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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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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흙 작성일15-03-21 08:01 조회22,02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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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이 글이 너무도 훌륭하여 퍼왔습니다.

6.
한국전쟁의 원인은 냉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냉전은 미국의 팽창주의를 실행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미국은 1866년 8월 함선 ≪셔먼≫호를 타고 우리나라에 침략의 첫 발을 들여 놓은 때에 벌써 평양에까지 침입하여 인민들의 재물을 강탈하고 부녀자들을 능욕하였으며 대포와 총을 마구 쏘아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그 후 미국은 ≪챠이나≫호, ≪쉐난도아≫호 등 함선들을 연이어 침입시켜 우리나라를 정복해 보려고 날뛰면서 온갖 야수적 만행을 감행하였다. 20세기 초부터 미국은 일제의 조선강점을 적극 지지하여 미주의 독립운동 단체들을 탄압하였고 장지연과 전명운 등 항일독립투사들을 처형하였다. 미국의 외교관 ‘스티븐스’는 일본의 한국 침략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였다.

 1948년 2월 5일에 군정장관 A.L. 러치가 미군 철수설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한 이틀 후에 발생한 2.7 사건은 1948년 5월10일로 예정된 남한만의 단독 총선을 앞두고 미군정 지역에서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반대하여 일어났다.
조선의 분할 침략 계획을 실시하는 유엔한국위원단을 반대한다. 남조선의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한다. 양군 동시 철수로 조선 통일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우리 조선 인민에게 맡기라. 국제 제국주의 앞잡이 이승만, 김성수(동아일보의 사주)등 친일 반동파를 타도하라.

 경상남도 밀양군에서는 2월 7일 이른 아침에 농민들이 지서 두 곳을 습격하여 경찰이 발포로 맞서면서 10여 명이 사살되고 100여 명이 검거되었다. 합천군에서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농민들이 지서를 공격하여 역시 100여 명이 검거되었다. 이와 유사한 충돌이 전국에 걸쳐서 일어나 2월 20일까지 2주 동안 진행되었다. 전체 참가 인원은 약 200만 명이며, 이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은 100여 명, 투옥된 사람은 8,500 명 정도로 추산된다.

 1948년 5월로 예정된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을 앞둔 2월 9일 백범 김구는 〈삼천만 동포에게 읍 고함.〉 라는 제목으로 단선단정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는 등 전 국민이 단선단정을 반대하였다. 이렇게 전 국민의 반대 속에서 탄생된 정권이 대한민국 이승만 친일파 정권이었다.
1948년 창군 당시의 군 수뇌부 인맥은 대부분 일본군·관동군 출신이었고 미군정에 고용됐던 친일세력 들이 그대로 정권 상층부에 자리잡고 있어 민중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였다.

악랄하게 굴었던 일제 앞잡이들이 해방후에도 그대로 경찰 조직에 기용되어 치안을 맡아 애국적 인사 들을 탄압하였고 반정부 기운도 여전하였다. 미군정이 관동군 출신을 한국군의 구성의 주도세력 으로 삼았던 것은 일제 때 만주에서 중국 인민군과의 전투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대륙을 회복을 위해 그들의 경험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미 군정청의 자금에 의해 운영되는 친일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를 배출한 단체)의 폭력에 시달리던 제주에서 남한 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의미하는 5.10 총선을 반대하여 일어난 1948년의 제주도 4.3 항쟁과 제주항쟁을 진압하란 명령에 불복해서 일어난 여수·순천의 반란, 그리고 뒤이은 야산 유격대 등으로 남한의 민중들은 저항했다.

서북청년단이란!
서북청년단은 주로 이북의 불의한 주지들이나 개신교, 감리교,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극우 반공단체로 북녘에 항일투사님들의 정권이 들어서 김일성 주석께서 토지를 가난한 인민 들에게 무상 분배하니 종교인들 즉 민족에 대 역적 죄인들인 친일파들과 또 지주, 기독교 인들이 살기 힘들자 남하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8.15 후부터 제주도 4. 3때에도 엄청나게 살상한 인간 백정들이다. 이게 바로 북녘 출신 보수기독교 목사들과 뉴라이트 회원들의 뿌리다. 이들이 남녘에 불의한 친일파들과 지주들과 친일 기독교인들이 서로 짝짝꿍이 되여 오늘에 숭일, 숭미, 사대 매국 역적들로서 민족평화 통일을 쌍지팽이를 짚고 반대하며 앞장서고 있는 인간쓰레기들이다. 서북청년단 단체 본부는 서울 영락교회였고 이 교회 창립자가 한경직 목사다.

이 서부청년단 기독교 자취는 오늘에 새누리당과 조중동들의 머리속에, 외교, 내무, 범무, 정보, 검찰, 경찰, 국방 군인 똥별들의 머리속에 이명박의 머리속에, 지만원, 전원택, 정규재, 김동길, 조갑제, 유시민, 김문수 머리속에, 유명환, 현인택, 김태영의 머리속에, 보수 기독교 불교 뉴라이트 머리속에, 심지어는 체육인들 머리속에, 해외동포 평통위원들의 머리속에 깊쑥히 뿌리 내리고있다.

확실한 역사적인 근거를 두고 옳은 소리를 하면 빨갱이라고 매도한다.
사실은 빨갱이라는 말이 혁명가란, 뜻인줄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림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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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1월 30일 대한혁신청년회, 함북청년회, 황해회청년부, 북선청년회, 평안 청년회 등 이북 출신 청년회를 통합하여 결성되었다. 위원장은 1946년 2월에 월남한 선우기성이었으며, 활동자금은 한반도 서북부 출신 실업가들과 미군정청 고위관리들, 그리고 이승만 계열의 대한 독립촉성국민회에 의존하였 다.[1] :261~264 서북청년회의 사무 실은 한국 민주당 본부가 있는 동아일보 사옥에 있었다고 한다. [1] :261~264

1947년 대동청년단이 결성되자, 선우기성 중심의 합류파는 대동청년단에 가입하였으 며, 문봉제 중심 의 재건파는 이승만의 친위대 역할을 하게 되었다.[1] :261~264 [2] :53~54 그러나 독자적으로 서북청년단의 간판을 사용하던 이들도 있었다.

한편 서북청년단 해체 요구가 나오자 장택상은 강력하게 반발하였다.[3] 조병옥 역시도 치안 상의 문제를 들어 서북청년단 해산을 반대하였다.[3][4] 1947년 3월 3.1절 당시 활동과 관련해 장택상은 서북청년단에 5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3]

1973년 문봉제는 증언을 통해 선우기성이 장택상에게 불려가 쌀한가마니에 해당되는 액수의 봉투를 받았다고도 했다.[3]한편 좌파와의 무력충돌에서 승리하자 장택상은 그들에게 특별히 잔치상을 차려 주기도했다.[3] 한편 한민당· 이승만· 김구로부터도 후원을 받았다. 서청 자금의 대부분은 서북 출신 재산 가들이 주로 지원하였다.[3] 그러나 최창학· 박흥식 등의 경우에는 협박을 통해 자금을 얻어내기도했다.[3]

일부는 군으로도 들어왔다. 조선경비대 통위부장 류동렬, 경찰청 경무부장 조병옥, 서북청년 회위원장 선우기성 사이에 합의가 있었고, 서북청년회 내부에서도 대동 청년단으로의 합류파 와 재건파 사이에 분열과 반목이 있으면서 제3의 길을 선택한 서청원이 있다고 한다. [2] :171 –

’다음 백과사전’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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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서북청년단의 본부는 서울 영락교회
서북청년단 단체의 장은 한경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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