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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4권 12. 잊혀지지 않는 강남송동지 - 박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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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3-04 17:03 조회2,2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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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강남송동지

박 영 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은 일이다.

1936년초.

어느날 부대에서는 중요한 작전을 앞두고 당시 무기수리소를 책임지고있던 나에게 20개의 작탄을 나흘어간에 만들라는 과업을 주었다.

이것은 무척 어려운 과업이였다. 거의 맨손으로 20개나 되는 작탄을 나흘동안에 만들어낸다는것도 아름찬 일인데다가 처창즈 동남차에 가서 진대나무숲속에 감추어둔 작탄재료 (재료라야 지질납, 구리도끼, 양철, 가위, 폭약 등속이였다)를 왕바버즈까지 가져다가 거기에 있는 대장간에서 만들어야 하였던것이다.

나는 그때 강남송동무와 함께 일을 하게 되였다.

미혼진에서 떠난 우리들은 날이 저물어서야 처창즈 동남차의 진대나무숲속까지 가닿았다. 여기서 우리는 작탄재료를 힘에 부치도록 잔뜩 걸머지고 그길로 돌아섰다. 그날밤중으로 대장간이 있는 왕바버즈까지 가려고하였다.

그러나 워낙 짐이 무거운데다가 둘이 다 허기증까지 만나고보니 잘 걸을수 없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나는 갑자기 오한이 나면서 열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나의 다리는 휘청거렸고 당장 그 자리에 쓰러질것만 같았다.

남송동무 역시 힘들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으나 지친것만 사실이였다. 그리나 그는 조금도 힘든 기색을 보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나때문에 걱정하는것이였다. 그는 내가 몹시 어려워하는것을 눈치 차리자 《박동무 내 우스운 소릴 하나 할가요.》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터놓기 시작했다.

1932년, 그가 17살되던 때의 일이였다고 했다.

하루는 그가 통신원으로서 련락을 가게 되였다. 그런데 도중에서 갑자기 적들의 추격을 받게 되였다. 마을 어구에 이르러 그는 급히 낟가리속에 몸을 감추었다. 뒤따라오던 놈들이 그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는 총창으로 낟가리속을 돌아가며 찌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총창이 그의 허벅다리를 찔렀다. 남송동무는 얼결에 총창을 옷섶으로 싸쥐였다. 그리고는 무서운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총창에 묻은 피를 옷섶으로 닦아버렸다. 자위단놈들은 암만 찔러봐야 총창에 피 한 방울 묻어 안나오는걸 보자 그대로 가버렸다.

그는 낟가리속에서 기여나오자 상처를 처맨 다음 또다시 련락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떠났다.

그리하여 그는 끝끝내 자기의 련락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던것이다.

그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끝내자 《참말 놈들은 메돼지같이 미련하단 말이야. 차라리 메돼지라면 잡아서 먹기라도 하지 않겠어요. 하하…》 하고 웃으면서 피곤을 다 잊은듯 나직이 혁명가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맥이 없어 그저 눕고만 싶던 나에게 강동무의 이야기와 노래소리는 무척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우선 고개너머까지만 가자.》고 혼자소리로 몇번이고 되뇌이며 걸었다. 거기에는 우리편 자위대의 초막이 있었던것이다.

나의 뒤에서 그냥 노래를 부르며 따라오던 그가 갑자기 《아니, 이 배낭을 보시오.》하고 다급히 소리쳤다.

영문을 모르고 나는 주춤히 섰다. 그러자 남송동무는 《원 이런걸 그냥 지고 가다니… 벗으시오.》하고 나의 배낭을 벗겼다. 미처 손쓸새도 없이 내 배낭을 제 오른편 어깨에 걸친 그는 넌지시 웃어보였다. 그제서야 나는 영문을 알았다. 내가 힘들어한다는것을 눈치챈 그는 벌써부터 나의 배낭을 빼앗을 궁리를 곰곰히 한 모양이였다.

배낭을 도로 빼앗으려고 했으나 그것은 허사였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서 퍼그나 걸어왔다.

앞에서 걷던 남송동무가 갑자기 《령마루다.》하고 큰 소리로 환호를 올렸다.

우리는 급히 고개를 넘어섰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는 어그러졌다. 어제 아침까지 있던 자위대초막은 간데온데 없고 그 자리에서는 한 가닥의 연기만이 맥없이 오르고있었다. 일제놈들의 《토벌》로 불타버린것이였다.

