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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4권 25. 혁명의 첫 시련 - 왕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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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3-27 12:03 조회1,9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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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첫 시련

왕  옥  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할 때마다 나에게는 선참으로 가슴뜨겁게 떠오르는 곳이 있다.

그곳은 내가 무장을 잡기까지 어린 몸으로 혁명의 첫 시련을 겪던 곳인데 그곳은 바로 목단강이다.

원쑤들의 발굽아래 신음하던 목단강의 자그마한 비밀아지트에서 나는 18살의 나어린 지하공작원의 한 사람으로서 참된 진리와 우리 조직의 백전백승의 힘을 배웠고 강철같은 공청조직의 대오에 들어섰던것이다.

하기에 지금도 나의 눈앞에는 목단강에서의 생활이 삼삼히 떠오른다.

1935년 당시 북만의 정세는 대단히 복잡했다. 그중에서도 목단강은 더욱 그러했다. 강도일제는 쏘련을 침공할 목적으로 목단강지구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고 쏘만국경에 무력을 증강하기에 피눈이 되여있었다. 목단강에는 놈들의 헌병대, 경찰, 밀정 등이 우글거리고 가지각색의 백색테로가 감행되고있었다.

한편 놈들은 쏘만국경에 무기를 끌어들이기 위한 철도부설과 군수물자(주로 휘발유, 포탄) 등의 비밀저장을 위한 공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하고있었다.

여기에는 많은 로동자들이 최저한도의 기아임금을 받으며 고역에 시달리고있었다.

뿐만아니라 놈들은 극히 비밀장소에 동원되였던 로동자들을 공사가 끝나자 무참히 생매장하군 했다. 이와 같은 놈들의 만행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심해갔다.

놈들의 발악적만행이 심해짐에 따라 지하당조직에서는 목단강지구에 비밀아지트를 확장할 필요성을 느꼈던것이다.

1935년 10월초 어느날 밤이였다.

《옥환동무, 지하공작이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고도의 경각성과 능숙한 사업방법이 요구됩니다. 이 임무를 수행하자면 훌륭한 혁명적예술가가 되여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에는 자기의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조직의 비밀을 고수할줄 아는 그런 의지와 리성이 필요합니다. 나는 옥환동무에게 이 어렵고 힘든 과업을 맡기려 합니다. 어떻습니까?》

당책임자동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나는 처음 받는 과업이였으므로 경험없는 나로서는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좀더 생각해보겠어요.》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당책임자동지는 이튿날 아침까지 확답을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돌아갔다.

나는 밤새도록 곰곰히 생각했다. (왜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였을가. 단지 무거운 책임성에서 나어린 내가 자신이 없다는 점에서만일가. 그렇지 않으면 다소라도 나에게 비겁성이 있어서가 아닐가. 내가 어떻게 혁명의 첫걸음을 내디디였던가?…)

이러저러한 생각이 꼬리를 물자 나의 눈앞에는 지나온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겨우 7살나는 나와 12살나는 오빠를 지주집 머슴살이로 보내면서 땅을 치고 통곡하던 아버지의 얼굴이며 뼈빠지게 일을 해도 이구실저구실 붙여가며 매질하던 악귀같은 지주놈의 상판이 떠올랐다. 빚값으로 나를 데려가겠다고 날치던 지주놈의 야수같은 상판도 떠올랐다. 그 더러운 놈에게 끌려가기보다 차라리 깨끗한 몸으로 죽어버리자고 밤새껏 울며 남몰래 아편을 마련했던 일이며 마지막작별인사를 하러 갔을 때 혁명의 길로 인도해주던 4촌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옥환이, 그렇게 값없이 죽는다는건 비굴한 생각이야. 우리는 바로 우리를 못살게 구는 그런 지주놈들과 일제를 반대해서 싸워야 해.》하고 타이르던 다정스러운 언니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나는 그때 부녀회책임자앞에서 뭐라고 맹세했던가?

천백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와 같이 억울한 처지에 있는 우리 인민들을 위하여 오직 혁명의 길에 충직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일것이 있는가, 조직에서 하라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여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에게는 자기도 모를 힘이 솟아났고 금시에라도 뛰여가서 당책임자동지를 만나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었다.  

나는 날이 밝자 설레이는 가슴을 억누르며 당책임자동지를 찾아갔다. 나의 결심을 다 듣고난 그는 힘있게 나의 손을 잡으며 말하는것이였다.

《옥환동무, 잘 생각했소. 훌륭하오. 동무가 겪은 그런 일을 이 세상에서 영영 없애버리기 위하여 더욱 대담하게 침착하게 공작할것을 부탁하오.》

나도 당책임자동지의 손을 굳게 잡으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결의를 그앞에서 굳게 다지였다. 이리하여 나는 부녀회사업으로부터 지하공작으로 넘어가게 되였다.

