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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4권 11. 대오를 기다리며 - 허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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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2-28 02:02 조회2,1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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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오를 기다리며

허 창 숙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은 일이다.

1939년 6월초에 나는 박경옥동무와 단둘이 요하부근수림속밀영에 남아있었다.

우리 소부대는 오래동안 끊어진 다른 밀영과의 련락을 취하러 떠났던것이다.

《허동무와 박동무는 남아서 밀영을 지키시오. 열흘이면 넉넉히 돌아오겠소.》

소부대책임자인 류동지는 우리에게 부대의 짐들을 맡기였다. 그들은 떠나면서 우리를 위해 배낭들을 몽땅 털어서 두되가량 되는 좁쌀을 남겨놓았다.

그러나 당시 놈들의 《토벌》이 혹심하고 2중3중으로 우리의 활동지대들을 경계하고있던 시기인지라 그들이 돌아올 날자를 기약하기는 곤난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고 식량을 절반 갈라서 한되가량은 비상용으로 보관해두기로 했다. 풀잎과 풀뿌리들로 모자라는 식량을 보충할 작정이였던것이다.

약속한 열흘은 지났으나 소부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닷새가 지나고 보름이 되였지만 역시 소식은 없었다.

우리는 부대가 무사히 돌아오리라는것을 굳게 믿으면서도 만일을 생각하여 밀영에서 500m나마 떨어진 산탁에 따로 풀막을 짓고 짐들을 옮겼다. 산탁에 의지하여 나무기둥을 세우고 봇나무껍질을 덮은 풀막이였지만 이럭저럭 얼마간 비바람을 막아주었다.

이렇게 한달가까이 지나는동안 우리는 산주변의 먹을만한 풀잎들과 풀뿌리들을 다 먹어버렸다. 그것마저 얻기 위해서는 멀리 다른 산에 올라야만 했다.

처음 얼마동안은 풀막옆 고목우에 올라가 밀영쪽을 바라보며 조용히 노래를 부르군 하던 경옥동무도 차츰 시무룩해지고 말수가 적어졌다. 그는 멀리 풀뿌리를 캐러 갔다가 돌아와서는 기운이 진해서 그 자리에 쓰러진채 일어날념도 못하고 멍하니 지내는적도 있었다. 부석부석 부어오른 그의 얼굴과 생기없는 눈을 바라보느라면 나도 모르는사이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것이였다. 하기는 내 몰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남겨둔 쌀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부대가 언제 돌아올지 전혀 알수 없는 형편에서 우리는 더많은 곤난을 예견해야 했고 어떠한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그것을 면할수 있는 밑천을 가지고있어야만 했던것이다. 또한 부대가 돌아와도 놈들의 준동이 심한 때인지라 식량이 없이 돌아올수도 있었다. (악전고투끝에 지칠대로 지쳐 돌아오는 그들에게 그것을 남겨두었다가 죽이라도 끓여주면 얼마나 좋아하랴.)이렇게 생각하니 부대를 기다리는 마음이 한결 더 조급해졌다.

그런데 부대는 왜 돌아오지 않을가. 혹시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애써 불길한 생각을 털어버리였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늦어질수 있으나 부대는 반드시 돌아올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고있는 그 이상으로 이들도 우리를 생각하며 걱정하고있으리라.)

《언니, 우리가 찾아가 보자요.》

한달이 지난 어느날 밤 경옥동무는 맥없이 내 옆에 앉아있다가 불쑥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어딜?》

《부대를…》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나서는 다시금 자신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사실 우리는 그들을 찾아갈래야 갈 방향을 모르고있었다. 본래 지휘부가 있는 곳도 모르고있는터였고 하물며 그 어디를 행군하고있을 소부대를 무작정 하고 찾아떠날수도 없었다. 더우기 책임자는 우리에게 기다리라고했으며 부대의 짐들을 우리에게 맡기고가지 않았는가. 이 밀영을 지키는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전투임무인것이다.

매일밤 앞뒤산에서는 굶주린 짐승들이 울부짖었다. 우리는 만약을 생각하여 피워둔 우등불이 꺼질세라 그우에 나무가지들을 던졌다. 짐승들은 좀체로 물러가지 않고 날이 훤하게 밝아야만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는 그만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 쓰러진채 잠들어버리기가 일쑤였다.

인제는 먹을만한 풀뿌리를 찾자면 골짜기를 건너 먼산에 가야만 했다. 그러나 함부로 골짜기에 내려갈수는 없었다. 이 산림속만 해도 사냥군으로 가장한 특무들이 드나들고있었고 골짜기밑에는 일제놈들이 수시로 나타나는지라 그놈들과 맞다들지도 모를 일이였다. 뿐만아니라 그곳까지 갔다오자면 하루종일 걸려야만 했다.

