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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도발자는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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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흙 림원섭 작성일16-06-26 16:46 조회2,299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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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진실을 아무리 숨기려해도 숨겨지지않는 것이 진실이다. 

1945.9.8일 - 1950.6.24일까지
이 5년 동안
미군이 한국땅에서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을 그냥 상식적으로만 봐도 잘 알 수가 있다.

진실게임님의 댓글

진실게임 작성일

거짓말로 가득찬 북한 6.25전쟁 교육 (50)
by 주성하기자  2016-06-27 11:31 am


한국전쟁 시기 황해남도 신천 지역에 주둔한 미군이 만행을 저질렀다며 만든 신천박물관을 북한 국가책임일꾼들과 성, 중앙기관 당, 행정 일꾼들이 참관하고 있다.
마침 오늘이 6.25전쟁이 벌어진 지 6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벌써 66년이라니 정말 제가 자라면서 귀가 빠지게 배웠던 조국해방전쟁도 이젠 먼 옛날이야기가 돼 가는군요.
 
6.25전쟁 때 총을 잡고 싸웠을 20살쯤 되는 젊은이도 이제는 86세가 됩니다. 한 10년 뒤면 서로 총을 겨누고 싸웠던 세대는 거의 세상을 뜨게 됩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 세대가 가게 되면 과거를 잊은 후대 중에 또 전쟁도 불사하자는 사람이 나올지 모릅니다.
 
그런데 1950년은 북한에선 아직도 생생히 이어지는 현재형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학생들은 6.25전쟁의 영웅들을 배우면서 그들처럼 싸워야 한다는 교육을 받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6.25전쟁의 3대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북한이 내세우는 영웅들은 다 거짓말로 조작된 것입니다.
 
월미도 영웅들은 사실 미군을 딱 1명 부상시킨 것밖에 없고, 오히려 함포에 맞아 중대 절반이 죽고, 절반은 투항했습니다. 영웅과는 전혀 거리가 멀죠.
 
미국 중순양함 빨치모르를 격침시켰다는 해군들의 이야기는 비슷한 이야기조차 없는 거짓말입니다. 미 해군 빨치모르는 그때 미국에 있었고, 북한 어뢰에 맞아 격침된 미 함정도 없습니다.
 
신천학살사건은 신천에 미군이 주둔한 적도 없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외에도 거짓말을 찾아보면 수없이 많습니다. 북한엔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을 매복 습격해 죽였다는 영웅도 있지만, 워커 중장은 교통사고로 서울에서 죽었습니다.
 
북한이 내세운 6.25전쟁 때 나왔다는 533명의 영웅들은 대개 이런 조작의 결과입니다. 전쟁영웅이란 건 정치적 필요에 의해 가공돼 등장하는 일이 많습니다.
 
전쟁터에서 병사는 장군들이 그려준 지도 위의 선과 점을 따라 움직이는 전쟁물자와 비슷한 것입니다.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수뇌부는 영웅을 만들어 따라 배우자고 선전하죠. 이건 어느 나라나 똑같습니다.
 
소련도 2차 대전 때 이런 조작된 영웅을 수없이 만들어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이 6.25전쟁 최고의 영웅이라고 내세우는 황계광도 사실 총을 일곱 번이나 맞고 화구를 막은 것이 아닙니다. 고지로 올라오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고 황계광 시신 사진도 다 있습니다.
 
남쪽도 그때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북한군 자주포를 파괴하기 위해 수류탄 묶음을 들고 뛰어들었다던 군인이 나중에 알고 보니 도망을 친 사람이던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래도 나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자유로워서 이런 사실들이 뒤늦게라도 수정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거짓을 진실처럼 알고 배우고 있고, 진실을 캐려는 어떠한 노력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6.25를 남쪽에서 먼저 밀고 올라왔다는 거짓말도 그렇고, 전쟁을 김일성의 지휘 아래 북한군이 주도적으로 치른 것처럼 묘사한 것도 그렇습니다. 사실 낙동강까지 왔다 후퇴한 뒤에 북한군은 사실상 괴멸돼서 병력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여러분들이 6.25전쟁 이야기를 들으면 주구장창 1211고지 전투, 351고지 전투 이야기만 듣게 되는데, 전쟁이 과연 두 곳에서만 진행됐을까요.
 
북한군이 워낙 인원이 적고 전투경험이 없으니 동쪽 강원도 촌구석 고지 몇 개만 지키게 한 것입니다. 진짜 치열한 전투는 서부 평야 지역에서 미군과 중국군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김일성이 전쟁을 지휘한 것도 아닙니다. 중국군을 어떻게 김일성이 지휘합니까. 오히려 중국군 총사령관이던 팽덕회는 김일성을 철저히 업신여겼습니다.
 
자기가 중국 내전 때 몇 백만 명을 지휘하던 사람이지만, 김일성은 산속에서 고작 몇 십 명을 데리고 다니던 사람입니다.
 
김일성이가 현대전, 정규전 이런 것에 알짜 무식하니 중국이 미국이 곧 인천에 상륙할 것이란 정보를 말해줘도 대비를 안 하고 있다가 밀려버린 거죠. 중국이 그것 때문에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 의사결정에서 철저히 소외되니 이후 우리 민족은 수백만 명이 더 죽게 됩니다.
 
공개된 소련 측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은 1951년 11월에 벌써 유엔에 “유엔 측의 주장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산하에 부대도 없지, 미군과 중국군이 들어와 싸우는 바람에 나라만 잿더미가 되지 하니 빨리 손 털고 싶었던 것이죠.
 
그런데 김일성이 뭔 힘이 있습니까. 전쟁이 이후에도 2년이나 더 계속되며 참혹한 상처를 남긴 것은 스탈린의 결정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탈린은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계속 싸우면 두 강국의 힘이 소진될 것이고, 그러면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판단해 휴전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2년 동안 북한 땅만 죽어라고 폭격을 받았죠.
 
스탈린이 1953년 3월에 심장마비로 급사해서야 비로써 정전협정 체결이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안 그럼 몇 년을 더 서로 죽여야 했을지 모릅니다.
 
스탈린에 대해 여전히 북한에선 미화하고 칭찬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민족에겐 악마 같은 인간입니다.
 
권력을 잡은 몇몇 인간의 결정에 민족의 운명이 휘둘렸습니다. 중국지원군을 총지휘했던 팽덕회조차 한갓 부속품이었습니다.
 
국방장관까지 하던 그는 말년에 문화대혁명 때 새파란 젊은이들에게 수없이 얻어맞고 대중 앞에서 반동딱지 붙이고 행진해야 하는 등 온갖 수모를 다 겪었습니다.
 
8년이나 감옥 생활하다가 매 맞은 후유증으로 1974년에 죽었습니다. 북한에서 무력부장이니 보위부장이니 하는 자리도 결국 나중에 돌아보면 부속품에 불과한 것입니다. 장성택이 가장 대표적 사례가 아닙니까.
 
지금도 우리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 비극을 되풀이할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고 거짓으로 점철된 역사조작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주좌사님의 댓글

주좌사 작성일

신천에가서 할머니들 앞에서 그런말해봐

주성하-탈북자님의 댓글

주성하-탈북자 작성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형제도 다버리고 조선에서 지은죄가 두려워 노예국에 도망간 쓰레기 주성하. 자기부모형제들에게 침밷는 인긴 말종이다. 허구한날 거짓말만 해대는 불쌍한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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