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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북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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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꽹과리 작성일17-06-25 15:55 조회3,46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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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북침!'

 1983년 뉴욕에 있는 교회, 어떤 집사와 사담을 나눈적이 있다. 소문은 금새 퍼져나갔다. 장로들은 나를 성토장에 세워놓고 '당신 북한공산당원 맞소?'
인자하게 보였던 그들은 맹수로 돌변해 금방이라도 할퀴기라도 할 기세로 뎜벼들었다.

 1950년 미국은 15개 추종국가를 동원해 침략해 왔다. 몇백만 우리민족이 희생되었다. 엄연한 사실이다.

 난 그때 교회당에서 벌어진 공개재판(?)에서 말했다. '나는 배구시합의 주심판이 아니어서 북침. 남침을 말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침략자가 아니라면, 왜 미군은 지금까지 떠나지 않고 불청객으로 남아 있겠느냐?'고 했다.
이북은 50년대에 소련군도 중공군도 내 쫓아버렸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고 하였다.

장로들은 '이새끼 진짜 공산당이구만'이라고 하며 삿대질을 해댔다. 얼마 안있어 안기부(중정) 정무영사가 내 사무실에 날아 들었다.

 그때는 노태우정권이 소위'북방정책'이라는 것을 한다고 수선을 떨던때였다. 남녁에서는 월북작곡가들이 남기고 간 노래로 음악회를 열었다는 신문기사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노래를 통해서라도 그들의 심장박동소리도 듣고 싶었고 체온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북부조국 동포들을 처움우로 만나본 것은 1989년 3월이었다.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평양행을 단행하였다.

 이제 6.25를 남침이니 북침이니하며 벌이는 논쟁은 사실 무의미한 것으로 되어버렸다. 삼천리강산에서 외세를 몰아내는 것이 실천해야할 우리의 사명이다.

 미군철거눈 온민족이 나서서 해야할 당면한 문제이자 시대적 사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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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고물님의 댓글

고물 작성일

내가 만나본 북코리아 사람들 지식이
다방면으로 박식하고 가무를 즐길줄 알며
법이 없이도 전세계 어느 사람들 하고도
어울릴수 있는 사람들 입니다.

힘님의 댓글

작성일

지금으로부터 67년전처럼 일요일이다. 이 날을 맞으며 1950년 조선전쟁과 관련한 잘 알려 지지 않은 몇가지 사실을 여러 연재에 나누어 공개하려고 한다.
지금 6.25 조선전쟁과 관련하어 첫번째 이슈는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대한 책임논이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픽-하고 웃고 만다. 그 따위가 어케 문명급 대학을 졸업하고 정치학과 철학, 법학, 군사학을 배웠다고 하는지 도제 이해안되기 때문이다.
초보적으로 생각해도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누가 먼저 일으켰는가로 되면 안된다. 이를테면 개스가 새어 있는 방에서 한 사람이 라이터를 켰는데 화재가 났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라면 Wise Gentleman이라고 칭송해야 할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별의별 분석을 다 할 수 있는데 웃음속에 자체로 해보기 바란다.
그러면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전쟁을 누가 발발했는가에 대해서만 주요하게 논하는 기본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 전쟁의 원인분석을 애써 피하고 전쟁에 임하는 양측의 목적을 같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만 오직 동기, 즉 발발이 문제로 된다.
지금에 와서 전쟁과 관련한 논의가 선제공격논과 지도부참수논, 족집게식타격논이 주요한 이슈로 되는 현실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결국 전쟁에 대한 고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전쟁의 동기가 아니라 전쟁의 목적과 시기, 수단이라는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 아닌가?
그러면 전쟁은 어떻게 평가하어야 정확하다고 말 할수 있겠는가?
-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에 임하는 양측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 다음으로 전쟁에 임하는 양측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쟁의 원인과 필연성이다. 특히 무조건 일어 나야 하고 피하지 못할 전쟁이라면 주동적으로 맞받아 나가야 한다. 소련의 스탈린이나 이라크의 사담처럼 전쟁이 일어 날 것이 명백한데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얻어 맞으면 안된다.
- 다음으로 전쟁의 동기이다. 다른 말로 왜 전쟁시기가 그때로 선택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원인과 필연성이 준비되어도 첫 촉발이 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 나기 어렵다. 무서운 화약도 한점의 불꽃이 있어야 폭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손벽도 두 손이 마주쳐야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새기면 전쟁이 일어 나려면 어느 한 측만이 아니라 양측이 다 전쟁을 원하고 있고 거의 같은 전쟁준비가 되어 있은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는 연료이고 하나는 산화제인 격이다.
- 다음으로 전쟁수행수단과 방법이다. 전쟁에서 기본은 정치군사력이며 가장 억울한 피해자는 사회생활과 경제, 민간인이다.
그러면 이러한 관점에서 1950년 조선전쟁을 고찰해 보자.

