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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엘에이폭동 25주년/KIWA창립 25주년 기념행사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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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청년 작성일17-04-29 10:14 조회1,7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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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엘에이폭동이 발생한 지25년이 흘렀다. 대부분 코리안들은 이 역사를 아픔으로 기억하고 있다. 미국이 안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과 고질적인 인종차별의 최대 피해자인 흑인들이 1992년 4월 로드니 킹을 심하게 구타한 백인경찰의 무죄선고에 분노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이들의 분노의 불꽃은 인근에서 장사하는 코리안들에게 먼저 떨어졌다. 소수인종의 방화와 약탈의 진원지가 된 코리안상점들은 한순간에 폐허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코리안들이 미국에 이민와서 수년 동안 고된 노동으로 마련한 생계의 거점과 그들이 꿈꾸어오던 아메리칸드림이 산산조각나고 전체 코리안의 자존심은 여지 없이 망가졌다.
 
올해는 한인노동연대(KIWA)가 창립된 지 25주년이기도 하다. KIWA(창립 당시 이름은 노동상담소)는 엘에이 코리아타운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를 위하는 비영리 단체로 문을 열고 얼마 안되어 4.29폭동이 일어났기에 폭동피해자들에 대한 구호활동과 피해보상운동이 KIWA의 첫 사업이 되었다. 박영준 전 소장은 KIWA가  업주에게만 주던 정부의 구호금을 상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도 공정하게 분배하도록 하였고, 상점을 잃어버린 업주들에게 소상인을 위한 정부 대여를 받게해주었고, 코리안이민자들이 타민족과 더불어 사는 분위기를 확산하는 교육 과, 교류에 힘써왔다. KIWA는 이후 계속하여 악덕업주에 피해본 노동자 구제를 비롯하여 업주들이 합법적으로 사업하도록 하는 교육에도 힘썼다. KIWA가 벌인 컴뮤니티운동이 확산되어 지금은 코리안들뿐만 아니라 타민족노동자들과 일반 이민자들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서도, 모든 인종들이 함께 협력하며 잘 사는 엘에이공동체를 형성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한인노동연대(KIWA)는 4.29엘에이폭동과 KIWA 창립25주년을 기념하여 27일 오후 5시 엘에이 샌메어리성당에서 "1992,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길"이라는 주제로 기념행사를 진행하였다. 지역사회 활동가들의 토론회와 예술전시회로 진행된 행사에는 각 컴뮤니티에서 약 200명이 모였으며 서승혜 KIWA소장의 질문에 코리안, 흑인, 라티노 컴뮤니티 활동가들로 구성된 6명 토론자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코리안 토론자로 박영준 전 KIWA소장, 이용식 자영업자, 서 알렉산드리아 한흑협회 활동가가 참석하였으며, 토론이 끝난 후 청중과의 질의응답이 있었다. 
 
토론자들은 지난 25년 동안 각 컴뮤니티에서 활발하게 벌인 교육과 홍보, 교류를 통하여 타민족의 문화와 입장을 서로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높아졌다고 평가하였다. 그렇지만 경제와 소득의 불균형과 인종간의 갈등이 사라지지 않은 오늘 폭동의 불찌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기념행사를 이번 한 번의 기념으로 끝내지 말고 각 민족이 지속적으로 타민족과의 소통과 협력을 확대하여 엘에이를 역동적이고 안전한 도시로, 도망가고 싶은 엘에이가 아닌 살고 싶은 엘에이로 만드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992년 폭동 당시 코리아타운에서 주류상점을 경영하던 이용식 동포는 폭동이 일어나자 지역정부가 코리아타운에서 공권력을 행사하기를 포기해버린 상태에서 스스로 지붕에 올라가 재산을 지켰던 경험을 말하였다. 그리고 4.29폭동에서 코리안들이 많이 당한 이유와 대책을 설명하였다. 또 4.29폭동을 인종차별의 문제로 몰고가면서 폭동의 근본 문제로 되는 경제양극화와 불공평한 분배를 언급하지 않는 언론을 비판하였다.
 
이에 전문을 소개한다.
 
 
4.29 폭동(봉기) 의 원인과 대책(글:이용식)
 
 
 
1992년 4월 29일에 일어난 흑인들에 의한 민중저항은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져 일어난 것이지 한국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날 갑자기 일어난 것도 아니다. 이미 4.29 저항이 일어날 수 있는 요소가 산재해 있었고 흑인들의 인권은 열악한 상태에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태에 있었다. 그렇다면 왜 한인들이 집단적인 표적이 되었나? 그리고 현재의 상태는 변한 것이 있는가? 어떻게 하여야 이런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인가? 흑인 커뮤니티는 흑인 커뮤니티 대로 자신들의 할 일을 찾고 한인 커뮤니티는 한인 커뮤니티 대로 할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흑인의 인권은 미국 전역에서 경찰에 의하여 터무니 없이 사살 되는 흑인들을 보면 하나도 개선 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인 커뮤니티는 적어도 4.29 를 통하여 배운 교훈이 있고 개선 된 점이 있다고 보여진다.  나의 견해는 어떤 통계적이나 학문적인 바침 보다는 보여지는 현상을 있는대로 보고 4.29를 경험한 한인타운에서 살고 있는 자영업자의 이야기이다.
 
첫째- 지역적인 원인- 단지 한인들이 경제적으로 흑인사회와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었고, 흑인들을 상대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있었다. 흑인 밀집지역에서 리커 스토아 등 장사를 하고 있었다.
 