우리의 마음은 허전하기 그지 없었다. 남송동무는 아직도 채 타지 않은 불무지를 헤집고 간신히 타다남은 한줌의 조를 얻어냈다.

령 하나를 넘어서 우리는 그 조를 돌에 문질러서 죽을 쑤었다. 돌이 와작와작 씹히고 탄내가 나는 죽이였으나 하루 한나절을 굶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 죽은 별맛이였다.

그런데 나는 죽물을 마신 얼마후에 그만 꼬꾸라지고 말았다. 나는 당시 돌아가던 장질부사에 걸려들었던것이다.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고 목에서는 역한 단내가 콱콱 올라왔다.

(만약 이대로 쓰러진다면?)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몹시 초조해졌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작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나를 부축한 강남송동무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느라고 한발자국한발자국 세면서 걸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간신히 왕바버즈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도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때문에 우리앞에 남은 시간이란 겨우 이틀반밖에 없었다.

겨울해는 무척 짧았다. 그런데다가 두 사람은 지칠대로 지쳤고 나의 열은 분마다 시간마다 더 높아가기만 하였다.

《가만히 누워서 시키기만 하십시오. 일은 내가 할테니.》하고 남송동무는 자주 나를 제지하였다. 그러나 나는 두 사람이 합심하여 밤낮으로 일해도 끝내기 힘든 이 중대한 과업을 앞에 두고 가만히 누워있을수는 도저히 없었다.

남송동무는 내가 시키는대로 양철판을 자른다든가 메질을 하는 등 힘든 일을 도맡아하였고 나는 앉아서 양철함에다가 폭약을 다져넣어 조립하는 일을 하였다.

남송동무는 비지땀을 흘리며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가면서 일을 했다. 그러다가도 자기가 만든 부속물들을 조립하는 나의 일손도 극력 도와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이틀째 밤낮을 한잠도 자지 않고 일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새벽에 근 절반이나 만든 폭약함을 쥔채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하여 나는 모진 신열에 허덕이면서 며칠을 정신없이 보냈다.  

지나친 고열때문에 정신을 잃은 나는 계속 헛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마치 꿈속에서 헤매듯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어느결엔가 내 옆에는 인자한 어머니가 나타났다. 나의 손목을 잡고 안타깝게 내려다보면서 어머니는 《얘 영순아, 정신 차려라.》하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러자 나는 《어머니.》 하고 애타게 불렀다. 순간 정신을 차린 나는 그 누군가가 까칠까칠한 손으로 나의 손목을 힘있게 잡고있다는것을 알았다. 남송동무였다. 《살았구나.》 하고 그가 기쁨에 넘쳐 소리쳤을 때 나는 그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맺히고있는것을 보았다. 남송동무의 손길이 정녕 어머니의 손길과 무엇이 달랐으랴. 나의 가슴은 메여지는듯 하였다. 나는 남송동무의 손을 힘껏 잡았다.

이때 나는 그의 손이 가위질과 메질로 하여 터지고 찢긴것을 알았다.

《작탄!?…》 하고 나는 눈을 감으면서 이렇게 물었다.

《념려마십시오. 작탄은 이미 통신원동무한테 전부 줘보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때 그의 말이 믿어지질 않았다. 아무리 복잡하지 않다 하더라도 역시 작탄을 만들려면 일정한 숙련과 경험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물으려 했으나 입술이 떨려서 말이 나가지 않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는 줄곧 내 하는 일을 자세히 눈여겨보았다가 내가 정신을 잃은 후에 자기 혼자서 끝까지 해냈던것이다.

그날로부터 열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나는 자주 물을 찾았다. 그러면 그는 언제 어느때든지 끓인 물을 가져왔다.

부근에는 도랑물도 없었다. 그는 눈을 녹여서 물을 마련하는것이였는데 한고뿌의 물을 얻으려면 양철로 만든 식기에 눈을 담뿍 담아서 적어도 열번은 녹여야 했다. 그 물을 다시 끊인 다음 천으로 밭아서 가져오느라고 그는 온밤을 뜬 눈으로 새우군 하였다.

며칠후에 우리를 찾아온 통신원동무는 나를 들것에 눕혀가지고 부대 후방부가 있는 푸르허로 향하여 떠났다.

