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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4권 27.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 리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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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3-29 18:03 조회1,8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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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리  영  숙


우리는 1934년 겨울부터 계속 유격대를 따라다니면서 원호사업을 하였다.

대엽자와 보마정자의 수림속에서 스빠산즈와 소남하의 밀림속 가는곳마다에서 우리는 밀영을 짓고 유격대와 함께 살아왔다.

놈들의 《토벌》이 심하면 우리는 또다시 이 수림에서 저 수림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렇게 우리는 1938년 겨울까지 지내왔다.

1938년, 이해는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당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항일유격대에 의하여 심대한 타격을 받은 일제는 보청, 부금, 호림지방에다 《토벌》거점을 두고 대대적인 병력을 동원하여 우리의 밀영들을 침습해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는 후방밀영들에 남아있을수 없게 되였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그때까지 후방밀영에서 생활하고있던 우리 후방가족들은 1938년 12월에 군부의 지시에 의하여 이곳 다할라즈밀영으로 모여왔다.

그때 나에게는 어머니와 4살먹은 딸애가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시 안전지대에로 옮겨가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상부에서는 싸울수 있는 사람들은 무장대오를 따라가도 좋다고 우리에게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순간 나의 심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할수 있다는 기쁨으로 하여 높이 고동쳤다.

나의 앞에는 유격대오를 따르느냐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와 어린애를 따라서 안전지대에로 가느냐 하는 두 길이 놓여있었다.

나는 서슴없이 전자의 길을 택하였다. 나는 나의 가족들에게 그처럼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나의 아버지를 죽인 놈들을 반드시 복수하리라고 굳게 결의를 다진적도 한두번만이 아니였다. 그렇지 않아도 일단 혁명을 위하여 나선 이상 비록 녀자의 몸이지만 직접 손에 무장을 들고 놈들과 싸우고 싶었던것이다. 그러한 나는 반드시 유격대에 입대할 기회가 오고야말리라고 굳게 믿고있었다.

나는 그렇게도 바라고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져서 유격대에 가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거리여 도무지 마음을 진정시킬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떠나자고보니 가족들과 헤여지는것이 또한 서운했다. 잠시라도 떨어져서는 살수 없을것만 같던 그들과 헤여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이 길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그런 길이라고 생각할 때 나의 마음은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밤 나는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함께 잠자리에 눕게 되였다. 나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하여 도무지 잠을 이룰수 없었다.

떠나기전에 어린아이에게 무엇인가 해주고싶어 나는 다시 일어나앉아 짐을 풀어헤치였다. 짐을 풀어헤치고 천쪼박을 찾는 나의 눈앞에는 눈보라 휘몰아치며 뼈를 에이는듯한 추위에 련사흘씩이나 굶은 어미등에 업혀서 배고파 울던 어린것의 가엾은 정상이 떠오르는것이였다.

나는 어린아이를 어떻게 해서나 좀 따뜻이 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솜버선을 깁기로 했다. 나는 솜동복에서 골고루 솜을 빼내고 헝겊쪼박을 모아 어린아이의 솜버선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버선을 만드는 나의 손이 떨리며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이 밤이 새면 래일은 이 아이와 영영 갈라지는것만 같아 마음은 자꾸만 울먹해졌다.

나는 잠자는 어린애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군 하였으나 보면 볼수록 더욱 보고싶은 마음을 어찌할수 없었다. 울다가도 적들이 온다는 말만 들으면 울음을 딱 그치고 나의 곁으로 말없이 달려와 안기던 이 아이, 원쑤들이 총창으로 나를 위협하던 때에도 그 작은 손으로 나를 꼭 붙안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매여달리군 하던 이 아이와 내 어찌 잠시인들 떨어져 살수 있단 말인가.

나는 세상 모르고 자고있는 어린애를 뚫어지게 보면서 어린애의 머리를 쓰다듬어도 주고 입을 맞추고 볼을 비비기도 하였다. 자고있는 어린아이의 숨소리와 따뜻한 체온이 나의 가슴에 정겹게 스며들었다. 벌써 밤은 훨씬 깊어 새벽이 가까와오는것 같았다. 나는 바느질을 하는 일손을 재촉하면서 이 밤이 좀더 길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시간은 사정없이 흘렀고 지난날의 추억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토벌대》놈들이 달려들어 나의 아버지를 총살하고 어머니게 행패질하며 우리를 끌고가던 일, 유격대를 따라서 놈들의 《토벌》을 피하여 그 험한 수림속을 뚫고 걸어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가는것이였다.

