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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4권 18. 잊을수 없는 사람들 - 오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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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3-13 02:03 조회1,9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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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 없는 사람들

오  재  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인 1939년 9월경 내가 속한 경위련대가 돈화현 요차부근에서 활동하던 때의 일이다.

이때 나는 심한 화상을 입은데다가 열병까지 앓게 되여 거의 운신조차 못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나는 부대에서 후방사업을 보던 왕동무의 간호를 받으며 돈화의 깊은 수림속으로 들어갔다.

워낙 열병도 열병이려니와 목덜미에서 허리밑까지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로 화상을 당했으므로 온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고 숨쉬기가 힘들어서 나중에는 의식을 잃고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내가 다시 의식을 회복했을 때에는 낯선 집에 누워있었다.

《정신이 든가 봐요.》하는 젊은 녀성의 말소리가 꿈속에서처럼 들려왔다. 나는 그제서야 곁에 서있는 왕동무며 주인집 부인인듯한 젊은 녀성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나는 일어나 앉으려다가 그만 아픔에 도로 누워버렸다. 부인이 얼른 다가와서 나를 편히 눕혀주며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가만 누워계세요. 인제 곧 약을 마련할테니 조금만 기다리면 돼요.》

부인과 남편인듯한 젊은 사람이 서로 눈짓하고 방에서 나갔다.

《마음을 놓고 여기서 치료를 받소. 저 부부는 우리와 련계를 가지고있는 좋은 동무들이요.》하고 왕동무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왕동무는 오늘 떠나오?》

당시 겨우 17살이던 나는 무엇보다 내가 대오에서 떨어진데다 또 앞으로도 얼마동안을 동무들과 헤여져 혼자 밀림속귀틀집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서운한 생각이 앞서서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왕동무는 마치 나의 이러한 심정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오동무, 우린 어디 가나 동무를 잊지 않을거요. 이제 동무의 몸이 완쾌되면 내가 데리러 오겠소. 아무 근심 말고 병을 고치시오. 병을 고치는것도 전투란걸 잊지 마오. 전투에서 잡념은 금물인것처럼 병에서도 딴 근심은 금물이요. 반드시 나아서 일제놈들을 족치겠다는 확신을 갖고 병치료에 전념하시오.》

좀 있으니 그 집 부부는 어디에서 구했는지 술 한병을 가지고와서 밀가루반죽을 이기기 시작했다.

《이게 독을 아주 잘 뽑아내요.》하고 말하면서 부인은 반죽을 이겨서 내 상처에 고루고루 붙여주었다.

나는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던 등에서 시원한 감촉을 느끼며 말없이 누워있었다.

《화상엔 오소리기름이 제일이라는데…》하는 주인의 말에 부인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걸 꼭 얻어와야겠어요.》

성심성의로 나를 위해 근심하고 보살펴주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나에게 무한한 위안과 힘을 북돋아주었다.

오후에 다시 신열이 올랐다. 나는 그날 밤을 어떻게 지새였는지 모른다. 고열에 허덕이다가 간신히 눈을 떠보면 고콜에서 타는 불빛에 비친 부인의 걱정과 시름에 찬 모습이 안겨왔으며 잠시도 쉬지 않고 이마에 얹어주는 부드러운 손길을 감촉하였다. 혼미한 의식속에서도 나는 그에게 미안한 생각과 함께 전염성열병환자인 나의 곁에 그가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것이였다.

《누님.》하고 나는 그를 불렀다. 부인은 말없이 묻는듯한 상냥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발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나는 전염성열병을 앓고있습니다.》

부인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면서 나에게 말했다.

《동무는 나를 누이라고 부르면서 사실은 누이로 여기지 않는가 봐요. 그래 진정한 누이라면 앓는 동생을 어떻게 버릴수 있어요. 더우기 유격대에 있는 우리의 아주 귀중한 동생을 …》

나는 그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이곳저곳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니던 때 앓아도 누가 선뜻 약 한첩 사다줄수 없던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내가 이런 은정에 안기고보니 저도 모르게 두줄기의 뜨거운 눈물만이 량볼을 적시며 자꾸만 흘러내렸다.

부인은 모든것을 나의 간호에 바쳤다. 그는 나의 곁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으며 나의 사소한 동작이나 지어 눈과 입의 움직임을 보고도 나의 요구를 재빨리 해결해주었다.

나는 오직 이들의 고귀한 은정에 보답하기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병을 고치고 또다시 원쑤격멸의 싸움터로 나서야 하겠다고 마음다지였다.

병마와 싸우는 나날이 흘러갔다. 이미 부대로 돌아갔던 왕동무도 한두번 들렸다. 그러나 뜻대로 병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렇건만 아침저녁 소금물로 상처를 씻어주고 밀가루반죽을 갈아붙여줄 때마다 부인은 내몸에서 열이 내려간다고 우정 기뻐하며 화상도 얼마 안있어 새살이 돋아날것이라고 하면서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에 애썼다. 그러다가도 내가 정 괴로와하는 기색이 보이면 곁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더 참아요. 주인이 오소리기름을 구하러 떠났으니 그것만 마련되면 곧 나을테니까.》

그리고는 조용히 혁명가요를 불러주었다.

며칠이 지나서 주인이 돌아왔으나 오소리기름은 가져오지 못하였다.

《참 딱하게 되였군요. 화상이 아물지 않고 더 악화돼가는 형편이니…》

《좌우간… 래일 한번 또 나가서 구해봅시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저 요새 〈토벌대〉놈들이 심하게 돌아치는데 주의하세요.》

나는 옆방에서 주고받는 부부간의 이런 대화를 들으면서 못내 가슴이 괴로울 지경이였다. 이튿날 주인은 또다시 집을 떠났다.

