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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4권 26. 리화순동무의 최후 - 황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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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3-28 13:03 조회1,8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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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화순동무의 최후

황  순  희



나는 때때로 우리 소년단원들의 우등불모임에 참가한다.

그런 날 밤이면 나는 우등불가에 앉아서 못견디게 안겨오는 지난날의 생활을 더욱 방불히 눈앞에 그려보군 한다.

내가 연길현 왕우구유격근거지에서 아동단사업을 지도하던 1933년 그 시기에도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의 전투승리를 축하하는 우등불모임을 자주 가지군 했다.

그때에 우리들은 우등불가에 모여서 오늘과 같은 휘황한 세상이 반드시 오리라는것을 굳게 믿고 그날을 노래하며 춤추었다. 오늘은 그 념원이 실현된 조국의 따뜻한 품속에서 우등불모임을 가지는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가에서 붉은넥타이를 휘날리며 노래하고 춤추는 소년단원들의 그 귀여운 얼굴들이 나의 눈앞에는 어느덧 지난날 아동단원들의 슬기로운 모습으로 변해지군 한다.

그중에서도 가슴뜨겁게 회상되는것은 조국을 위하여 마지막 끝까지 용감히 싸우다 희생된 나어린 투사들의 영용한 모습이다.

내가 여기에 단편적이나마 소개하려는 리화순동무 역시 그러한 나어린 투사들중의 한사람이다.

혁명적가정에서 태여난 리화순동무는 철이 들자부터 아동단조직에 참가했다.

그후 아동단분단장의 책임을 지게 된 그는 남보다 몇갑절 더 부지런했고 매사에 모범적이였다.

실로 그는 자기 모범을 통하여 분단원들을 앞으로 이끌었고 동무들을 극력 방조하였다. 만일 분단원들가운데서 누가 넥타이나 옷차림을 단정하게 거두지 못했을 경우에는 지적하기전에 그 동무의 옷차림을 잘 거두어주는것이였다.

그리고 화순동무는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성미가 강했고 동무들사이에는 의리가 두터웠을뿐만아니라 례의범절이 또한 깍듯하였다.

그는 항상 웃는 얼굴이였다.

곤난할 때 우울해하는 동무들이라도 있으면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에게 명랑한 기분을 안겨주기에 힘썼다.

부드럽고 인정많은 화순동무는 또한 동무들을 제 몸같이 아끼고 사랑하였다.

1933년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유격근거지인 왕우구에 일제《토벌대》놈들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다급한 보초대의 통보를 받은 근거지인민들은 부랴부랴 산에 오르고있었다.

그런데 어린애를 집에 둔채로 나물캐러 산에 갔던 한 어머니가 《토벌대》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정신없이 마을로 내리달리고있었다.

사람들은 때가 늦었으므로 그를 억지로 만류해가지고 산으로 올랐으나 어린애어머니는 그냥 마을로 내려가려 했다.

사람들은 이 어머니의 심정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한사람이라도 놈들에게 붙들리는 날에는 전체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수도 있으므로 눈물을 삼키면서도 그를 만류하여야 했다.

그 어머니 역시 이것을 알고있으므로 나중에는 주먹을 부르쥐고 무서운 번민을 참아내고있었다.

마을쪽에서 원쑤들의 총소리가 울려왔다. 그러자 어린애어머니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불타는 시선으로 마을쪽을 주시하고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산기슭 풀숲이 흔들거리더니 무엇인가 움직여오는것이 보였다. 우리는 바싹 정신을 가다듬으며 그쪽을 주시했다. 잠시후에 나는 그것이 화순동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등에 무엇인가 업고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여 기여오고있었다. 사람들속에 끼여있던 나는 그에게로 뛰여갔다.

그의 등에는 어린애가 업혀있었다.

나는 그를 끌어안았다. 어린애어머니가 정신없이 달려왔다. 어린애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며 제 아기와 화순동무를 번갈아보기만 했다. 화순동무가 어머니에게 아기를 안겨주며 《어서 젖을 물려야겠어요.》 라고 말했을 때에야 그 어머니는 《오냐…어쩌문 너는 애기에미보다 더 낫구나.》 하며 눈물겨워했다. 그때 화순동무와 그 어머니를 둘러싼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제 동생이면 그럴수 있겠소, 속이 그만큼 깊은걸 보니 치마는 둘렀어도 앞으로 큰 사람이 될 틀이라니.》, 《애들까지도 이러는걸 보니 좋은 세상이 멀지 않아 오겠수다.》

알아본즉 이날 화순동무는 《토벌대》침입에 대한 정보에 뒤이어 마을사람들의 피신을 방조하느라고 집집을 살피며 뛰여다니였다. 그러다가 문득 어린애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가 한 집에서 우는 어린애를 업고 산으로 뛰여오르기 시작한 때는 이리떼같은 놈들이 벌써 마을어구에 들이닥치여 함부로 총질을 하는 때였다. 그리하여 화순동무가 그 어린애를 구원하여 피난처까지 이르는 과정에는 참으로 어렵고 아슬아슬한 고비들이 많았던것이다.