경옥동무는 부지런히 먹을만한 풀뿌리를 찾으러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많은 경우에 빈손으로 돌아오군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가 몹시 애처롭고 더없이 귀여운 생각이 들어서 그의 손을 꼭 쥐였다.

《며칠만 더 참아보자. 농사군들도 종곡은 머리에 베구 죽는다지 않는가. 오늘이라도 당장 동무들이 식량없이 지쳐서 돌아올지도 모르고 아직 우리는 더 견딜수가 있다.》

나는 자신의 약해지는 마음을 굳세게 추켜세우기 위해 이렇게 다짐하였다.

어느날 아침이였다. 무엇인가 먹을만한것이 없을가 하여 주변을 비칠거리며 돌아다니던 경옥동무가 나를 찾는것이였다.

《허동무, 이리 좀 오세요.》

거기에는 소담한 버섯들이 수두룩하였다. 우리는 먹을수 있는 버섯들을 골라가며 땄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한참 따서 모은즉 퍼그나 되였다. 우리는 일부를 해빛에 널어놓고 나머지를 끓여먹었다.

그러나 한시간도 못되여 나는 창자가 끊어지는듯한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독버섯이 섞여있었구나.) 하고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 나는 배를 그러안은채 땅바닥에 쓰러지고말았다. 배속이 온통 뒤집히는듯 하였다. 이렇게 한참동안 꼼짝 못하고 땅바닥에 굴던 나는 드디여 얼굴도 땅에서 들지 못하고 먹은것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이걸 어쩌나?》하며 처음에는 당황하여 나를 돌보던 경옥동무도 역시 밀려드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땅바닥에 굴기 시작하였다.

《경옥동무.》

나는 몽롱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이렇게 입을 놀려보았으나 굳어진 혀는 말을 듣지 않았다.

《허동무.》

나는 고통으로 이그러진 경옥동무의 목소리를 꿈속에서처럼 희미하게 들으면서 완전히 정신을 잃고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 내가 약간 의식을 회복했을 때는 이미 동쪽에 있던 해가 서쪽 산허리에 있었다. 먼저 생각난것은 경옥동무의 일이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보려고 했으나 손가락 하나 움직일수 없었다. 온몸이 자꾸 땅속으로 꺼져드는것만 같았다.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이래서는 안된다. 이제 다시 누웠다가는 아주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죽을수는 없다. 조국을 찾기 위해 어린애까지 남겨두고 부대에 돌아오지 않았는가. 나도 나려니와 아직 젊디젊은 경옥동무를 살려야 한다. 부대가 돌아와서 전우들과 다시 만날 때까지는 죽어도 눈을 감을수 없다.

나는 있는 힘을 다 모아서 간신히 경옥동무곁으로 기여갔다. 그는 얼굴을 땅에 파묻은채 꼼짝않고 누워있었다. 나는 가슴이 뜨끔하는것을 느끼며 얼른 그를 바로 눕히고 맥을 짚어보았다. 아직 심장은 뛰고있었다.

그를 살려야 하겠다는 일념만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군용밥통을 가지고 샘터로 기여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애써도 몸을 일으킬수 없었던것이다. 가파로운 협곡밑으로 내려가는동안 몇번을 굴었는지 모른다. 옷은 찢어졌고 바위에 부딪쳐서 온몸에 시퍼런 멍이 졌으며 찢기운 살에서는 피가 흘렀다.

간신히 샘터에 다달은 나는 정신없이 찬물을 마시였다. 빈창자에 물이라도 들어가니 살것 같았고 정신이 좀 들었다. 얼마큼 힘을 얻은 나는 군용밥통에 물을 가득 떠들고 다시 산을 기여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올라가지 못하고 미끄러져서 굴러내리는 바람에 물을 몽땅 쏟고말았다. 다시 샘터에 가서 물을 떠와야 했다.

그러나 일어날 힘이 없었다. 그냥 누워만 있고싶었다. 나무가지사이로 보이는 높은 하늘이 자꾸 더 멀어지는것만 같았다. 마치 구름에 실리운것처럼 몸이 둥둥 떠올랐다.

《구름아, 왜 내 몸은 너처럼 가벼이 땅우를 떠돌지 못할가.》

나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들었으면 얼마나 편하랴.

순간 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서 물을 길어가야 한다. 경옥동무를 살려야 한다.》

나는 옆구리가 찢어지는듯한 아픔을 참아가며 한치한치 샘터로 기여나갔다.