한총구에 와서 따뜻한 온돌방 아래목에 이불을 펴고 누워 땀을 푹 흘리니 당장 병이 나을것 같이 몸이 홀가분해졌다.

나는 남송동무에게 찬물을 청하였다. 그런데 남송동무는 여전히 물을 끓여서 가져왔다. 나는 간청도 해보고 애원도 해보았으나 막무가내였다. 하는수 없이 나는 통신원동무에게도 집주인에게도 간청해보았으나 그들도 남송동무에게서 어떻게나 강한 다짐을 받았는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해롭다는것을 알면서도 찬물이 너무 마시고싶어서 나는 그에게 《찬물이 아니면 이젠 안마시겠다.》고 일부러 짜증을 내자 그는 웃으면서 《아직까지는 찬물이 몸에 해롭습니다. 그 대신에 미음을 잡수십시오.》 하고 미음그릇을 내미는것이였다.

이날 적들이 기습해왔다.

인민들의 도움을 받아서 부락을 빠져나올수는 있었으나 우리 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몹시 추운 날이여서 손과 발이 꽁꽁 얼어왔고 땀이 밴 나의 의복은 삽시에 빳빳해졌다.

내가 떨고있는것을 보자 남송동무는 몇번이고 《이불이라도 얻어올걸 그랬다.》고 되뇌이였다.

그는 모닥불을 피우려고 애썼으나 생나무여서 붙지 않았고 주위에는 허리를 치는 눈이 깔려있어 마른 나무 가지는 구해낼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자 그는 눈우에 내민 싸리나무가지를 한대두대 꺾어다가 내 앞에 고깔불을 피워주었다.

고깔불은 그 추운 날씨에 비하여 너무나 무력하였고 나를 덥혀주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고깔불에 스민 혁명동지의 뜨거운 심정은 나로 하여금 그 모진 추위를 참고 이겨내도록 하여주었다.

고깔불이 시원치 않은것을 알자 남송동무는 나를 통신원동무한테 맡기고 총소리가 가시지 않은 부락을 향하여 달려내려갔다.

이불을 가지러 내려간다는것을 알고 나는 말리려고 했으나 그는 벌써 어느새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그날밤 나는 자지러지는 총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혹시 남송동무의 신변이 위험하지 않은가 념려하여 줄곧 마음을 조이고있었다. 이 긴장성이 아마도 나로 하여금 그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추위와 아픔을 이겨내게 한것 같다. 여하튼 나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냈다.

남송동무는 이불을 가져왔는데 더우기 나를 눈물겨웁게 한것은 다시 가서 말파리(썰매를 리용한 마차의 일종)까지 얻어온 그것이였다.

나로 말하면 그때 벌써 울 나이는 퍼그나 지났었다. 그러나 동지를 구하기 위하여 제 목숨을 내걸고 적들이 우글대는속으로 뛰여들어가 말파리까지 얻어온 남송동무의 그 심정이 나로 하여금 울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달리는 말파리우에서 바람이 스며들세라 이불을 덮어주면서 연신 《살았구나, 살았어.》 하고 좋아하던 그의 모습은 나의 가슴속깊이 아로새겨졌다.

그때마다 나는 (남송동무를 위해서도 나는 꼭 병을 이겨낼테다.) 이렇게 다짐하군 하였다.

남송동무의 극진한 간호와 동무들의 살틀한 보살핌으로 하여 나는 10여일후부터는 남송동무의 손을 빌지 않고서도 혼자 일어날수 있게 되였다.

이렇게 되자 나는 바깥에 나가보고싶었고 동무들과도 휩쓸리고싶었다. 그러나 내 곁에는 줄창 남송동무가 붙어있어서 나는 꼼짝할수가 없었다.

어느날 나는 너무나도 찬물을 마시고싶어 참다못해 남송동무를 불러놓고 간청했다.

《남송동무, …동무한테 한가지 중요한 부탁이 있소.》하고 내가 말을 떼니 남송동무는 알아맞혔다는듯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무엇인데요?》 하고 되물었다.

《시원한 찬물을 마시고싶소.》 이 말을 듣자 그는 《또 찬물인가요.》 하면서 그냥 웃을뿐이였다. 그래서 나는 《아니, 정말이요. 찬물을 실컷 마시면 당장 병이 뚝 떨어질것만 같소. 》 하고 말했다. 잠시후에 그는 웃음을 그치더니 병이 떨어진다는 말에 끌렸던지 동무들한테 물어보고 오겠다고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참후에 남송동무는 얼음이 둥둥 뜬 찬물을 한바가지 가득 떠가지고 들어왔다.

