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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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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흙 작성일15-05-07 16:18 조회1,18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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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로 너무도 훌륭하여 퍼왔다.

중국대륙 회복은 미국의 한국전쟁을 일으킨 최종 목표였다. 1943년11월의 카이로 회담 1945년2월의 얄타회담 등 각종 국제회의에서 중국을 대표하여 장개석이 참석하여 미국을 지지 하였으나 중국대륙을 공산당에 빼앗긴 뒤에는 왜소해진 장개석은 발언권이 약화되어 미국을 지원 할 수 없게 됐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도 미국의 뜻과는 다르게 도출된 것은 지금까지 미국을 지지하던 중국이 빠진 때문이다.

1920년대에 중국은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 일본에게 정복당할 정도로 낙후한 나라였다. 그래서 일본을 굴복시킨 세계 최강 미국은 이렇게 미개한 중국을 손쉽게 정복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였다.

1949년 상반기부터 중국 본토에 대한 군사적 방법을 통한 해결 방안이 마련되었다. 즉, 패전국인 일본을 아시아의 후방 병참 기지로 전환시키고, 반도-대만-베트남을 각각 군사적 진공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며, 최종적으로 중국대륙의 회복을 목표로 한다 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1954년 2월 미국 하원에서 로버트슨 국무차관보의 발언을 통해 사후 확인되었다.
[1] 일본의 병참기지화

- 세계 제2차 대전으로 왜놈들은 쫄딱 망했는데 6.25 침략전쟁으로 미국과 유엔 16개국은 경제가 풀렸고 - 군 기지화된 왜놈들은 발목, 무릎, 허리까지 쭈우욱 펴 부자가 되였다. 또 월남 전쟁으로 갑부가 되였다. 림씀.

<1> 일본 주둔 미군에 대해 전투태세 강화가 있었다.
1949. :제8군 전투단 군사훈련에만 전념토록 조치,
1949, 6월: 제8군의 병력증강을 추진 (7만에서 15만으로),

1949, 6월: 8군단을 극동 공군·해군과 함께 통합된 육·해·공군 통합팀으로 실전 배치.
1949, 8, 8월: ‘험한 지역에서 작전수행할 사단의 훈련을 위해 후지산 근방에 훈련지역을 마련하였다-맥아더’
<2> 일본주둔 미군 군사기지의 대폭적인 시설 확장-보수.

1949, 10월말: 오키나와 기지 실제 주둔병력 수용 수준 훨씬 초과 (한국전쟁 개시 후 정상화)
1950, 2월: 요코스카 해군기지 시설 확장 공사.
1949~1950년 전반기: ‘롤 업(roll-up)’계획 비공식 실행 (8군 보병사단 중무장 조치)

1949, 4, 16일: 대충자금 특별회계법 일본 국회통과 (일본인 조세를 군수품 생산에 전환)
→일본 군수산업을 재생시키기 위해 주력한 미국. <본래 일본의 군수산업은 전쟁도발의 근원을 없애기 위해 미국에 의해 몰수되도록 되어 있었다.> → 그러나 1949년 이후 벌어진 일본의 병참기지화 과정은 한국전쟁 중에 일본이 수행한 역할을 통해 밝혀짐.

 2]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삼기 위한 정치적 조치들  <1> 미국에 의한 일본의 군국주의적 망령 부활기도
→ 재일 한국인에 대한 박해 (한반도에서 군사작전 중 야기될지도 모를 위협을 사전에 제거함) / 1949, 9, 8 : 재일한국인 조직해체, 재일한국인 재산몰수, 간부 추방(맥아더 명령)/ 1950, 3, 3 : 일본내 좌익세력에 대한 불법화 조치 → 1950, 6, 16 : 일본지역에 대해 일체의 공개집회와 시위 금지. (사실상 전쟁 동원 체제 돌입)

[3] 구체화되는 미국의 전략
<1> 애치슨 라인(1950년 1월 12일) 한국과 대만에게 관여 안 하겠다던 애치슨 라인은 ‘우리의 첫 방어 라인으로, 그리고 덧붙여 우리가 그곳에서부터 공산 지배지역의 감소를 모색할지도 모를 첫 공격라인’으로 그것이 공식적으로 담고 있는 내용과 실제 미국의 정책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애치슨라인 선언을 할 당시에 오히려 대만과 한국에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고 있었다.