그중에서도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혁명투사 김춘하동무의 그 숭고한 모습이 떠올라 나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그리고 그의 음성이 나의 귀전에서 방금 울리는듯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어느덧 몇년전의 회상속에 깊이 잠기여버렸다. …

그것은 1936년 늦은 가을에 있은 일이다. 당시 나는 5명의 동무들과 함께 대엽자구에서 20리 떨어진 왕수평이라는 골안에 재봉대공작을 위하여 밀영을 짓고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곳에서 《토벌대》놈들의 습격을 당하여 나와 다른 5명의 동무들이 체포되여 토산자감옥에 감금되였다.

놈들은 우리에게 며칠동안 혹독한 심문을 다한 끝에 《무엇때문에 산에서 그렇게 고생하겠는가.  도시에 내려와 가족들을 데리고 편안히 살고싶지 않는가. 어서 산으로 간 남편들에게 편지를 써서 내려오게 하여라.》고 하면서 회유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놈들이 하는 수작이 너무도 어이없고 저주로와서 《산에서 나서 산에서 자란 사람이 어떻게 도시에서 살수 있겠는가.》라고 비꼬아 말하였다.

놈들은 1937년 설날에는 《연회》까지 벌려놓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활》을 거듭 강요했다.

그러면서 놈들은 《유격대대장》을 데리고왔는데 그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병원에 입원시켰으니 너희들이 만나서 간호해주어야겠다고 우리에게 말하였다.

《유격대대장》이라는 말에 우리의 가슴은 뜨끔하였다. (참말로 유격대대장이 놈들에게 체포되여 왔단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자 잠시도 지체함이 없이 달려가보고싶었다. 그러나 한편 놈들이 무슨 간계를 꾸미고 우리를 유혹하는지 적지 않게 의심도 들었다. 우리는 놈들의 강요에 이기지 못하는척하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유격대대장》에게로 갔다. 가보니 그곳은 병원인것이 아니라 병감(병영안의 감옥)이였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제하면서 병감문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 우리앞에 벌어지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하여 우리 마음은 떨렸다. 의혹과 공포가 뒤섞인 마음으로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순간 피비린 냄새가 코를 콱 찔렀다.

방안은 침침하고 어둑컴컴하였다. 방안을 주의깊이 살피다가 한 구석에 눈이 미치자 나는 흠칫 놀라지 않을수 없없다. 맨 세멘바닥에 짚을 깔고 헐어떨어져 걸레처럼 된 요포로 반신을 가리운 해골처럼 된 사람이 누워있지 않는가.

이때 나의 머리에는 (교활한 놈들이 우리를 죽은 사람이 누워있는 방에 밀어넣고 가두려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피뜩 들었다.

그런 다음 순간, 나는 누워있는 사람이 진짜로 우리 사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여 한발자국한발자국 그에게로 다가갔다. 누운 사람의 얼굴은 피와 상처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옷은 갈가리 찢겨졌고 드러난 살들은 검붉게 부어올랐다. 화상을 입은데다가 모진 고문에 시달린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입을 꼭 다물고있었다. 이를 악물고 모진 고통을 참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살펴보면 볼수록 어디선가 꼭 본적이 있는 그런 낯익은 얼굴이였다.

잠시후 나는 그의 몸을 그러안고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용감한 유격대원이며 우리 후방밀영에 자주 드나들면서 기쁜 소식을 전해주군 하던 김춘하동무였다.

《아, 김춘하동무.》 나는 저도모르게 큰소리를 치면서 그를 불렀다. 춘하동무는 눈을 떴다. 그는 기쁘고 놀란 눈빛으로 우리를 자세히 보더니 다시금 눈을 감으며 신음소리를 내였다.

우리는 이때에야 비로소 놈들의 간교한 술책을 알수 있었다. 놈들은 우리를 이곳에 보냄으로써 우리와 우리 남편들의 운명이, 유격대원들의 운명이 결국에는 어떻게 되는가를 똑똑히 보라는것이였다. 그렇게 하여 우리에게 공포를 줌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음흉한 술책이였다.

나는 격분을 참지 못해 눈물을 삼켰다. 당장이라도 이 소굴을 뛰쳐나가 원쑤를 백배천배로 갚으리라고 결심했다.

우리모두가 말없이 춘하동무의 얼굴을 들여다보느라니 잠시후 그도 슬며시 눈을 뜨고서 우리를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터진 입술을 떨며 겨우 알아들을수 있는 나지막한 소리로 띠염띠염 말하는것이였다.

《놈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그리고 그는 이를 갈았다. 그의 두눈에서는 증오의 불길이 타번지고있었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였다. 우리는 급히 그를 진정시키고 수건에다 찬물을 적시여 이마에 얹어주었다.

그는 우리가 우는것을 보자 울지 말라고 하면서 놈들에게 절대로 굴복하지 말것과 유격대원답게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것을 말하였다. 그의 한마디한마디는 나의 가슴을 찡 울려주었고 목메여 무엇이라 말할수 없게 하였다.