《자, 실컷 마셔보십시오.》하면서 그는 바가지를 나의 입앞에 갖다대는것이였다. 나는 너무도 기뻐서 그의 얼굴을 다시한번 쳐다보고는 바가지를 잡고 입을 갖다 대였다. 그러나 그가 힘있게 쥐고있기때문에 마음껏 마실수 없었다. 물을 마시려고 힘을 주어 당기는 나의 팔은 부들부들 떨렸다. 바가지를 단단히 틀어쥐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을 마시우는 그의 손도 떨리고있었다.

나는 이렇게 세번에 걸쳐 물을 실컷 마셨다. 금시 속에서 무엇이 뚝 떨어져나가는것 같았다. 한참후에 물에 취하여 나는 그 자리에 쓰러져 자고말았다.

초저녁에 눈을 떴다. 어딘가 모르게 나의 기분은 상쾌하였고 기운이 솟았다.

머리를 짚어보니 열은 간데온데 없이 사라지고 본래의 나로 돌아온것 같았다. (그때에는 이렇게 병이 나은 일이 종종 있었다.)

얼음물이 속안의 열을 송두리채 뽑아간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혁명전우들, 특히 남송동무의 지성에 의하여 나은것이다. 그들이 나의 곁에 있는 한 내 병이 낫지 않을리 만무하였다.

창문으로부터 달빛이 비쳐들어왔다. 뜰안에서는 혁명가요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못견디게 밖으로 나가고싶었다. 내곁에서는 불철주야 20여일간의 병구완에 지칠대로 지친 남송동무가 앉은채 혼곤히 잠들고있었다.

나는 그가 깰가봐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아직도 다리는 떨리였다.

나는 문을 살며시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한 불무지곁에서는 대원들이 구운 감자로 저녁을 치르고있었다. 어쩐지 그 감자가 먹고싶어서 나는 2개를 먹었다. 감자를 먹으니 기운이 버쩍 더 나는것 같았다.

내가 방안에 다시 들어오느라고 문을 열었을 때 문소리에 깬 남송동무가 벌떡 일어서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어디 갔댔어요?》

《밖에 … 남송동무, 나는 감자를 2개씩이나 먹었소.》

그러자 그는 《뭐 감자요?》하고 넋없이 말하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동무들에게 정말 감자를 먹었는가고 묻더니 앓고난 사람에게 음식을 먹일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구운 감자를 쥐고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고나서 남송동무는 방으로 뛰여들어왔다. 그는 나를 탓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나를 와락 그러안더니 방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됐습니다. 인젠 다 나았습니다.》 하면서 나를 붙들고 어린애처럼 기뻐하였다.

《자, 한개 더 잡수시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노랗게 구운 감자를 내 입가에 갖다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를 부둥켜안으며 감자를 깨물었다. 그러자 나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막 쏟아졌고 속으로는 흐느끼기까지 하였다.

어찌 그것이 한알의 감자알이랴. 그속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숭고한 동지애를 따라배워 제 목숨보다도 동지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는 우리 혁명가들의 고귀한 품성이 담겨져있었다. 바로 지금까지 동지를 위하여 죽음도 두려움없이 뛰여들어 만난을 극복하고 동지를 구원한 그의 모든 심정이 그속에 담겨져있는것이였다.

나는 그를 그러안은채 그냥 눈물을 흘리며 그 감자 한알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른다.

다 먹고나자 나는 앓던 사람 같지 않게 온몸이 거뜬해졌다.

나는 참말 이렇게 동지의 뜨거운 사랑으로 오늘까지 살아있다.

하기에 그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오늘도 항상 그와 함께 한 자리에 있는것만 같고 그때 그 일이 마치 어제 그제 같이 회상된다.(그는 그후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함)

혁명적동지애 !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이 사랑은 바로 항일의 나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에게 배워주신것이다.

우리는 가장 어려울 때나 가장 기쁠 때나 할것없이 항상 참된 인간들만이 소유할수 있는 혁명적동지의 뜨거운 사랑으로 살아가자.

이렇듯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사들에 대한 동지적사랑을 따라배워 전우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어려운 난국을 헤쳐나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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