<2> 1950, 4 : 국방비 증대 비밀리 추진 (중공에 대한 초강경파 덜레스 국무장관 등장과 함께)
<3> 1950, 1, 26 : 한미상호방위 원조협정 체결
(원조를 미끼로 미국이 한국의 내정을 관찰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 합법화 함)
<4> 1950, 6월 : 미 군사고문단의 지도하에 남한군대 10만으로 성장. (국내 치안 유지 수준)

- 침략자 미국은 왜놈들을 시켜서 원산 앞바다 및 각 해상에 지뢰철수부대로 이용했고 선발대 식으로 왜놈 군대들을 투입했다. 림씀.

<5> 1950년 미국 군사 지도자들의 극동지역에 대한 잦은 왕래 - 고무된 이승만의 북진통일론 주장.
<6> 전쟁 준비되지 않은 북한의 군대 - 1949년 말까지 방어 형 군대였으나, 1950년 공격용 군수물품 수입 (북진하려는 남한에 대한 대응, 1950년 7월말 완료 계획), 6.25 당일 동원계획이 수립되어 있지 않았음.

<타임> 등을 발행한 대표적 우파 언론인 헨리 루스 등 차이나 로비 세력은 한반도를 위험한 장소나 곤경에 빠진 곳으로 보지 않고 중국을 자유화하는데 꼭 필요한 <전투지>로만 생각하였다. 즉, <훨씬 더 큰 전쟁> 즉, 중국과의 전면전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한국전쟁은 대만으로 쫓겨 간 장제스의 국민당 친미세력이 다시 중국대륙을 탈환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절호의 찬스였다.

맥아더에게 한반도는 애초에 일본의 방어진지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는 한국 상황에 무지 했고 한국인을 깔봤던 점령군 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모든 걸 맡겨놓고 이승만이 대통령에 취임할 때 잠시 서울을 방문한 것을 빼면 그 때까지 단 한 차례도 한국을 찾지 않았다.

 맥아더가 세운 비밀 작전 계획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미국의 공군력을 동원해서 중국의 항공 기지와 산업 시설, 그리고 만주와 동북지역의 군수시설을 파괴한다. 둘째, 미 해군을 동원해 중국의 남해와 황해의 해안 항구들을 포위 공격한다. 셋째, 대만의 장개석 군대를 파견해 중국 남부를 기습, 점령하게 한다.

마이클 샬러에 따르면, 맥아더의 궁극적인 관심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위대한 조국 미국이 아시아에서 승리하길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을 패배시켜야만 했다. 한국은 중국을 패배시키기 위한 기회로서만 의미가 있었다. 따라서 전쟁은 사실상 중국 공산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확대되면 중국에 내란을 일으켜 국민당 정권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맥아더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대만을 방문해 장개석과 회담을 가졌다. 회담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중국과의 전쟁에 대해서 논의했을 것이다. 장개석은 그 전부터 대만군을 한국전쟁에 참전시키겠다고 제안해 온 터였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갑자기’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완전히’ 끝난 역사의 한 토막이 결코 아니다. 한국전쟁은 해방이후 우리 민족이 기울여 온 통일국가 건설의 노력이 좌절되면서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된 것이며, 또한 미국의 대 동아시아 전략의 산물이다. 중공 봉쇄정책이 포기되기 이전에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였던 모든 분쟁은 바로 미국의 군사전략과 결정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일본의 재무장,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군사기지 설치를 둘러싼 미국과 아시아 민족 간의 끊임없는 충돌 등은 미국에 의해 장기간에 걸쳐 연출되는 각각의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의외로 빨리 끝나서 엄청난 군수물자 재고로 군수업체들이 파산에 몰리고 특히 군수식품(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군량미)은 썩어나서 대서양과 태평양에 갖다 내버려야 했을 지경이라 새로운 전쟁이 절실히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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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는 미국은 우리 동족 5백만을 살인한 악마들이라는 것을 아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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