선다. 인구가 5000만 명을 육박하는 한국(1조6660억달러)의 20% 수준이다.

2013년 수출액 순위는 15위(4103억 달러)다. 기계류, 전자제품, 통신기기, 약품, 정유화학제품이 주를 이룬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주요 수출대상국은 말레이시아(12.3%), 홍콩(10.9%), 중국(10.8%) 순이며 한국은 8위(4%)다. 2013년 수입 규모도 15위(3730억달러)다. 말레이시아, 중국, 미국, 한국, 일본 등으로부터 원유, 음식, 물 등을 수입했다. 특히 원유 수입은 세계 4위다. 쉘, 영국석유(BP), 에쏘 등 글로벌 정유회사의 공장들이 들어선 싱가포르는 세계 3대 정유 산업국이다.

인구는 2014년 7월 기준으로 116위(556만7301명)다. 1000명 당 출생률은 8.1명으로 221위에 머물고 있다. 반면 의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사망률은 217위(1000명당 3.42명), 평균수명은 4위(84.38세)다. 워싱턴포스트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건설, 집안일 등을 하고 있다”며 “이들이 싱가포르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일을 빼앗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싱가포르를 압박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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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님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

이사람 반의 반만이라도 따라갈만한 사람이 있었다면 북조선의 인민들이 배고픔에서 해방 되었을텐데..
언제나 북조선의 인민들이 이밥에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을까?
에이 이더러운 북조선의 지도자라는 놈들....
지배만 띵띵하게 부른 김정은이만 보면 우리 동포생각에 잠이 안온다..
여기의 모든 우리동포도 나와 생각이 같겠지?
아니라면 그런사람들은 지배만 채우는 김정은와 다를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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