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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를 잊을수 없지, 적폐청산이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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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슴도치 작성일19-04-15 08:51 조회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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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짐’과의 사투가 진행 중인 그곳, 여기는 4·16기억저장소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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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2일 경기도 안산 4·16 기억저장소 가족운영위원 윤명순씨가 강서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억전시관 안내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4월12일 경기도 안산 4·16 기억저장소 가족운영위원 윤명순씨가 강서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억전시관 안내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세월호 유가족들은 망각과 싸운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신설을 요구하는 가족들의 국민청원에는 14일 오전 12시 현재 10만7000여명이 서명했다. 청와대 답변 기준(20만명)의 절반을 넘겼지만 20만명을 채울지는 불투명하다. 2기 특조위(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해경의 세월호 DVR(CCTV 저장장치) 조작 정황이 있다”는 중간 조사 결과 발표 이후인 지난달 26일 시작한 청원은 이달 28일 마감된다.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문재인 정부가 다 알아서 해주겠지’ 오해 아닌 오해를 하세요. 2기 특조위도 수사권·기소권 없는 건 1기 때와 마찬가지거든요. 국민청원도 예전같으면 3~4일이면 20만명은 금방 넘었을 텐데….” ‘고운 엄마’ 윤명순씨(48) 말이다. 4·16기억저장소 운영위원인 그는 더디게 늘어나는 숫자를 볼 때마다 세월호가 잊혀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4·16 기억저장소는 세월호 희생학생 어머니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민간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다. 참사 관련 자료, 희생자 유품, 유가족 활동 기록, 시민들이 보낸 추모메시지, 피해자 구술증언 등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기록들을 안산에 있는 서고 5곳에 나누어 보관한다. 이렇게 모은 기록 하나하나가 기억 투쟁을 위한 연료 역할을 한다. 

■기록으로 싸우는 엄마들 

12일 4·16기억저장소가 운영하는 4·16기억전시관을 찾았다. 안산 단원구 주택가에 있는 허름한 건물 3층. 교실 두개를 붙인 정도의 작은 공간(43평)이지만, 저장소 엄마들에게는 마음 편히 올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간 중 하나다. 엄마들은 매일 당번을 정해 전시관에 찾아오는 시민들을 직접 안내하고 있었다. 

이날은 윤씨의 차례였다. 오후 2시30분 단원고 옆학교인 강서고 학생 21명이 방문했다. “천장에 있는 등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기억함입니다. 기억함 속에는 유가족들이 직접 기증한 희생자들의 유품이 있고요.” 윤씨는 고운이 또래의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어른들의 불의를 방관하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고 했다. 

4월12일 경기도 안산 4.16 기억전시관에서 강서고 학생들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4월12일 경기도 안산 4.16 기억전시관에서 강서고 학생들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시민들이 2014년 기억저장소를 처음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를 왜곡·은폐하려는 국가에 맞서, 시민들이 직접 나서 진실을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유가족들이 본격 참여하면서 저장소 운영에도 체계가 잡혔다. 2016년 7월 ‘도언 엄마’ 이지성씨가 기억저장소 소장을 맡았다. 현재 희생학생 어머니 4명이 가족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실무 직원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부모들이 방대한 양의 기록물을 관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록 관리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았고, 국가기록원에 답사도 다녀왔다. 전시관 벽면에 페인트칠을 하고, 구술증언에 나설 가족들을 섭외하고, 후원 회원을 찾기 위해 거리 모금에도 나섰다. 

엄마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의 유류품 복원에도 참여했다.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입은 옷을 직접 보존 처리하는 작업은 “잔인한 일이었다”고 윤씨는 회상했다. “저는 보존 처리된 유류품을 1서고에 정리하는 일을 주로 맡았어요. 특히 아이들 교복을 볼 때면 순간 눈물이 나서 중간에 뛰쳐나간 적도 많았어요. ‘이 기록들로 세월호 참사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그 생각 하나로 버틴 거죠.” 

잊지 않고 기억하려면 기록이 필요하다. 윤씨는 저장소 활동을 하고서야 기록의 중요성을 비로소 느끼게 됐다. “일선 학교에서 5주기 행사를 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때가 있어요. 그때 저장소에서 기록화를 안 해놨으면 도움이 못되잖아요. 가족들도 5년간 언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정확하게 되짚어볼 수 있고요.” 기록을 무기로 한 엄마들의 투쟁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안산 4.16 기억전시관에 희생자 가족들이 기증한 물건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안산 4.16 기억전시관에 희생자 가족들이 기증한 물건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기록에 담긴 5년의 기억 

4·16기억저장소는 2015년 6월부터 유가족, 잠수사, 생존학생, 희생자 형제자매, 진도 어민 등 피해 당사자로부터 구술 증언을 수집하고 있다. 총 128명(2월 기준)을 2시간씩 3회에 걸쳐 만났고, 음성과 영상 기록을 글자로도 옮겼다. 팽목항과 진도에서의 초기 상황, 참사 이전 아이들과의 기억, 진상규명 투쟁과 정권의 억압, 아이를 떠나보낸 가족의 고통…. 세월호 참사를 경험한 이들의 생생한 증언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졌다. 저장소는 오는 6월까지 구술증언록 100권을 출간할 계획이다.

구술증언 사업책임자인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피해자 관점에서 새로 쓰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정부와 언론은 구조 상황을 은폐하거나 왜곡했고, 의료진들조차 국가에 책임을 묻는 유가족들을 ‘환자 취급’했다. 특히 1주기 직전 정부의 배·보상안이 발표되고 유가족들을 ‘시체장사’ ‘세금도둑’으로 음해하는 여론이 빠른 속도로 퍼졌다. 보상금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말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기억저장소가 구술증언 수집에 나선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4.16구술증언수집 사업책임자 서울대 인류학과 이현정 교수.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4.16구술증언수집 사업책임자 서울대 인류학과 이현정 교수.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구술 과정에서 드러난 피해자들의 고통은 깊고 또 복잡했다. 생존 학생들은 진상규명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참사의 고통스러운 기억 사이에서 괴로워했고, 참사 초기 연대했던 생존자와 희생자 부모의 거리도 조금씩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 부모는 수학여행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데려오게 한 담임 교사에 대한 분노를 강하게 호소했다. 이 교사는 수학여행 당일 아들이 놓고 간 핸드폰을 가져다주겠다는 부모에게 “차가 이미 출발했다”며 거짓말을 했다. 교사는 홀로 생존했고 부모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고통에 갇혀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촛불혁명을 거치며 누구보다 강인한 ‘정치적 주체’로 성장해나간다. 이 교수는 “이분들도 내 자식이 좋은 대학, 번듯한 직장에 가길 바랐던 평범한 부모였다”며 “세월호 참사로 사회 엘리트들의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아이의 죽음은 내 손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시민 지지가 없었다면 지난 5년의 시간도 버틸 수 없었을 거라고 유가족들은 입을 모은다.

안산 4.16 기억전시관에 희생자 가족들이 기증한 물건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안산 4.16 기억전시관에 희생자 가족들이 기증한 물건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세월호 참사 5년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진상규명 투쟁이 활발했을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아이에 대한 그리움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당시 몸을 혹사하며 무리하게 투쟁에 나섰던 후유증이 신체 장애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교수는 “개인적으로 약을 먹고 상담을 받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결국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사회적 해결이 함께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서만 4·16기억저장소 회원 89명이 후원을 끊었다. 저장소는 100% 시민 후원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윤씨는 “시민들의 관심이 사라져 유가족만의 일이 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었다고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윤씨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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