나는 목단강시내에 들어서자 시내에서 약 5리가량 떨어진 곳에 장소를 정했다. 목수집 뒤채에 붙은 조그마한 방 하나를 얻고 거기에다 가게방을 차려놓기로 하였다. 가게방을 꾸리고 반지, 락화생,  담배, 학용품, 성냥 등 몇푼어치 되지 않는것들이지만 벌려놓으니 그럭저럭 겉으로는 내가 장사치로 된셈이였다.

물론 락화생, 담배, 반지 등은 우리의 비밀공작수단으로도 리용되였다.

우리의 비밀련락은 거의 엷은 미농지에 써서 락화생껍질속 또는 담배속에다 넣어 전달되군 했다.

한편 내가 있는 좁은 방안에서는 야밤을 타서 당책임자와 공청책임자가 함께 앉아 사업토의도 하군 했다.

이럴 때면 의례히 나는 밖에서 보초를 섰다.

우리의 활동이 순조롭게 진척됨에 따라 우리 상급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삐라공작에 대한 지시를 주었다.

놈들의 후방을 교란시키며 탄압속에서 신음하는 인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혁명조직을 확대할데 대한 임무를 더 활발히 하기 위하여서는 교외철도부설공사장뿐만아니라 놈들의 심장부인 목단강시가 한복판에다 삐라를 붙일 필요성이 제기되였다.

그러나 목단강시내와 같이 놈들의 수사망이 물샐틈없이 뻗쳐있는곳에 삐라를 붙인다는것은 보통일이 아니였다.

그달 중순경 어느날 이른아침이였다. 당책임자동지가 나에게 찾아왔다.

그는 방안에 들어서자 조용하고도 엄숙한 어조로 말하는것이였다.

《왕동무, 그간 동무의 련락임무는 훌륭하게 수행되고있소. 조직에서는 동무를 높이 평가하고있소. 그런데 이번에는 한계단 더 어려운 일을 맡아야겠소.》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서 말씀하세요. 힘자라는대로 꼭 해내겠어요. 》

나는 흥분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좋소. 이 삐라를 오늘 밤중으로 붙여야겠소. 그런데 그 장소는 시내에서도 제일 번잡한 백화점거리에 말이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삐라뭉치를 품속에서 꺼내주었다.

나는 삐라를 받자 곧 온돌밑에 파묻어놓은 단지속에 감췄다.

당책임자동지가 돌아가자 나는 곧 삐라를 붙일 장소를 정찰하기로 했다.

나는 중국 귀부인으로 가장하기 위하여 고급 다부산자(중국사람들이 입는 고급의상)를 입었다.

거무직직한 날씨는 금시 눈이 쏟아질것만 같았다.

겨우 나이 18살밖에 안되는 내가 귀부인으로 변장하고 거리에 나서니 어딘가 어색한것 같기도 했지만 나는 설레이는 가슴을 억제하며 귀부인냄새를 내기에 애썼다.

백화점거리에서는 기마헌병들이며 순경놈들이 개싸다니듯하였다.

놈들의 시선이 나와 부닥칠 때마다 나는 혹시 놈들이 무슨 기미를 알아차리지나 않았는가 해서 가슴이 뜨끔하기도 했다. 그러나 될수 있는대로 태연한 태도를 지으면서 앞으로 삐라를 붙일 장소를 봐두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였다.

초보적인 정찰이 끝날무렵에 흐렸던 날씨는 눈을 퍼붓기 시작했다. 흐리고 캄캄한 날씨일수록 나의 행동에는 유리하였으므로 나는 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 밤이 깊어지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밤이 깊어가자 바깥날씨는 눈보라로 변하였다.

밤이 이슥히 깊어지기를 기다리여 나는 털외투에 여우목도리까지 두르고 백화점거리로 향했다.

나는 목적지까지 무사히 빠지기 위하여 인력거를 잡아탔다. 사나운 눈보라에 밤도 깊은터라 거리에는 인기척이 드물었다. 다만 미친개처럼 싸다니는 기마헌병놈들의 말발굽소리만이 밤의 정적을 깨뜨리고있었다.

나는 백화점거리에 이르러 인력거에서 내려 뒤골목으로 사라졌다.

이미 봐두었던 장소에 삐라를 붙이려 할 때였다. 옆골목에서 불쑥 순경놈이 나타났다. 몸을 피할수도 없어서 누구를 기다리는듯이 태연스럽고도 위엄성있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

순경놈은 몇번이나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별말없이 뒤골목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마 나의 옷차림과 위엄성으로 보아 큰 귀족집며느리로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첫번째 장소에다 아교풀로 삐라를 붙이고 재빨리 골목으로 몸을 피했다. 웬일인지 온몸에선 진땀이 쭉 빠지고 가슴은 방망이질하듯 두근거렸다. 밤이 깊어 통행인이 드문터라 지나치는 사람들의 의아스럽게 쳐다보는 시선이 모두 나에게만 집중되는상 싶었다. 나는 최대한의 힘을 내여 대담하게 이골목에서 저골목으로 재빨리 빠져다니며 삐라뭉치를 전부 붙이였다. 밤이 깊어갈수록 눈보라가 한결 더 세차게 날렸으나 고도의 흥분과 긴장때문에 나는 추운줄을 몰랐다.

