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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은 6.25가 아니라 6.2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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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흙, 림원섭 작성일19-03-11 17:41 조회12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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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은 6.25가 아니라 6.23이다.
김인상 글에서 펌

김종필 우발적 실토
<이승만 박정희가 "남침"이라고 왜곡했다>

기자: 안녕하십니까? 김종필 국무총리님, 건강은 괜찮습니까?
김종필: 나이가 있어서 몸이 예전같지 않아.

기자: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로 요즘 시끄럽습니다. 당시 육군본부 정보장교(중위)로 근무하셨던 김종필님 생각은요?

★김종필: 6.25전쟁이 아니야. 실제로는 6월 23전쟁이지.
6.25전쟁 전에, 23일부터 남한과 북한의 직접적인 전투가 자주 있었지. 백인엽 중령(백선엽의 동생)이 국군을 끌고 38선을 넘어가, 북괴군을 먼저 공격한게 전쟁의 중요한 발단이었지. (북한땅을 먼저 공격했지) 북녘땅 약 15km까지 쳐올라갔지.

개성도 빼앗을 뻔 했고. 김일성으로 하여금 전면전(全面戰)을 최종(最終) 결심하게 만든 계기였지. 먼저 침공을 당한 북한군이 전열을 정비하여, 2일후인 6.25일 새벽 1시 00분에 38선 전지역에서 불을 뿜었지.

기자: 그렇다면, 왜 "남침"이라고 하나요?
김종필: 그거야 이승만, 박정희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기자: 우리가 알기엔 새벽 4시에 38선 全전선에 걸쳐서 침공했다고 배웠는데...

김종필: 그것은 북괴군이 강원도를 포함하여 전면 공격한게 6월 25일이라서 그렇지. 또, 전쟁 터진 것도 새벽 4시가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새벽 1시 50분경이었지. 정확히는 25일 새벽 1시경이었지.

내가 육본 작전실에 마침 당직을 서고 있었는데, 1시가 넘어가자 모든 전화통에 불난 것처럼 다 울렸어. 38선마다 포격받고 있는 중이라고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어. 작은 전투는 그전에도 자주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한거야. 탱크가 나타난거야..

기자: 어떻게 이런 게 큰 전쟁의 발발 원인과 개전(開戰) 시간이, 62년간이나 착오가 발생했을까요?

김종필: 착오? 허허허...

<월간조선 2011년 5월호> 김종필 증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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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개시의 시간은 6월 25일 새벽으로 정했다. 그날은 일요일이다. 일반이 휴일로 생각하고 있는 일요일 새벽을 기해 진격을 개시하면 불의공격의 효과를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며 그날 서울을 비롯한 전략적 지점들에 예비로 배치한 사단들에서는 하급사관 및 사병들의 외출을 허락했다가 개전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북한에서 공산군이 침입해 왔다고 비상소집을 하라. 그러면 일반시민들도 북한에서 먼저 쳐내려온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김효석: 전쟁당시 내무부장관)

“우리가 왜 25일로 택하게 되는가? 여기에는 우리의 심중한 의도가 있다. 25일은 일요일이다. 그리스도교국가인 미국이나 남조선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 있다. 우리가 일요일에 전쟁을 개시하였다는 것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전쟁을 먼저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윌리엄 로버트: 전쟁당시 남괴주재 미국 군사고문단 단장[준장])

“북한은 초토화되어 석기시대로 돌아갔다. 앞으로 한 세기 정도는 다시 문명사회를 일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정부의 지시를 수행함으로써 역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서명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이 실패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선임자들인 맥아더와 리지웨이 장군들도 동감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마크 클라크: 전쟁당시 유엔군사령관, 북방한계선=NLL 설정)

“코리아전쟁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기에 잘못 고른 적과 잘못한 전쟁 (the wrong war, at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 and with the wrong enemy)” (오마 브래들리: 전쟁당시 미국합동참모본부 의장)

"집안싸움인 통일내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달 이내에 끝났을 테고 우리가 실제 겪었던 그런 살상과 파괴라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전쟁 때문에 생명을 박탈당한 약 300만명에게 미국이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이다.

남의 집안싸움인 통일내전 사흘만인 27일 한국전선을 시찰하고, 미국정부에 개입을 요구하고, 곧바로 소사 등에 폭격을 감행한 전쟁광 맥아더는 동상과 함께 역사 속으로 던져버려야 한다." (강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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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다물흙, 림원섭님의 댓글

다물흙, 림원섭 작성일

침략 대 살인 강도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북동포들을 철천지 원수로 만들기 위해서
선하디 선한 자국민들을 빨갱이라고 뒤집어 씌워 무자비하게 대 학살을 해놓고
조선에 뒤집어 씌운 역적년놈들은 도대체 누구들인가?

이승만, 장택상, 이범석, 조병옥, 한경직목사가 이끄는 서북청년단원들, 김창룡, 노덕술 등등과 박정희, 김기춘, 양승태, 정형근, 전두환, 허화평, 허삼수, 노태우 박철원, 이명박, 박근혜 그 일당들인 자한당과, 바미당과 보안대/기무사/안기부/국정원, 검찰, 경찰들이다.

다물흙, 림원섭님의 댓글

다물흙, 림원섭 작성일

강도 미제와 한국은 뭘 숨기고 있는가?
그래서 본인이 누누히 말한 것은 왜 북침인가다.
강도 미제가 총과 삐라를 냅다 쏘고 뿌리며 3명을 죽이며 들어온 1945.9.8일 후 1946년 봄부터
미. 한은 북으로 올라가 도둑, 폭행, 강도, 강간, 매복, 방화, 살인, 포사격 등등 3200번 이상 북을 주야로 괴롭혔다.
그래서 김종필, 백선엽은 6.25가 아니고 6.23이라고 했다고 기록을 남겼다.
왜, 6.23일 대대적인 북에 침투하여 전쟁을 했다는 것이다.
참다 참다 못한 북이 6.25일 탱크를 몰고 내려 온것은 사실이나 강도 미제는 6.25일 후만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그 전은 꼭 꼭 숨겼다.
그러니까 미군들이 6.25전 약 5년 동안 한국땅에서 뭘 했는지 확실히 밟혀야하고 왜 6.25 전에 미군정때 2백만이상 양민들이 대 학살을 했냐다.
4.3, 여수, 보도연맹, 거창 양민 대학살 등등 그 외도 여기 저기 많다.
그 대 학살들이 미군의 명령에 의해서 이승만, 장택상, 이범석, 조병옥, 김창룡, 한경직 목사가 이끄는 서북청년단, 군. 경 들이 자국민 선한 양민들을 빨갱이라고 무자비하게 대 학살을 했다.
이것을 계속 속이고 있다.
6.25는 6.23으로 북침이라고 본인은 정의를 내린다.
그러면서 미군들은 통역관 대동하고 각 농촌들을 집집마닥 찾아다니며 곡식을 강제로 60%이상 공출해 갔다.
그래서 농민들은 사방 팔방에서 굶어 죽여야 한다.
이렇게 당한 나의 할머니는 이승만 장로놈의 양키들은 왜놈들과 똑같이 강도들이라 고함을 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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