그후 1933년 8월의 찌는듯 무더운 어느날이였다.

거의 살이 드러날 지경으로 된 누데기를 입고있던 우리 아동단원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신 명령을 받은 유격대아저씨들이 목숨으로 구하여준 새옷을 입고 무척 기뻐들 했다.

이때 나는 아동단분단장이였던 화순동무와 함께 회의에 참가하러 북동으로 가게 되였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는 길에 북동에 있는 아동단원들에게 나누어줄 옷감을 힘자라는대로 걸머지고 길을 떠났다.

우리가 출발할 때 근거지인민들은 이른새벽부터 달려든 적《토벌대》를 피하여 산에 오르고있었는데 우리도 그뒤를 따라서 길을 떠났다.

키를 넘는 새밭을 헤치며 우리들은 풀에 묻힌 오솔길을 찾아 북동으로 넘어가는 산마루에 오르기 시작했다.

새초에 함빡 내린 아침이슬은 얼마 안가서 우리의 온몸을 물중태로 되게 하였다. 유격대아저씨들이 목숨을 걸고 마련해준 새옷을 갈아입고 가는터라 옷이 젖는것이 여간 가슴아프지 않았다.  《난 참 속상해요. 이것이 글쎄 어떤 옷이라고요. 난 정말 이슬이 미워서 못견디겠어요.》화순동무는 이슬에 함빡 젖군 하는 치마자락이며 옷섶을 꼭꼭 쥐여짜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10리가량 걷자 어느덧 훤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우리는 붉게 타오르는 아침노을을 바라보며 산등성이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물에 젖은 병아리처럼 우리 둘이 마주앉아 숨을 돌리려는데 지척에서 《누구요.》하는 소리에 뒤이어 《그게 태운동무의 동생이 아니요.》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그제야 나는 숨을 후 내쉬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태운이란 나의 오빠의 이름인데 당시 유격대원이였던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수고한다고 하면서 손을 잡아흔들었다. 그들은 둘이 왔는데 한 동무는 적경찰기관인 공안국에서 일하다가 놈들의 야수와 같은 만행에 분격하여 그 소굴을 뛰쳐나와 유격대에 입대한 동무였다. 그래서 전우들은 보통 별명으로 그를 《공안국》이라고 불렀다.

그는 전투중에 용감히 싸우다가 부상을 당하여 전우의 부축을 받으면서 북동으로 가는 길이라 했다.

우리는 그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떠나기전에 나는 오솔길에서 좀 떨어진 숲속에 소변보러 들어갔다.

이때 《왁》하는 소리와 함께 《적이다.》 하는 소리가 터지였다. 그 순간 나는 거의 기계적으로 새밭속에 납작 엎드렸다. 내가 엎드린 거의 같은 순간에 원쑤들의 한 부대가 미친개처럼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왔고 게사니같이 고아대는 꽥꽥 소리와 함께 화순동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을 죽이고 엎드려 그냥 원쑤들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나 키를 넘는 새초가 빽빽이 들어선지라 전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원쑤들은 그 즉석에서 화순동무를 고문하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 죄다 어디로 갔느냐.》, 《이래도 몰라.》총창으로 찌르며 줴치는 원쑤의 잔인한 소리에 섞이여 《악》하는 화순동무의 비명이 뼈속을 후비며 나의 가슴을 쳤다.

《유격대가 어디 있냐 말이다.》 원쑤의 볼멘 소리에 뒤이어 《모른다.》 하는 화순동무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또다시 총알처럼 날아왔다.

《죽어도 몰라.》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아.》하는 화순동무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고문을 당하는동안 나는 거의나 정신을 잃은듯 싶었다. 총창에 찔리우는 그의 비명을 들을 때마다 그 피묻은 원쑤의 날창이 나의 뼈속까지 후벼내는듯하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원쑤놈들아, 이제 보자. 우리는 아동단원의 이름으로 네놈들을 반드시 복수할테다.)