나는 다시 큰길에 나섰다. 가로등에 희미한 밤거리를 나는 태연하게 걸었다.

무사히 집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긴장이 다소 풀리자 며칠째 불을 지피지 못한 방안의 찬공기가 온몸에 엄습함을 느꼈다. 나는 솜저고리를 막 쓰고 자리에 누웠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힘들고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여낸 기쁨이 샘물처럼 온몸에 솟아 퍼졌다.

날이 밝으면 그 삐라앞에서 눈알이 뒤집혀 자빠질 원쑤놈들의 기겁한 모양이 눈앞에 떠오는가 하면 이번에는 그앞에서 두주먹을 부르쥐며 힘을 얻은 인민들의 모습이 선히 떠올랐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니 나자신도 처음으로 혁명의 길에 나선 그때보다 퍼그나 자랐구나 하는 긍지감을 느꼈다.  나는 이런것을 생각했다. (혁명에 바치는 불같은 정열과 대담성앞에는 그 어떤 난관도 있을수 없다.)

다음엔 더 어렵고 힘든 일을 자진해 맡으리라고 다짐하면서 나는 앞으로 해나갈 일들에 대하여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예견한대로 목단강시내에는 대소동이 일어났다. 놈들은 미친개처럼 함부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행패를 했다. 어떤 사람은 큰 소리로 그 삐라를 읽었다해서 붙잡혀갔다.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라!》

《일제는 당장 물러가라!》

《공산당 만세!》

이 구호들은 단순한 글자인것이 아니라 한자한자가 그대로 소리없는 폭탄이였다.

삐라사건이 있은후 놈들은 2중3중으로 수사망을 치고 목단강시내를 물샐틈없이 뒤졌다. 그와 함께 우리들의 지하활동도 최고도의 긴장속에서 진행되였다.

삐라공작이 수행된 며칠후인 10월 20일, 이날은 나에게 있어서 한평생 잊을수 없는 날이였다.

나와 못지 않게 기쁨으로 하여 흥분된 공청책임자동지는 방에 들어서자 어쩔바를 모르며 나의 손을 굳게 잡고 흔들기만 하는것이였다.

《옥환동무, 우리 공청조직은 동무의 가맹청원을 비준했소. 충심으로 축하하오.》

그는 이렇게 나를 축하하며 기념으로 사전 한권을 주었다.

그다음 그는 이번 삐라가 나붙은후 철도부설공사장 로동자들과의 사업이 한결 더 활기를 띠게 됐으며 조직대렬은 날로 확장되여간다고 말했다. 그리고 놈들은 대혼란에 빠지고있다는것을 말하면서 《옥환동무, 우리는 계속 경각성을 높여 조직에서 맡겨준 과업에 더욱 충실합시다.》라고 나를 고무해주었다.

나는 그가 떠난 후에도 오래도록 방안에 서있었다.

지난날의 옥환이가 아니라 나는 공청원 옥환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욱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공청원이라면 어떤 곤난속에서도 자립적으로 일하고 투쟁할줄 아는 인간이 돼야 할것이 아닌가.  그러나 현재의 나로서는 그 준비정도가 너무나도 어리지 않는가. 아마 공청책임자동지도 공부를 하라고 사전을 기념으로 주었을것이다. 그러니 남보다 몇배의 노력을 해서 앞선 동지들의 수준을 따라가야 한다. 나는 이렇게 자신에 대한 결론을 내리자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공청책임자동지가 기념으로 준 사전속에서 하루에 10개의 단어를 외울것을 다짐하였다. 그리고 더욱 자기의 사상을 단련하기에 노력하리라고 결심했다.  

나는 방안을 치우고 하루의 공작을 위하여 가게방문을 열려고 밖에 나갔다.

나는 이 땅에 붉은기를 휘날릴 그날을 생각하면서 나의 가게방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아침해살이 눈부시게 나래를 펼치였다.

한때는 바로 이렇던 목단강거리가 오늘은 화창하고 행복한 인민의 거리로 되였다. 바로 이 거리에서 나는 일하며 자랐고 공청원의 영예를 지녔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목단강이라고 하면 그 삼엄한 경계망속에서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무어주신 혁명조직의 넓은 품에  안겨자라던 지난 나날들을 잊을수 없다. 바로 그곳에서 받은 공청원의 첫 기쁨이 심장속에서 사라지지 않듯이 공청원의 첫 발자국을 떼던 목단강의 활동장소도 나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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