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필을 하라는 자에게! > 민족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3월 29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민족게시판

절필을 하라는 자에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다물흙 작성일17-04-17 21:08 조회2,569회 댓글4건

본문

절필을 하라는 자에게!

하라! 라고 명령을 하니 북한 보위부에서 근무하냐?
참 무섭구나?
ㅎㅎㅎ

나는 이 지구에서 무서운 것이 없다.
왜 난 한 인간으로 태여나
천도교 최제우 동학의 창시자님의 말처럼
사람이 하느님/인내천/人乃天이기 때문이다. -
그래 내가 바로 하느님이여!
 
자네가 위에 쓴 자네의 글 중 -- 
-난 남괴에서 고등학교만 나오고 일용직 노동자, 책 배달부, 중국집 배달부, 음식점 접시닦이 등등 바닥으로만 산 밑바닥이다.
난 바닥으로만 살았기에 가난이 무엇인질 알고 남괴에서 신음하는 노동계급의 슬픔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옳게 살면 병신취급당하고 돈도 모을 수 없으면 장가도 제대로 갈 수 없는 ....
돈이 많으면 귀족이 되고 왕족이 되고 존중 받는 남괴 를 ....
그래서 남괴는 반드시 전복되야 하며 살아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라고 쓰여 있다. 좋다.
----------------------------------------------------------------------------------------------
자네는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으니 그래도 학교를 참 많이 다녀셨다.
나는 겨우 그것도 겨우 겨우  중학교를 나왔는데 말이다,
가정이 부자였구만 -
자네는 고등학교를 나왔다니 참 부럽다.
난 겨우 중학교까지 다니면서 당수도 도장 바로 옆에 산 덕분으로 당수도를 틈틈히 공짜로 배웠다.

하옇튼 자네는 그 동안 고생을 참 많이 했지만 식당 등등지에서 일을 했으니 밥을 굶을 염려는 없었구만, 
나의 고생은 밥을 굶는 것이였다.
그 차이는 엄청나라라!
그렇게 엄청나게 고생하며 포기가 없는 난 군대에 가서 군대 태권도를 열심히 했었다.

내가 중학교 시절에 배운 왜놈의 무술 당수도와 이름만 다르지 모든 동작들이 똑 같았다
그래서 난 쉽게 태권도를 배워 남달리 운동 신경이 좋아서 검정띠를 쉽게 땄다.
1년만에 한단씩 올라갔다.
왜 실력이 매우 좋다고 사람들은 태권도를 위해서 태여낳다고 칭찬들이 자자했었다.

또 월남에 가서 베트콩에게 매복으로 3번 죽을 고비를 겸험하며 손끔이 길어 살어서 월남 중부 쾅나이 지역과 다낭지역에 태권도를 보급 개척했다.
이때 난 태권도를 참 잘했다

또 월남이 망하고 천신만고 여기 북유럽에 구사일생으로 46불 들고 와서
또 밥 굶어가며 태권도를 개척하기 위해서 여기 북유럽에 왔다. 
1975년초에 여기 스웨덴에 와서 아침, 점심에 바나나 두개씩 먹고 저녘에 싸고 싼 이태리 음식 캅비쇼샤라는 것을  근 한달쯤을 먹으니
변비로 항문을 찢어지고 결국 영양실조로 난 쓰려졌다.

그리고 구멍마닥 다 피가 나왔다.
그때 난 눈을 상했다.
그리고 노동허가 신청이 최홍희 태권도를 한다고 한국 대사관 안기부의 방해로 스웨덴 이민국의 추방으로 쫓겨나 서독일에 가서 후배 도장 청소해주며
그 후배 부인에게 엄청나게 업신여김을 당하며 겨우 겨우 밥을 어더 먹으면서 피눈물을 흘리고 살다가 천신만고 신청된 노동허가증을 받고
다시 스웨덴으로 오게 되였다.

독일에 갈때와 올때도 돈이 없어서 1박2일 씩 밥을 굶으며 뒤돌아 와서도 이삿짐 옮겨주는 일을 하며 겨우 겨우 연명했다. 
서양인들의 집안 가구는 무거워서 하루를 일하고 이틀씩 아픔을 당하면서도
나는 태권도 보급에 단 한명이라도 가르치려고 말도 잘 못하는 주제에 신념만을 가지고 죽고 살기로 매진했다.