1. 조선전쟁의 주체
나는 조선전쟁에 참전한 양측 주체의 입장에서 이 전쟁을 두 단계로 나누어 본다.
1단계는 1950년 6월 25일부터 7월 3일까지이고 2단계는 1950년 7월 4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이다. 2단계는 보다 세분화하어 1950년 7월 4일부터 10월 24일까지와 그 이후로 나눌 수도 있다.
- 1단계는 북의 조선인민군과 남의 국방군사이에 진행되었는데 모든 면에서 북의 조선인민군이 남의 국방군을 완전히 압도했다. 같은 민족이지만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 양측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민족내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 2단계는 북의 조선인민군과 미군을 주도로 하는 유엔군사이에 진행되었는데 북의 조선인민군이 많은 면에서 렬세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렬세한 북을 도와주기 위해 1950년 10월 25일 중국 지원군이 참전하었다.
여기서 기본 논제와 역사외곡은 1950년 10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의 기간이다. 적지 않은 역사가들과 군사가들, 특히 한국의 얼간이들은 마치도 중국 지원군과 유엔군사이에 전쟁이 벌려진 것처럼 고찰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표현대로 몇가지 묻는다.
- 미국과 중국이 남의 나라 땅에서 전쟁을 했다는 소리인가? 그러면 반세기전에 청일, 러일전쟁이 조선반도에서 벌여 진 것과 같은 맥락으로 중미전쟁이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 1950년 전쟁과 관련하어 북은 조선전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전쟁의 한쪽 주체는 조선 즉 북이라는 뜻이다. 남은 한국전쟁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전쟁의 한쪽 주체가 한국 즉 남이라는 뜻이다. 어느 말이 맞는가?
(당연히 나는 한국전쟁이라는 말이 오류라고 확신한다.)
-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체결당시 사인한 책임있는 당사자는 누구인가?
아마 제노라는 역사가들도 이 질문들에 대답하기 힘들어 할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발제자의 의도에 맞게 대답하려니 저들이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의 사실들에 근거하어 판단해 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전쟁의 양측 총지휘부가 누구인가 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 북은 조중연합사령부이다. 남은 유엔군사령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미 8군 사령부이다. 다음의 사실로 그것이 증명된다.
정전담판때 북의 대표단에 조선사람 4명, 중국사람 3명이다. 단장은 당연히 조선사람이다. 회담장에서 특징적인 것은 조중연합사령부를 대표한 기발이 중국깃발이 아니라 조선깃발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 중국 깃발도 함께 놓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이었다.
남의 대표단에는 초기에 유엔군사령부에 소속된 여러 나라 군사대표들만 참가했다가 이승만이 너무도 간청하어 얼마후부터 한국군을 대표하어 최덕신이 꿔온 보리처럼 한쪽 구석에 앉아 있은 것이 고작인데 너무도 인기없다나니 역사필름에도 남지 않았다. 대표단에서 기본은 미 8군 사령부 장성들이었고 깃발은 유엔군 깃발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너무도 가슴에 걸려 한국얼간이들이 애써 중국을 내 세우는 것 같다. 중국으로서는 한국에 코 잡고 절 해야 하지 않을가?)
최종 정전협정체결 때에는 오직 조선 깃발과 유엔 깃발만 놓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선전쟁은 조선과 유엔과의 전쟁이라는 뜻이다. 세계의 평화를 수호한다는 유엔이 조선인민을 학살하고 조선을 암흑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조선전쟁을 주관했다는 엄청난 의미가 이렇게 드러난다.
지금에 와서 유엔이 이것을 부정한다면 결국 유엔이 미 8군 사령부의 꼭두각시 노릇했다는 뜻이다. 이것 또한 하나의 아이러니이고 코미디이다. 미국 정부도 아니고 미 8군 사령부가 유엔의 위에 있으니 말이다. 유엔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을 잘 알면 조선의 적수이고 미국보다 한참 아래 위치에 있어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유엔이 지금에 와서 조선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왜 어이없는가가 이해되며 또 아직도 유엔과의 전쟁을 결속못한 조선이 적수인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도 명백해 진다.
이번에는 정전협정문건에 이떻게 만들어 지고 누가 사인했는가를 보자. 역사필름에 의하면 문건은 오직 2부만 만들어 졌다. 즉 조선어와 영문이다. 현재 조선어본은 조선이 보관하고 있고 영문본은 미 8군 사령부가 보관하고 있다가 미국 정부의 문서보관고에 갔다. 그외에는 없다. 즉 중국이나 남조선, 영국, 호주와 같은 나라들이 이 전쟁에서 아무리 피를 많이 흘리고 군인머릿수가 조선인민군이나 미군보다 많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법적으로 조선전쟁에 아무런 객관적의미가 없다. 이런 측면에서는 유엔도 같다. 이 문건이 유엔에 보관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더우기 문건사인순서이다. 조중연합군사령부에서는 먼저 정전담판 조중연합군측 대표단단장인 남일 대장이 사인한 다음 중국 지원군을 대표하어 팽더화이가 사인하고 최종적으로 김일성 수상이 사인했다. 유엔군 측에서는 정전담판 유엔군측 대표단단장인 미군 해리슨 중장이 사인하고 최종적으로 유엔군사령관인 미 8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이 사인했다. 여기에 영국이나 호주를 비롯한 다른 나라 장성들은 자격이 없었고 더우기 최덕신이나 이승만 같은 것들은 머리를 기웃거리지 조차 못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못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얻어지는 결론은 오직 하나 조선전쟁은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들의 지원을 받는 조선과 유엔의 이름을 빌린 미국과의 전쟁이다. 이것이 조선전쟁의 주체에 대한 설명이다.
만일 미국과 유엔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조선전쟁은 한국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민족내전처럼 보인다. 이 경우에는 북과 남의 정치군사적대결상황으로 보아 승패가 너무도 명백하므로 전쟁이 7월 15일전에 끝났을 것이고 조선은 하나로 통일되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양심적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전쟁에 참전한 양측의 목적은 어떠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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