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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제 말할 때가 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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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흙, 림원섭 작성일17-03-13 05:18 조회2,766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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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제 말할 때가 되였는가?

엄청나게 억울하고 또 원통한 우리민족의 약 1400년 역사 그중에 제일 악마인 친일, 친미 사대 매국 역적 인 다까끼 마사오/오카모토 미노루/박정희가 1979년10월26일 날 고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총에 의헤서 죽었던 때 태권도의 몇명 개척 사범님들은 아르젠틴아 차코(Chaco) 시에서 태권도 세계 대회 를 마치고 뒤돌아가던 때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국제 공항에서 박정희 사망을 들으며 모두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던 때다.

그리고 1979.12.12 군사반란이 육사 11기생 출신들인 전두환과 노태우에 의해서 이뤄지고1980년 5.18 광주 대 학살이 미국의 허락하에 한국은 암흑 시대로 육사와 보안사와 낙하산, 공수부대 출신들이 정권을 잡고 왕왕 할 때다.

1956년5월에 태권도가 생길때는 공산주의를 때려잡자고 만들어진 이 태권도가 24년 후 한국인들은 절대로 가셔는 않되는 땅 북녘에 가게 되였다. 우리 시대에 태권도를 이 지구에 다 깔기 위해서 앞으로 모든 공산주의 나라들에 보급하기 위해선 먼저 북조선에 보급이 선착순이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평양에 갔다. 이때  한국에서는 못가게 쌩 난리를 부렸다.

그때가 바로 1980. 9월12-20일까지 ITF 태권도를 북조선에 소개코져 시범단이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시시콜콜한 뒷바라지까지 무보수로 스톡홀름에 살고 있는 난 엄청나게 고생했다. 이 16명 시범단은 모스코바를 경위하여 평양에 도착 평양과 원산에 태권도 시범을 성황이 소개했다.

이런 태권도가 이 지구 방방곳곳에 척추 다 달토록 보급한 위대한 태권도 개척 사범님들의 이름은 단 한명도 없고 단 한 나라도 개척하지 않고 오직 그 개척 사범들에게 도복, 책, 단증만을 팔아 먹고 산 최홍희 이름만 기록된 정직하지 못한 책을 읽고 또 분노했다. 그책이 바로 2004년 4월6일에 발행한 저자 정재훈 평양출판사로된 ’절세의 위인과 태권도’라는 책이다.

그 다음해 1981년도에 고 박정태 사범이 조선 태권도 국제사범 제1기생을 가르쳤다. 몇년후 ITF 사무 총장 이 박정태는 최홍희를 쫓아내려고 하다가 자신이 쫓겨났다. 다시 시작되여야하는 제 2기생, 1981년 12월 28-9일경에 카나다 ITF 최홍희 총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것도 오밤중에 -

다짜 고짜로 박정태가 배가 아파서 평양에 제2기생을 가르칠 수가 없다. 그러니 림원섭 니가 늦어도 1월2일까지 평양에 빨리 가서 제2기생을 가르치라 했다. 박정태 사범이 아프다는 말이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난 급히 갔다.

북유럽 태권도에 꼭 필요한 본인은 뒤로하고 불이났게 평양에 가서 제2기생을 1982년1월3일부터 하루 8시간씩 평양 체육관에서 국제 사범 교육을 4단을 기준으로 가르쳤다. 또 따로 그 학생들은 4시간 씩 6월30일까지 운동을 했다고 한다.그러니까 6개월간 완전 태권도 기계로 만들어지던 때였다. 이때의 여러가지 일들을 다음에 표현하리라!

그 다음해엔 오지리 비엔나에 10월경에 가서 그해 겨울 국제 태권도 연맹(ITF) 본부를 손가락에 동상이 걸리면서 까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준비를 하던 여러가지 거짓말 도사들 이야기들을 또 다음에 표현하기로 하겠다.

그 때가 아마 1984년 3월 초 어느날 최홍희 총재는 나에게 말했다. 니가 낙하산, 공수부대 출신이니 서울에 가서 태권도 통합을 할 것인지 않할 것인지 좀 알아보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면서 북한 사람들이 알면 곤란하니 비밀로 갔다 오거라! 만약을 위해서 혹시 알아 물어보면 어머니가 위독해서 갔다 왔다고 해라는 방법까지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3월14일이 림통일 막내자식 첫돌 잔치 하루전 13일날 서울로 갔다. 그래서 세계 태권도 연맹 실무자들과 만나 토론을 한것은 ITF ’틀은 받아준다. 그러나 총재자리와 명칭은 바꿀 수가 없고 또 태권도 본부도 서울에 둔다는 것을 받고 비엔나에 뒤돌아온 난 그대로 최홍희총재에게 보고를 했다. 그랬더니 최홍희 첫 말은 너 무슨 물을 먹고왔냐는 것이다. 그리고 날 ITF에서 잘렸다.

그래서 ITF에서 제일 공로가 나만히 많은 자 나와보라고 했다. 난 월남 다낭지역과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 북 사범교육에 또 여기 ITF 본부까지 내 이름으로 차렸지 않는가고 말을 했다. 이때 나의 직책은  ITF 사무차장, 경리, 심사 및 홍보위원장 직을 맞고 있었지만 봉급도 받지 못하고 잘였다.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내가 뭤을 잘못했는가를 계속 분석하며 나 자신을 보려고 무단히 노력을 했다. 그러나 나의 잘못이 있다면 ITF 본부를 차리면서 북조선인 최부장이라는자와 최홍희총재와 중간에 끼여서 사무실 차리는 경비 문제로 실갱이를 벌린 것뿐이 없다. 이 핑계 저핑계 거짓말들은 날 분노케 했다. 신의가 없는 양쪽의 거짓말들은 지금도 사지가 떨닌다.