그렇게 해서 여기 북구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덴마크에 태권도가 보급되여졌다.
그러면서 최홍희의 태권도 책을 팔아주고, 도복도 팔아주고, 단증도 팔아주며 척추 다 달토록 충신 노릇을 다 했다.
그리고 평양에서 6개월 살면서 국제 태권도 사범 교육 제2기생을 가르쳤다.
그리고 오지리 비엔나에서 국제 태권도 본부를 내 이름으로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북과 최홍희 사이에 낀 나는 이들의 머리싸움을 벌리고 있을때 사이에 꼭 낀 불쌍한 난
북의 보위부 직원 김지도원이라는 놈과 최부장이라는 자와 최홍희의 잔머리로 난 희생양이 되여 결국 쫒겨났다.
그 억울함을 글로 다 표현을 해서 책자로 낼 것이다,
최홍희는 단 한 사람도 검정띠를 만들어보지도 않는 이자의 잔머리 아부로 북에서 영웅도 되고 또 열사능에 묻혔다,

이런 희대의 시기꾼 인간쓰레가 열사능에 묻혔다고 한들 난 눈섭하나 까닥하지 않는다.

내 말은 강도 미국의 용병 출신답게 미제에 충성스런 개 최홍희가 6.25 직후 제주도에서 사단장을 할때 노획한 한석봉 글씨를 일본에 팔아서 고생하는 태권도 개척 사범들에게 도장을 차려 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고 그 최홍희는 몫돈이 생기니 욕심이 생겼는지 입을 싹 씻고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한석봉글씨를 팔은 돈으로 자기 사리사욕에 쎴다. 

난 말을 했다.
그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북에 손을 벌여도 돈을 안주니 난 거지가 아니다.
태권도 본부를 차리려면 의자도 있어야하고, 책상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며 최홍희에게 돈을 내놓으시라고 한것이 눈에 가시가 된것이다. 
또 거짓말을 식은죽 먹듯이 하는 북쪽 사람들에게 신의를 지키라고 다고친것이 눈에 가시가 된 것이였다,
그래서 봉급도 받지 않고 쫓겨났다.

특히 그리고 한국에서 자네처럼 충성스런 남자 2명과 여자2명이 나에게 왔다.
김일성 수령님 품에서 살고 싶다고 북에 보내 달아고 해서 비엔나에 부탁하여 비엔나에서 한 2주 살다가 베이찡으로 오라고 해서
그 많은 경비를 드려가며 베이찡에 가서 퇫자를 맞고
그 동지들은 한국땅에 가서 6-8개월 형무소 생활을 했다.
지금도 여러 고통들이 따르고 있다.
그러니 난 쥐구명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것이였다.

그리고도 병신처럼 난 침묵을 하면서 북에서 부탁해온 신문기자를 한분 선택해놓으라고 해서 한분을 물색해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연락이 없으니
그 기자는 날 보고 사기꾼이라고 해서 원쑤가 되였다.
그래서 더 이상 북 사람들과의 인연을 끈었다.
왜 이들의 거짓말과 약속을 지키지않는 것에 난 환멸을 느겼기 때문이다.
그 담당자가 바로 베이찡에 파견된 북조선 보위부 직원 단군이라는 이철이라는 자다.

그러던차 한국에 태극기와 애국가와 태권도가 친일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글을 썼다가
이 단군 이철이라는 놈에게서 ’반북’이라고 엄청난 인격 모독과 매도를 당하고
나의 꼭지는 확 돌아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것까지 와서
이 단군 이철이라는 놈 때문에 난 지금 반동분자로까지 매도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양심에는 단 1센치미터도 굴복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70세가 훨씬 넘도록 불의와 타협하며 인생을 살은 적이 없다. 
그리고도 난 병신처럼 32년 동안 침묵을 해오다가 결국 폭발하게 된 것이였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거리지 않는가 말이다, 

이제부터 자네는 음식점에서 접시 닦는 마음으로 마음을 주야로 닦어보시라!
그러면 남괴라고 생각하던 자네는 5천만 동포들이 사는 한 나라로 제대로 보일 것이다.
끝으로 자네가 신나게 북의 발전을 찬양하는것 좋다,
나는 35년을 그랬다.
자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 자네가 확 깨달음이 올때 
내 말을 기억 해보시라!
그 때는 꼭 올것이여!

4350(2017)년 04월 17일.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어제를 모르고 오늘도 내일도 존재할 수가 없다.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여기 민족게사판이 작년만해도 국정원 똘마니들의 노리터였는데
이제 보위부 똘마니들의 노리터가 되였다.
아 - 재밋다.

단군님의 댓글

단군 작성일

이게시판은 언제부턴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미물의 개같은 리론을전개하는 곳이 되였다

민생단님의 댓글

민생단 작성일

이철 너 이놈 얼마나 오래 그 보위부 개급을 유지 하는지 볼 것이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