둘째- 상대민족에 대한 몰 이해-흑인이 어떻게 미국에서 어떻게 탄압을 받으며 살아 왔는지에 대한 이해와 흑인들 사회의 형성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역사적으로 흑인들은 자신들이 얻은 지위가 노예의 상태부터 시작 수 많은 투쟁을 거쳐서 얻은 것인데 한인들은 이 것을 이해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것은 고사하고 단지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셋째-경제적 환경, 사업을 운영하는 방법의 문제- 한인들이 경제적으로 소자본에 의한 자영업을 중심으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기에 노동법등 각종 법에 대한 교육과 이해가 부족했고 그 것을 지키려는 의지도 없었다. 법을 다 지키고는 이익을 내기가 힘들다는 의식도 있었고 업주들 대부분이 자신들이 종업원 보다 더 많은 시간 일을하는 상황에서 종업원에 대한 배려나 인격적인 대접을 운운할 여유가 없었다.
 
네째-공적인 보호의 문제- 내가 미국에 왔을 때 이런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중산층이 되는 조건에 한달인가 휴가를 즐기는 시간과 경찰에 보호를 받는 조건이 들어가 있었다. 아무리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도 이런 것이 충족이 안 되면 중산층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당시에 한인타운은 공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4.29 때는 완전히 공권력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뒤 돌아보면 4.29 는 소수민족인 흑인과 한인 사이에 일어난 인종갈등이라기보다는 미국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불러온 문제이다. 그럼 지금 이런문제가 해결이 되었나?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 언제든 형태는 다르지만 다른 형태로 터질 가능성이 있다.
 
첫째- 지역적인 문제는 한인들이 흑인 밀집지역에서 더 이상 경제적 활동을 적게 하면서 흑인들과의 직접적인 문제는 많이 해결 되었으나. 또 다는 타민족인 히스페닉 등과의 갈등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지역적에서 멀어져서 해결 된 것 같이 보이나 해결 된 것이 아니다.
 
둘째- 상대민족에 대한 이해- 이 문제는 많은 한인단체들이 노력을 기울여 어느정도 이해가 많아졌고 수수민족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나가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한인들도 정치적인 파워의 신장이 필요하다는 의식에 눈을 뜨고 있으나 너무 같은인종을 선호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실제 그들이 한인타운 전체를 위한 정책 등은 따지지도 않는다.) 정치인의 선택을 인종 위주가 아닌 커뮤니티 위주로 선정하는 의식이 필요하고 한인 뿐만 아니라 한인타운이 발전하는 쪽으로 정책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의식의 전환)
 
세째- 이건 통계적인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환경이 변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한인타운이 92년 보다는 인종적으로 더 다양하게 되었고 이민자들이 더 늘었으며 한인타운에 타 인종들을 상대로 하는 비지니스가 많이 늘어났다. 비지니스의 상대가 다양해졌다. 지금도 노동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부족한 고용주도 있으나 92년에 비해서는 많은 부분 개선 되었다고 보고 개선 되는데는 키와 같은 단체들의 노력이 많았다고 본다.(example: ab 588 임금절도 방지)
 
네째- 공권력의 문제는 한인타운이 너무 크고 여러개의 선거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입고 있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한인타운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조정되는 것이 필요하고 한인타운의 특성을 이해하고 전담하는 경찰서(올림픽 경찰서) 와 같은 행정이 필요하다.
 
결론: 4.29 사태와 같은 사건이 다시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민족들이 민족을 우선하는 것 보다는 컴뮤니티를 우선으로 하는  생각을 가지고 정책을 지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녹지공간의 확보,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 문화 예술 공간의 확보, 공공편의 시설의 확보, 대중교통의 확보 등의 일을 지속적으로 하여야 한다. 한인 사회는 4.29를 통하여 정치력을 길러야한다는 교훈을 얻었고 한인 정치인을 배출하는 노력을 기울여 온 것과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 등록 등을 통하여 정치력 신장을 해 온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한인 이니까 한인 정치인을 뽑아 주고 한인이 되는 것이 정치력 신장이라는 생각 보다는 우리 커뮤니티를 어떻게 발전 시킬가를 생각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는 정책을 가진 정치인을 뽑고 그런 정책을 제안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진짜결론: 많은 주류 언론들은 아직도 4.29 봉기가 한흑갈등에서 시작 된 것으로 몰고 흑인에 대한 이해가 없이 돈만 버는 한인들이 흑인들에게 불만을 사서 일어난 갈등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이 것은 새빨간 거짓이고 언론이 대중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언론이 주류편에 서서 소수민족간에 마치 분쟁이 존재하고 서로를 미워하는 것으로 나누어서 정복하는 (divide and conquer)의 정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인종갈등이 아닌 계급 갈등이다. 지배층(1%) 와  피지배층99(%) 의 문제인 것이다. 소득의 불평등에 기인한 문제이고 경제체제가 가져온 문제이다.
 
파이가 커지면 나누어 먹는다던지 물이 차면 넘쳐 흘러서 밑에 있는 사람들이 먹을 것이 생긴다는 이론은 우리를 거지로 본 이론이다. 우리가 무슨 커진 파이 쪽이나 얻어 먹고 넘쳐흐르는 물을 얻어 먹는 사람인가? 그리고 파이가 커지고 물이 차면 그릇이 커졌지 한번도 물이 넘친적도 없고 파이가 떨어진 적도 없다. 그릇을 깨고 그릇에 구멍을 뚫어서 물이 흐르고 파이가 떨어져야하고 현 체제를 고칠 생각으로 소수민족인 피지배층들이 일치단결하여 투쟁을 하여야 한다. 피지배층은 백인을 포함 모든 99%의 사람이 속한다. 착취당하고 노동을 제공하고 댓가를 받지 못하는 불평등한 분배에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단결하여야 한다. 4.29 봉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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