병감에서 나온 우리는 그날 밤 그의 모습을 눈앞에 그리면서 온밤 뜬눈으로 새웠다. 불처럼 뜨겁고 뜨거운 그의 말, 사람의 가슴을 틀어잡고 놓지 않는 그의 말은 나의 마음속에 무진장한 힘과 용기를 샘솟게 하였던것이다.

이처럼 놈들이 꾀한 술책은 역효과를 가져오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눈치채지 못한 원쑤들은 다음날부터 계속 한사람씩 춘하동무의 방에 들여보냈다.

어느날 나는 또다시 병감에 들어가게 되였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그를 만날수 있는 마지막기회로 된다는것을 알지 못하였다.

춘하동무는 나를 자기 곁에 가까이 앉혀놓고 손을 꼭 잡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말하는것이였다. 《동무들이 그립소. … 그리고 동무들과 함께 더 싸우지 못하고 죽는것이 분하오. 참말로 원통하오. … 그러나 나는 울지 않을것이요. …죽을 때까지 떳떳하게 살 작정이요.… 혁명이 이것을 나에게 요구하고있으니까. 이것을 지킨다는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큰 행복이요. …》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홍조가 떠돌고 웃음어린 안광이 빛나고있었다. 그후 우리는 다시는 그를 만날수 없었다.

깊은 회상에 잠겼던 나는 창문이 훤히 밝아올무렵에야 깨여났다.

나는 두손을 모두어 굳게 잡고 마음속에 맹세를 다지였다. 김춘하동무는 우리와 우리 후대들의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싸우다 희생되였다. 그는 죽는 마지막순간까지 투쟁속에서 행복을 찾았다.

나도 그처럼 투쟁의 불길속에서 행복을 찾자, 마음을 크게 먹고 오로지 그가 그처럼 바라고바라던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싸움의 길로 떳떳하게 나아가자, 이것이 내 귀여운 어린것, 내 사랑하는 어머니를 참으로 기쁘게 하는 길이 아닌가.

나의 가슴은 부풀어올랐고 나래돋힌 새마냥 훨훨 날것만 같았다.

나는 그날 낮에 길 떠날 차비를 끝마치고 어머니에게 유격대오를 따라가게 되였다는것을 말씀드렸다. 그때까지도 내가 차마 떠나가랴 여기였고 또 그렇게 믿으려고 애쓴 어머니는 나의 이 말을 처음에는 곧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애지중지 고이 길러온 머리채를 잘라서 어머니에게 기념으로 드리면서 《어머니, 이걸 받으세요. 그리고 승리하여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아무쪼록 몸 건강히 계셔주세요.》하고 말했을 때야 나의 결심을 믿어주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어린애는 내가 맡아주마. 안심하고 가서 잘 싸워라. …》하고 목이 메여 더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나는 어린애의 헌 치마를 기념으로 가져가기로 하고 짐에 넣었다. 그리고 어린애에게 솜버선을 신기였다.

날이 어둡자 우리는 유격대원들과 후방가족들이 서로 헤여지기로 되여있는 강변으로 향하였다. 나의 등에 업힌 어린애는 이따금 추워서 깨여나군 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이제 좀더 가면 할머니한테 업혀서 가야 한다. 울어서는 안된다고 알려주군 하였다.

사실 《토벌대》놈들에게 발각될 우려가 있어서 말도 귀속말로 하는터이라 어린애들의 울음소리는 금물이였다. 선잠에서 깨여난 어린애는 내가 타이를 때마다 흐느낌을 딱 멈추고 잠잠해있었다.  그리고 울지 않겠노라고 대답까지 하였다. 이 말을 듣는 나의 마음은 아팠다.

우리는 깊은 산림속눈길을 헤치면서 한 30~40리나 걸어왔다. 우리는 거기서 서로 헤여지게 되였다.

나는 어린애를 어머님께 넘겨 업혀드렸다. 딸애는 그때 깨여났으나 잠자코 할머니한테 업히여 머리를 등에 파묻고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부디 잘 가라고 하고 그앞에 머리숙여 절하였다. 그리고 내 아기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들여다보았다. 이 순간에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라고 몇번이고 다지였건만은 흐르고흐르는 그 눈물을 나로서는 막아낼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 눈물이 비애의 눈물이 아니요, 희망과 행복을 기약하는 뜨거운 맹세의 눈물임에야 어찌하랴싶어 나는 어머님품에 머리를 묻고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눈물을 훔쳐주면서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 그날만을 믿고 억세게 살아나가겠다.》 라고 하였다. 우리는 헤여졌다.

눈덮인 강을 건너 멀리 사라지는 사람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여러분, 안녕히 가십시오. 사령관동지께서 우리 혁명을 이끄시는 한 좋은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것을 한시도 잊지 말고 살아가십시오. 그날을 위하여,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이 몸은 이를 악물고 싸우고 또 싸우렵니다. 원쑤를 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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