또 있다면 최홍희 총재가1953년 제주도에서 29사단장을 할 때 획득한 한석봉 글씨를 일본에 거액으로 팔아 고생하는 개척 사범들의 도장을 차려줄 것이라고 철석 같이 약속을 어기고 스위스 은행에 적금해둔 돈이 있지 않는가고 그 돈을 내놓으라고 독촉한 것이 미운 털이 박힌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니 나는 눈에 낀 가시였으랴!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날 자르는 방법이였다라고 보아진다. 그리해서 최홍희는 나를 나무에 올라가게 열심히 도와줘 놓고 거이다 올라가니 흔들어 떨어트렸다. 그리고 북에 악선전으로 자기 위치를 돈독하게 하였다고 본다. 나는 최홍희의 불의들을 덮어주는 희생양이 되였다.

그자료가 ’태권도와 나’라는 최홍희 자서전에 기록되여있다. 이 책 상하 두권의 책에 태권도가 코리아 (한국) 것이 아니고 중국 철학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중국것이라는 것과  한국에 자기 동료들 똥장군 들의 비리들의 폭로와 모든 위대한 태권도 개척 사범님들을 헐뜯고 매도한 글들뿐이다.  누어서 가래침을 밷었고 손바닥도 아니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렸다.

19년 동안 희대의 사기꾼이요, 8.15후 탈북하여 남쪽에서 미국의 개였던 최홍희를 부지런히 먹여살렸던 이 개척 사범 순진한 림원섭은 ITF를 억울하게 잘여 떠난 그때가 1984년 5월 25일이다.

그리고 2008-9년경 ITF 총재 장웅과 2017년 현 총재 이용선과 같이 비엔나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난 ITF로 뒤돌아오기를 바랬으나 이들은 즉시 준비라도 한자들처럼 이대로가 좋습니다라고 동시에 두 북 사람들은 말을 했다. 이때 나의 느낌에는 이들에게는 민족통일이요 하는 것은 다 장식품에 불과한 거짓으로 판단되였다.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
만약 최홍희가 날 ITF에서 자르지 아니했다면 그 일본 가라데를 200% 도용된 가짜 태권도를 난 창피도 모르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지금까지 ITF 태권도를 하고 있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참 옳그(무도) ’물흙길’도 또 전all 무도 윤리학회도 창시를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자주인이된 것을 말한다.

4350 (2017)년 03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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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나는 태권도에 대한 6가지 증거인 책 역사 자료를 가지고 있다. 
많은 태권도인들 중에 태권도 진실을 파헷칠 사람이 없을줄 알고 글을 썼는 것 갔다.
참 안타깝다.
제발 거짓말 좀 하지 말자!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정식으로
태권도 61년 만에 거짓들이 폭로되기 시작을 했다.

단군님의 댓글

단군 작성일

네책이 진짜라구 누가 믿느냐?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자네는 조선의 공인으로서
3끼 먹고 민족통신, 민족게시판을 보며 뒷조사로 하루가 시작
내 글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수고가 참 많다.
부족한 내 글을 읽어줘 참 고맙다.

그리고 왜!
한국에 국정원이나 조선에 보위부나 똑 같은가?

국정원은 날 빨갱이로 만드는데 주야로 바쁘고 
보위부는 날 빨갱이가 아니라고 만드는데 주야로 바쁘고

언젠가 넌 나에게 물어봤지 조선의 사회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평양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조선을 어떻게 본거냐고 물었던것을 너도 기억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난 대답을 했지!
니가 누군데 남보고 쓰라, 마라 건방지게 굴지 말라고
내가 쓰고 싶을 때 쓸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 질문을 보고 니가 누구인지 알았고
니가 어떤 직업을 가진자인지 알게 해주었다.

니들 위 아래 양쪽은 헛다리를 계속 디디고 산다.
착각하지마라!
나는 정치권력을 보지않고 그 백성들의 양심과 정의를 보는 옳그(무도)인이다.
즉 그 인민들이 추구하는 주체(identity)와 자주 다시말해서 인권이다.
그게 글힘(문무)일 것이다.

물을 필요가 있냐?
위 글을 보면 그 가치를 알 수가 있는데
그 진실을 보지 못하고 넌 의심부터 했다.
그것이 니 직업의 생리다.

네 인생을 착하게 정직하게 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거짓말을 해야하고
약속을 지키지 아니해야하고
남을 헐뜯고 조작 매도해야하고
그래서 가장 천한 직업일 것이다.
권고한다.
어서 바꿔라! 
죄없는 담배만 피우지 말고

내 자료를 얻으려고 질문 자체가 겸손하지 못하고 매우 건방지지만
맨위 사진은 평양 체육관 태권도 첫 시범 요원들의 사진자료고
위 책 사진은 중국 베이찡에서 북조선 어떤 대 사업가가 준 자료를 선물한다.
왜, 너의 진급을 위해서 -
괜히 헛 사람 잡지마라!

하루를 살아도 정직히 착하게 살아라!
거짓말 좀 하지 마라!
겸손하라!
너도 처 자식이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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