마지막 피 한방울이 진할 때까지 화순동무는 원쑤를 맞받아 싸웠다. 그리고 이렇게 웨쳤다.

《…나는 이제 죽는다. 나는 아동단원답게 죽으련다. 내 이 원쑤를 갚아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네놈들이 멸망할 날은 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나는 그것을 심장으로 믿고있다. … 조선독립 만세!》

저주롭고 간악한 두방의 총소리가 울리였다.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말았다.

한참후에야 정신을 차린 나는 화순동무가 누워있는 곳으로 갔다.

어슬어슬해오는 가운데서 그의 얼굴을 본 나는 몇번이나 그의 이름을 부르고불러도 다정한 그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수 없었다. 나는 그의 목을 그러안은채 목이 메여 울었다.

2명의 유격대원이 왔다. 그들은 화순동무의 시체앞에서 말뚝처럼 서고만 있었다.

침통한 나머지 이를 갈아 씹던 《공안국》 동무는 펄썩 땅바닥에 주저앉아 화순동무의 몸을 안타깝게 흔들면서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이윽고 자기의 전우를 향해 부르짖듯 말하였다.

《이래두 참잔 말이요. 예, 차라리 이 몸이 죽으면 죽었지 나는 말이요, 이런걸 못 참겠소. … 어허이구.》

《공안국》동무는 주먹으로 땅을 치며 울기 시작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화순동무가 고문을 당하는 동안 두 유격대원사이에서는 격렬한 의견충돌이 일어났었다. 놈들의 만행에 격분을 이기지 못한 《공안국》동무는 증오가 서린 눈을 번뜩이며 그냥 놈들에게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동이 무모한 희생만 초래하게 된다는것을 이미 많은 시련을 통하여 알고있는 그의 전우는 참아내야 한다고 엄격히 주장했다.

사실 많은 인원으로 이리떼처럼 몰려온 놈들의 무리를 단 둘이서 대항해낼수는 없는노릇이였다.  게다가 《공안국》동무는 중상을 입은 몸이니 더욱 그러하였다. 만약 이들이 무모한 모험을 시도하여 화순동무도 구하지 못하고 둘 다 희생되게 될 때 그 손실은 더욱더 뼈아픈것으로 될것이였다. 그러므로 큰 복수를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이들은 참고 또 참아야 했다.

나는 유격대아저씨들이 화순동무에게 새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당부가 있는 비밀장소로 뛰여갔다.

원쑤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가버렸다. 그 불길은 마치도 복수와 분노로 하여 뒤번지는 우리들의 마음과도 같이 어둠을 태우며 공중높이 타오르고있었다.

화순동무의 영웅적인 죽음에 대한 비보는 어느새 온 마을 사람들에게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마치도 성난 파도와도 같이 그가 누워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화순동무의 장례식이 거행되였다. 애도의 일념과 원쑤에 대한 불타는 복수를 맹세하는 추도사가 끝났다. 이때 군중들속을 헤치며 나오는 한 어머니가 있었다.

화순동무가 위험속에서 구원하여준 그 어린애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분하고 애석하고 눈물겹도록 가슴아픈 심정을 어찌 했으면 좋을지 몰라 사람들을 한참동안이나 보기만 하더니 마침내 이런 말을 했다. 《여보시오들, 이 가슴이 터질것만 같수다. 이 애 원쑤를 꼭 갚아줍시다. 이 애가 늘 바라고바라던 우리 조선을 하루빨리 광복합시다.…》

군중들은 그의 말에 한결같이 호응했고 원쑤격멸의 엄숙한 맹세를 다지였다. 사람들은 나어린 투사 리화순동무와 마지막으로 영결하는 마당에서 격분과 애석한 울음으로 목메이며 추도가를 불렀다.

그렇다. 비록 그의 몸은 죽었으나 혁명정신은 살아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혁명앞에 떳떳이 바친 고귀한 그의 넋은 살아서 영원하리라.

리화순동무는 비록 14살의 어린 몸이였지만 조직의 비밀을 지켜 끝까지 영웅적으로 싸웠다.

나는 오늘 이 순간에도 화순동무의 다정한 목소리를 몸가까이에 듣는것만 같다. 때문에 나는 소년단원들의 우등불모임에 참가할 때마다 그속에서 수많은 《리화순》동무를 찾아본다.

그는 비록 오늘과 같이 행복한 사회를 보지 못한채 눈을 감았지만 그가 그렇게도 애타게 념원하던 사회가 바로 오늘과 같이 이룩된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마련해주신 사회주의조국의 보다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화순동무의 고귀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항상 준비하며 힘차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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