이렇게 내가 간신히 밥통으로 절반가량의 물을 간직하고 풀막에 이른것은 이미 어두워졌을 때였다.

경옥동무의 머리를 무릎에 고이고 물을 먹이였다. 정신없이 몇모금의 물을 받아마신 그는 어렴풋이 눈을 떴다.

《허동무.》

그 소리는 모기소리만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잠든듯이 눈을 스스로 감아버리였다.

달빛에 비치운 그의 얼굴은 창백할대로 창백했다. 다시금 혼미상태에 빠져들어갔다.

(낟알기운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간직해둔 좁쌀을 둬숟가락 밥통에 퍼넣고 부랴부랴 마음을 끓이였다.  

《좁쌀마음을 쒔군요. 더는 손을 대지 말자요. 곧 동무들이 돌아올텐데…》하고 그는 내 팔우에 누운채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뜨거운것을 가슴속에 느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저 달을 봐요. 동무들도 지금 어디서 저 달을 보고 있을거야.》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경옥동무는 동무들을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그렇잖구, 저 달을 바라보며 우리를 생각하고있을거야. 부대가 돌아올 때까지 이겨나가자구.》

아닌게아니라 부대와 떨어진 우리는 마치 고아와도 같았다. 부대는 어머니였고 전우들은 형님, 오빠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부대가 얼마나 귀중하며 부대에서 잠시나마 떨어진다는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를 이때처럼 절실히 느낀적은 없었다.

그후 나는 오래동안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였으나 경옥동무는 젊은탓인지 오히려 빨리 몸을 추켜세웠다.

우리는 그 이튿날부터 더는 쌀을 축내지 않고 다시 풀잎을 뜯었다.

풀을 뜯으러 비칠거리며 산을 내려가는 경옥동무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나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우리가 부대에서 떨어진지가 며칠째나 될가? 나는 경옥동무가 장난삼아 나무기둥에 그어놓은 줄을 하나하나 세여보았다. 50줄이 넘었다. 그러니까 두달가까이 된 셈이다.

나는 우리가 혼미상태에 빠졌던 이틀동안과 그후 하루의 표식으로 줄을 세게 더 그었다.

(두달이 가까와오는데…)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약해지는 마음을 스스로 책망하였다.

《악을 써서라도 견디여내야 해. 부대는 기어코 돌아올것이다.》 나는 전우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앞에 그려보며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였다.

그렇다. 부대는 반드시 돌아오며 우리는 부대와 더불어 기어코 전투마당에 서게 되리라. 이와 같은 확신과 신념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이 한가지 마음으로 하여 우리는 모든 고난과 고통을 이겨나갈수 있었다.

이렇게 70여일이 지나고 8월 중순이 되였다. 몸이 채 회복되지 않는 나는 깊은 잠에 들었다가 《허동무, 허동무》하고 나를 흔드는 경옥동무의 목소리에 깨여났다.

《저 소리가 들리지요.》

나는 긴장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우리가 비여둔 밀영쪽에서 사람들의 음성과 인기척이 들려오는것이였다.

《류동지.》

우리에게로 다가온 사람은 틀림없는 류동지였다. 경옥동무는 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로 달려갔다.

부대동무들은 삽시에 우리를 둘러쌌다.

그간 부대는 뜻하지 않게 《토벌대》와 조우하여 예정한 길로 바로 가지 못하였고 또 놈들의 추격을 피하며 수백리길을 에돌아왔었다.

뿐만아니라 지휘부에서 보낸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면서 돌아오느라고 그렇게 늦어졌던것이다.

《빨리 먹을것을 끓이시오.》

우리의 수척한 얼굴과 팔다리를 한참동안 바라보던 류동지는 애처로운 기색을 나타내며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식량이 있어요. 우리가 동무들을 대접하겠어요.》

경옥동무는 풀막으로 들어가서 간직해두었던 한되박의 좁쌀을 가지고 나왔다.

《아니 이게 웬 쌀이요.》

동무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대답도 안했다.

《허동무.》

《경옥동무.》

모든것을 짐작한 동무들은 목메인 소리로 우리 이름을 다시 불렀다.

그리고는 와락 달려들며 저마다 다시금 우리 손을 굳게굳게 잡는것이였다.

우리는 두손을 동무들에게 맡긴채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동지들의 굳은 악수는 70여일간의 온갖 말못할 고난을 풀어주고도 남음이 있었던것이다.

나는 지금도 잊을수 없던 그날을 생각할 때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혁명위업에 더욱 충실할 굳은 맹세를 다지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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