며칠이 지나자 나의 신열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열병만은 회복기에 들어선것이 확실했다.

그러자 나의 식욕은 전에없이 왕성해지였다. 부인은 이 눈치를 알아차리고 더욱 나의 식사에 주의를 돌렸다. 산속의 가난한 살림살이에 그들인들 무엇이 넉넉하랴.

그러나 부인은 될수록 나에게 많은것을 먹이려고 애를 썼고 내 구미에 맞도록 정성껏 식사를 마련하여주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부인이 자기 외아들이 밖으로 놀러 나간 틈을 타서 빵 하나를 나에게 슬며시 권하는것이였다. 조금전에 아들이 배고프다고 조르던것을 들은바있는 나는 두었다가 그 애를 주라고 하며 받지 않았다. 부인인들 제 아들생각이 어찌 없으랴.

그러나 내가 극력 사양하자 부인은 마치 책망이라도 하듯 언성을 높여서 나에게 말하는것이였다.

《동무는 쓸데없이 고집을 쓰는구만요. 내가 권하는것도 또 동무가 먹는것도 모두 우리 혁명을 위해서라는것을 알아야 해요. 자 어서 들어요.》

나는 엄한 어머니의 책망이라도 들은것처럼 저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나는 다만 이 은혜를 갚는 길이란 몸을 빨리 회복하여 나의 원쑤이자 곧 그들의 원쑤인 일제를 타도하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나는 어서 부대로 가야겠다는 충동이 불같이 일었다. 어느날 나는 부대로 돌아가고싶은 충동에 못이겨 부인이 밭에 나가 일하고있는 틈을 타서 살며시 몸을 일으켜봤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휙휙 돌아서 좀체로 발을 옮겨디딜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고 한걸음두걸음 발을 옮겨디디였다. 이렇게 어기적거리며 문밖에 나서려던 나는 그만 휘청하면서 문턱에 발이 걸려 땅바닥에 엎어지고말았다. 때마침 밭에서 돌아오던 부인이 감자구럭을 내던지고 황급히 달려왔다.

《오동무, 왜 그래요. 어떻게 된 일이예요.》하고 다급히 물으며 나를 부축해 일으켜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엔 대답치 않고 그저 걸어보려고 몸부림만 쳤다. 부인은 나를 부축하여 방안에다 다시 눕혀주면서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난들 왜 동무의 심정을 모르겠어요. 그러나 아직은 일러요. 잘 싸우기 위해선 몸이 더 튼튼해져야 해요.》 그러면서 그 역시 몹시 가슴아파하였다.

그날밤 부대에서 통신원이 왔다. 집주인도 도중에서 통신원을 만나 함께 왔었다. 통신원은 나에게 큼직한 배낭을 내놓으며 몹시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동무, 나는 오늘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고 오는 길이요.》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김일성장군님을!》 나는 여직껏 말로만 들었지 한번도 뵈온 일 없는 김일성장군님이란 말에 가슴이 설레였다.

《장군님이! 장군님께서 이 고장에 계시나요?!》

통신원동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가 그곳에 들렸던 사연을 말하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난 동무의 이야기를 장군님께 말씀드렸소. 그랬더니 그이께서는 이 집 부부에게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동무에게도 아무 념려 말고 몸을 잘 치료하도록 하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선물까지 보내주시였소.》

나는 처음에 그 말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아직 뵈옵지 못한 나에게 어떻게 그이께서 선물까지 보내주신단 말인가. 그러나 배낭속에서 주인집에 보내는 여러가지 물품들과 함께 치약, 치솔, 학습장, 연필 그리고 더우기 오소리기름까지 나왔을 때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 감격, 이 영광, 아직은 유격대에서 이름도 없는 어린 전사인 나에게 베풀어주신 그이의 어버이심정에 나는 그저 눈물을 머금으며 더없는 행복감에 잠겼었다. 나는 그이앞에 달려가서 나의 서슴없는 심정, 아직은 내가 유격대원으로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나 앞으로는 더욱 천백배의 노력과 용기로써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싸워 반드시 혁명승리에 이바지하겠다는것을 맹세하고싶었다.

그날밤 나는 도저히 잠들수 없었다. 부인도 역시 그토록 구하다구하다 끝내 못구했던 오소리기름을 소중히 들고 나의 등에 발라주면서 나와 못지 않게 감격에 사무쳐있었다.

《장군님께서 글쎄 나같은것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해주시다니, 그리고 선물까지…참 얼마나 그이는 인자하신분일가. 난 이 행복을 일생 잊지 않겠어요.》

…이리하여 나의 화상은 2개월만에 비로소 회복기에 들어섰다. 어느날 부인은 나의 등에서 붕대를 풀어내고 상처를 여겨보고나서 환성을 올렸다.

《새살이 돋아났어요. 인젠 다 나았어요.》하고 마치 제일처럼 기뻐하였다. 나도 기뻤다. 나는 부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누님덕분입니다. 누님.》하고 웨쳤다.

그후 나는 누님과 자주 밖에 나와 버섯도 따고 그의 일도 조금씩 도와주게 되였다. 어느날 누님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이제 부대로 가서 일제를 쳐부시고 조선을 광복하는 날 … 그때 동무는 꼭 우리 집에 한번 찾아와야 해요. 맹세할수 있지요?》

물론 나는 맹세했다.

내가 떠나는 날 누님은 눈물을 애써 감추면서 부디 몸조심히 잘 싸우라고 몇번이고 당부했다.

《누님을 꼭 잊지 않겠소.》

나는 겨우 이렇게만 되풀이하였다. 나는 그날 오래도록 서서 나를 바래주던 부인의 모습을 잊을수 없었다.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들이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을 진심으로 돌봐준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고매한 덕성과 높으신 권위에 매혹된데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하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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